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9)
…부스럭!
나는 몇 개의 빵 봉지를 신중하게 뒤져 유통기한이 제일 짧은 것을 골라내 조디악에게 던졌다.
“푸스스스- 야, 이거 유통기한 지났잖아.”
“게임 속인데 뭐 어때.”
“게임 속에서도 배탈은 난다고, 친구.”
“어차피 너 무통증 증후군이라 배 아파도 느낌 안 나잖아.”
“…진짜, 너는 클로즈 베타도 안 했는데 인성이 왜 그렇냐?”
회귀 전 너에게 당한 게 많다고 해 봐야 조디악이 알아들을까?
나는 그냥 놈의 불평을 무시해 버렸다.
▶
이윽고, 조디악이 재생한 영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빵을 우물거리며 영상을 시청했다.
치직… 치지지직…
영상 초반부에 잡힌 것은 조디악, 지금보다 훨씬 더 앳되고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반으로 깨진 도깨비 가면,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꽤 잘생긴 얼굴의 동양인이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중국인, 혹은 한국인처럼 보인다.
순간.
‘…어?’
나는 영상 속, 죽어 가고 있는 그 남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 *
REC●
▶
녹화된 영상 속, 피투성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결국 이 꼴이로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한국어였다.
조디악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의 조디악과는 달리, 영상 속의 조디악은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다.
[이걸로 네 길드는 와해다. 식량과 스탯의 정수들은 내가 가져가지.]
아무래도 조디악은 생존자 집단 중 하나를 방금 막 몰살시킨 듯하다.
수많은 시체들이 마치 도축이라도 된 듯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금발 머리의 여자, 빨간 머리의 소년, 검은 머리의 노인, 검은 피부의 남자, 다양한 인종과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모조리 고깃덩이가 되어 불타는 잔해 사이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최종 리더로 보이는 이 한국인 남자는 나른한 표정을 지은 채로 죽어 가고 있는 중이다.
조디악은 그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탓일까? 피투성이의 남자는 조디악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한다.
[……누미노제란 그런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은 조디악은 충격을 받았다는 듯 입을 벌린다.
[정말로, 윌슨이란 놈이 자기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남들의 상상력을 훔친다 이거냐?]
[그렇지. 나는 그 작업에 환멸을 느껴 내부고발을 하려 했다가 이 세계로 던져졌고.]
[…이, …이, 감히 나를 무슨 외장하드 취급해!? 대체 그놈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러자, 남자는 피딱지 얼룩진 눈을 힘겹게 떴다.
그리고 갈라 터진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지. 그건 아무도 몰라.]
조디악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남자의 설명은 중간중간 끊어진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차근차근했고 질서가 있었다.
뎀 유니버스의 창시자 윌리엄 링트 윌슨은 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축조하려는 것 같았고 이를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집단지성,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집단 상상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즉 집단지성을 자기 하나만의 것처럼 다루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원 포 올(one for all), 올 포 원(all for one)인 거야.]
[…미친, 그딴 게 무슨 원 포 올, 올 포 원이냐? 그냥 올 포 원이지.]
올 포 원(all for one). 하나를 위한 모든 것.
여기 이 세계에 갇힌 모든 사람들은 윌슨 하나를 위한 희생양이던가?
조디악은 핏발 선 눈으로 고개를 들어 검붉게 물든 하늘을 노려보았다.
<? 번째 미션; 전체를 위해 살아남은 하나, 하나를 위해 살아남은 전체.>
다 같이 협력해서 살아남으라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를 짓밟고 나 하나만 살면 된다는 것일까?
하늘에 떠 있는 미션 창은 그저 말이 없을 뿐이다.
[쿨럭!]
피투성이 남자는 기침을 했다.
날숨에 살점과 핏물이 토해져 나오는 것으로 보아 얼마 살지 못할 듯싶었다.
조디악은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이 세계가 클로즈 베타랬나?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
[한 번 더 이 세계를 플레이하게 되지. 뒷 회차 플레이어들과.]
