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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60화 (660/1,000)
  • 660화 무투대회 (1)

    콘크리트를 두부처럼 가르고 아스팔트를 김처럼 찢던 남세혁의 창이 중간에 턱 가로막혔다.

    [……!?]

    남세혁은 당황한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창을 가로막은 존재는 다름 아닌 쥬딜로페였기 때문이다.

    [호에엥, 뿌!]

    전투 내내 내 어깨 위에 몰래 무임승차하고 있던 이 작은 벌레 여왕님은 놀랍게도 손가락 하나만으로 남세혁의 창을 막아 내는 기염을 토했다.

    남세혁은 뒤로 반 보 정도 물러섰고 이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끔뻑거렸다.

    파앙!

    이윽고, 흑빛 창이 현실을 부정하듯 날아들었다.

    연쇄적으로 마구 짓쳐드는 창끝!

    마치 포악한 맹수의 이빨처럼 눈앞의 모든 것을 찢어발길 기세다.

    그러나.

    [헤헤헹, 힣~]

    남세혁의 창끝은 쥬딜로페의 부드럽고 통통한 뱃살을 연쇄적으로 간지럽힐 뿐이다.

    쥬딜로페는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손가락을 대하는 것처럼 꺄르르 웃다가 창끝이 배를 향하자 정색을 했다.

    그리고는 날개를 끌어당겨 약간 튀어나와 있는 뱃살을 슬쩍 숨긴다.

    한편, 이 모습을 본 조디악의 얼굴에는 비로소 화색이 돌고 있었다.

    “푸스스스! 오 그래! 설마 펫이 정답이었나!? 매번 여기서 클리어를 실패했었는데 말야! 내가 펫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펫이라, 정말 그게 답일까?

    “뭐지. 얘들 왜 쥬딜로페에게 데미지를 못 입히지?”

    “글쎄? 벨페골의 땅에서는 뭐든지 뒤죽박죽 알쏭달쏭하니.”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조디악 역시 킬킬 웃으며 말을 잇는다.

    “푸스스스- 아마도 이 녀석들은 데모 버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놈들이고 네 펫은 정식 버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상성이 극과 극으로 치달아 있는 게 아닐까?”

    “상성?”

    “상성이라고 하면 좀 그런가? 그냥 어딜 감히 데모버전 데이터 놈들이 정식 버전 데이터 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어허, 떽! 이런 느낌이겠지 뭐.”

    나는 조디악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반대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무료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고 있는 오즈가 있었다.

    [뭐, 왜, 뭐.]

    “…….”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오즈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남세력을 향해 던져 버렸다.

    쥬딜로페가 할 수 있다면 이 녀석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으악! 인간! 이게 무슨 짓…!?]

    오즈는 남세혁에게 날아가 부딪쳤고 이내 창끝을 피해 바동거린다.

    남세혁의 창에 엉덩이를 스친 오즈는 엉엉 울며 다시 나에게로 뛰어왔다.

    [뭐 하는 거야! 죽을 뻔했잖아!]

    “죽음이 너를 영원하게 한다며. 넌 죽음룡이잖아.”

    [아, 생각해 보니까 꼭 그런 것도 아니더라. 역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는 주절거리는 오즈를 들어 올려 다시 망토 속에 집어넣었다.

    ‘흐음, 오즈는 데미지를 입고 쥬딜로페는 데미지를 안 입는다고?’

    남세혁이 창으로 쥬딜로페를 찔렀을 때는 분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즈를 찔렀을 때는 분명히 데미지가 박혔다.

    ‘아무래도 쥬딜로페가 보통 펫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렇다.

    오즈는 분명 시스템 상 나의 펫, 그러니까 나보다 아랫것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쥬딜로페는 시스템 상 나의 주인, 그러니까 내가 녀석의 펫으로 등록되어 있다.

    아마 이 기묘한 관계에서 오는 간극이 조디악이 말한 가설과 맞물려 이상한 값을 도출해 낸 것 같았다.

    [꺄르륵-]

    쥬딜로페는 도깨비들이 퍼붓는 공격들을 맞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다.

    [@$(*%#!$)]

    [(*&■^%○]

    [※□『●⁋‱]

    도깨비들이 쥬딜로페에게 가하는 데미지는 아예 오류 처리가 되어 집계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볼 때마다 조디악은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푸스스스! 세상에! 역시 펫이 답이었군! 나도 펫 한 마리만 데려올걸! 펫만 있으면 이것들 따위는…….”

    아무래도 녀석은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쥬딜로페가 펫이 아니라 내가 펫인데.’

    도깨비들의 공격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펫을 얻는 것이 아니라 펫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굳이 조디악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아무튼, 잘 가라.”

    나는 두 깎단을 들고 남세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세혁은 반격을 한답시고 검은 창을 휘둘렀지만 그것은 쥬딜로페의 날개에 의해 가로막힌다.

    푸푹!

    결국 나는 남세혁에게 깎단을 찔러 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승패는 갈렸다.

    도트 데미지에 절어 버린 도깨비들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우르르르르-

    놈들은 죽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스탯의 돌들을 떨구었다.

    나는 오즈를 시켜 그것들을 싹 다 주워 모았다.

    “민첩의 돌 먼저 줍고 그 다음으로는 힘의 돌, 체력의 돌 순으로 먼저 주워 와.”

    내 말을 들은 오즈는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돌들을 주워 온다.

