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77화 (677/1,000)
  • 677화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게임 (3)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게임’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 스트레스를 어떻게 발산하는지 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실험이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관조적으로 플레이하던 나도 어느새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X발, 또 떨어졌네. 후……”

    나는 항아리를 일으키며 욕지꺼리를 했다.

    그러나 개인방송 채팅창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고인물 횽 왜 욕해ㅋㅋㅋㅋ

    -방금 전까지만 해도 떨어지는걸 쿨하게 받아들이라던 분 어디감?

    -제 4의 인격이 나와버린 것ㅋㅋㅋㅋㅋㅋ

    -횽아 화내지마ㅠㅠㅠ

    .

    .

    “아 빡치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내요!”

    -니가 아까 내지 말라고 했잖앜ㅋㅋㅋㅋ

    -욕하는 거 좋아! 더 욕해줘요 하악-

    -진짜 개웃기넼ㅋㅋㅋ욕 찰진거봐~ 짜릿해♥

    -들어올땐 분명 대현자였는데...

    .

    .

    “아 또 떨어졌네! 아아악! 진짜 믿고 거르는 발암 똥망겜 수준!”

    내가 망치를 샷건처럼 쓰며 바닥을 쾅쾅 칠 때마다 채팅창은 ‘ㅋ’으로 도배가 된다.

    채팅창이 미친 듯한 속도로 갱신되었고 자연스럽게 후원금들도 어마어마한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나 내가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떨어지거나 화를 못 이겨 비명을 지를 때마다 시청자들은 즐거움의 비명을 지른다.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게임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놓여있는 다른 인간을 보며 얼마나 가학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실험이기도 한 모양.

    ……뭐 아무튼.

    ‘이만하면 됐다.’

    나는 더 이상 일부러 떨어지는 것을 멈췄다.

    너무 압도적으로 잘해 버리면 타인들의 시선이 경외감을 넘어 의심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지금껏 추락을 반복하며 적당히 적응하는 척을 해 왔던 것이다.

    뭐, 그 도중에 후원금이 어마어마하게 터진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가 볼까!”

    나는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 반복숙달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떨어지는 것 없이 쭉쭉 치고 나갑니다.”

    -네다떨~

    -네 다음 떨어짐~

    -아...올라가는것에 성공했으면 좋겠는 마음이랑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고인물 당신은 대체...

    -고인물 횽 나는 형이 떨어지는 게 더 좋아, 아 물론 꼬…

    -제 이름 넣어서 한번만 욕해주세요♥

    -더 욕해줘! 욕을 해! 욕하란 말야!

    .

    .

    나는 시청자들을 향해 눈을 한번 찡긋하고는 항아리를 밀어 앞으로 나아갔다.

    우선 첫 번째 관문인 악마의 똥X… 아니 굴뚝.

    나는 미끄럼틀처럼 내려와 있는 종유석 끝에서 망치를 이용해 땅을 쳐 오른쪽으로 점프했다.

    동시에 네모난 박스처럼 튀어나와 있는 돌부리에 망치를 걸고 빗면을 향해 슬슬 내려오다가 아래쪽 돌부리를 쳐 위로 점프했다.

    동시에 허공에 튀어나와 있는 등불에 망치를 걸고 확 당기는 힘으로 또다시 공중으로 치솟아 오른다.

    지금까지 모든 이들이 쩔쩔매던 악마의 구간을 단숨에 돌파해 제끼는 순간이었다.

    …….

    정적.

    거의 신기에 가까운 내 플레이를 본 밑의 참가자들이 입을 딱 벌린다.

    채팅창 역시도 잠시 얼어붙었다.

    오로지 나의 덤덤한 멘트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자, 지금 보여드린 동작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도 간단합니다. 그냥 기본적인 기술들만을 조합해서 만들어 낸 결과인데요. 조금만 게임에 적응이 되어도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대회에서 나누어 주는 망치는 일정 데미지량 이상의 타격 시 자루의 공간점유가 무시되고 망치 끝부분만 유효하게끔 설정되어 있다.

    이 망치는 원을 그리며 돌릴 수도 있고 찌르거나 휘두를 수도 있는데 둥글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도중에는 망치를 당기거나 밀기 매우 어렵다.

    “그러면 일단 제가 터득한 기본 기술들을 알려드리죠. 먼저 ‘둥글게 휘둘러 점프하기’입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한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

    망치를 둥글게 휘둘러 앞에 걸고 당기는 기본적인 방법으로 힘을 크게 받아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지지만 좁고 복잡한 지형에서 사용하기는 무리다.

    “다음은 ‘슈퍼 점프’입니다.”

    망치를 바닥에 세게 쳐서 점프하는 방식이다.

    수직으로 찍을 것인지 휘두를 것인지를 적재적소에 따라 선택하여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은 ‘빗당겨 점프’!”

    망치를 장애물에 걸고 당겨서 하는 점프로 원심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 어느 점프보다도 힘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다만 망치가 원을 그리는 것이 너무 민감하다 보니 방향을 제대로 컨트롤하기 무척 어렵다.

    “자 다음부터는 상급 기술입니다. 이른바 기본 기술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콤비네이션이죠.”

    나는 망치자루에 침을 퉤 뱉고 슥슥 비벼 잡았다.

    “먼저 ‘체공 반동’입니다.”

    나는 공중에 붕 뜬 상태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종유석과 벽을 망치로 후려쳐 계속해서 위로 상승했다.

    “망치를 걸거나 당기는 정적 상태에서의 기술과 달리 이것은 흡! 계속해서 공중에서 헛! 망치로 때려 만드는 충격파로 훗! 계속 실시간으로 상승 하! 하는 겁니다 호!”

