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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76화 (676/1,000)
  • 676화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게임 (2)

    현직 뎀걸 홍영화는 열심히 대회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항아리에 들어간 채 망치로 땅을 밀고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극한의 암벽등반 마라톤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으아아아! 떨어진다!”

    “안 돼!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도저히 못 가겠어! 너무 힘들어!”

    “끄아아아아! 죽어! 죽어!”

    “나 안 해.”

    올라가는 도중에 하도 힘들고 화딱지가 나서 혈압이 팍팍 올라 로그아웃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절벽에서 떨어져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니 짜증도 이런 짜증이 없다.

    홍영화는 열기구에 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수많은 이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 선언을 할 정도로 극악의 난코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항아리와 망치만으로 암벽을 등반하고 있었다.

    “오오! 다들 대단합니다! 항아리를 자동차 삼아, 망치를 노 삼아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평평한 곳이었다만… 곧이어 등장할 ‘벽’은 어떻게 할까요!”

    아니나 다를까, 홍영화의 걱정대로 플레이어들은 슬슬 난코스로 접어든다.

    튜토리얼 구간의 끝부분, 거의 90도에 가까운 경사로를 오르려면 정말로 정밀한 조작이 필요해진다.

    평지였다면 그냥 망치로 뒤의 땅을 밀거나 앞의 땅에 망치를 박아 넣고 당기는 정도로 전진할 수 있었지만 경사를 오르기 위해서는 망치로 밑의 땅을 쳐 항아리를 허공에 띄운 뒤 다시 망치를 갈고리처럼 휘둘러 위에 튀어나와 있는 장애물에 걸고 그것을 잡아당겨 반동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실로 엄청나게 불친절한 방식의 대회.

    초반의 이 말도 안 되는 진입장벽에 일반적인 마라톤이나 암벽등반을 상상하고 온 참가자들은 곤혹스러운 기색이다.

    “와 진짜 조작감 나쁘다.”

    “물리엔진의 영향이 너무 커!”

    “아무리 항아리랑 망치가 파괴불가라고 해도, 떨어지면 너무 무섭다고! 심지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거잖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오르는’ 것이다 보니 한번 떨어지면 정말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그리고 그 경우 다시 올라가기란 보통 힘들고 짜증나고 허탈한 것이 아니다.

    괜히 ‘발암게임’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홍영화는 끈기 있게 도전하는 플레이어들을 쭉 돌아보며 감탄했다.

    “그래도 다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실로 멋진 모습들입니다! 비록 한 구간에서 고작 몇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수십 번을 재도전해야 하는 악랄한 장벽이 그 상대라고 해도… 그 투쟁의 시간이 곧 훈장이 될 테니까요!”

    어찌 보면 입에 발린 뻔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극기 레이스에 임하는 플레이어들의 진지한 열의만큼은 진짜배기였다.

    그때.

    “오오!”

    홍영화가 탄성을 질렀다.

    드디어 초반 튜토리얼 구간을 아등바등 벗어난 플레이어가 나온 것이다!

    “오오 레드 팀의 아키사다 아야카 선수! 드디어 바위와 말라죽은 고목들만 있는 구간을 벗어나 경사로로 진입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 틈에서 빨간 항아리를 탄 아키사다 아야카가 선두로 나온다.

    아키사다는 땅을 망치로 쳐서 허공으로 붕 떠오른 뒤 망치를 말라죽은 나무에 걸고 잡아당기는, 힘들지만 결과는 확실한 다소 고전적인 방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으윽… 끙!”

    하지만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아키사다의 전진은 90도 이상의 가파름을 자랑하는 암벽에 막혀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여기부터는 절벽 중간중간에 튀어나와 있는 돌부리나 홈을 잘 찾아 움직여야 했기에 가뜩이나 느리던 전진 속도가 몇 배나 더 지지부진해진다.

    홍영화는 절벽을 오르는 아키사다를 보며 열심히 중계를 했다.

