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79화 (679/1,000)
  • 679화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게임 (5)

    몇 분 전.

    ‘가구들의 땅(Furniture Land)’을 빠져나가 ‘오렌지 지옥(Orange Hell)’으로 입장하기 직전, 나는 아키사다 아야카를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해 놓았다.

    그 정체는…….

    부웅- 펑! 부우웅- 쾅!

    좌우로 묵직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쇠구슬, 폐건물을 철거할 때 쓰는 스틸볼이었다.

    마치 시계추처럼 규칙적인 진자운동을 하는 이 거대한 스틸볼은 주변에 있는 것들을 죄다 때려 부수며 움직인다.

    아무리 견고한 방어력과 높은 체력을 가진 탱커라도 이 스틸볼에 맞으면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스틸볼은 가구들의 땅을 빠져나오는 즉시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갑자기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면 속절없이 얻어맞고야 만다.

    가구들의 땅에 뚫려 있는 출구는 너무나도 좁고 가파른 곳이라서 스틸볼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틸볼 함정에 걸려드는 이는 별로 없다.

    왜냐하면.

    부웅- 퍼펑! 후우웅- 콰쾅! 부우우웅-

    스틸볼이 좌우로 움직이는 소리가 너무 너무 커서 굴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그 존재를 눈치 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사다 아야카는 스틸볼에 피격당하고 말았다.

    그녀 정도나 되는 고수가 왜 스틸볼이 움직이며 내는 커다란 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그야…….

    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끼걱-

    내가 좌우로 미친 듯이 드리프트를 하며 만들어 내는 유리 긁는 소음 때문이지!

    “안타깝군.”

    나는 쇠공에 맞은 아키사다 아야카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스틸볼이 좌우로 진자운동을 하며 만들어 내는 소음은 오디오 사운드의 샘플링 주기가 최대 가청주파수의 2배 이상에 해당될 경우 원음을 100%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설정되었지. 스틸볼이 만들어 내는 주파수가 평균 44.1kHz로 고정 설정값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최대 가청주파수인 대략 20kHz의 2배 정도로 설계되었기 때문이야.”

    스틸볼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가는 아키사다 아야카의 항아리를 바라보며, 나는 X키를 눌러 JOY를 표했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채팅창을 향해 부가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나 게임 속에선 뇌정보 증폭으로 현실의 청력 그 두 배 이상으로 듣는다 해도 유리 긁는 소리가 BGM을 넘어서 스틸볼이 만들어 내는 소리까지 가려 버릴 경우에는 함정의 존재를 제대로 간파할 수 없어. 방금 아키사다 아야카 씨의 경우가 바로 그렇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스틸볼의 주파수보다 더 높은 샘플링의 고품질 음원 규격을 따르면 돼. 가령 X이리버의 X스텔앤컨 같은 장비를 캡슐에 추가 설치하여 스튜디오 마스터링 음원 규격인 192kHz 정도를 지원한다면 얘기가 다르지. 물론 이 시점부터의 사운드 플레이는 프로게이머의 가청 영역을 넘은, 뇌증폭 음향업계 프로의 영역이지만 말야.”

    채팅창의 반응은 심플하다.

    -미친놈;

    -뭐라는거야;;

    -그니까 사플을 잘 하라는거지?;;;

    -고인물 횽 빨리 올라가기나 해ㅋㅋㅋ

    -감히 아야카쨩을 욕보이다니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

    .

    .

    나는 서둘러 레이스를 재개했다.

    우승을 향해서라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바로 그때.

    펑!

    내 눈 앞으로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어?”

    나는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놀라운 것이 들어온다.

    “아직 안 끝났어요!”

    아키사다 아아카. 그녀가 씩씩거리는 기색으로 내 앞을 앞서 가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슈퍼 점프로 나를 뛰어넘어 앞을 장악한 것이다.

    -어? 뭐야? 스틸볼에 맞아서 날아간거 아니었음???