[계속? 회귀 같은 건가?]
[계속. 회귀 같은 거지.]
다시 한번 미션 1부터 이 세계를 플레이하게 된다면 당연히 처음 하는 이들보다는 잘 할 수밖에 없다.
마치 수십, 수백 번 죽어본 올드비 게이머가 한 번도 죽지 않은 뉴비 게이머보다 게임을 잘 하듯.
조디악은 턱을 쓰다듬었다.
[어쩐지, 똑같이 이 세계에 떨어졌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내는 녀석들이 있다 싶었어. 그놈들은 앞 회차에서 뒈져서 온 놈들이었군. 그렇게 계속 무한회귀를 시키면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거야? 무슨 게임처럼?]
[무한은 아니지. 뇌에서 분비되는 누미노제가 말라붙으면… 폐기처분 되는 것이지.]
남자는 조그맣게 말을 이었다.
[…나처럼 말이야.]
죽고 다시 리스폰되고 또 다시 죽는 것을 수십, 수백 번 한 플레이어들은 정신이 피폐해져서 어지간한 상황에는 감응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그럼 뇌 속에서 분비되는 상상력, 창의력 물질들이 말라붙게 되고 더 이상 아무것도 꿈꿀 수 없게 된 인간은 미쳐 버린다.
그러면 이제 그 ‘인형(人形)’은 폐기처분 되는 것이다.
[느껴져.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이제는 완전히 말라 버린 게.]
남자는 희뿌연 눈을 들어 조디악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힘겹게 미소 짓는다.
[아마도 이게 내 마지막 플레이겠지.]
[…….]
조디악은 입을 다문 채 말이 없다.
남자는 말했다.
[이제 끝내고 싶어. 자.]
이윽고, 조디악은 손에 든 송곳으로 남자의 목을 깊게 찔렀다.
남자는 죽기 직전 조디악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푸스스스스…]
말라붙은 샘처럼, 건조하게.
* * *
⟳
동영상이 끝났다.
내가 이 영상을 보고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조디악의 대사를 읊조리는 것이었다.
‘…미친, 그딴 게 무슨 원 포 올, 올 포 원이냐? 그냥 올 포 원이지.’
내가 이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조디악이 한 말과 비슷한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다.
‘아!’
저런 류의 말을 들었던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지라 어렵지 않게 생각이 났다.
[윌슨의 두 목적 중 하나인 원 포 올(One for All)에는 동의하지만 올 포 원(All for One)에는 동의하지 않지.]
그것은 불사조가 했던 말이었다.
당시 불사조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계에 애정이 있어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에는 동의하나 윌슨 한 사람의 만족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세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레비아탄과 흰 용이 손을 잡고 나를 습격했었지.’
아마도 윌슨이 직접 개입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시점에서 회귀 이전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미래에 겪었던 3차 대격변 ‘용마동맹’ 역시도 윌슨이 어딘가에 있을 저항세력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일으켰던 건가?’
별의별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지난 세월 동안 너무나도 사랑했던 이 게임 세계가 사실 수많은 이들의 무고한 희생을 토대로 축조된 것이라니.
조디악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나는 이 세계에서 탈출했지.”
“어떻게?”
“리스폰 되는 순간 캡슐과 의식이 동기화 될 때의 짧은 틈을 노렸어. 뭐, 물론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고. 도와준 녀석이 하나 있기는 했지.”
나는 그 조력자라는 인물의 정체가 궁금했고 조디악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말해 주었다.
“내가 데리고 다니는 여자 있잖아.”
“…아.”
김정은을 말하는 것이리라.
조디악은 비릿하게 웃었다.
“방금 전 영상 속에서 본 남자의 애인이 바로 그 여자였거든. 애인이 죽은 것 때문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에 잘 구슬려서 실험실에 불을 지르고 탈출했지.”
“그래서 클로즈 베타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찾았을 때……김정은이 반응했던 것이군.”
