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71화 (671/1,000)
  • 671화 정상에서 기다릴게 (1)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등 뒤로 들려오는 로그아웃 메시지가 오늘은 약간 찜찜하게 들린다.

    나는 벨페골과 카프카타렉트의 악몽세계에서 빠져나온 뒤 바로 로그아웃했다.

    …푸슉!

    캡슐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는 상체를 일으켜 그대로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게임이 인체실험의 결과라 이건가.”

    조디악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아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불신할 만한 이야기.

    그러나 나는 일찍이 천공섬으로 가기 위해 비행로를 탔을 때 악몽아귀라는 몬스터에게 당해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악몽아귀에게 삼켜져 학창시절의 트라우마와 폐인 생활을 하던 아픈 기억들을 모조리 다시 겪게 되지 않았던가.

    “그때는 정말 진짜인 줄 알았지. 엄청나게 리얼했어.”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 더 레벨이 올랐을 때에는 자각흉몽아귀라는 악몽아귀의 상위종에게 걸려 또 한 번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하이퍼리얼리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감 있는 고증이 눈여겨 볼 만했었지.

    “…그렇다면 인체실험을 당했다는 조디악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데.”

    사람의 망상에는 한계가 있어서 거짓 기억을 그렇게 세세하게 구현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본 것이 조디악의 망상이나 거짓말이었다면 분명히 현실과는 달리 어딘가 어색하게 뒤틀어진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인스턴트 던전은 그 자체로 완전했다.

    세밀한 부분들까지 모두 고증되어 있었기에 거짓이라는 의심은 들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조디악이 내게 말했던 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이다.

    “분명 윌슨은 클로즈 베타나 데모 버전 따위는 모른다고 했었지.”

    과거 뎀 유니버스에 방문했을 당시 윌슨은 이 화제에 극도로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었고 더 이상 논의하고 싶지 않은 기색을 보였었다.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인가.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동차 키를 잡았다.

    이 자리에서 혼자 고민해 봐야 답을 내리기 힘들 것 같았기에.

    *       *       *

    전 세계에 딱 3대 풀린 스포츠 카를 타고 거리로 들어오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이쪽을 돌아본다.

    “야, 누구길래 저런 차를 굴리고 사냐? 분명 나쁜 짓 했을 거야.”

    “차 진짜 이쁘다. 비싸겠지? 저 차 주인 한번 꼬셔 볼까? 내리기만 해 봐, 제대로 보여 줄게.”

    “하, 진짜 어이없네 XX. 누군 이 날씨에 걸어 다니는데 누군 저기서 배기가스나 뿜고! 에라 타이어 펑크나 나라!”

    “저 차가 얼만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아빠도 저런 차 살 능력 있어. 근데 안 사는 거야.”

    “와, 나도 저런 차 갖고 싶다. 진짜 제발! 한 번이라도 몰아보고 싶어.”

    “할부 땡겨서 살까 우리?”

    “저런 차 보면 박탈감이 든다. 에이, 그냥 오늘 면접 안 가.”

    질투, 색욕, 분노, 오만, 탐욕, 폭식, 나태.

    같지만 다른, 다양한 감정들이 나를 향한다.

    예전 같으면 이런 시선들을 즐겼을 수도 있었겠지만, 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지금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더 큰 고민과 걱정거리를 가지고 산다.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위치에 올라서도 늘 올려다봐야 하는, 힘에 부치는 문제가 있기 마련.

    나는 차를 가지고 바로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수많은 보안시설들을 통과하고 나서야 나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의 상층부로 올라간다.

    순간.

    …움찔!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 4층에서 잠깐 멈칫했다.

    문득 조디악의 기억 속에서 본 병원 4층이 생각났다.

    나야 레벨이 높았으니 몰라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던 그날의 4층을.

    “…으음. 진짜 일반인이 그런 기억을 겪었다면 엄청난 트라우마겠는데.”

    조디악이 평소에도 약간은 나사가 풀려 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겠지.

    손이 약간은 떨린다.

    나는 4층에서 멈추고 열림 버튼을 누른 채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당연하게도 4층 복도에는 좀비 따위는 없다.

    건물을 청소하시는 분이 나를 보고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주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다시 엘리베이터에 타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나는 엄재영 감독의 집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안에서 신문 기사들을 놓고 비교하는 엄재영 감독이 보인다.

    “어, 왔냐? 레이드 끝났어?”

    그는 그동안 내게 알려 줄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엄재영 감독은 나를 보자마자 우는 소리를 하며 다가왔다.

    “어진아, 이번 세계리그가 아마도 역대급 규모가 될 것 같다. 각국에서 투자하는 금액이 아마 전 인류 사상 최대 규모의 행사로…….”

    “그 역대급 행사, 제가 망칠지도 모르겠네요.”

    “……?”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벽으로 걸어가 방 불을 껐다.

    “아, 얘는 진짜 뭔 말만 하면 방 불을 꺼. 대격변 PTSD 오네.”

    엄재영 감독은 이제 내가 불만 끄면 두근두근 한 모양.

    하지만 나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불을 끄면 내 심장 고동소리만이 들려와 조금 진정이 된다.

    알 속에 들어온 느낌.

    나는 마음을 가라앉힌 채 그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엄재영 감독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이 바로 뎀이랍디다.”

