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56화 (656/1,000)
  • 656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7)

    20XX년 4월 5일. 조디악 번디베일.

    명문 의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청년 의사.

    그는 새로 근무하게 된 병원에서 열어 준 환송회에 참석했고 그날의 주인공답게 많은 술을 마셨다.

    “푸스스스… 으 머리가.”

    거 숙취 한번 지독하다. 역시 보드카 안주로 맥주는 조금 과했나?

    ‘지금이 몇 시지?’

    조디악은 다크서클이 옅게 드리운 눈 밑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그는 눈을 뜨자마자 보인 풍경에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자기 진료실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어젯밤, 그는 분명 동료 의사들과 어울려 주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한바탕 술을 마셨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기억이 없다.

    대체 어떻게 그 술집에서 다시 진료실까지 돌아온 걸까?

    “이상하다. ID카드도 놓고 왔고 출입문 비밀번호도 아직 못 외웠는데… 더군다나 당직도 아니었으니 경비원들이 막았을 것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해도 어제의 기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드문드문 기억이 났다.

    동료들과 주점에서 보드카를 술로, 맥주를 안주로 마시던 기억.

    한 거리에 있는 13개의 술집을 도는 성지순례.

    이어지는 2차, 3차, 4차, 5차, 6차…… 13차

    취했다며 하나둘씩 드러눕던 동료들.

    그리고 끝까지 가자며 자신의 어깨에 손을 걸치던 남자들.

    …그리고?

    그 뒤부터는 기억이 없다.

    자신의 어깨를 잡아 들어 올리던 그 억센 손들의 기억이 끝이었다.

    “근데 그 손… 누구였지?”

    지금 생각해 보면 확실히 동료들의 손길은 아니었던 것이, 아무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끌려갔던 듯하다.

    “휴, 큰일 날 뻔했군.”

    조디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머니를 뒤적이니 지갑과 자동차 키도 잘 있다.

    몸에 별다른 외상도 없어 보였다.

    “그래. 나 혼자 남았는데 무슨 일 있으면 안 되지. 그렇지 형?”

    조디악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 액자에는 하나뿐인 형의 사진이 있다.

    조디악은 형과 둘이 자라 오면서 늘 형을 좋아하고 또 존경했다.

    형이 유명한 게임 회사의 핵심 연구진으로 선발되었을 때에는 본인이 더 좋아 잠까지 설쳤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랬던 형은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실종되었고 혼자 남은 조디악은 자신의 약한 몸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올 형을 만날 그날까지, 당당한 한 사람의 의사가 되고 싶은 것이 조디악의 꿈이었다.

    …한데?

    “응?”

    조디악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액자 속 형의 얼굴이 오늘은 웬일인지 흐릿하다.

    사진 속에서 항상 밝게 웃고 있던 미소는 뿌옇게 지워져 있었다.

    “뭐야? 사진이 왜 이래?”

    조디악은 황급히 사진을 집어 들었다.

    자신의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형의 얼굴 부분은 마치 모자이크를 한 듯 탁하게 번져 있다.

    몇 번을 문질러 봐도 형의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순간.

    깜빡…

    액자 밑에 있던 디지털 달력이 불빛을 내뿜었다.

    “……?”

    조디악은 형의 사진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달력에 적힌 날짜였다.

    20XX년 4월 4일.

    그것은 분명 어제의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불현듯, 기묘한 위화감이 엄습해 온다.

    컴퓨터나 핸드폰을 열어보니 날짜는 확실히 4월 4일. 어제로 되돌아가 있었다.

    4월 5일이 회식날이라 분명히 몇 번이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라 헷갈릴 리가 없다.

    분명 조디악은 4월 4일인 어제로 돌아와 있었다.

    “…대체 뭐야 이게?”

    조디악은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진료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그러자 일상적인 풍경이 보인다.

    깨끗한 바닥과 벽, 환한 불빛, 손 소독제 냄새.

    호호깔깔 웃으며 지나가는 간호사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의사들,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 오는 환자들.

    그동안 늘상 마주쳐 왔던, 흘려보내 왔던 풍경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어제의 풍경이라는 것이다.

    “굿 모닝……!”

    “……환자님, 오늘 아침식사는 하셨나요?”

    “또, 또! 간호사 몰래 나오신 건 아니죠?”

    인사를 건네 오는 동료의사 벤, 환자를 챙기는 간호사 낸시, 심지어.

    …콩!

    복도 구석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자기에게 와 부딪친 꼬마 환자들까지.

    “뭐지? 꿈인가?”

    조디악은 자기 볼을 한번 잡아당겨 보았다.