“푸스스스, 맞아.”
그러고 보니 지금 생각하면 아귀가 얼추 맞는다.
과거 조디악이 한국 프로리그를 습격했을 때 모든 프로 선수들이 놈을 막아섰지만 김정은이 이끌던 강원도 대표팀 매드독은 그 전장에 불참했었다.
그게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조디악은 말을 이었다.
“김정은 그 여자. 한국의 시골에 숨어 살고 있더군. 얼굴도 싹 바꾼 채로. 숨어 살던 년이 왜 프로리그에 기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차피 한국이라고 해 봐야 아시아 구석 약소국에 E스포츠 퇴물국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나? 마동왕이라는 놈이 등판하기 전까지는 말야.”
“게임이 좋았나 보지. 그 여자도 일단은 게이머니까.”
“뭐 그런가? 내 알바는 아니지만. 푸스스스….”
조디악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너는 내 말을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것 같아서 고맙네.”
“다 믿는 것은 아니야.”
“믿는 구석이 있기는 있다는 거잖아. 그게 어디냐고.”
뭐, 나는 회귀까지 한 마당에 조디악의 이야기를 믿지 못할 것도 없다.
조디악은 빵을 우물거리며 한 번 더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깜짝 놀랐지. 나는 도망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몰랐거든. 몇 년 뒤인가? 내가 겪었던 악몽과 상당히 흡사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가상현실 게임이 출시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고. 바로 이 ‘뎀’ 말이야. …뭐 알았다고는 해도 벨페골 전에서 비로소 확실해진 것이지만.”
“그런데 이 엄청난 사실들을 왜 세간에 알리지 않았던 거야?”
내가 묻자 조디악은 빵 봉지를 바닥에 버리며 대답했다.
“누가 믿어 주겠냐?”
“…하긴.”
이제 뎀 유니버스는 어마어마한 초국적기업이 되었다.
국적불명의 개발자이자 회장인 ‘윌리엄 링크 윌슨’의 경영 아래 2020년대 이후 매년 10~20%의 폭발적인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세계 21개 지부, 111개 국가에서 약 15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매출은 약 5천억 달러 이상.
전 세계 가상현실게임 시장의 98%를 장악하고 있으며 2억 명이 넘는 동시접속자 수를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아침에도 수많은 음모론들이 고개를 들고 있고 그에 따라 수많은 법무팀들이 바쁘게 일한다.
이런 상황에서 증거를 들이밀어 봐야 압도적인 화력에 짓밟힐 가능성이 크다.
“푸스스스- 그리고 나는 보다 확실한 ‘때’를 기다리고 있지.”
“때?”
“그래. 가장 확실한 순간에 터트릴 거라고.”
조디악의 말에 나는 또다시 미증유의 불길함을 느꼈다.
이 자식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그때, 나와 조디악의 시선이 한 데 마주쳤다.
조디악은 입가의 빵 부스러기를 떼어 먹으며 씩 웃었다.
“나는 너도 클로즈 베타 출신인 줄 알았어. 뭐든 다 알고 선점해 버리니까.”
“…….”
“그런데 너는 대체 뭐 하는 놈이냐? 그냥 재능충?”
조디악의 말에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 입을 열려는 찰나.
…콰쾅!
우리 둘 사이에서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
나는 잽싸게 바닥을 구른 뒤 고개를 들었다.
조디악 역시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저 위, 붕괴하다 만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검붉은 밤하늘, 저무는 석양을 등지고 몇 개의 그림자가 늘어진다.
도깨비 가면을 쓴 몇몇 이들이 내가 있는 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코끝에 은은하게 감도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쌉쌀한 박하 향이었다.
조디악이 다시 한번 비릿하게 웃었다.
“푸스스스- ‘처리반’이 왔군.‘
동시에, 시야 한 구석에 걸려 있던 미션 창이 한번 크게 요동쳤다.
<최후의 미션; 탈출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