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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67화 (667/1,000)

667화 무투룡(武鬪龍) (2)

칠흑의 비늘, 태양처럼 불타는 눈알, 거대한 몸, 밤하늘처럼 펼쳐진 날개와 돌기둥 같은 뿔.

죽음룡 오즈가 본래의 힘을 되찾았다!

“…아하, 역시 답은 펫이었나?”

나는 까마득하게 커진 오즈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도저히 클리어 할 수 없어 보이는 무투룡의 3번째 페이즈.

그것을 돌파할 유일한 방법은 쓰러트린 몬스터를 펫으로 길들였을 경우이다.

그렇다면 펫은 길들여지기 전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흰 용의 정신지배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에 대등한 전투가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펫 테이밍을 업으로 삼는 전문 테이머의 경우.

나의 경우는 펫과 친밀도가 그리 높지가 않다.

[내가 왜 너를 위해 싸워야 하지?]

오즈는 거만한 태도로 나를 내려다본다. 몸 좀 커졌다고 예전의 그 싸가지 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꽤나 합리적인 말이었다.

심지어 오즈 녀석은 힘을 되찾은 기념인지 내게 반격마저 꿈꾸고 있었다.

[후후후… 이제 아이템 셔틀 노릇도 끝이다. 나는 다시 무저갱의 왕좌를 되찾겠노라.]

그러나.

…딱콩!

오즈의 머리 위에 있는 존재 덕분에 반란은 조기에 진압되었다.

[뿌!]

나뭇가지를 든 쥬딜로페. 이 녀석이 오즈의 머리를 딱딱 내리칠 때마다 오즈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괴로워했다.

[으어어어! 뭐야! 왜 아픈 거냐! 대체 왜!]

나는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준다.

“그야 네가 시스템 상 내 펫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지. 나는 시스템 상 쥬딜로페의 펫으로 등록되어 있고. 주인님의 주인님이니만큼 데미지가 증폭되는 거야. 특히나 훈육 시에는 더더욱.”

[뭐, 뭣!?]

“더군다나, 나에게는 이것도 있고.”

나는 아이템 하나를 들어 보였다.

-<산산조각난 링> / 반지 / S

아무런 가치가 없는 반지.

오랜 친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를 제외한다면.

그것을 들어 보이자 오즈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 그만! 그 반지를 저리 치워! 기분이 이상해지잖아!]

동기화된 히드라의 의지가 발현된 결과일까? 오즈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네가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엄청 짧아.”

[……!]

“나는 지금부터 죽어라 도망갈 건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죽일 수 있겠어? 내가 얼마나 빠른지 알 텐데?”

오즈는 머뭇거린다.

녀석은 전성기 때에도 나의 이동속도를 감당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더더욱 무리일 것이다.

“너… 다시 작아진 뒤에 나 감당할 수 있겠어?”

내가 깎단을 거꾸로 쥐고 한번 붕 휘둘러 보이자 오즈의 낯빛이 약간은 창백해졌다.

포르르-

하늘을 날아와 내 어깨에 앉은 쥬딜로페 역시 씩 웃으며 내가 깎단을 휘두르는 걸 흉내 낸다.

그러자 오즈는 비로소 끙 소리를 내며 몸을 틀었다.

[새, 생각해 보니… 나는 원래 흰 용을 아주 싫어해.]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원래 흑의 반대가 백이고 죽음의 반대가 삶 아니겠나.

좋은 핑계거리를 찾은 오즈는 나를 등진 채 뒤로 돌아 거대한 날개를 쫙 폈다.

[네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흰 용이 짜증스러워서 싸우는 것이다.]

“아무렴. 기특하기도 해라.”

내가 꼬리를 토닥토닥거리자 오즈가 갑자기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뿌듯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아무튼.

그때쯤 해서 고정 S+급 몬스터들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콰콰콰쾅!

마몬과 벨제붑, 레비아탄, 그리고 버뮤다가 한꺼번에 돌진해 온다.

[큭큭큭- 그래, 너희 잡것들은 뭉치는 것 외에는 내게 대적할 길이 없겠지. 더러운 악마 부스러기 놈들.]

평생을 살며 분노의 악마성좌 사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던 오즈의 자신감이 빛을 발했다.

쫘악-

오즈의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동시에, 오즈는 네 장의 날개와 두 개의 굵은 팔로 네 마리나 되는 고정 S+급 몬스터들을 모조리 막아 세웠다.

거대한 망치를 든 마몬도, 무시무시한 극독을 뿜어내는 벨제붑도, 육중한 몸으로 부딪쳐 오는 레비아탄도, 오즈만큼이나 거대한 체격의 창해룡도.

그 모든 것들이 오즈가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에 부딪쳐 멈춘다.

그것을 본 카프카타렉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저갱의 오즈!? 네놈이 왜 이곳에!?]

[큭큭큭- 아까부터 쭉 있었다만?]

앙숙 관계인 검은 용과 흰 용이 서로 날카롭게 대치한다.

오즈는 죽음에 가까운 검은 기운을 뿜어냈고 카프카타렉트는 투지 그 자체나 다름없는 흰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때.

…콰쾅!

마몬이 망치를 들어 오즈의 비늘 위를 때렸다.

동시에 레비아탄 역시 굵고 긴 몸뚱이로 오즈의 허리를 휘감는다.

벨제붑은 독액이 흩날리는 회오리를 만들어 오즈를 덮쳤고 버뮤다는 삼지창 같은 세 개의 뿔로 가슴을 들이받는다.

