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75화 (675/1,000)
  • 675화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게임 (1)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나는 간만에 게임에 접속했다.

    오늘 내가 온 곳은 골렘들의 성지로 알려진 무통증 협곡의 외곽.

    늘 한산하던 이 광활한 오픈필드에는 웬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 북적북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낯익은 얼굴들도 보인다.

    “여기다, 어진.”

    “왔어?”

    드레이크와 윤솔이 나를 맞이했다.

    오늘 우리가 이 황무지에 모인 사정은 여기 모인 모든 인파들의 사정과 같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황무지 위에 솟아있는 커다란 기둥 두 개를 바라보았다.

    그 두 기둥 사이에는 출발선을 알리는 긴 금이 그어져 있다.

    금 위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

    이 대회는 기본적으로 마라톤의 성격을 띤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가로로 된 코스를 완주하는 마라톤과는 달리 세로로 된 기암괴석 코스를 등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격변 이후 폐광지대가 높게 치솟아 생겨난 해발 1천 미터의 고지.

    심지어 등반하는 선수들은 손과 발을 쓰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이 까마득한 높이의 돌산을 오르느냐?

    바로 항아리에 들어간 채 긴 망치 한 자루만을 이용해서 이 산을 올라야 한다.

    “정말 엄청난 극한 경기로군.”

    드레이크는 고개를 들어 오늘 올라야 할 돌산을 보고 경악했다.

    하늘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은 돌산은 때때로 90도의 경사를 넘어 역으로 툭툭 불거져 나와 있는 돌덩어리와 종유석들 때문에 등반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플레이어들은 항아리에 들어간 채 두 손으로 망치를 노, 또는 갈고리처럼 휘저어 항아리를 밀며 이 가파른 암벽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망치를 돌부리에 걸고 그 반동력으로 튕겨 올라가거나 망치로 땅을 밀어 항아리에 탄 채 전진하는 둥 아주 괴랄한 동작들이 요구된다.

    (물론 이 경우 항아리와 망치는 파괴불가 오브젝트이다)

    “세상에 이런 정신 나간 게임이 있다니.”

    윤솔은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이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 게임대회의 콘셉트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게임은 카X라이더와 항아리 망치 게임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진 미니 게임이지.”

    ‘카X라이더’는 모두가 알다시피 적팀과 청팀이 자동차를 타고 레이스를 벌이는 캐쥬얼게임이다.

    그렇다면 ‘항아리 망치 게임(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은 무엇이냐?

    그것은 2017년에 국내에서 크게 유행하게 되었던 게임으로 항아리에 탄 남자가 긴 망치 한 자루만으로 가파르고 험난한 돌산을 오르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다.

    오로지 마우스만으로 플레이하며 망치로 땅을 밀어 점프를 하거나 망치를 갈고리처럼 걸고 잡아당겨 위로 이동할 수 있다.

    조작감이 극악인 것은 물론이요 물리엔진의 영향도 받기 때문에 조종하기가 매우 매우 어렵다.

    특히나 정상에 거의 다 왔다고 해도 한 순간 클릭을 실수하면 바로 밑으로 떨어져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발암게임’으로도 불린다.

    거기에 이 높고 가파른 돌산에는 낙사구간이 수도 없이 많은지라 한 구간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번의 시도가 필요하다.

    거의 리얼타임으로 자동 저장이 되기 때문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그대로 끝이다.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 관대함이라고는 전혀 없이 악랄하기만 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어려운 대회이기에 가치가 있지.”

    나는 항아리 망치 게임의 맵을 거의 그대로 오마쥬해 놓은 이 거대한 코스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대회는 이처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기에 훗날 수많은 고인물들이 자신의 숙련도와 용기, 인내심을 시험해 보는 코스로 여겨지곤 했다.

    단순히 이 코스를 완주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일종의 트로피나 훈장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마라톤이 그토록 인기 있는 종목이듯, 자신과 무수히 싸워 결국 한계를 극복하는 고인물들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눈물겨운 감동을 준다.

    “유다희가 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했단 말이지?”

    유다희는 과연 게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극한의 짜증과 피로, 조바심을 딛고 정상에 올라야 비로소 진정한 한 사람의 수준 높은 게이머가 된다는 것을 그녀는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차피 나 역시도 이 대회에 참가할 생각이었으니.”