    “네! 레드 팀의 아키사다 아야카 선수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지금, 블루 팀의 추격자들이 매섭습니다! 범접불가 괴력의 소유자인 윤솔 선수와 민첩성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드레이크 선수가 현재 아키사다 아야카 선수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데요!”

    그 말대로 파란 항아리를 타고 있는 윤솔과 드레이크는 빨간 항아리에 타 있는 아키사다 아야카를 바짝 추격해 온다.

    그 외에 꽤나 이름이 알려진 각국의 프로게이머들도 상당수 참가해 있는 것이 보였다.

    한국 선수들 중에는 최근에 프리 선언을 한 프로게이머 이연호라거나 코치로 전향한 임요셉을 비롯해 이준호나 류요원 등의 1티어들도 이 경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참가자들의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장벽의 위압감은 엄청났다.

    홍영화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 난다긴다하는 선수들이 전부 튜토리얼 구간의 끝! 그리고 악마의 굴뚝(Devil's Chimney) 구간의 시작에서 막힙니다! 악마의 굴뚝 구간은 수직을 넘어서는 절벽지대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좁은 홈이나 바위 사이의 통로를 기어올라야 하는데요! 그 안에서 망치를 자유롭게 돌리고 휘두르기 힘들어 아차 하면 다시 시작 구간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공간입니다!”

    막 경기를 시작한 플레이어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첫 번째 구간.

    즉 초반 보스가 나타난 것이다.

    “엄청 좁은 수직동굴이네. 여기를 항아리 타고 어떻게 올라가? 맨몸으로도 힘들겠구만.”

    “젠장, 뭐 통로가 이래? 이걸 망치로 올라가라고?”

    “악마의 굴뚝이 아니라 악마의 똥X네, X꼬.”

    1차 대격변 이후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지대.

    폐광이 땅 속 깊이 파묻힘과 동시에 반대편으로 융기해 오른 거대한 돌산.

    이곳에서는 최선두였던 아키사다 아야카뿐만 아니라 윤솔과 드레이크, 그리고 이준호, 이연호, 임요셉, 류요원 등의 쟁쟁한 랭커들까지도 모두 공평하게 허우적거린다.

    등반하라고 만들어진 산이 아니라 오르지 말라고 만들어진 산이기에 그렇다.

    모두가 그렇게 악마의 굴뚝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좌절할 때.

    “엇!? 어엇!”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열기구에 타고 있던 홍영화 역시 완전히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악마의 굴뚝에 진입한 플레이어가 나왔습니다! 경기 중 최초로 선두를 탈환하고 악마의 영역을 돌파해 나갑니다! 그 이름은……!”

    *       *       *

    이어진. 바로 나다.

    “…늘 하는 자기소개 타임이로군.”

    나는 열심히 망치를 움직여 빨간 항아리를 밀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당기고 있다는 것이 맞다.

    수직으로 뚫려 있는 작고 좁은 굴에 항아리 각도를 잘 맞춘 뒤 망치로 굴 벽에 난 주름들을 긁으며 위로 몸을 끌어당긴다.

    마치 악마의 ‘똥X’ 속을 긁으며 파고드는 모양새이긴 하다.

    ‘이것의 모티프가 된 원작 게임에서도 이런 맵이 있는데… 이거 나중에 저작권 문제 생기는 것 아냐?’

    그 항아리 게임(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에서도 좁고 어둡고 길다란 이 맵은 꼭 특정 부위를 연상시키게끔 디자인 되어있다.

    뎀은 그 게임을 거의 표절에 가까울 정도로 따 와서 이토록 리얼하게 구현해 놓은 것이다.

    보통 여기서 첫 도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게 된다.

    가뜩이나 조작감도 나쁘고 아무튼 이래저래 어려운 게임인데 거기에 맵까지 이렇게 괴랄하면 애초에 여기를 돌파해서 완주하는 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의문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참 쉽죠?”

    나는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악마의 똥X, 아니 굴뚝 구간을 돌파하고 있었다.

    오히려 평지에서보다 빠른 속도였다.

    그런 나를 보며 저 밑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기겁한다.

