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69화 (669/1,000)
  • 669화 무투룡(武鬪龍) (4)

    과거 죽음룡 오즈 레이드 당시, 나는 오즈의 거체가 내뿜는 마력에 오염되어 잠시 리자드맨으로 변할 뻔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변화는 나 스스로에 의한 것이다.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다! 흰 용!”

    동시에.

    …우드득!

    내 몸 전신에 검은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키와 덩치는 두 배 이상 커졌고 굵고 긴 꼬리가 돋아난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이 툭툭 불거져 나왔고 눈알 역시도 사요한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바늘처럼 좁아진 동공에는 경악한 표정의 흰 용 카프카타렉트가 담긴다.

    [대, 대체 그 모습은!?]

    뭘 그리 놀라실까.

    나는 전신에서 끓어 넘치는 힘을 컨트롤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이어진>

    LV: 94

    종족: 리자드 맨

    위험등급: 데미 드래곤(Démi Dragon)

    레벨에 따라 수많은 아종과 변종, 상위종으로 쑥쑥 성장하는 리자드맨의 육체.

    스탯의 돌로 인해 안 그래도 높아져 있던 스탯들이 리자드맨의 강력한 육체 버프를 받아서 더욱 더 강화되었다.

    아마도 전 세계 모든 플레이어를 통틀어 가장 레벨이 높을 나는 일반적인 리자드맨을 넘어 거의 용의 영역에 이르렀다.

    “…….”

    나는 시선을 내려 손에 쥐고 있는 돌을 내려다보았다.

    용의 돌!

    이것은 악마의 돌과 함께 내가 벨제붑 레이드를 끝마치고 얻은 히든 피스이다.

    플레이어의 모습을 변하게 하는 3가지 돌 중 가장 레어한 편으로 이 돌을 쥔 자는 종족을 불문하고 리자드맨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

    재사용할 수 있는 쿨타임이 1회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길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충전해서 몇 번이고 쓸 수 있는 반영구 소모품.

    (참고로 악마의 돌은 용의 돌과 반대로 플레이어를 오크로 만드는 능력이 있고 나는 이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내 어깨에 앉은 오즈가 생색을 낸다.

    [후후, 인간. 아니 이제 하위룡이라고 해야 하나? 한층 더 보기 좋게 바뀌었군. 앗, 여기 비늘에 먼지가! 내가 닦아 주겠다. 이렇게 훌륭한 검은 비늘에 티끌이 있으면 안 되지. 일단 침을 좀 묻혀서… 퉤! 그리고 쓱쓱- 역시 비늘 관리는 있을 때 잘 해야……]

    아까까지만 해도 반란을 꿈꿨던 주제에 지금 와서 아부라니.

    뭐, 오즈가 펫으로 등록되었을 때 떨군 아이템이니 이번만큼은 봐주도록 할까?

    나는 파충류 특유의 싸늘한 눈을 들어 흰 용 카프카타렉트를 응시했다.

    “같은 용족에게 당하는 것 아니면 인정 못 한댔지?”

    […….]

    “이제부터 인정하게 해 줄게.”

    리자드맨 화 버프는 올스탯 3배수라는 압도적인 위엄을 자랑한다.

    나는 불완전변태와 싸움광, 야수, 백전노장 등등 온갖 버프 특성들로 주렁주렁 무장하고 있는 상태였는지라 그 증가폭은 더욱 더 살벌했다.

    …쿠르르륵! 펑!

    내 전신의 검은 비늘들 사이로 시뻘건 핏빛 기운이 폭사되었다.

    ‘버서커 용 모드’라고 할 수 있는 육체는 나 자신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과 속도로 카프카타렉트에게 쏘아져 나갔다.

    “만나면 할 얘기가 아주 많았다고.”

    내 두 다리가 내는 최대 출력은 흰 용의 인지속도보다 빠르다.

    나는 눈 반 번 깜짝할 사이에 카프카타렉트의 앞을 잡았고 오래 전, 불사조의 파르테논에서 졌던 해묵은 빚을 갚아 주었다.

    …쾅!

    내가 리자드맨으로 변한 뒤 제일 먼저 쓴 부위는 팔도 발도 다름 아닌 꼬리였다!