    2차 대격변을 일으킬 중요한 열쇠가 이 대회의 상품으로 걸려있기도 하다.

    그러니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나는 반드시 여기서 우승해야 했다.

    “잘 해 보자 파트너.”

    나는 망토 자락 밑에 숨어 있는 쥬딜로페를 향해 말했다.

    원래 항아리 대회에 나갈 때는 펫을 데리고 나오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알기로 2회차 때부터 생긴다.

    워낙에 펫이라는 것이 희귀하니 1회 대회에는 딱히 펫을 규제하는 규정이 없는 것이다.

    [뿌우-]

    쥬딜로페는 망토자락을 쥐고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그러더니.

    [어…엄…마.]

    내 옆에 있는 윤솔을 바라보고 부정확하지만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내뱉었다.

    “꺄악! 우리 쥬딜로페가 말했어!”

    윤솔은 깜짝 놀라하며 쥬딜로페를 안아들고 쓰다듬는다.

    “오구오구~ 그래 엄마야~ 요 귀여운 녀석.”

    윤솔의 품에 안겨 기분이 좋아진 듯한 쥬딜로페, 녀석은 내친김에 내 쪽도 돌아본다.

    [아…아…아.]

    오? 설마 ‘아빠’라는 단어가 나오려나?

    나는 내심 기대감을 담아 쥬딜로페를 바라보았다.

    이내 쥬딜로페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말을 완성했다.

    [아…랫것.]

    …….

    나는 쥬딜로페를 잡아와 망토 밑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혈압이 팍팍 오를 정도로 극한인 마라톤 암벽등반 레이스를 마치고 나면 우리 둘의 사이도 조금은 더 돈독해져 있으리라.

    ‘2차 대격변 전까지 쥬딜로페와의 호감도도 높여두려 했는데 잘 됐군.’

    나는 주최측에서 나눠 주는 항아리와 긴 망치자루를 받으며 생각했다.

    한편.

    나와 드레이크, 윤솔은 빨간 항아리와 파란 항아리 중 하나를 랜덤하게 배정받았다.

    이 레이스는 적팀과 청팀으로 나뉘며 1등, 2등, 3등으로 들어온 사람들 외에 따로 팀 점수도 계산한다.

    드레이크와 윤솔은 청색 항아리를 받았다.

    나 역시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

    …툭!

    망치에 힘을 주어 뒤를 밀자 항아리가 앞으로 이동한다.

    이어서 망치를 앞에 있는 돌부리에 걸고 당기자 항아리가 앞으로 확 움직였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망치 자루로 바닥을 쿵 찍자 항아리는 위로 솟구쳐 오른다.

    ‘조작법은 회귀 전 그대로군.’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슬쩍 곁눈질로 출발선 라인을 훑어보니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경기에 참가한 상태였다.

    알몸으로 항아리에 들어간 사내들이 꽤 많은 것으로 봐선 덜렁교 신자들도 나를 따라 우르르 참가한 모양.

    그리고 개중에는 의외의 얼굴도 있었다.

    “…어?”

    나는 출발선 라인 맨 앞쪽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여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키사다 아야카. 그녀도 이 혈압 마라톤 항아리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참, 저 사람도 은근히 괴짜란 말이야.’

    나는 피식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출발선 앞의 단상 위로 낯익을 얼굴이 하나 더 올라온다.

    뎀걸 홍영화, 그녀는 오늘 경기의 사회와 중계를 맡은 모양인지 마이크를 들고 단상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스크루지 후작. 과거 내가 마몬의 꼬드김에 넘어갈 뻔한 것을 구해 줬던 바 있는 세계제일의 거부 NPC가 홍영화의 옆에 서서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홍영화가 말했다.

    “네! 오늘 혈압 마라톤 항아리 대회의 최대 스폰서이신 스크루지 후작님을 소개합니다!”

    그러자 곳곳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 거대한 규모의 행사에 돈을 대 줬다는 점에서 스크루지 후작의 재력은 역시나 대단하다.

    나도 그의 재력에 박수를 쳐 주었다.

