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55화 (655/1,000)
  • 655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6)

    지하 4층에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뽀얀 국물 위로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조디악은 침대 매트릭스를 태워 만든 모닥불 위로 철제 파이프를 구부려 그 밑에 냄비를 걸어 놓은 상태였다.

    냄비 속에서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하얀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걸 사골국이라고 부른다지? 푸스스스.”

    조디악은 국을 한 사발 떠서 그릇에 담는다.

    나는 혐오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표정에 드러낸 채 조디악을 바라본다.

    우리가 있는 곳은 병원의 지하 4층, 영안실 옆에 딸려 있는 납골당이었다.

    조디악은 지금 죽은 자들이 화장된 후 남은 가루를 물에 타 먹고 있는 것이다!

    “후- 후- 안 먹나?”

    “이거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네, 그걸 어떻게 먹어.”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해도 될 게 있고 해선 안 될 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조디악은 낄낄 웃으며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실 뿐이다.

    나는 다시 한번 눈살을 찌푸렸다.

    “왜 차라리 시체를 구워먹지?”

    “바보냐? 시체란 시체는 죄다 언데드가 됐는데 어떻게 먹어. 감염되면 게임 아웃이야. 하지만 뼛가루는 그렇게 될 일이 없지. 화장 문화 만세다.”

    조디악은 실실 웃으며 그릇을 비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기 싫어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그때.

    “……!”

    국물을 마시던 조디악이 잠시 멈칫했다.

    “웨에엑!”

    조디악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먹었던 국물을 게워냈다.

    그리고는 고통스럽다는 표정으로 배를 움켜잡았다.

    “…으, 망할.”

    그것은 분명 고통에 겨워 신음하는 동작이었다.

    나는 잠시 의문을 품었다.

    ‘조디악은 고통을 못 느끼는 몸 아닌가?’

    내 의문어린 시선을 느낀 조디악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퀭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왜? 내가 아픔을 느끼니 이상해?”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무통증 환자 역시도 감각신경에서 통증을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인이었다면 쇼크로 죽어 버릴 만큼의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가령 4기 이상의 말기암이나 골반의 복합골절 같은 끔찍한 고통 같은 경우.

    “골반이라도 아프냐?”

    “푸스스스-”

    내 질문을 받은 조디악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평소에는 절대 흘리지 않는 식은땀을 닦아 내고는 국물을 마저 비웠다.

    나 역시도 굶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맹물이나마 조금 마셨다.

    물을 조금씩 마셔 주는 것만으로도 허기짐 게이지는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와 조디악은 세 번째 미션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미션: 굶어 죽은 자>

    미션이 끝나자 병원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벽도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건?”

    병원 밖으로 나온 나는 조디악의 악몽 속 기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파괴된 도로, 불타고 있는 건물, 깨진 유리창과 뒤집어진 차, 군데군데 걸어 다니고 기어 다니는 좀비들.

    마치 세기말 아포칼립스 세상에 온 듯한 광경이다.

    검붉게 물든 하늘은 간헐적으로 노이즈가 발생하고 있었다.

    저질 화면처럼 지직거리는 시야 구석구석으로 깨진 시스템 창들이 보인다.

    -띠링!

    [데우□ 엑■ 마키■□ 당신■ 방문□ 환■□니다!]

    [■ne f□r All, All f□r ■ne.]

    [Welc■me t□ Cl■sed Beta. The sh■w will start s■□n.]

    “…흐음.”

    나는 이 세계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현실의 상식으로도, 게임의 상식으로도 뭔가 미묘하게 이 세계는 어긋나 있다.

    그때.

    “으…… 으으…….”

    조디악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는 두려운 시선으로 눈앞에 있는 메시지를 쳐다본다.

    그것은 아마도 특정 문구 때문이리라.

    “…….”

    나는 눈앞에 있는 시스템창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군데군데 깨져 있는 글씨들.

    아마도 이것들의 원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One for All, All for One.]

    [Welcome to Closed Beta. The show will start soon.]

    내가 이 문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과거 살인자들의 탑에서 한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조디악은 벨페골이 악몽 속에서 끄집어 낸 이 글귀를 보고 경기를 일으켰었지.

    “…아마 윌슨 총수가 했던 대사였던가?”

    참고로 예전에 만났던 파르테논의 불사조 역시 비슷한 대사를 읊었던 바 있었다.

    나는 더욱 더 의문을 가진 채 조디악을 바라보았다.

    “끄윽… 끄으윽….”

    조디악은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손으로 자기 몸을 더듬고 있었다.

    마치 격통 때문에 견딜 수 없다는 듯.

    이놈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죽을 것 같으면 말해.”

    “왜? 도와주게? 아서, 이 고통에는 약도 없…….”

    “아니, 그게 아니라. 막타 내가 먹으려고.”

    나는 깎단을 거꾸로 들어 조디악을 향해 슥 겨누었다.