    홍영화 역시 열기구의 캠을 나에게만 고정시키며 중계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한국의 고인물 선수가 1만 명이 넘는 전 세계 참가자들을 모조리 젖히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어, 어떻게 저런 속도를 내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퉁!

    일단 똥X…… 아니 굴뚝의 입구 바로 밑에서 망치를 땅으로 쳐 뛰어오른다.

    그 뒤에 외벽에 달려 있는 등불의 목에 망치를 걸고 최대한 회전 없이 당겨 추진력으로 올라가면 다음 벽의 대각선에 또 다른 등불이 보인다.

    …달그락! …달그락! 기긱- 끽-

    여기서 망치를 잘못 짚으면 바로 굴러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 했다.

    “망치로 바닥 때리기와 등불 걸치기를 할 때는 착지 때 벽과 부딪치는 반탄력만 주의하면 되지. 다들 망치로 항아리를 당길 때는 힘을 주지만 정작 항아리가 땅이나 벽에 닿는 순간에는 힘을 빼 버린단 말이야.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나는 망치가 경사진 맨땅을 때리는 일이 없도록, 홈이 패여 있거나 등불이 튀어나와 있는 부분만을 칼 같이 짚으며 위로 튕겨 올라갔다.

    “아아 고인물 선수! 빠릅니다! 빨라요! 마치 문어나 오징어가 물을 머금었다가 분사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쭉쭉 치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홍영화의 중계가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저 밑의 플레이어들을 향해, 그리고 이 대회 중계방송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을 향해 카메라 스크린에 대고 말했다.

    “이 대회는 쉽지 않은 룰과 조금만 실수해도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점 때문에 심리적 압박감이 큽니다. 하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몇 번에 걸쳐 반복 숙달을 하며 도전하다 보면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죠. 한번 역경을 딛고 일어나면 그 정도 수준의 역경은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한번 겪고 올라온 길은 다시 완주하기 쉬우니까요.”

    동시에, 나는 나의 개인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근엄하게 한마디 했다.

    “항아리 게임도 게임일 뿐입니다. 어찌 보면 시간을 투자한 만큼 익힐 수 있는 공평한 게임이죠. 떨어지는 것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다시 하면 돼요. ‘여기까지 했으니까 괜찮아, 요령은 익혔으니 다시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실수라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자 사람들은 감동받은 표정으로 나를 우러러본다.

    포기하려던 이들은 이를 악물고 다시 출발선에 섰고 힘들게 싸워나가고 있던 이들은 의지를 다지며 내가 탄 항아리를 올려다보았다.

    선두에 있던 아키사다나 윤솔, 드레이크 역시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멋짐에 감동했는지 댓글들도 난리가 났다.

    -진짜 멋있다 고인물 횽아...

    -오늘은 진짜 띵언ㅇㅈ이다

    -사스가...명언제조기..^^

    -감동받았습니다...옷만 제대로 입고 말하셨어도 우리 애 보여줄텐데

    -땀 흘리는모습이 멋있어요! 이게 오늘의 핫클립이다! 핡♥

    .

    .

    후, 반응이 이리 좋을 줄이야.

    나는 한 번 더 멋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겨내야 할 적은 나 자신 하나 뿐. 그러니 한 번의 실패에 스트레스 받을 것 없습니다. 다들 화내지 마시고 끝까지 힘내세…….”

    그 순간.

    …붕!

    나는 휘두른 망치가 허공을 가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망치는 목표로 했던 등잔이 아니라 애꿎은 맨땅을 땅! 하고 때렸다.

    어? 왜 네가 거기서 걸려?

    내가 미처 무어라 중얼거리기도 전에.

    떽떼구르르…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붕 헛돌고 거의 수직에 가까운 궤도로 굴러 떨어졌다.

    쿵!

    데굴데굴 굴러가던 내 항아리가 멈춘 곳은 바로 출발선이었다.

    원점.

    “…….”

    그리고 정적.

    모든 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들 속에서.

    “…….”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툭툭 털고 일어나 활짝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만 외쳤다.

    ‘아, C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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