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10)
코끝에 맴도는 박하향과 함께 한 도깨비가 내 앞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그의 가면 밑 얼굴을 보고 누군지 감을 잡았다.
‘남세나인가?’
뎀 코리아,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 그녀의 체향이 이런 박하향이었지.
이런 외진 곳, 심지어 인스턴트 던전 안까지 조디악을 추적해 올 줄은 몰랐기에 나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어? 여자라고 하기엔 떡대가 너무 좋은데?’
망토 속으로 보이는 몸은 누가 봐도 남자다.
나는 이내 그의 정체가 남세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이 묘한 익숙함은 대체…….’
내가 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옆으로 온 조디악이 피식 웃었다.
“저것들도 다 내 기억 속 몬스터들이야.”
아, 몬스터였나?
그러고 보니 남세나가 여기에 올 수 있을 리 없다.
이 던전은 조디악 외 1명만 출입 가능하니까.
조디악은 눈앞에 있는 도깨비 가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녀석이 아까 내가 보여 준 영상 속에 나오는 얼굴이야. 그 죽어가던 한국인 말야. 이름이… 남세혁이랬던가?”
나는 그 말을 듣고 레비아탄의 특성을 이용해 적의 상태창을 살폈다.
Code: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과연 그는 NPC였다.
지금은 처리반으로 이름이 바뀐 ‘누미노제 팀’의 팀장이었던 몸.
그는 곧 내부고발 후 보복 당하게 될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파캉!
나는 남세혁의 창을 피해 몸을 날렸고 역으로 깎단을 먹여 주었다.
놈의 창과 내 송곳이 사납게 격돌한다.
나는 묵직한 반탄력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남세혁은 내가 도망치게 놔두지 않았다.
…퍼펑!
벽을 밟고 지면과 수평을 이루며 달려온 남세혁은 곧바로 내 턱 밑으로 창을 찔러 넣는다.
‘오? 이놈 봐라?’
나는 두 개의 깎단을 X자로 교체해 놈의 창을 막았다.
동시에 창을 회수할 수 없게 창날과 받침대 사이에 깎단을 단단히 끼워 넣고 비틀었다.
우드득!
창대가 놈의 손아귀를 비틀며 빠져나간다.
그러나.
빙글-
남세혁은 창대를 놓고 그것을 확 밀어 한 바퀴 빙글 돌려 버렸다.
창이 일순간 양 깎단 사이에서 빠져나왔고 그 틈을 타 남세혁은 나에게 단도를 집어던졌다.
물컹-
그러나 단도는 내 몸을 뒤덮은 점액에 닿아 튕겨나갔다.
“소용없어.”
내가 막 남세혁의 창을 멀리 내던지려는 순간.
파캉!
남세혁이 손을 들어 창을 회수한다.
놈의 손목에 채워진 사슬은 창끝과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 회수가 가능했던 것이다.
‘중거리 투창용이었나.’
나는 식은땀 한 방울을 바람에 실어 보냈다.
상대가 투창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어줍잖게 거리를 벌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남세혁의 근접전 실력은 나에 견주어도 그리 밀리지 않을 정도다.
과연 GM의 수장다운 전투력.
…퍽! …파캉! …땅! …따앙!
나와 남세혁은 몇 수를 맞붙었고 그중에 뚜렷한 유효타는 없었다.
남세혁이 휘두르는 창과 아우라를 피해 뒤로 데굴데굴 구르던 나는 이내 무너진 빌딩 잔해에 가로막혔다.
그 앞으로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남세혁이 창끝을 드리우고 있었다.
숨 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는 속공이었다.
“와, 컨빨 죽인다.”
사실 컨빨만 죽이는 게 아니다.
저 묵직한 흑빛 창은 등급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휘둘러지며 생겨나는 파공성만으로 폐건물의 유리창들을 모조리 깨 버리고 있었다.
나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S급 이상의 레어 아이템이 분명하겠지.
“그래 템빨도 쩌네, 너.”
과거 조디악은 이런 놈을 죽였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클로즈 베타 버전의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로 강했다는 걸까?
나는 은근슬쩍 고개를 드는 경외감에 옆에 있던 조디악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푸스스스! 끄악!”
창끝에서 튀긴 아우라의 파편에 엉덩이를 찔린 조디악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젠장, 캐릭터 설정 붕괴 급인데.”
아무래도 조디악은 나에게 너무 죽어서 회귀 전의 포스를 뿜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만화나 영화의 법칙 상 적이었다가 같은 편이 되면 약해지는 것이 섭리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걸.
“…….”
내가 빤히 쳐다보자 조디악은 이내 정색을 하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이봐.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내 악몽이자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건드는 곳이라고. 내가 이 정도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하기야 놈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나는 예전에 악몽아귀의 뱃속에 삼켜졌을 때 조디악처럼 움직이기는커녕 현실과 게임을 분간하지도 못한 채 죽을 뻔 했으니까.
