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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74화 (674/1,000)
  • 674화 정상에서 기다릴게 (4)

    나는 유다희를 따라 반지하 원룸에 들어갔다.

    “…살풍경하네.”

    기본적인 세간도 없이 텅 빈 방을 보자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 와중에 레벨 70을 찍고 받은 트로피가 방 중앙에 덩그러니 있으니 더더욱 미묘하다.

    유다희는 후드티를 벗고는 바닥에 앉았다.

    늘어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 벽에 등을 기댄 그녀.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유다희의 앞에 비스듬히 앉았다.

    “뭐 내올 게 없네…요.”

    유다희는 반말을 쓰려다가 존댓말을 썼다.

    나는 어색하게나마 물었다.

    “왜 방에 가구가 하나도 없어?”

    “그냥 없이도 대충은 살아지던데요. ……어떻게든.”

    “그래도 불편하잖아.”

    “……편하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서.”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방이 컴컴해서 그런가 더욱더 기분이 이상했다.

    이 상황에서도 먼저 대화를 시작한 이는 유다희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몰랐나 싶어요.”

    유다희는 고인물과 마동왕이 동일인물이라는 정황을 예전부터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마교 팬덤의 분위기가 덜렁교 팬덤의 분위기와 가면 갈수록 닮아 가는 게 이상하다 싶었죠.”

    “…….”

    “그리고 중국 호텔에서 업어 줬을 때도.”

    “…….”

    “그 외에도 허술했던 부분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참.”

    유다희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내게 묻는다.

    “눈의 기러기의 눈을 거꾸로 하면 뭔지 알아요?”

    “……? 그야 눈의 기러기의 눈이지.”

    내가 대답하자 유다희는 고개를 저었다.

    “눈의 기러기의 눈이라는 아이템은 애초에 없어요. 그건 눈 기러기의 눈이에요.”

    그랬던가. 내가 회귀 전부터 자주 써먹던 말장난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었다니.

    유다희는 말을 이어 갔다.

    “예전에 가혹한 설산에서 고인물을 추격할 때 이 개그를 듣고 도끼를 휘두른 적이 있었죠.”

    “……앗.”

    “그리고 이후 마동왕 팬미팅 때도 이 개그를 들었어요. 아이템 이름을 잘못 외우고 있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실수인데.”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몇 번인가 이런 말장난을 쳤던 것 같다.

    가령 살인자들의 탑 내부의 얼음샛길을 탈 때라거나.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뒤늦게나마 내가 할 말을 했다.

    “그동안 정체를 속여서 미안해. 그리고 레비아탄 때 일 고마워.”

    “…….”

    “재기를 돕고 싶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게 해 줘.”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다.

    한동안 뚫어져라 장판 무늬를 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게임은 접을 거예요.”

    “…그럼 나도 접을게.”

    “그쪽이 왜요?”

    유다희는 이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아니, 들여다본다.

    “착각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된 것은 제 선택 때문이지 그쪽의 선택 때문이 아니니까.”

    “…….”

    “밑바닥으로 내려온 것도 내 의지라구요.”

    역설적이게도, 이런 말을 하는 유다희는 웃고 있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웃음기는 분명했다.

    “기껏 위로 밀어 올려놨는데 따라서 내려오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앉은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유다희는 계속 말했다.

    “진짜 저를 생각한다면… 끝까지 가 주세요.”

    “…….”

    “잠시 파티원이었던 사람에 대한 예우로서는 그것 정도면 충분해요.”

    유다희는 말했다.

    “가세요. 끝까지.”

    하해로 내려가는 동안, 아니 그동안 그녀와 함께 게임을 하는 내내 들어왔던 말.

    ‘끝까지 간다.’

    유다희는 정말 나를 통해 게임의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이 게이머로서 올라갈 수 있는 사회적 입지의 정상이든, 아니면 게임 스토리의 끝이든 간에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다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엉거주춤 따라 일어나자 그녀는 내 가슴팍을 뒤로 밀었다.

    “이제 돌아가요. 최고의 게이머가 멈춰 있을 곳은 이런 초라한 곳이 아니니까.”

    그 순간, 자각흉몽아귀의 뱃속에서 들었던 30대 유다희의 후회 어린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나도 어진 오빠도. 다른 관계로 살 수 있었을까?’

    그때 그 말이 지금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나는 유다희에게 말했다.

    아까까지와는 달리 더듬지 않고서.

    “너는 재능 있는 한 사람의 멋진 게이머야.”

    “…….”

    “네가 멈춰서 있을 곳도 여기가 아니야.”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서 있는 유다희에게 말했다.

    유다희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반지하 골방의 쿱쿱한 어둠에 먹혀 유다희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관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좀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끝까지 간다.

    *       *       *

    삐걱-

    빌라 현관을 나온 내게 유창과 유세희가 바로 달려와 물었다.

    “어떻게 되셨슴까?”

    “언니가 뭐래요? 언니가 뭐래요?”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 유창과 유세희.

    내가 방에서 나눴던 대화를 말해 주자 유창도 유세희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유창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저기서 살 생각인가 보네요. 계속.”

    “계속 방에 있고 싶은 건 아닐 거야.”

    나는 유창의 발언을 정정해 주었다.