    스크루지 후작은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수많은 참가자들 앞에서 말했다.

    [저는 충분히 여러분들이 좋아할 만한 대회를 개최할 수도 있었습니다. 적당히 극복하기 쉽고, 적당히 성취감 있으며, 적당히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대회를요.]

    하지만 이내 스크루지 후작의 눈은 굳은 의지로 빛난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스크루지 후작을 올려다본다.

    스크루지 후작은 다시끔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대회는 착하고 결실 있는 대회가 아닙니다. 씁쓸하고 변덕스럽고 좌절시키고 자비 없고 차갑고 비인간적이죠.]

    모두들 입을 다물고 스크루지 후작의 연설을 듣는다.

    하지만 그의 연설문이 과거 ‘항아리 게임’을 만들었던 베넷 포디(Bennett Foddy)의 격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스크루지 후작은 말을 이었다.

    [이 대회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서 개최됩니다. 바로 당신들이죠. 이 대회는 당신들에게 시련과 상처를 주고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후회, 절망에 빠지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왜 내가 이런 행사를 기획했냐고요?]

    말을 잠시 멈춘 스크루지 후작은 모여 있는 군상들의 면면을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빙긋 미소 지었다.

    [Getting Over It.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평소 오만불손하고 고압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스크루지 후작의 성격과는 꽤나 다른 익살맞은 표정과 말투였기에 사람들은 조금 놀랐다.

    물론 마몬이 사라진 이후 그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말이다.

    ‘…극복해 보라 이거지?’

    나는 스크루지 후작에게서 시선을 떼고 슬쩍 고개를 돌려 그 옆을 바라보았다.

    출발선의 뒤편, 가설무대가 설치된 공간의 안쪽에는 하늘을 향해 주둥이를 들고 있는 거대한 대포가 서 있었다.

    “와아! 스크루지 후작님! 이 거대한 대포는 뭔가요? 엄청 크네요!”

    [허허허, 그것은 축포입니다. 우승자가 나왔을 때 그의 업적을 기념해 축하하기 위해 만든 대포이죠. 모두의 기억에 평생 남을 화려한 불꽃놀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젊은 친구에게서 배운 놀이죠.]

    스크루지 후작은 내가 그의 대저택에서 벌였던 불꽃놀이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때 꽤나 인상 깊게 여겼었나 보다.

    홍영화는 대포의 거대한 사이즈를 올려다보며 입을 딱 벌렸다.

    “우오와아아아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대박 크네요!”

    [허허허,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대포일 겁니다.]

    “근데 막 이렇게 큰 대포가 오폭을 하거나 하면 큰일 나겠죠? 아무래도 사이즈가 있으니?”

    [아, 그 점은 염려 말아요. 이 대포는 특수한 대포라서 크고 단단한 포탄 같은 건 넣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아주 고운 분말 같은 것들만 장전할 수 있죠. 불꽃놀이 재료 같은 것 말입니다. 살상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아요.]

    그 말을 들은 홍영화는 비로소 안심했다는 듯 대포의 커다란 포신을 툭툭 두드린다.

    “네! 이제부터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가자 여러분들께 간략하게 코스 설명 드리겠습니다!”

    홍영화는 스크린 창을 열어 모두가 볼 수 있게 홀로그램 영상을 띄웠다.

    황무지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가 홍영화가 보여 주는 홀로그램을 쳐다본다.

    ‘혈압 마라톤 오브 더 항아리’의 맵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홍영화가 홀로그램을 만지자 거대한 돌산의 하단부가 크게 확대된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암벽들과 말라죽은 나무, 툭툭 불거져 나온 종유석들로 가득한 공간.

    “자 맨 처음은 ‘튜토리얼(Tutorial) 구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암벽을 오르다가 떨어지게 되면 가장 많이 볼 구간이죠.”

    홍영화는 이내 화면을 슬라이드처럼 넘겼다.

    그러자 그보다 약간 상위의 구간이 확대된다.

    좁고 가파른 협곡 사이의 오르막길, 거의 수직에 가깝게 뚫린 좁은 통로 군데군데 등불이 으스스하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다음은 ‘악마의 굴뚝(Devil's Chimney) 구간입니다! 암벽지대를 지나 수직으로 경사진 좁은 곳을 타올라야 하는데요, 길이 좁아서 망치와 항아리로는 운신이 쉽지 않을 겁니다!’

