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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57화 (657/1,000)
  • 657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8)

    …덜그럭!

    나는 콘크리트 잔해와 철근들을 들어내고 폐허가 된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역 내부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깨진 유리와 불에 타다 만 붕괴물들, 그리고 낙석에 맞아 데미지를 입었는지 바닥을 어기적어기적 기어 다니는 좀비들.

    “이놈의 언데드들은 끝이 없구만.”

    나는 깎단을 거꾸로 쥔 채 주변의 좀비들을 퍽퍽 때려잡았다.

    레벨이 높으니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좀비들은 사람을 여러 명 죽여 스탯의 돌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잡았을 때 스탯의 돌 드랍율이 거의 100%에 가까워서 죽이면 죽일수록 이득이었다.

    다만 레이드에 필요한 소모품을 조달하기 힘들다는 게 아쉬울 뿐.

    “기본 스텟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좀비들을 뚜까 두들겨 기본 스탯을 보정했다.

    가능한 민첩이 좋지만… 사실 아무 스탯이나 올라가는 것 자체로도 이득이다.

    동시에.

    깽창!

    나는 벽면의 자판기를 깨고 그 안에 든 과자와 이온음료들을 끄집어냈다.

    이 구역은 붕괴와 오염이 빠르게 이루어졌는지 소모품들이 대체로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나를 졸졸 따라오던 조디악이 그 모습을 보고 휘파람을 분다.

    “와우, 그러고 보니 나는 지하로 내려올 생각을 못 했네. 왜 못 했지? 좀비들이 너무 많았었나?”

    딴청을 피는 척하며 내 옆으로 슬슬 다가온 조디악은 은근슬쩍 내가 구한 과자와 이온음료를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그런 조디악의 손등을 깎단으로 후려쳤다.

    “뗏찌, 나쁜 손!”

    동시에 과자와 이온음료에 벨제붑의 역병 맹독이 깃든 침을 퉤퉤 뱉어 놓았다.

    푸시시시시…

    과자와 이온음료의 포장지가 검록색으로 썩어 가는 걸 본 조디악의 표정도 구리게 썩는다.

    “더러워서 안 먹는다, 안 먹어.”

    이제 이 식량은 나만 먹을 수 있다는 말씀.

    그리고 이 와중에도 지하철 역 부근의 좀비들은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그르르르르…]

    [구아아악!]

    [끄르륵! 끄륵!]

    언데드에게 물려죽은 뒤 언데드로 변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이빨과 손톱을 들이민다.

    개중에는 변이를 일으켰는지 커다란 덩치, 혹은 여러 개의 촉수,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나 꼬리를 가진 개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뭐.”

    그래 봐야 기껏 D~C+사이의 몬스터들.

    이제 막 게임 세상에 던져진 뉴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한여름철 모기 정도의 귀찮음 수준이다.

    “스.탯.조.아.”

    나는 좀비들을 뚜까 두들겨 잡으며 스탯의 정수들을 하나 둘씩 주워 모았다.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쥬딜로페와 오즈가 열심히 바닥을 돌아다니며 알록달록한 돌들을 모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내 시야 한켠에 부유하고 있는 미션창이 요란하게 떨린다.

    <네 번째 미션: 괴물들 사이에 놓인 자>

    “이제 슬슬 다음 미션이 뜰 때도 됐는데 말이지.”

    나는 수북하게 쌓인 언데드들의 시체를 불태우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미션을 클리어 해 나가야 다음 스테이지를 막고 있는 투명한 벽이 해금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조디악이 내 옆으로 슬슬 다가와 앉았다.

    “아니, 근데 내 이야기 안 들을 거야?”

    참, 그러고 보니 조디악의 사연을 듣는 중이었잖아?

    감성팔이 빼고 최대한 드라이하게, 팩트만을 선별해 들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최대한 무감정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턱짓했다.

    “…계속 얘기해 봐.”

    인간 지방이 타며 만들어 내는 불꽃이 지하철 역 앞을 환하게 비춘다.

    조디악은 내 옆에 앉아 아직 내 침에 오염되지 않은 이온음료 한 캔을 집어 들었다.