    그것을 본 조디악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왜 그렇게 민첩 스탯에 집착하냐? 단순히 이동속도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동속도 때문에 그러는 것 맞아.”

    “푸스스스- 에이, 이미 이동속도는 MAX 찍은 것 같구만 뭘. 너보다 빠르게 덜렁… 아니 움직이는 놈이 어딨다고. 그리고 너 민첩 옵션 붙은 잡템들 모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데.”

    나는 조디악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내가 대답 대신 한 것은 도깨비들이 전부 사라지고 난 땅 너머, 시커멓게 펼쳐진 지평선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최후의 미션도 완료했으니, 이제 탈출만 남은 건가.”

    이제 벨페골의 영역이 끝났다. 이 검은 지평선을 넘어가서부터는 드디어 흰 용의 영역!

    하지만 끝이 없어 보이는 이 땅을 언제 어느 세월에 건너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가뜩이나 나는 소모품도 별로 없는 상태이니…….

    그러나, 그 걱정은 조디악에 의해 해결되었다.

    “푸스스스- 드디어 이 던전을 끝낼 차례로군. 자연적으로 흰 용의 영역으로 가게 되었네.”

    조디악은 검은 땅을 밟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미션이 끝나 텅 비어 버린 미션 스크린에 특정한 글귀 하나를 입력했다.

    Do a barrel roll

    “……?”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조디악은 씩 웃는다.

    “이건 내가 실험실을 탈출할 때 김정은이 알려 준 코드야.”

    이 글귀를 그글 검색창에 입력하면 실제로 스크린이 뒤집어지며 화면이 빙글빙글 돌아간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이로부터 조금 뒤이다.

    …타닥!

    조디악이 코드 입력을 끝내자마자 이변이 일어났다.

    빙글!

    내 시야가 한 바퀴 크게 회전한 것이다.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된다.

    나는 검붉은 하늘이 발밑으로 깔리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나 자신의 위치는 변함이 없는데 주위가 백팔십도 뒤집히는 감각은 실로 기묘한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들려오지 않았던 알림음들이 한꺼번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띠링!

    <히든 던전 ‘카르마의 일기장’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히든 인스턴트 던전 ‘싸움 나락’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예전에 떴던 메시지인 <힑뚩 인궳턴트 뎗걁 ‘싸■… □락’귉 입#* □셨습■■> 가 드디어 제대로 떴다.

    불사조를 부활시키기 위한 마지막 관문.

    이제야 비로소 화이트 드래곤 카프카타렉트의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

    *       *       *

    나는 검붉게 소용돌이치는 바닥의 중심부로 가라앉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 석양에 젖어 붉게 물들어 있던 밤하늘은 이제 먹구름 가득한 소용돌이가 되어 나를 삼킨다.

    나는 이제 하늘이 되어 버린 벨페골의 땅을 올려다보았다.

    폐허가 된 도시가 점점 멀어지며 회색빛 가득한 우중충한 하늘로 변해 간다.

    동시에 검붉은 소용돌이가 바닥, 깊은 무저갱처럼 입을 벌리고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늘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하늘이 된다.

    흰 용군주와 나태의 악마성좌는 이처럼 영역을 마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내 옆에는 조디악이 있었다.

    “푸스스스-”

    뜻 모를 웃음을 흘리는 조디악.

    나는 놈과의 기묘한 동행을 하게 되었다.

    적도 친구도 아닌 관계.

    나는 회귀자, 놈은 사전 체험자 정도 되려나?

    문득 불사조가 생각난다.

    나는 불사조를 되살리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불사조를 죽인 두 존재 역시도 생각난다.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과 흰 용군주 카프카타렉트.

    하해의 대왕 레비아탄은 이미 내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곧 만나게 될 흰 용뿐.

    ‘생각해 보면 흰 용과 레비아탄의 관계가 나와 조디악 사이랑 비슷할지도.’

    흰 용과 레비아탄은 서로 적대 진영이지만 서로간의 기묘한 유대관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아스모데우스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푸스스스, 이봐 친구. 좀 보라고. 저게 네가 찾던 게 아닐까?”

    조디악이 내 상념을 깬다.

    나는 뭔가 싶어 조디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틀었다.

    검붉게 물든 소용돌이의 중심부, 깊게 가라앉은 나락.

    그 저변에 무언가가 보인다.

    “……!”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두 가지 의문이 동시에 해결되었다.

    1.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왜 월드맵 전체를 돌며 몬스터들을 사냥했는가.

    2. 회귀 전 고인물 선배들은 왜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최악의 상대로 꼽았는가.

    그 답이 눈앞에 펼쳐진다.

    검붉은 회오리의 저변, 깊은 중심부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어둠대왕>, <식인황제>, <이름없는 여왕>, <이히히히>, <바실리스크>, <씨아블로>, <피투성이 악령>, <하린마루>, <여덟다리 대왕>, <인간지네>, <리자드맨 만인장>, <발록>, <데모고르곤>, <자각흉몽아귀>, <리치왕>, <데스나이트>, <기어다니는 무사>, <샌드웜>, <크라켄>, <고르딕사>, <하해의 곰치 린다>, <피투성이 악령>, <고대문명의 잔존골렘>, <강철 뱀>, <대망자>, <카르마>, <미노타우로스>, <아귀메기>, <쟈쿰>, <지옥바퀴 대왕게>, <교활한 베놈피온>……

    지금까지 내가 죽여 왔던 몬스터들이 여기에 죄다 모여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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