    어차피 그냥 냅둬도 죽을 것이라면 지금껏 먹은 스탯의 정수들이라도 빼앗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조디악은 기가 막히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킥킥 웃었다.

    “이래서 네가 좋다니까, 친구. 맞아, 공과 사는 분명해야지.”

    “너 가만 놔두면 죽을 것 같은데… 그 전에 내 질문에나 대답해 주고 가.”

    아직 조디악에게 듣지 못한 것이 많다.

    놈은 대체 이런 세기말적인 경험을 어디서 한 것인지, 왜 한 것인지, 윌슨 총수, 그리고 도깨비 가면(아마도 현 GM 처리반으로 추정되는)들과는 무슨 관계인지 말이다.

    이참에 놈이 그토록 떠들어댔던 클로즈 베타가 무엇인지도 좀 들어볼 필요성이 있었다.

    “푸스스스- 그러니까 그 전에 나랑 대화를 좀 했으면 좋았잖아.”

    “지랄 말고. 맨날 먼저 깽판 쳐 놨던 게 누군데 그래?”

    “깽판이라니, 대화의 장을 마련한 거지.”

    “지랄난장이겠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우리는 한 지하철역의 앞에 서게 되었다.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고 있는 역 안, 군데군데 이가 빠져있는 계단에는 죽어 널브러진 시체들이 뒹굴어 다니고 있었다.

    미처 수거하지 못한 스탯의 정수들이 간간히 반짝이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폐허가 된 지하철 역사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한때 무척이나 번화했었을 역사.

    견고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이곳은 지금 핏자국과 오물, 시체들로 범벅되어 있을 뿐이다.

    “…여기가 LA라고? 대체 뭐야?”

    내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리자 조디악이 지하철 역 돌기둥에 털썩 기대어 주저앉았다.

    “보면 몰라? 게임 속이잖아. 가상현실 말이야.”

    “이게 게임이라고?”

    “설마 진짜 현실 세계가 이 꼴이 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머저리라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나을지도.”

    조디악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힘겹게 말했다.

    갑자기 찾아온 두통은 그를 꽤나 끈덕지게 괴롭히고 있는 듯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벨페골의 악몽 던전은 실제로 경험한 것을 재현해 내지. 너는 이런 세계를 실제로 겪어 본 적이 없잖아? 그런데 왜 지금 이 던전의 상태가 이 모양이냐는 거야.”

    “푸스스스, 몇 번을 말해. 이건 가상현실이라고.”

    조디악은 여전히 빙글빙글 마이 페이스다.

    결국 나는 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네가 겪은 가상현실의 가상현실이라는 거냐?”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조디악은 고개를 끄덕인다.

    즉, 내가 보고 있는 이 멸망한 세계는 조디악이 가상현실로 경험했던 것을 그대로 가상현실로 옮겨 온 것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의문이 생긴다.

    “…그럼 누가 너한테 이런 끔찍한 가상현실을 보여 줬지? 대체 무슨 게임이야 이게?”

    세계에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나고 기괴한 미션들이 주어지고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세상.

    늘 보고 살던 얼굴들이 공포와 고통, 비명에 일그러져 죽어가는 세계.

    누가 조디악을 이런 세계에 떨궈 놨단 말인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왜?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의문으로 가득한 내 질문을 대하는 조디악의 태도는 시종일관 같았다.

    그는 지독하게도 일관적이어서 이제는 오싹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런 나른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내 질문에 대답했다.

    “이건 너도 잘 아는 게임의 일부지.”

    “나도 안다고?”

    “맞아. 푸스스스.”

    조디악은 검지로 쩍쩍 갈리진 땅을 한번 짚고 다시 노이즈 가득한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말했다.

    “이 게임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데모 버전(Demonstration version)’이다.”

    데모 버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절로

    과거를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살인자들의 탑 레이드 직전, 뎀 유니버스 본사를 찾아갔을 때 윌슨 링트 총수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었다.

    *       *       *

    [그래. 게임을 하는 데 뭐 불편한 건 없고?]

    “없습니다.”

    [가감 없이 편하게 말해 줘. 너 같이 훌륭한 파이오니아의 의견이야말로 수렴할 가치가 있지.]

    “정말 없어요.”

    내가 두 번이나 부인하는 순간, 윌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었다.

    [……진짜 없어?]

    “네.”

    [완벽해?]

    “네.”

    그리고 내가 두 번이나 긍정하는 순간, 윌슨의 미간은 더더욱 찌푸려졌었다.

    [……그럼 뭐, 게임 안에서 이상한 것 겪어 본 적 없어? 버그라거나.]

    그것은 약간 은근해진 목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나는 윌슨의 질문 의도를 잘 몰랐었기에 그저 내가 느낀 바를 말했었다.