    “크흠. 긴 얘기를 하려니 목이 마르네.”

    하지만.

    …탁!

    나는 놀라운 손놀림과 인성을 발휘해 조디악의 손에 들어간 이온음료 캔을 잡아챈다.

    그리고 재빨리 조디악을 뒤로 밀쳐 쓰러트린 뒤 놈의 위에 올라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부글부글…

    파리 대왕의 기운이 녹아든 내 침이 조디악의 얼굴을 향해 걸쭉하게 늘어진다.

    이것에 닿으면 바로 중독이다.

    “목 좀 축이고 할래?”

    “으악! 입 열지 마! 침 떨어지잖아!”

    조디악은 나를 밀어낸 뒤 이를 뿌득 갈았다.

    “치사한 놈아! 음료 한 캔, 빵 한 봉지도 못 나눠 주냐!?”

    “내가 찾은 거잖아.”

    “내가 찾은 것도 있잖아!?”

    “근데 지금 내 손에 있잖아. 네가 찾아낸 것을 다시 내가 찾아냈으니 결국 내가 찾아낸 셈이지.”

    조디악이 입을 반쯤 벌린다.

    나는 빵과 음료수들을 뒤로 밀어 놓은 채 깎단으로 손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설명이나 해. 뒤지기 싫으면.”

    벨페골의 악몽세계 속에 신전이나 해독제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내 ‘능지처참’이나 ‘극독’ 특성처럼 회복할 길 없는 도트 데미지를 거는 스킬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패널티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조디악은 이를 한번 뿌득 갈고는 나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지었다.

    “푸스스스- 그래, 친구. 일단 얘기부터 하자고. 다 듣고 나면 나를 보는 시선이 좀 달라질 거야.”

    “내가 널 보는 시선이 어떤데?”

    내가 묻자 조디악은 손을 뻗어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미묘한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나를 잘 보라구 친구. 나를 경멸의 눈으로 본다면 바보로 보일 것이고, 애정의 눈으로 본다면 신으로 보일 거야.”

    “…….”

    “하지만 똑바로 본다면. 그렇다면…….”

    조디악의 검은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비친다.

    그리고 조디악의 검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내 얼굴의 눈동자 속에는 또다시 조디악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조디악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자신이 보이겠지.”

    그 순간.

    [뿌.]

    조디악의 머리통을 딱콩! 내리치는 이가 있었으니.

    “으악! 뭐야!?”

    조디악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오즈의 등에 타고 있는 쥬딜로페가 위풍당당하게 콧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 펫한테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데?]

    오즈가 친절하게 쥬딜로페의 말을 통역해 준다.

    조디악은 쥬딜로페를 바라보며 뭐라 궁시렁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이어 갔다.

    “푸스스… 그래, 얘기나 계속하지. 어디까지 했었지? 아, 그래. 누미노제가 뭔지에 대해서 말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디악에 의하면 그 도깨비 가면들이 사람들을 납치해 이곳에 밀어 넣은 이유는 ‘누미노제(Numinose)’라는 물질을 추출하기 위해서란다.

    (이것은 나 역시도 도깨비 가면들의 대화를 들어서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다)

    누미노제라 함은 인간이 가상현실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에 따라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특히나 공포나 슬픔, 증오 같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에서 더더욱 도드라지게 분비된다나?

    “도깨비 가면들은 사람들의 뇌에서 추출한 이 누미노제를 모아가는 역할을 하지.”

    “…모아 가서 어떻게 하는데?”

    내가 묻자 조디악은 눈이 시뻘건 핏발을 세웠다.

    이내 그의 이빨 사이로 뿌리 깊게 배인 증오가 토해져 나온다.

    “윌슨의 뇌를 원활히 돌아가게끔 하는 영양제로 쓰인다.”

    ……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조디악은 입가의 웃음을 거둔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윌슨이 무슨 재주로 이 거대한 세상을 혼자서 상상하겠어? 이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수많은 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훔친 결과이다.”

    “상상력을 훔친다고?”