    -뭐지 버그인가??

    -님들아! 아까 클립 딴 거 돌려보니까 날아간거 아야카쨩 아님!

    -크...찰나의 순간 스틸볼 피하셨네...무빙 오졌죠?

    -그럼 아까 날라갓던건 머임???

    -그거 그냥 오브젝트였음..가구 파편!

    -오오오오! 아야카쨩 부활!!!

    .

    .

    나는 시청자들의 채팅창을 보고서야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하, 아까 스틸볼에 맞은 건 다른 것이었군?”

    아마 스틸볼에 맞아 날아갔던 것은 주인 없이 버려진 항아리였던 것 같다.

    아키사다는 그 찰나의 순간 천재적인 감각으로 스틸볼을 피해 몸을 낮게 숙였고 함정을 멋지게 피해 간 것이다!

    본인조차 다시 하라면 할 수 없는, 순전히 운과 감각만으로 이뤄낸 기적이었다.

    -와 거의 히로인급 재등장!

    -상상도 못했던 부활 ㄴ(+0+)ㄱ

    -누나! 나죽어!

    -ㅗㅜㅑ화내시는 얼굴로 이쁘시다...

    -오뱅알

    -오늘 뱅송 알찼다~~!!

    -언니 걸크러쉬!!!!

    .

    .

    채팅창에는 온통 아키사다 아야카를 찬양하는 댓글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게 내 방송의 채팅창이라는 것.

    “아, 님들. 왜 제 방송에서 아키사다 아야카씨만 찾아요.”

    -넌 죽어 그냥;;

    -핀볼이나 해라 맞고 날아가~~

    -오이오이 더 이상 아야카쨩을 괴롭히지말라구

    -그스그시

    -그 스트리머에 그 시청자네  확실히ㅋㅋ

    -ㄱㄱㅁㅈ~

    .

    .

    아무래도 열심히 플레이하는 미녀를 건드린 죄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버린 모양이다.

    거기에 아키사다 아야카는 본인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신기를 보이며 위기를 멋지게 돌파해 냈다.

    그러니 관중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원래 그런 게임인 것을.

    이제 슬슬 이 게임이 얼마나 악랄한지 감을 잡은 아키사다는 나에게 바짝 붙어 경쟁의식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홍영화가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아아! 아키사다 아야카 선수! 고인물 선수의 옆으로 바짝 붙어 몸통박치기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러면 위험해요! 자갈이나 진흙, 소음 등으로 교란시키는 것이야 뭐 특정성이 불투명한 만큼 별 상관없다고 해도, 몸통박치기 같은 직접적인 방해 행위는 같은 팀원들 간에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아키사다와 나는 둘 다 빨간 항아리를 타고 있다.

    이 레이스는 엄연히 레드팀과 블루팀이 겨루는 팀플레이, 개인 성적을 위해 같은 팀원간에도 다툼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몸을 부딪치거나 앞을 틀어막는 등 직접적으로 고의 트롤링을 하는 경우 그 자리에서 뒤로 튕겨나감과 동시에 몇 초간 전진이 제한되는 등 각종 패널티를 겪게 된다.

    “…치잇!”

    그래서 아키사다는 내 옆으로 접근했다가 다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같은 편인 이상 노골적인 팀킬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끼이익- 끼익- 찰팍! 쪼르륵- 퐁!

    아키사다는 나름대로 드리프트틑 해 진흙을 튀겨 보았지만.

    끼기기기긱! 까가각! 뿌디딕! 드르르륵! 드긁! 퍼억! 뿡! 푸디딕! 퍼펑! 퍼퍼퍼펑! 뿌직! 뿌직! 뿌지지지직! 푸드득! 푸더덕! 뿡! 빵! 뿡빵뿡빵! 뿌슝삐슝빠슝!

    내가 만들어 내는 압도적인 진흙 파도와 자갈 세례에 비하면 새똥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이이! 너무핡!?”