    튼실한 하체, 굵은 뿌리부터 시작해 날렵한 꼬리 끝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력은 뭐든지 때려 부술 수 있다.

    내 꼬리 중간 부분이 흰 용의 안면을 묵직하게 두들기는 동시에 촥- 감겨들며 놈의 목을 휘감아 졸랐다.

    팽-

    그리고 그대로 몸 안쪽으로 깊숙하게 잡아끈 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난타!

    이 한 번의 페이즈에 상대를 죽여 버릴 각오로 내지른다.

    굵은 팔뚝과 더 굵은 허벅지에서 나오는 힘으로 주먹과 니킥을 날린다.

    실로 완벽한 근거리 공간 장악!

    그동안 수많은 페이즈를 거쳐 오며 HP가 차츰차츰 떨어진 카프카타렉트는 나의 무차별 난타를 상대하기 버거워했다.

    [크, 크아아악! 인간! 인간 주제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의 한계를 뚫고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란 것이다!

    나는 초고속의 마찰열에 의해 점점 뜨겁게 달궈지는 두 주먹을 느꼈다.

    “요동친다 하-트! 불타 버릴 만큼 히-트! 새긴다 혈액의 비-트! 백빛의 파문질주!”

    그리고 그 열기와 힘을 죄다 끌어모아 흰 용의 몸뚱이에 꽂아 넣는다.

    …콰콰쾅!

    주변의 지형들이 붕괴해 내린다.

    나는 거대한 바위를 꼬리로 휘감은 뒤 펄쩍 뛰어올라 흰 용을 내리찍었다.

    “로드롤러다!”

    내가 후려친 바위는 흰 용을 뒤로 날려버리는 동시에 지면 밑으로 깊숙이 파묻는다.

    나는 주먹을 날려 그 바위를 부숴 버렸고 그 안에 처박혀 있는 흰 용의 몸뚱이 위로 결코 끝나지 않는 영속의 파운딩을 쏟아 부었다.

    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레로!

    고정 S+급 몬스터를 1:1로 압도하고 있는 이 기묘한 광경!

    어차피 리자드맨 상태에서는 아이템도 거의 착용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기에 나는 과감하게 동영상 녹화 앵글을 조금 더 가깝게 끌어당겼다.

    <뿌슝빠슝삐슝! 고정 S+급 몬스터랑 1:1 다이다이 맞짱을 까는 유튜버가 있다!? 추천 구독 즐겨찾기 채널고정~>

    벌써부터 동영상 제목과 썸네일을 어떻게 뽑을지 기대가 된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흰 용의 HP바가 심하게 요동친다.

    격투액션대전게임에서 상대방이 빨피가 되었을 때 흐르는 긴박한 BGM이 귓가에 자동재생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1:1 육탄전으로 고정 S+급 몬스터를 꺾었다는 업적을 남길 수 있다.

    ‘게다가 애가 인간형이라 그런가 패는 맛이 있네.’

    그동안 상대해 왔던 고정 S+급 몬스터들은 하나같이들 다 거대해서 대자연 그 자체와 맞붙는 느낌이었는데 흰 용은 과연 무투가 출신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두들겨 패는 맛이 쫄깃해서 좋다.

    고정 S+급 몬스터를 상대로 이런 여유를 부리는 걸 보니 그간 참 많이 성장했구나 싶기도 하고…….

    그때.

    퍼펑!

    내 상념을 깨는 잡음이 들려온다.

    핀치에 몰려 코너로 후퇴한 챔피언.

    굳게 선 성벽과도 같은 가드 사이, 무투룡 카프카타렉트가 흰자위로만 가득 찬 눈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대로 이겼다고 생각하나?]

    나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물음.

    빈정거림도 아니었고 시기나 조롱도 아니었다.

    마치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다는 듯한, 천진무구한 백색이 묻어나는 목소리.

    그리고 나는 이내 흰 용의 저의를 간파할 수 있었다.

    ‘드디어 최후 페이즈 돌입인가.’

    생사결(生死決).

    모든 용이 그렇듯 흰 용 역시 최후의 버스트 다이브를 준비한다.