    “그래. 다른 이들의 뇌에서 추출한 누미노제를 윌슨의 뇌에 주입하는 거지, 주사기든 뭐든 해서. 그렇게 해서 상상해 낸 방대한 세계관 설정들이 바로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근간이 된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윌슨이 사람들을 납치해서 강제로 끔찍한 가상현실을 겪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상상력과 창의력들을 흡수해 게임을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이 막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찰나.

    순간 나와 윌슨, 윤솔이 나누었던 대화가 뇌리를 스친다.

    “와아, 신기하다. 한 사람의 상상력으로 그 큰 세계를 만드는 게 가능한가요?”

    [아하하하. 혼자서 될 리가 없잖아. 나의 상상이 큰 틀을 만들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설정에 살을 붙이고… 구멍을 메우고… 버그를 잡고… 그렇게 다 같이 함께 만들어 가는 거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구의 모든 땅을 합친 것만큼이나 큰 이 월드맵을 혼자서 디자인할 수는 없겠지?]

    ‘그야 그렇죠. 그래서 다른 스토리 작가들이 있는 것이고.’

    .

    .

    그 뒤에 무슨 대화를 나눴었더라?

    잘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찜찜했던 대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다시금 조디악을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진짜 이 세계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데모 버전이라 이거야? 그 데모 버전이 정식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 속의 한 부분으로 던전화된 거고? 그리고 그 데모 버전이 진짜 산 사람들이 생체실험을 당한 결과라고? 아니, 일개 게임회사가 어떻게 산 사람을 납치해서 뇌에서 호르몬을 뽑아 가지? 그게 말이 돼? 왜 근데 하필 너였지? 넌 그걸 어떻게 안 거고? 어떻게 탈출했는데?”

    “…하나씩만 물어봐라 미친놈아.”

    조디악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내가 맨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누가 인공지능이고 누가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어. 누구는 플레이어, 누구는 NPC임에 분명했지만 다들 구분이 안 갔지. 심지어 나도 내 자신이 실은 NPC인 것은 아닐까 고민해야 했어. 많은 이들이 자아붕괴를 겪었고 반쯤 미쳐 버렸다고.”

    “흐음. 그래서 너도 그렇게 된 거구나.”

    “푸스스스… 내가 어때서? 나 정도면 꽤나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지.”

    조디악은 낄낄 웃더니 나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이 세계에서 적응해 살아가고 있던 차에, 전직 누미노제 팀이었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뒤이어진 그의 말이 내 관심을 잡아끌었다.

    “그는 한국인이더군.”

    한국인이라.

    게임을 잘하는 민족성(?) 탓인지 지금도 뎀 유니버스 본사에는 한국인들이 종종 보인다.

    조디악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는 전직 GM이었지만 자기가 하는 일의 정확한 실체를 깨닫고 도망쳤던 인물이었어.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와 실험체로 쓰는 것을 거부했지.”

    그 결과는 뻔하다.

    입막음을 위해 나포되어 강제로 이 세계에 던져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뭔가 ‘메X즈 러너’나 ‘암X시아’에서 본 것 같군.”

    “뭐, 내부고발자를 다시 부조리의 희생양으로 삼는 거야 흔하니까.”

    어깨를 으쓱한 조디악은 괜히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어 모닥불을 쑤신다.

    장작 대신 던져진 시체가 바짝바짝 쪼그라들며 검게 변하고 있었다.

    “…그 GM출신 남자는 누미노제가 얼마 안 분비되는 체질이라 오래 못 버텼지. 금방 죽어 버리더군.”

    하지만 조디악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푸스스스- 자세한 것은 동영상으로 보여 주지. 그때 놈의 최후를 녹화해 뒀거든.”

    조디악은 다 깨져서 노이즈가 발생하는 상태창을 내 앞으로 공유해 주었다.

    내가 막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턱!

    조디악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

    아뿔싸, 너무 방심했던 건가?

    예상하지 못한 사연팔이에 순간 경계심이 무뎌졌던 모양이다.

    내가 당황해서 막 손목을 빼려는 순간.

    “야.”

    조디악이 말했다.

    “근데 인간적으로 빵 한 봉지만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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