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66화 (666/1,000)

666화 무투룡(武鬪龍) (1)

날카롭게 꺾인 두 개의 뿔,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금색 광택, 칼날 같은 비늘이 몇 겹이나 겹쳐져 만들고 있는 중장갑과 새하얀 겁화가 불붙어 넘실거리는 세 개의 손톱.

이 세계관 최강 최악의 싸움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 드래곤, 무투룡(武鬪龍) 카프카타렉트.

이 세상 모든 하얀 비늘 용들의 정점에 서 있는 백색의 용군주.

놈은 나를 보는 순간 바로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그때 그 더러운 꼼수쟁이 놈이로구나!]

저것은 어렸을 때 오락실에 온 나를 바라보던 동네 형들의 표정!

‘그리운걸.’

눈빛으로 매도당하는 이 감각, 실로 오랜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흰 용은 나를 향해 경멸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네놈의 그 졸렬하고 더러운 플레이는 이곳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실전이니까!]

놈의 말대로 이제 더 이상 격투게임 같은 시스템은 뜨지 않는다.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내가 보기엔 너는 답이 없다.”

딱히 정해진 공략이 없다는 소리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커튼을 잡듯 오른손을 뻗어 불길을 확 잡아 찢어 버렸다.

…뿌지직!

마몬의 건틀릿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본디 불을 찢고 쇠를 두들기던 망치였던 이 건틀릿은 그대로 흰 용의 가슴팍에 때려 박혔다.

[커흑!?]

흰 용은 부지불식간에 쳐맞은 일격에 깜짝 놀라 피를 토한다.

민첩의 돌을 하도 먹어서 그런가 나조차도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돌진 속도!

하지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게임 초창기부터 지금껏 꾸준히 빠른 이동속도 메타를 추구해 온 나이기에 이렇게 바뀐 몸에도 금방 적응해 냈다.

거기에 마몬의 한 방 딜까지 묵직하게 끼얹어 줬으니 이제 빠질 차례.

나는 흰 용이 상황을 파악하고 손톱을 뻗기 직전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뒤로 빠지는 즉시, 또다시 손톱이 가르고 지나간 빈 공간에 원 투 스트레이트!

화산이 분화하는 힘과도 같은 마몬의 대지진과 산을 무너트려 평지로 만드는 데스웜의 와류가 연달아 흰 용의 안면에 꽂혔다.

[크학!?]

놈의 이빨과 비늘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

흰 용은 나를 향해 새하얀 눈을 치떴다.

난데없는 정면승부에 당황한 듯싶다.

“왜? 내가 또 얍실하게 꼼수만 쓸 줄 알았냐?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야~”

사실 원래 그런 사람 맞다.

하지만 지금 격투액션대전게임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지 않은 바에야 니가와 스타일이 먹힐 리가 없었다.

나는 이미 예전에 1페이즈에서 기회를 소모해 버렸으니까.

즉, 지금 싸움 나락에서 만난 흰 용은 바로 2페이즈에 돌입한 상태.

2페이즈부터는 정말로 딱히 공략이 없다.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그렇다.

“그러니 그냥 맞붙어 보는 수밖에.”

나는 또다시 흰 용을 향해 냅다 달렸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그리고 이어진 불타는 주먹 세례!

하지만 흰 용 역시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

흰 불꽃이 휘감긴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든다.

나와 흰 용 사이에 벌어지는 뜨거운 공방전.

하지만 내 쪽의 유효타가 조금 더 많다.

나는 전보다 훨씬 더 빨라진 민첩 스탯을 이용해 흰 용을 맞상대하고 있었다.

‘아마 흰 용을 만났던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지금 내 플레이를 본다면 기절할 정도로 놀라겠지.’

하지만 잡생각도 여기까지, 더 이상 부릴 여유는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사용할 수 있는 패를 모두 뒤집어 깔 차례였다.

고인물이고 마동왕이고 썩은물이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터트린다!

나는 초장부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전부 가동시켰다.

일단 불완전변태 특성의 가동으로 스탯을 10배 뻥튀기 시킨 뒤 여벌의 심장으로 목숨 카운트를 대폭 연장시킨다.

동시에 싸움광 특성과 야수 특성을 발현했고 백전노장 특성까지 몸에 둘렀다.

공격력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착용한 것은 물론이다.

마찰계수 특성으로 몸에 점액을 둘러 불길이나 물리력을 대폭 강제했고 스탯의 돌로 인해 대폭 강화된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로 적을 압도한다.

공격에 피격당하면 앙버팀 특성으로 살아남는 동시에 바로 근묵자흑 특성으로 반사 데미지를 걸고 능지처참의 도트뎀과 벨제붑의 역병 도트뎀을 뿌려 두 배로 갚아 준다.

거기에 대지진을 일으키는 두 주먹으로 폭풍 같은 난타!

설사 흰 용이 거리를 벌릴라 치면 바로 킬 체인으로 놈의 몸을 휘감아 조인 뒤 다시 와류로 끌어당기면 된다.

이른바 3위일체!

고인물과 마동왕과 썩은물의 정수가 한 데 모이면 나는 근접전에서도 장거리전에서도 무적이 다.

“너는 앞으로 30분도 못 버텨.”

