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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73화 (673/1,000)

673화 정상에서 기다릴게 (3)

유다희.

그녀는 어두컴컴한 반지하 원룸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볕이 들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든다 해도 커튼을 닫고 불도 꺼 놓고 있었을 테니까.

유다희는 양 무릎 사이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의 실루엣, 방 안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가구라고는 하나도 없이 텅 빈 방.

유다희는 이사를 오면서 모든 것을 버렸다.

방송에 조금이라도 노출되었던 가구들, 그토록 아끼던 인테리어 소품들 모두를 일체 버리고 나왔다.

…아니. 하나 버리지 못한 게 남아 있기는 했다.

유다희는 방 중앙에 있는 물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것은 한 자루의 도끼였다.

24k 황금과 백금으로 제작된 도끼, 자루 끝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반짝인다.

도끼가 박혀 있는 받침대에는 ‘레벨 70, 마(魔)의 구간 돌파 기념’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유다희가 레비아탄을 잡고 난 뒤 뎀 본사에서 보내 준 기념품.

다 버렸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왠지 버리지 못하고 들고 온 것이다.

“……휴.”

유다희는 기념품에서 눈을 떼고 다시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게임 내에서 위대한 업적을 세웠으면 뭘 하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게임도 접고 방송도 접고 인간관계도 접고 현실의 모든 외부활동마저 접어 버렸다.

TV도 안 보고 인터넷도 안 들어간다.

핸드폰 같은 일체의 디지털 기기들은 모두 끊어 버렸다.

하루에도 인신모독이나 성희롱적 악플들이 수도 없이 달리고 선플을 가장한 관음증적 메시지들이 미친 듯이 쌓이기 때문이었다.

몸매나 얼굴을 평가하는 사람, 다닌 적도 없는 학교의 동창을 주장하는 사람, 오래 전부터 소꿉친구였다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위로하는 척 하면서 수작을 거는 사람, 혼자 뭘 그리 많이 기대했는지 대뜸 실망했다는 사람, 경쟁 관계였던 스트리머나 게이머…….

그래도 그런 유다희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그 손을 잡았다가 그들에게 피해라도 끼치게 될까 무서워 잡을 수 없었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어둠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다희는 어둠 속에서 홀로 눈을 뜨고 있었다.

장시간동안 빛이 없으면 지금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지금 잠이 들어 있는지 깨어 있는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춥다.’

유다희는 몸을 한번 파르르 떨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따스한 온기 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등이었다.

“…….”

유다희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지금 자기의 감정을 모르고 있었다.

스스로도 모를 복잡한 마음이 벌써 며칠째 그녀의 속을 심란하게 헤집어 놓고 있다.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는 걸까?”

마동왕, 아니 고인물, 아니 이어진을 대신해 레비아탄의 최후 필살기를 대신 맞아 준 것.

과연 그것이 잘한 일이었는가?

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다희는 만약 자신이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그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으니까.

존경? 연모?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유다희는 자신을 움직인 것이 그것들보다 더 큰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그건 역사를 위해서였을지도 몰라. 게임계의 역사 말이야.’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역사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위대한 초인의 앞길을 열어 줬다는 것, 그에 대한 사명감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그런 이유 때문인 것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 뭘까?

유다희는 악몽 속에서 악몽을 생각했다.

반지하 골방에서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 그것은 살인자들의 탑 레이드 당시 만났던 자각흉몽아귀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 악몽 속에서 만났던 또 다른 고인물.

30대 중후반이나 되었을까? 폐인이 되어 반지하 원룸에서 골골대던 그 모습을 본 유다희는 충격을 받았었다.

현실에서 이렇게 쭉쭉 승승장구하는 대단한 남자의 속이 왜 이렇게 약하고 초라하단 말인가?

항상 완벽하고 항상 대단하고 항상 위대하고… 그래서 항상 얄밉던 그 자식의 꿈 속 내면에 이렇게 늙고 힘없고 불쌍하고… 상처 많은 남자가 있었다니.

그래서일까?

레비아탄이 최후의 악다구니를 쓰던 그때, 이 남자를 지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만천하의 위에 군림하며 늘 강하고 굳건해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은 여린 남자. 알고 보면 상처투성이인 남자.

그 약하고 여린 내면이 모든 이들에게 씹히고 뜯겨지며 한낱 가벼운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유다희는 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섰다.

상처를 대신 입어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유다희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자신을 딛고 더 높이 날아올라 찬란한 별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온 몸 다 바친 자신은 누더기 걸레가 되어 이렇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희는 그때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조금은 슬프네.”

그 좋아하던 게임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자신의 얼굴과 신상, 그 외의 모든 것들이 낱낱이 까발려졌는 것을.

과거에 부끄러움 한 점 없이 살아오지 못한 자신의 과오다.

“이래서야… 예전에 아귀 뱃속에서 만났던 그 고인물과 비슷한 신세잖아.”

유다희는 쓰게 웃었다.

자각흉몽아귀의 뱃속에서 만났던 30대 중후반의 고인물 역시도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어둠 속에 홀로 고립된 남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어둠 속에 홀로 고립된 여자.

비로소 유다희는 그 시절의 고인물을 이해했다.

비록 그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당시의 그가 어떤 심경이었는지 정도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악몽 속에서 만났던 또 다른 유다희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 이제는 좀 알겠니? 그러니까 개수작 말고 늘 하던 대로 남들 눈에서 피눈물이나 빼놓고 다니라구~ 그게 네 시궁창 같은 인생에는 딱이니까.’

갑자기 두 눈이 타는 듯 아프다.

뭔가 했더니 눈물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용기의 물약이 필요해.”