그러나 오즈는 확실히 강했다.

쉬익-

시커먼 아우라가 그 모든 것들을 감쌌다.

동시에 엄청난 반사 데미지가 네 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들을 뒤로 튕겨낸다.

퍼퍼퍼퍼퍼펑!

엄청난 반동에 마몬은 망치를 쥔 손을 놓았다.

독액을 뿜어내던 벨제붑의 주둥이가 양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

레비아탄의 몸에서 기묘한 향기가 나는 기름이 쥐어 짜여 흘러내렸고 창해룡 버뮤다 역시 세 개의 뿔에 금이 간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죽음이 너희를 영원케 하리라!]

오즈는 네 장의 날개를 뻗어 싸움 나락 전체에 죽음의 바람을 휘몰아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삐그덕! …끼기긱! …그극!

나조차도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

“…그래, 맞아. 잊고 있었네. 오즈의 진짜 공격 패턴을.”

죽음룡 오즈의 공략 난이도는 사실 내가 클리어했을 때보다 훨씬 더 극악으로 높았어야 정상이다.

왜냐하면 오즈의 진짜 전투력은 자신의 육체에서 나오는 것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드득! …빠드득! …까각!

오즈의 아우라가 휩쓸고 지나간 싸움 나락 전체에서 해골만 남은 몬스터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는 되살아난 전장의 투사들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그렇다.

오즈는 주위에 있는 시체들을 되살려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내가 오즈를 사냥할 때는 꼼수를 써서 주변에 시체라고는 한 구도 없게 만들어 놓았기에 그나마 수월하게 잡았다만… 원래대로라면 오즈는 수많은 시체들이 나뒹구는 전장 한복판에 처음 등장하게 된다.

무저갱과 무덤가의 지배자답게, 죽음룡 오즈는 플레이어와 NPC, 몬스터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많은 해골병들을 자신의 가신으로 삼아 일으켜 세웠고 그 재앙과도 같은 언데드의 파도는 온 전장을 뒤덮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다른 플레이어들이 오즈를 감히 범접할 엄두도 나지 않는 존재로 기억하고 있었을 테지.

삐그덕- 쾅!

나는 옆으로 지나가는 거대한 해골을 보며 입을 딱 벌렸다.

용옥의 고문기술자.

위험 등급이 한 단계 떨어진 이 거대한 마물은 해골만 남은 몸으로도 검은 용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어둠 대왕, 식인황제, 크라켄, 데스나이트, 발록 등등… 수많은 정예 몬스터들이 두 번째 죽음에서 부활해 상위 리그로 기어 올라온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흰 용을 적대시하고 있었다.

[이이익! 이 루저들이!? 어딜 감히 패자 놈들이 신성한 챔피언의 전당으로 더러운 발을 들여놓느냐!]

[흐흐흐- 그 결벽증은 여전하구나, 모자란 흰둥이 놈.]

흰 용 카프카타렉트는 언데드 웨이브에 질색팔색을 했고 검은 용 오즈는 그게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오-오오오오!

싸움 나락의 최상층부에서 고정 S+급 몬스터 네 마리가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밑에서 기어 올라온 수없이 많은 다른 몬스터들이 그것들을 향해 덤벼든다.

바야흐로 대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       *       *

“…좋아. 어떻게든 막은 것 같네.”

나는 오즈의 활약을 지켜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오즈는 애초의 목적을 잊은 채, 그냥 흰 용의 영역을 망쳐 놓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다.

여기에 있는 해골병들은 대다수가 살아생전 A+~S급이었던 마수들, 언데드로 화한 지금도 A~A+등급의 힘을 발휘한다.

그런 몬스터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 제아무리 고정 S+급 몬스터가 네 마리라고 해도 얼마간은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죽음룡 오즈가 언데드 수하들을 이끌며 체계적으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걱정 없다.

이대로라면 3페이즈의 제한시간이 다 소진될 때까지는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보였다.

[이이이익-]

한편 흰 용은 매우 화가 난 모양이다.

나는 놈의 앞으로 한 발을 내딛은 뒤 건틀릿을 앞으로 내밀었다.

“다시 1:1이 됐네? 비겁한 수가 실패했으니 어째, 겁나나?”

그 말을 들은 흰 용의 눈깔이 뒤집어졌다.

[감히 나를 겁쟁이 취급하다니! 씻기 어려운 중죄로다!]

카프카타렉트는 나를 향해 불벼락처럼 날아든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 채 뒤로 빠졌다.

[어딜 도망가느냐! 이 비겁자 놈!]

흰 용은 내가 또다시 니가와 플레이를 하려는 줄 알았는지 PTSD가 도진 표정으로 황급히 따라온다.

죽어라고 따라와 거리를 좁혀 오는 카프카타렉트, 하지만 이것 역시 나의 의도대로다.

‘그래, 잘 따라와라.’

지금 이 포석을 위해 1페이즈에서 니가와 플레이로 혼을 쏙 빼놓았던 것이 아니던가.

나는 흰 용과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졌을 때 지금껏 숨겨 왔던 비장의 카드를 빼들었다.

“젤리 좋아해?”

카프카타렉트는 내 질문의 요지를 이해 못하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놈은 곧 내 저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내놓는 수많은 젤리들을 본 이후였다.

빨주노초파남보.

색색의 현란한 빛을 뿜어내는 젤리.

-<츄츄의 슬라임 젤리> / 재료 / D

그레이 시티의 명물 슬라임 젤리.

슬라임으로 만든 젤리답게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다.

바로 슬라임 젤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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