물론 내가 이 최고출력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모든 것은 심장을 담가둔 통 속의 포션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달렸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흰 용은 꽤나 조급한 기색이었다.

[이, 이 벌레 자식이! 힘을 숨기고 있었…!?]

놈의 HP바가 꽤나 요란하게 흔들린다.

전에 아키사다 아야카와 함께 싸웠던 페이즈에서 체력을 이미 상당히 깎아 놓았기에 놈은 빠르게 지쳐 가고 있었다.

이윽고, 흰 용이 이빨을 드러냈다.

[1:1의 원칙을 깨는 것은 아쉽다만, 별 수 없게 되었군.]

이윽고, 놈은 3페이즈로 돌입한다.

쿠르륵!

흰 불꽃이 피어오르며 카프카타렉트의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

나는 두 눈을 크게 치떴다.

흰 용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특성을 발현하고 있었다.

나는 레비아탄을 잡고 얻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특성으로 흰 용이 지금 하려는 짓을 간파할 수 있었다.

‘회고록’ 특성: 삶을 살아가는 동안 싸워 왔던 모든 상대들을 일정 시간동안 한 자리에 소환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싸움 나락’이라는 무투장 속에 수많은 몬스터들을 끌어들였던 비장의 특성인 듯싶다.

[흐흐흐흐…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진 존재는 나를 포함하여 오직 둘뿐이지. 어찌 되었건 간에 너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뭐야, 또 용옥의 고문기술자라도 나오는 거냐?”

나는 흰 용의 악담에 비웃음으로 대꾸했다.

1:1이 좋니 뭐니 하며 떠들더니만 결국 허세였던 것인가?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를 것이다.]

흰 용은 나를 내려다보며 비죽 웃었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흰 용이 ‘회고록’이라는 특성을 발현한 이후 체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아마도 상당량의 체력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비장의 기술인 모양.

그리고 나는 놈이 왜 웃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쿠르르륵!

흰 불꽃이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커다란 원 안에서 지금껏 나와 싸워 왔던 수많은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은 내가 싸움 나락에서 싸웠던 개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몬>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다스리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지하광물과 탐욕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신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나니!”

-마몬- <신약, ‘산상보훈(山上寶訓)’ 中>

<벨제붑>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44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질병과 부패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너. 네가 올라가 누운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벨제붑- <구약, 역왕기(疫王記) 하권,

역왕 1,3-4>

<버뮤다>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바다와 호수를 지배하는 위대한 푸른 용.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버뮤다- <창해룡비어천가 (滄海龍飛御天歌) 2장>

<레비아탄>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213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질투와 밀고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깊은 물웅덩이를 솥처럼 끓게 하고 바닷물을 기름가마처럼 부글거리게 하는구나. 보아라! 바다의 그 누가 나와 겨루랴!”

-레비아탄- <하해왕기(下海王記)

41:6~19>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고정 S+급 몬스터들이 드디어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푸른 용군주 ‘창해룡 버뮤다’

내가 그토록 힘들게, 때론 운에 기대어 겨우겨우 잡아 왔던 거대한 서브스트림들이 허옇게 물든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것들은 모두 흰 용 카프카타렉트에 의해 삶을 빼앗긴, 그저 싸움을 위해 조종당하는 괴뢰일 뿐.

“……않이. 이걸 뭐 어떻게 하라고. 그냥 잡지 말라고 하지 왜?”

나는 입을 딱 벌렸다.

흰 용을 만나 싸우기 위해서는 레벨이 높아야 하고 레벨이 높으면 이 3페이즈를 버텨낼 수가 없다.

자기가 잡았던 몬스터 중에 가장 센 놈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무슨 수로 배기랴?

회귀 전 고인물 선배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던 것들이 또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사실 뭐니뭐니해도 제일 싸우기 싫은 건 화이트 드래곤 카프카타렉트? 그것만한 사기 몬스터가 또 없지.’

‘껄껄껄- 뭐? 흰 용 카프카타렉트를 만나면 어떻게 하냐고?’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지.’

“아, 알았다고요 쫌!”

나는 손사래를 치며 환청 같은 것들을 모두 걷어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긴 하다.

탐욕의 증좌, 만마전의 최종보스 마몬.

파리 대왕, 이 세상 모든 썩어가는 것들의 우선권자 벨제붑.

하해의 왕, 말이 필요 없는 바다의 지배자 레비아탄.

상해의 왕, 역시나 바다의 지배자 버뮤다.

자그마치 세 마리의 악마성좌와 한 마리의 용군주가 나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리 고인물인 나라도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아니, 그 누구라도 없을 것이다.

…….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때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숨구멍이 트이는 경우가 있다.

‘어라? 근데 뭐 하나가 비는 것 같은데?’

내가 눈앞에 있는 고정 S+급 몬스터들 사이에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끼는 순간.

[이, 이럴 수가! 내… 내 몸이!?]

내 뒤에서 경악과 환희에 가득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보인다.

늘 내 어깨 위에서 빈둥거리던 군식구.

<오즈>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무저갱과 무덤가를 지배하는 위대한 검은 용.

“죽음이 너를 영원하게 하리라.”

-오즈- <신약, 흑왕기(黑王記) 하권,, 흑왕 4절>

[내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어!]

죽음룡 오즈 등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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