    하지만 그는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몸이었기에 볼을 잡아당긴다고 해도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츠츠츠츠츠!

    마치 시공간이 어그러지는 것처럼, 벽에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깨비 가면을 쓴 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일상(日常)에 난입해 드는 비일상(非日常), 그것은 실로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허억!?”

    조디악은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병원 복도로 모습을 드러낸 도깨비 가면들은 빙글빙글 웃는 어조로 말했다.

    “호호호- 안녕하세요 여러분? 평화로운 일상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아-”

    비일상인 주제에 상당히 일상적인 멘트였다.

    순간, 조디악은 그들의 목소리가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했다.

    흐린 기억 속에서 어젯밤의 일이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얘야? 작업 대상이.’

    ‘응, 누미노제가 엄청 잘 분비되는 체질이래.’

    ‘역시 그 형에 그 동생이구만. 빨리 데려가자고.’

    술 취한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던 억센 손길들.

    저 도깨비 가면은 분명 그때 들었던 목소리들 중 하나였다.

    “푸스스스- 뭡니까 당신들?”

    조디악은 애써 미소 지으며 도깨비 가면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말고도 이 상황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복도 안의 사람들은 복도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벽의 존재를 느끼고는 도깨비 가면들을 향해 짜증을 냈다.

    “뭐, 뭐야 이건?”

    “이 벽은 대체?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내보내 줘! 난 중요한 미팅에 가야 한다고!”

    “아, 혹시 무슨 영화 촬영 하는 건가요?”

    하지만.

    “호호호. 내보내 드릴게요. 당연히 내보내 드려야죠.”

    도깨비 가면의 눈 구멍 속에서 불길한 빛이 번쩍인다.

    “물론, ‘미션’을 클리어 한다면요.”

    미션? 미션이 무엇이란 말인가?

    조디악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그때.

    뚜벅- 뚜벅- 뚜벅-

    도깨비 가면들의 무리를 헤치고 조디악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입가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는 작은 어린아이.

    하지만 소년 특유의 치기로 반짝이는 두 눈의 기저에는 그 나이대의 소년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엿보인다.

    “One for All, All for One.”

    소년은 유쾌한 어조로 외쳤다.

    이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디악과 천진난만한 소년의 시선이 한데 맞닿았다.

    “Welcome to Closed Beta. The show will start soon.”

    조디악을 향해 생긋 웃어 보이는 소년.

    그것은 너무나도 깊고도 아름다우며 순수해 보이는 미소였기에, 조디악 역시 저도 모르게 소년을 따라 빙긋 웃어 보였다.

    이윽고, 도깨비 가면들을 수도 없이 휘하에 거느린 소년이 검지를 들어 올려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그러자.

    …덜컹! …우르릉

    벽 한쪽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9.”

    그것은 병원 벽에 있는 세 개의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작동하는 소리였다.

    “8.”

    사람들이 깜짝 놀라 엘리베이터 위의 층 숫자를 주목했다.

    “7.”

    Basement 4.

    지하 4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들이 일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6.”

    지하 3층.

    “5.”

    지하 2층.

    “4.”

    지하 1층.

    “3”

    지상 1층.

    “2.”

    지상 2층.

    “1.”

    지상 3층.

    깜빡이는 불빛, 어딘가 불길한 카운트다운과 함께 엘리베이터들이 천천히 상승한다.

    지하 4층에서 현 위치인 지상 4층을 향해.

    그리고, 소년은 선고를 내리듯 마지막 숫자를 헤아렸다.

    “0.”

    그리고 지상 4층. 현위치.

    “……?”

    조디악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꼈다.

    무언가,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것들이 지금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지금껏 쉽게 상처 입었던 몸과 마음을 지켜 온 이 감각을 그는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따라서 조디악은 필사적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복도의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앞으로.

    -띵!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하고 괴기한 것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병원 복도는 순식간에 피와 살점, 뼛조각으로 범벅되기 시작했다.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붉고 푸르고 노랗고 파란 돌들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소리.

    조디악은 일찌감치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먼 곳으로 물러나 있었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양철 쓰레기통을 뒤집어썼다.

    덜덜 떨리는 손에 수술용 메스 하나를 꽉 쥔 채로.

    이윽고.

    좁고 차가운 금속 벽 너머로 무시무시한 소음들이 흐른다.

    늘 점잖고 유쾌하던 동료 의사 벤이 토해 내는 단말마, 내심 마음을 품고 있던 미녀 간호사 낸시가 악지르는 저주와 욕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들이 신음하듯 으르렁거리는 소리.

    …….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앞으로 끝없이, 영원히 이어질 악몽과 죽음, 고통스러운 나날들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