    나를 향해서 항의하려던 아키사다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내가 뿌린 진흙이 입 안으로 왕창 들어갔기 때문이다.

    “쥬, 쥬거써! 코인무르……!”

    어눌한 한국말과 함께 흙을 뱉어내는 아키사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장애물 천지인 가구들의 땅을 넘어서 별다른 장애물이 없는 오렌지 헬에 입성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가파른 경사로의 형태를 할 뿐 진흙이나 자갈들이 별로 없다. 소음을 발생시킬 만한 유리들도 딱히 없었다.

    같은 팀끼리는 직접적인 몸싸움이 제한되기에 더 이상 진흙탕 플레이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와 지금까지 진짜 치열해서 재밌었는데ㅎㅎㅎ좀 아쉽다

    -여기서부터는 같은 팀끼리 평화로운 레이스겠네요ㅋㅋㅋㅋ

    -ㅎㅎㅎ한동안 소강상태겠네

    -이러면 너무 레드팀이 독주하겠는데?

    -몸싸움이 없으면 노잼인디,,

    -이제부터라도 두 분 힘을 합쳐 멋진 모습 보여주세요!!

    -당분간 휴전을 선언합니다ㅋㅋㅋ

    .

    .

    시청자들 역시도 조금 쉬어 가는 구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키사다 아야카 역시 지금까지의 날 선 모습을 약간 거두어들였다.

    “후우, 제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여기서 까지 날뛰지는 못하겠죠. 같은 레드 팀이니 잠시 휴전하죠. 다음 스테이지까지는 평화롭게…….”

    하지만. 그녀의 말은 미처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천재는 많지만 정점은 하나인 법.”

    나는 딱 한마디를 짧게 던진 뒤.

    …끼이이익! 퍼펑!

    굽이치는 난코스에서 엄청난 기세로 드리프트를 해 코너 바깥쪽에 있던 아키사다 아야카의 항아리를 그대로 부딪쳐 저 멀리 날려버렸다.

    투-웅!

    물론 그 밑은 저 아래, 튜토리얼 초반부로 떨어지는 태초마을행 도돌이표 코스였다.

    “?”

    아키사다 아야카는 허공에 뜬 짧은 순간 자기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

    점점.

    “???”

    빠른 속도로 지면을 향해 멀어져간다.

    나는 윙크를 날려 보이며 씩 웃고는 다시 망치를 휘둘러 항아리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뭐지??? 방금 고인물이 팀킬한거???

    -안돼!!!!! 아야카쨩이 초반부로 떨어진다!!!!!

    -가엾은 아키사다...눈에 눈물 맺혔는데? ㅠㅠㅠㅠ

    -않이, 근데 고인물 왜 팀킬 패널티 안 받음????

    -분명 아키사다 고의로 트롤링했잖아? 근데 왜 패널티가 없냐고!

    -이상하다 몇 번을 돌려봐도 직접 충돌했는데;;;;;;

    -이거 진짜 버근가???

    -뎀 본사에 민원 넣는다ㅡㅡ

    .

    .

    시청자들은 같은 레드 팀인 아키사다를 날려버린 나의 플레이에 분개하면서도 어리둥절해한다.

    왜 직접적인 충돌로 같은 팀을 배신했는데 뒤로 밀려난다거나, 충돌 판정을 크게 받는다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몇 초간 굳어 버리는 등의 패널티를 받지 않느냐 그거다.

    개중에는 격분하여 뎀 본사로 직접 항의 메일을 보내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항아리 속에 아이템 하나를 숨긴 채로.

    -<항아리 물감(빨강)> / 재료 / D

    항아리를 자신만의 색으로 알록달록 색칠해 보자!

    ‘대회 규정 상 다른 아이템들은 다 못 쓴다고 해도… 항아리 외관에 색칠하거나 낙서하는 카트 튜닝 아이템만큼은 자유거든.’

    그렇다.

    나는 원래 청팀이라 이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