    자신의 몸을 작렬하는 한 줄기 광선으로 만들어 돌격하는 발악기이자 초필살기.

    이것을 버텨내지 못하면 용 레이드는 불가능할 것이다.

    ‘죽음룡 오즈 때는 잭 오 랜턴이, 창해룡 버뮤다 때는 레흐락과 게슈탈트가 도와줬었지.’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아무도 없다.

    챔피언과 도전자의 1:1.

    오로지 나 혼자 오롯하게 무투룡의 집념과 사념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젠장, 그러고 보니 리자드맨 모드일 때는 같은 용 진영 몬스터 사냥 시 보상이 반감되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리자드맨 모드를 풀 수는 없다.

    푸는 즉시 흰 용의 발악에 끔살당할 테니.

    별 수 없다. 보상이 반감되는 것쯤은 감안해야 했다.

    어차피 내 목적은 불사조를 되살리고 비밀을 푸는 것이니까.

    나는 온 힘을 끌어올렸다.

    …우드득!

    힘이 증가하면 바로바로 덩치에서 티가 나는 것이 리자드맨이다.

    나는 1.2배가량 부풀어 오른 육중한 몸으로 흰 용의 공격에 맞섰다.

    오기 전에 ‘만근추’ 같은 중량 증가 특성을 좀 습득하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지금에서야 뭐 의미 없는 것이다.

    그때.

    [……!]

    정면을 향해 다이브하려던 흰 용이 별안간 자리에 멈춰 섰다.

    “……?”

    흰 용이 오지 않으니 나 역시도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나와 흰 용을 막아선 것은 바로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

    “푸스스스- 친구, 지금껏 함께해왔던 나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이는 바로 조디악이었다!

    놈은 어느새 잡았는지 손에 축 늘어진 프란츠의 시체를 쥐고 있었다.

    목이 부러진 채 죽은 흰 용의 하위종을 보자 카프카타렉트의 눈이 한 번 더 뒤집혔다.

    [너 이 자식!?]

    하지만 조디악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상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놈이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한 행동은 바로 검은 사슬들을 소환해 자신과 흰 용을 연결해 묶어 놓는 것이었다.

    “어?”

    나는 잠시 당황했다.

    맨 처음에는 조디악이 스틸을 하기 위해 흰 용을 막타 치려는 줄 알았다.

    남이 다 잡아 놓은 성과를 마지막에 날름 주워먹는 것이 놈의 특기 중 하나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조디악은 어딘가 이상하다.

    놈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진중한 얼굴로 흰 용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조디악은 나를 돌아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는 나가 있어. 뒤지기 싫으면.”

    나는 그제야 조디악의 몸에서 불안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검은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놈은 자폭을 하려는 것이다!

    ‘흰 비늘 족의 하위룡을 잡고 얻은 게 자폭 특성인가?’

    그것 때문에 무투대회에 참여하지 않고 뒤로 빠졌던 것인가 싶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조디악이 충고했다.

    “네 힘으로는 흰 용의 버스트 다이브 못 막아.”

    나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네 피학성애 특성으로도 자폭의 패널티는 못 피할 텐데?’

    조디악은 분명 죽은 뒤 되살아나는 특성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체가 멀쩡한 죽음을 맞이했을 경우이다.

    자폭처럼 온몸이 산산조각으로 찢겨져 나가는 경우에는 부활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디악은 흰 용과 함께 자폭하려 하고 있었다.

    죽은 자의 기여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나보다는 네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어.”

    조디악은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뒤를 부탁한다.”

    돌아보는 그의 얼굴은 상당히 찡그려져 있었다.

    마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처럼.

    순간, 나는 무통증 환자도 고통을 느끼는 특별한 몇몇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말기암 환자, 혹은 골반 골절이나 작렬통과 같은 극한의 고통은 그 정도가 너무 세서 일반인은 느끼지 못하나 오히려 무통증 환자들은 이것을 느낀다고 했다던가?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조디악은 자신의 도화선에 불을 당겨 버렸다.

    그리고.

    ……! ……! ……!

    눈이 멀 듯 찬란한 백빛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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