    세상에 저런 방에 갇혀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 곰팡이와 함께 잠을 자고 한 줌 햇살에도 눈을 찌푸려야 하는 삶.

    그런 삶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언컨대 없다.

    “그냥 아직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을 뿐이지. 바깥에서 행복한 기억이 없으니까.”

    “으으! 사부. 뭘 그런 소리를 해요. 우리 언니가 인생 헛산 것처럼.”

    “응?”

    세희는 입을 삐죽이며 팔짱을 꼈다.

    “언니도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 다 있었거든요? 사부 말만 들으면 우리 언니가 계속 불행한 인생만 산 줄 알겠어요!”

    “아니 애초에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됐어요! 얼마 전까지도 대회 나가고 싶다고 얼마나 극성을 부렸……! 었…는……대회?”

    그때.

    유세희가 굳게 닫힌 반지하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언니가 사고를 당하기 전에 꼭 하고 싶어 하던 게 있었어요! 버킷 리스트라고.”

    버킷 리스트? 유다희에게 그런 게 있었나?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세희가 유창에게 뭐라뭐라 속삭인다.

    유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었지 참.”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쌩뚱맞게 웬 대회란 말인가?

    그러자 유창이 핸드폰에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 누나가 게이머로서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걸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게임 접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걸 엄청 많이 알아봤었죠.”

    이내 유창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어 내게 보여 준다.

    그것은 게임 속에서 열리는 한 대회에 관한 전단지였다.

    유다희는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그 중요한 그레이 시티의 시장직을 유창과 유세희에게 임시로 위임할 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이 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했다고 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유창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마라톤 대회? 비슷한 건데. 요근래 거기 꼭 참가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나 형님이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뭔가 누나도 마음에 변화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 대회에서?”

    “예.”

    유창은 계속해서 내게 폰 화면을 들이댔다.

    “형님! 대회에 나가 주십쇼! 분명히 누나가 좋아할 겁니다! 아뇨! 자기가 꼭 나가고 싶어 하던 대회에 형님이 대신 나가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면 당장 저 문을 박차고 나오겠죠!”

    “……그럴까?”

    “형님이 이 지구 어디에 계시던 멱살을 잡으러 올 겁니다! ‘꼭 그랬어야 했냐, 이 개자식아!’ 라고 하면서!”

    “으윽, 확실히 그건 맞는 말 같은데.”

    “‘니가 사람새끼냐, 임뫄!’ 하면서요!”

    “……그냥 오늘 네가 하고 싶었던 말 아니냐?”

    그러나 앞의 생각은 일리가 있었다.

    나는 벌써 멱살이라도 잡힌 듯 내 목을 더듬었다. 순간 한기까지 스치고 지나간 것 같다.

    유창이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부탁드립니다, 형님!”

    어떻게 보면 다소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대회의 성격과 콘셉트를 자세히 보면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안 그래도 이 대회는 2차 대격변을 일으키기 전에 꼭 참가하려고 했던 행사인데.’

    나는 전단지 밑, 대회의 우승 상품에 주목했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2차 대격변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유다희가 여기에 참가할 예정이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참가다.

    어차피 꼭 참가해야 했을 대회이니만큼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근데 이 대회가 무슨 대회냐, 막내야? 뭐 하는 대회래?”

    “나도 이런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데. 그래서 안 물어봤어.”

    유창과 유세희도 어깨를 으쓱한다.

    이 자식들. 뭔 대회인지도 모르면서 나를 내보내려 했단 말이야?

    그러다 캐릭터 여장 대회 같은 거면 어쩌려고.

    ‘…그런 건 회귀 전에도 31회밖에 우승하지 못했단 말이야.’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대회 정보를 간략하게 훑어보았다.

    “으으. 어쩌죠, 형님. 바로 알아볼까요?”

    “됐어. 대충 알 거 같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이 대회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대회는 회귀 전의 세상에서도 꽤나 유명했었던 ‘비전투(非戰鬪) 대회’니까.

    나는 핸드폰을 유창에게 돌려준 뒤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슬슬 가자.”

    “앗, 벌써 가십니까?”

    “그럼 여기서 뭘 더하려고?”

    유창은 아쉬운 눈빛으로 철문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예……. 금방 차 가져오겠습니다.”

    “아쉬워하지 마. 금방 다시 오게 될 테니까.”

    나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녀석의 등을 두드렸다.

    이 대회에서 우승할 자신이 있다. 그거면 됐다.

    유다희는 꼭 내가 저 방에서 구출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돌기도 많이 돌아왔네.’

    나는 새삼 그동안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돌이켜 보았다.

    삶은 곧 전쟁이라는 누구의 말답게 참으로 길고 긴 싸움의 연속이었다.

    3신기에서 천공섬까지.

    1차 대격변에서 고정 S+급 몬스터까지.

    레드문 차규엽에서 앙신 조디악까지.

    그리고 불사조에서 이번 비전투 대회까지.

    세계는 위협으로 가득했고 타인들의 시선은 끝나지 않는 소송처럼 나를 괴롭혀 왔다.

    그 많은 전투들은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그것은 단 하나.

    ‘모든 것은 본편을 위해.’

    그래, 이제부터는 드디어 메인 스토리를 진행할 시간이었다.

    2차 대격변의 진정한 서막이 올라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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