    “뭐, 기술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버그들은 있었죠. 조경수역이나 빛과 어둠의 경계 등 맵의 특성들이 겹치는 부근에서 일어나는 설정치 버그라든가. 사람과 사람의 몸이 특정 아이템에 의해 겹쳐지게 되는 버그라든가? 뭐 다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지만요.”

    그때 윌슨은 내 설명을 듣고 지루한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질문을 한 사람답지 않은 표정,

    [아아, 그래. 그런 것들이야 뭐 상관없어. 엔지니어랑 프로그래머들을 갈아 넣으면 되니까. 그런 사소한 것들 말고 있잖아. 그 왜, 좀 더 심각한 거.]

    “……예?”

    그리고 비로소, 윌슨은 내게 물었었다.

    [핵이나 데모 버전 같은 거 말이야.]

    나는 그때 단순히 매드독의 리더였던 김정은을 떠올렸었던 것 같다.

    스피드핵, 에임핵 등 전투 밸런스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헬퍼’ 뿐만 아니라 돈 복사, 아이템 복사 버그까지 만들어내 게임 속 경제체제까지 무너트릴 계획을 짜고 있는 테러리스트.

    내가 모르는 척 시침을 떼자 윌슨은 약간 고민하던 끝에 다음 질문을 던졌었다.

    [그렇다면 클로즈 베타는?]

    이것까지 모른다고 하면 정말로 티 나는 거짓말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솔직하게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예전에 몇 번 만났던 카르마 유저가 그런 말을 했었죠.”

    [……앙신 조디악이라는 작자 말이지?]

    “예. 알고 계시네요?”

    [당연하지. 나는 모르는 게 없다고.]

    윌슨은 짜증스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었다.

    나는 그런 윌슨에게 역질문을 했었고 말이다.

    “그 클로즈 베타라는 게 대체 뭡니까?”

    두 가지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첫 번째는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 두 번째는 진짜 궁금해서.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모른다면 됐어.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

    [뭐,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나쁜 의도를 가진 것 같으니까 간단하게 설명은 할게. 데모 버전이 뭔지는 알지?]

    “대충요.”

    [제품 소개용 프로그램을 뜻해. 단순한 동작만 반복하거나 극히 일부 기능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주로 시운전용이나 홍보용이야.]

    여기서 데모 버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윌슨 총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단어였기에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윌슨은 홀로그램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월드맵 창을 띄워가며 설명을 했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구의 모든 땅을 합친 것만큼이나 큰 이 월드맵을 혼자서 디자인할 수는 없겠지?]

    “그야 그렇죠. 그래서 다른 스토리 작가들이 있는 것이고.”

    [맞아. 그런데 말야. 가끔 그 스토리 작가들 중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놈들이 있어.]

    “네?”

    [스토리 작가들은 내 상상력을 도와 다양한 몬스터, 던전, NPC, 퀘스트, 아이템 등을 만들어 내지. 하지만 그러다 보면 자기가 만들어 낸 창작물에 과한 애정이 갖는 경우가 생겨.]

    일명 ‘자캐’ 자작 캐릭터의 줄임말.

    이 자캐를 디자인하고 설정을 짜는 것에 너무 빠지면 자기가 만든 캐릭터 외의 다른 캐릭터들은 전부 하찮게 느껴지고 더 나아가 모든 캐릭터들이 자기 캐릭터를 위한 조연들로만 느껴지게 될 수도 있다나?

    [몇몇 스토리 작가들은 자기들의 보잘것없는 스토리에 푹 빠져 자기들만의 세계를 꾸리려고 했지. 그러기 위해 내 기술을 훔쳐 달아났고 말이야. 그것도 게임 오픈 직전에.]

    “……아.”

    [그렇게 해서 놈들이 만든 것들이 바로 ‘데모 버전’이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전에 급하게 만들어진, 프로토 타입이라고도 볼 수 없는 형편없는 졸작들이지. 빈약한 상상력, 개연성 없는 설정, 작위적인 캐릭터… 하하, 정말 역겨워.]

    “그럼 클로즈 베타는요?”

    [그거야 그 데모버전을 플레이한 놈들이 했던 시운전인가 보지. 나는 잘 몰라, 관심도 없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오픈 베타부터 시작했고 클로즈 베타 따위는 하지 않았어. 너도 잘 알잖아?]

    .

    .

    나는 회상을 종료했다.

    그 당시의 나는 윌슨의 말을 모두 믿었었다.

    조디악과 김정은이 손을 잡은 이유를 약간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준법 정신에 의거해 성실하게 게임을 하는 나 같은 게이머는 절대 얽힐 일이 없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

    하지만, 지금 조디악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는 이야기는 조금 다른 관점의 맥을 짚고 있었다.

    “푸스스스- 어우, 이놈의 PTSD.”

    조디악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나를 향해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빛냈다.

    “좋아.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놈의 앞에 앉았다.

    저 뱀 같은 혓바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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