    홍영화의 말을 들은 수많은 참가자들이 여기에서부터 벌써 긴장을 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코스는 더더욱 험난해 보이는 것이었다.

    공사 중인 요새와 성채, 지어지다 만 건물과 집들이 긴 미끄럼틀을 이루고 있다.

    수북하게 자랐다가 말라죽은 넝쿨와 덤불들이 황량해 보였다.

    “그 다음은 ‘가구들의 땅(Furniture Land)’입니다! 폐기된 가구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는 공간인데요! 그 사이사이의 좁은 틈이 정말 고역이라서 악마의 내장이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죠?”

    그 다음은 석양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고 있는 구간이었다.

    화강암 절벽에 우뚝 솟구친 교회 건물이 웅장해 보였다.

    특히나 위로 곧게 솟구친 종탑 때문에 그 장엄함은 한층 더 배가된다.

    “그 다음은 ‘모루 점프(Anvil Jump)’라 불리는 구간이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가파른 경사와 거의 막혀 있다시피 한 통로! 그리고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야생 박쥐떼들까지! 정말로 무시무시한 코스입니다. 가장 끝에 있는 모루를 딛고 위로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극복해야 할까요?”

    여기까지만 봐도 아찔하다.

    벌써 몇몇 사람들이 짐을 싸고 출발선에서 돌아섰을 정도로.

    하지만 홍영화의 설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양동이 점프(Bucket Jump)’ 구간입니다! 커다란 뱀이 사는 구간으로 출구에는 웬 양동이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이네요? 장애물과 장애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당최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힙니다. 멀쩡한 몸으로도 뛰지 못할 거리를 항아리에 갇힌 채 뛰라니, 이것 참 막막하네요!”

    그 다음으로 드러난 맵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맥이었다.

    “네! 드디어 올 게 왔습니다! ‘아이스 마운틴(Ice Mountain)’ 구간입니다! 눈 때문에 어디에 망치를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시야도 거의 안 보입니다! 거기에 춥기까지 하군요! 까딱 잘못해서 얼음에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바로 튜토리얼 구간으로 떨어져 버릴 겁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여러분들의 항아리는 파괴불가이기에 그 어떠한 낙하 데미지도 막아 줄 테니까요!”

    그리고 이내 마지막, 정상이 보인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타워(Tower)’ 구간입니다! 얼음산 정상이고 여기까지 온다면야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고 봐야겠죠!”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얼음산 정상에 우뚝 솟구친 탑.

    이것을 점점 줌아웃하며, 홍영화의 맵 소개도 마침내 끝을 맺었다.

    맵 설명이 끝나자 출발선에서는 새삼스럽게도 난리가 났다.

    “으아, 미친 난이도잖아! 이렇게 어려운 대회인 줄 알았으면 안 나왔을 거야!”

    “지금이라도 바로 포기해야겠다. 그러면 괴로울 일도 없잖아.”

    “이런 대회에 누가 미쳤다고 나가겠어? 아마 다음 회차부터는 바로 폐지되겠구만.”

    몇몇 사람들은 바로 망치를 집어던지고 항아리에서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하지만 의외로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계속해서 도전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이 대회를 무시해선 곤란하지.’

    극악의 난이도 때문에 인기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이 대회는 1회차 이후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되며 이후 수백 회차까지 이어지게 되는 장수 행사가 된다.

    심지어 초창기 1회차부터 4회차까지 3~4개의 프로팀 밖에 없었던 것이 5차 이후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자그마치 63개의 프로팀이 생겨나는 기염을 토한다는 말이다.

    “이 대회 특유의 어렵고 난해한 난이도는 망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후후후…….”

    문득 회귀하기 전 어울려 다녔던 고인물 선배들이 그리워진다.

    게임 플레이 7만 시간인 나를 아이처럼 귀여워해 주며 버스를 태워 주던 형 누나들.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나중에 대회가 끝나면 그들을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그럼! 경기! 시작합니다요오오오옷!”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홍영화의 외침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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