    겪었던 일은 길었지만 그것을 입으로 말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어둠 속, 엄재영 감독은 말이 없다.

    방 안에 너무 어두웠기에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나는 뭔가 싶어 방 불을 켰다.

    …핏!

    눈앞에 있는 엄재영 감독의 표정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으악! 깜짝이야! 뭐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나는 불을 켜자마자 깜짝 놀라 소파에 몸을 묻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재영 감독의 두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까지 벌어져 있고 양 입가에서는 먹는 오렌지 쥬스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 그, 그, 그……”

    “그게 사실이냐고요?”

    “으, 으, 으, 으, 으……”

    “응 이라고요?”

    내 말에 엄재영 감독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마치 사람을 처음 본 바다사자같은 그 모습에 나는 그만 긴장감을 잃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엄재영 감독은 냉장고에서 병 하나를 꺼내오며 투덜거린다.

    “너 다음부터 이런 말 할 거면 기름 같은 거 가져오고 해.”

    그는 처갓집에서 보내 줬다는 들기름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우물거리다가 꼴딱 삼켰다.

    기름칠을 하고 나서야 턱이 좀 움직이는 모양.

    이내 엄재영 감독은 입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목소리를 냈다.

    “일단 이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게 낫겠다.”

    “그렇겠죠?”

    “그럼. 일단 증거도 없고, 또 100% 사실인지도 모르잖아.”

    나 역시도 엄재영 감독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엄재영 감독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현실은 만화나 소설과 다르지. 선의 반대가 악이 아니고 악의 반대가 선이 아니야. 윌슨이 뭔가 구린 게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디악이 선이 아닌 것처럼, 조디악에게 의외의 억울함이나 슬픈 사연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윌슨이 악은 아닐 수 있어.”

    “맞아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량한 정의감, 고발정신에 따라 움직일 필요는 없다.

    다만 나의 앞길을 만들어 감에 있어서 윌슨이나 조디악 같은 이들을 어디까지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느냐 그 문제가 남는다.

    “가능한 정의를 위하면서도 네가 손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지.”

    “손해만 안 보는 걸로 끝나면 안 되죠.”

    “맞아. 너는 어째 네 나이 또래 같지가 않다? 음흉하기가 아주…….”

    엄재영 감독은 입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혀를 찬다.

    이윽고, 그는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계획은 심플하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한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늘 하던 대로 고정 S+급 몬스터들을 사냥할 것이다.

    윌슨이 나쁜 놈이라면 이 과정에서 놈의 야심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고 조디악이 사기꾼이라면 어찌되었든 간에 잡아 족치면 그만이다.

    나는 부와 명예, 게이머로서의 위대한 업적들을 계속해서 쌓아나갈 수 있겠지.

    결국 그냥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인 것이다.

    한편, 엄재영 감독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민에 빠져 있다.

    “근데 윌슨은 왜 그런 짓을 하면서까지 이 게임을 만들었을까?”

    “그 점은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흥신소든 뭐든 동원해서. 들키지 않게.”

    “힘들지 않겠어?”

    “그래서 형님이 걱정이에요.”

    “……?”

    나는 뎀 유니버스의 뒷조사를 엄재영 감독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씨, 또 엄청 바빠지겠네. 희선이가 화내겠는데, 집에 좀 들어오라고.”

    “차규엽이 만들었던 인프라 있잖아요. 다 흡수하셨으면서.”

    “알아는 볼게. 야, 근데 나는 내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깊은 정보는 기대하지 마라.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빠질 거야.”

    “그럼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재영 감독 역시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용건 다 끝났으니까 갈게요. 따로 만날 사람도 있고.”

    “어 그래. 여자냐?”

    “네.”

    “이제 아주 당당하구나 그냥.”

    “원래 당당했어요.”

    엄재영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내가 준 숙제 때문에 골치가 아픈지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나는 문을 열고 방을 나가기 전에 짧게 말했다.

    “아참. 이따 저녁부터 ‘그거’ 작업 들어갈 거예요. 저번에 말씀드린 거.”

    “…어?”

    “아, 그거 있잖아요. 제가 일으킬 거라고 했던 거.”

    “아, 어어.”

    엄재영 감독은 생각에 깊게 빠져 있느라 대충 손사래를 친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       *       *

    집무실 안.

    엄재영 감독은 앞으로의 일을 골똘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 이 자식은 맨날 어려운 일만 시킨단 말이야.”

    당최 뭘 어떻게 조사해야 뎀 유니버스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단 말인가.

    “차규엽 놈이 남긴 정보들부터 뒤져 봐야겠네.”

    레드문은 뎀 유니버스의 자회사였으니 무언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차규엽은 영리한 여우같은 놈이었으니 모회사를 협박할 수단을 갖춰 놓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한창 앞날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응? 잠깐.”

    방금 집무실을 나간 놈이 했던 말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참. 이따 저녁부터 ‘그거’ 작업 들어갈 거예요. 저번에 말씀드린 거.’

    하도 가볍게 말하기에 별 말 아닌 줄 알고 대충 대답했던 것.

    하지만 ‘저번에 말씀드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은 엄재영 감독의 두 눈이 또다시 확 휘둥그레진다.

    “어!? 야! 너 설마 2차 대격변 그거 말하는 거……!?”

    하지만 이미 대답해 줄 상대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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