    나는 엄청난 속도로 경사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망치로 주변 오브젝트를 때리는 방식으로 등반하는 것은 불안정하지만 그만큼 빠르다.

    꼼짝없이 추락해야만 할 때도 가만히 있기보다는 이런 방식으로 탈출하는 것이 좋다.

    “그 다음으로 연계할 수 있는 기술로는 ‘홀드’가 있지요.”

    나는 슈퍼 점프로 솟아오른 뒤 망치를 이용해 옆에 있는 종유석에 걸고 그 상태로 움직임을 딱 고정시켰다.

    “떨어지는 중이거나 애매한 곳에 걸렸을 때 이 홀드만 잘해도 재정비를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망치를 찔러 넣고자 하는 틈에 정확히 찔러 넣어야 가능한 기술로 반동 억제, 낙하 방지를 위해서는 거의 필수적이죠. 괜히 어줍잖게 체공 반동 기술을 쓰느니 이것만 잘해도 추락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이 쉬워 보이는 동작을 상급 기술로 분류했냐면은… 떨어질 때 침착하게 홀드 기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대부분 망치를 조급하게 휘둘러 상황을 모면하려 하다가 더욱 안 좋아질 뿐이니까.”

    나는 계속해서 체공 반동과 슈퍼 점프를 이용해 암벽을 타고 올라갔다.

    중간중간 홀드 기술로 안전한 위치를 점유하면서.

    “자, 마지막 상급 기술은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아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움직이고 있는 항아리를 옆으로 확 꺾었다.

    그리고 항아리가 꺾이는 그 즉시 망치를 앞으로 후려친다.

    그러자.

    …퍼펑!

    순간적이지만 항아리가 앞으로 가열차게 뻗어나갔다.

    -와! 방금 뭐였음???

    -항아리가 순간 급발진했는데?

    -대박! 뭐지? 버그인가?

    -항아리 가속도 오졌다 뭐냐??

    .

    .

    댓글들이 폭발한다.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바로 ‘드리프트’와 ‘미니 터보’입니다.”

    이것은 카X라이더에 나오는 유명한 시스템이다.

    항아리를 꺾어 드리프트를 한 뒤 순간적으로 망치로 바닥을 쳐 미니 터보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들을 순간 반복적으로 연계한다면!?”

    이윽고, 내 항아리가 좌우로 구불구불하게 미친 듯이 꺾이며 위로 빠르게 전진한다.

    드리프트와 미니 터보를 엄청난 속도로 이어 붙여 전개하는 기술.

    바로 ‘스네이킹’인 것이다!

    “자, 이렇게 뱀처럼 구불구불 움직여서 단숨에 악마의 똥X를 통과하는 겁니다!”

    나는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ㅋ’세례를 등지고 단숨에 굴을 돌파했다.

    바로 그 순간.

    …텅!

    내 항아리가 툭 튀어나와 있는 종유석에 부딪쳤다.

    …텅! …텅! …텅!

    그것도 모자라 구불구불 늘어져 있는 나무뿌리 사이에 낑기기까지 했다.

    -아아, 진짜 대박 속도였는데ㅠㅠㅠ

    -ㄷㄷㄷ이대로 신기록 돌파하나 했거늘...

    -와 진짜 아깝다 하필 저기서 딱 걸리네;;;

    -그럼 이제 다시 밑으로 떨어져서 처음부터 재시작?

    .

    .

    내 추락을 바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다들 아쉬워한다.

    그만큼 내가 굴을 타오르는 속도가 엄청났고 곧 마의 구간인 악마의 똥X를 돌파하는 것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 없습니다. 기본 기술과 상급 기술에 이어 금단의 비기 ‘최상급 기술’이 남아 있거든요.”

    이윽고, 나는 종유석과 나무뿌리 사이에 단단하게 낀 항아리를 좌우로 흔든다.

    ……그러자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 몸이 깜빡깜빡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종유석과 나무뿌리 틈을 빠져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원래 있던 곳보다 높은 곳으로 뜬금없이 순간이동을 한 채로!

    -?????????

    -뭐냐 저거?? 버그임???

    -어떻게 앞으로 이동했지?

    -와 대박이다 뭐임 이거?

    .

    .

    댓글들은 놀람 일색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주었다.

    “제가 보기에는 맵 중간중간 ‘일부러 부딪치거나 낑기기 좋은 장애물’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 위치에 끼여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면 그 상태 그대로 앞쪽 위치에 리스폰되는 것이죠.”

    한마디로 지형 상 이미 빠져나온 것으로 간주되어 앞으로 강제 이동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형을 관장하는 불똥정령이 착오를 일으켜 발생하는 현상 같다.

    물론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핀 포인트는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기에 나는 우연을 가장하여 이곳 저곳에 부딪쳤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현 시점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는 압도적인 스코어였고 이에 따라 시청자들은 매우 흥미롭게 나의 레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오!!!!고인물 횽을 따라잡는 용자 등장!

    -누구냐! 쟤도 대박 빠른데ㄷㄷㄷ

    -어? 저쪽이 더 맘에 든다! 고인물 져라!

    -오오 드디어 라이벌 등장 ( + ㅅ+)/

    -죽어라 고인물wwwww!!

    .

    .

    내 팬(?) 들이 새로운 적수의 등장을 알린다.

    이 시점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있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이내 낯익은 얼굴이 눈에 보였다.

    노력형 천재, 언제나 성실한 모범생.

    일본의 국민여동생인 아키사다 아야카가 빨간 항아리에 탄 채 나를 열심히 추격해 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