‘그때 드레이크와 솔이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벌써 아귀의 밥이 되었겠지.’
나는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눈앞으로는 남세혁이 창을 휘두른다.
나는 깨진 가면 틈 사이로 드러난 놈의 얼굴이 상당히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쌉쌀한 박하향,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이름.
‘아무리 봐도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를 연상할 수밖에 없겠는데 이거.’
과거 나는 남세나와의 담판에서 몇 가지 의미심장한 대사를 들은 바가 있었다.
‘왜 그렇게 조디악에게 집착합니까?’
‘……제 선임자 때문이죠.’
남세나와 똑 닮은 남세혁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혹 혈육일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푸스스스…]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남세혁이 눈앞에 있는 조디악을 보며 기괴한 웃음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원조일까?
남세혁의 미소를 본 조디악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걷혔다.
이윽고, 조디악은 파르르 떨리는 음성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총 끝은 빛나고 방아쇠는 심판을 내린다.
기꺼이 적에게 복수하고 증오엔 증오로 되갚으니.
오 신이시여.
나를 당신 곁에 두시고 성인들 중에 세우소서.
남의 피를 쏟게 하는 자 자기 피도 쏟게 하리라.
그것이 신의 뜻이라.
조디악은 공포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함인지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짓눌러 자기암시를 걸고 있었다.
‘…저 사이코가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조금 중2병 같기는 했지만 천하의 앙신이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상당히 새로운 인상을 받았다.
과연 처리반이라는 것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
‘하긴, 게임에서도 그랬는데 실제 현실이나 다름없었다던 클로즈 베타에서는 오죽했겠어?’
도깨비, 아니 처리반, 아니 누미노제 팀.
그들은 클로즈 베타 세상 속 모든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였을 것이고 그들의 개입은 곧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그 자체였을 것이다.
…파직!
남세혁을 비롯한 도깨비들은 나와 조디악을 향해 계속해서 마수(魔手)를 뻗어 왔다.
“이봐 친구, 아무래도 손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조디악이 나에게 먼저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악의 반대가 꼭 선이 아니듯, 적의 적도 꼭 친구는 아니다.
“꺼져.”
조디악은 여전히 뱀 같은 놈이었고 그의 말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기에 나는 도깨비에게도 조디악에게도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애매해지고 있다.
“쳇, 안 속네.”
역시나, 조디악은 나를 미끼로 던지고 내뺄 계획이었는지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멀어졌고 도깨비들은 조디악도 나도 놓치지 않은 채 포위망을 바싹 좁힌다.
어느덧 이쪽을 향해 몰려오는 도깨비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슬슬 트라우마의 끝이야. 마지막 관문이라서 그런가 도깨비들이 직접 마중나왔군 그래!”
조디악이 흰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하지만 놈이나 나나 웃을 처지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포위망은 좁아지고 있었고 날아드는 화살이나 마법, 창칼 역시도 점점 더 잦아지고 있었으니까.
그때.
지이잉!
도깨비 중 하나가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으윽!?”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내 머릿속에서 쭈욱 빨려나가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
나는 조디악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재빨리 마몬의 건틀릿을 꺼내들어 도깨비 놈을 쳐 죽여 버렸다.
내 머릿속에서 빠져나갔던 녹푸른 물질이 허공에 기화되어 사라진다.
“…이게 누미노제인가?”
온몸에서 식은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분명히 느꼈다.
‘기 빨린다’라는 표현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걸 몇 년이나 당했다니.”
과연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천하의 앙신조차 공포에 질리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바로 그때.
퍼펑!
남세혁의 창이 내 사각을 비집고 욱여들어왔다.
나는 깎단을 교차해 막으려 했지만 속도도 공격력도 남세혁의 흑빛 창에는 조금 뒤졌다.
‘젠장! 마동왕 모드였으면 막았는데!’
마동왕의 힘을 쓸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포위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동왕 메타는 다대일 상황에서도 거의 무적이니까.
조디악의 눈치를 보느라 마동왕 메타를 잠시 숨겨 놨던 것이 패인이었다.
남세혁의 창끝이 내 깎단을 튕겨내고 가슴팍 안쪽으로 깊숙하게 파고든다.
무슨 놈의 아이템인지 피 냄새를 맡은 청상아리처럼 더욱 더 집요하고 흉폭해지고 있었다.
나는 각오를 하고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빨리 혈액포식자나 여벌의 심장을 가동할 준비를 하며.
…하지만 바로 그때!
턱!
놀랍게도, 남세혁의 창끝을 손가락 하나로 막아 내는 존재가 있었다.
[호에엥!]
의외로 쥬딜로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