맨몸으로는 이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버텨낼 수 없다.

도핑을 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유다희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쥐고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녀는 술을 사러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다.

삼삼오오 걸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돌아보는 것 같았다.

유다희는 모자를 푹 쓰고 종종걸음으로 빌라를 나섰다.

그때.

휘이이잉-

강한 바람이 한번 불었다.

꾹 눌러쓰고 있던 검은 모자가 벗겨져 도로에 구른다.

“헉!?”

유다희는 깜짝 놀라 모자를 집어들어 다시 썼다.

누가 봤을까?

몸은 바짝 오그라들고 손발은 덜덜 떨린다.

그녀는 두려움을 담아 주위를 살폈다.

방금 전 이쪽을 본 듯한 대학생 몇몇이 저기 전봇대 뒤에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저X 저거 유다희 아니냐?’

‘아, 그때 그 신상 털린 여자? 이 근처 사나 본데?’

‘쟤 걔잖아~ XX……XX, XX, XXX하네. XX해서 XXX이나 해볼까……’

귓가에 노이즈가 낀다.

유다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뒤돌아 뛰었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도주로가 막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윽고, 그녀의 눈앞에 첫 번째 목적지가 보였다.

꽤 큼지막한 마트, 하지만 이곳은 안 된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알바생이 게임을 좋아하는지 자신을 보고 아는 척을 한번 했었기 때문이다. 응원한다고, 힘내라고 했었던가?

결국 유다희가 택한 곳은 골목을 약간 돌아가야 갈 수 있는 허름한 동네 슈퍼였다.

“냉동삼겹이랑 어디, 거거 처갓집 김치? 이만 이천 육백 원이우.”

할머니는 작은 티비에서 하는 드라마에 열중하며 대충 손을 내밀었다.

유다희는 그 옆에 소주 세 병을 내려놓았다.

“쯧, 젊은 처자가 대낮부터 술을 이리 많이……소주까지 해서 어디 보자, 이만오천…오백육십 원.”

할머니는 다시 드라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려던 유다희는 잠시 고민했다.

이 정도로는 조금 부족할 것 같았다.

“……이것도요.”

“하, 뭐여! 한꺼번에 올려야…….”

할머니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소주 다섯 병이었다.

“…여, 여덟 병? 아니 저건 또 뭐여.”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쿵!

유다희가 최종적으로 카운터에 올려놓은 건 소주 여덟 병과 커다란 담금주 두 통이었다.

별로 오래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그녀는 그냥 내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흡연이었다.

“엣쎄 한 보루…….”

막 담배를 사려던 유다희의 머릿속에 순간 한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것은 재떨이 안에 예쁘게 담겨있는 사탕과 초콜릿들이었다.

오래 전, 마동왕 애장품 경매가 끝나고 난 뒤 마동왕이 재떨이를 비워 주려고 차의 재떨이 손잡이를 열었을 때 들어 있던 것.

‘……아니, 담배는 끊은 지 꽤 됐는데. 뭐. 몸에도 안 좋고…… 나중에 아기에게 안 좋다고도 하고…….’

‘…….’

‘아니!? 아기가 뭐 그런 아기가 아니라! 제가 요즘 아기들을 돌볼 일이 좀 많아서! 아, 물론 당연히 제 애는 아니구요! 아니, 아니, 그냥 담배는 애고 성인이고 다 안 좋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날 밤 받았던 마동왕의 문자도 떠오른다.

<네가 나 여기까지 올려줘 놓고 혼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면 섭섭하지.>

그러자.

갑자기.

속절없이.

눈물이 마구 터져 나온다.

예고도 없이 툭 배어나온 눈물은 이내 줄기를 이루며 볼을 지나 턱 끝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유다희는 재빨리 뒤돌아 슈퍼를 나섰다.

“잔돈은 가지세요!”

그녀가 막 슈퍼를 뛰쳐나왔을 때.

“……!”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이어진.

아니,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설마 아직도 여기는 꿈 속인가?

눈앞에 있는 이어진이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는 것을 보니 아직도 하해에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

사실 지금도 이곳은 게임 속, 바다 속이고 자신은 로그아웃 직전의 짧은 순간 긴 꿈을 꾼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이 자각된다.

…팡!

유다희는 손에 든 것들을 모조리 버리고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마구 흐른다.

‘솔직히 팬클럽 만든 것도 내가 자청해서 한 일인데 배신감 느끼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짓 아닌가?’

‘어차피 나 같은 건 그냥 귀찮게 들이대는 팬1 아니었나?’

‘이미 승승장구 하고 있을 텐데 나 같은 건 벌써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는 이곳을 찾아왔다.

수많은 의문과 자책, 속앓이들이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터져나가듯 한 번에 사라졌다.

그러나 자기가 지금 대체 어떤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 스스로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유다희는 일단 뒤돌아 냅다 도망쳤던 것이다.

‘…….’

한참을 뛰던 유다희, 그녀는 순간 도로가 조용함을 느끼고 잠시 속도를 줄였다.

‘……?’

어? 근데 주위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데?

당장이라도 그가 뒤를 쫓아와 자신의 손목이라도 잡아채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참이다.

슬쩍…

유다희는 속도를 아주 약간 줄이며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푸핫!”

그녀는 울던 표정 그대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고인물.

그가 잔뜩 일그러져 있는 꼴사나운 표정으로 비탈길을 힘겹게 비실비실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심지어 뭐 얼마나 뛰었다고 옆구리가 아픈지 구부정한 자세로 허리를 감싼 모양새.

울던 이도 웃길 정도로 진짜 진짜 저질 체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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