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5)
꼬르륵…
나는 병원 지하의 편의점을 털고 있는 중이다.
미션을 클리어하며 활동 반경이 약간 넓어졌기에 지상 4층을 벗어나 지하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온 이유는 사실 별 것 없다. 식량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오, 이거 로그아웃도 안 되고. 큰일났네.”
나는 습기제거제만 남은 비스킷 포장지를 바닥에 버리며 투덜거렸다.
현실에 있는 몸에는 급한 대로 수액을 맞혀 놓았지만 게임 속 몸은 점점 스테미너가 떨어진다.
체력과는 무관하게, 음식을 먹지 않으면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고 스킬의 명중률이나 크리티컬 발동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기에 항상 포만감 게이지는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곳 편의점은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군데군데 깨진 유리창에는 문지르듯이 그어진 핏자국들이 흘러내려 있었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음식들은 언데드의 피와 살로 오염되었다.
진열장 위에 놓인 것들은 캔이나 비닐이 터져 부패한 것들이 대다수였기에 나는 아주 구석진 곳, 혹은 냉장고를 뒤져야만 했다.
그러나 전기가 끊긴 냉장고 속 음식물들은 이미 오래 전에 맛이 가 있었다.
나는 그나마 유통기한이 얼마 지나지 않은 음식물 위주로 고르려 했지만 그것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털려 있다.
“푸스스스. 그것들은 내가 이미 애저녁에 털어 먹었지 친구.”
내 뒤에서 조디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이 편의점 안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입구에 서서 딴 짓만 하고 있었다.
“이 던전, 정말 최악이야. 아무리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도 소모품들이 리젠이 안 돼.”
나는 조디악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편의점 내부의 식료품들을 보니 하루아침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다.
‘하긴, 가혹한 설산의 마을들처럼 간혹 소모품들이 리젠되지 않는 구역도 있으니까.’
조디악은 편의점 입구에 기대 빙글빙글 웃는다.
“인스턴트 던전인 주제에 소모품이 리젠되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것들은 다 초기화되면서. 나중 가면 소모품 파밍 자체가 불가능해져서 난이도가 리얼 최악으로 변한다구.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 최악이야, 친구.”
그러니까, 이 병원 내부에는 사용가능한 소모품이 아예 없다는 뜻이다.
나는 조디악의 말을 듣고 옆에 있는 상태창을 힐끔 쳐다보았다.
<세 번째 미션: 굶어 죽은 자>
두 번째 미션 ‘가장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친 자’를 잇는 세 번째 미션이다.
세 번째 미션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해금되는 모양.
이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병원 내부의 식료품들을 소모하면서 언데드들을 피해 살아남아야 한다.
뭐 내 입장에서는 언데드야 별 것 아니지만 소모품들을 조달하는 것이 문제였다.
바스락-
나는 텅 빈 트윙키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편의점 구석구석의 진열대는 물론이요 냉동창고, 심지어 계산대까지 싹 털어 보았지만 먹을 것은 나오지 않았다.
쥐떼에게 뜯어 먹힌 건조 면, 어디론가 공기가 들어갔는지 찌그러진 와중에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통조림, 언데드의 핏물에 절은 나쵸 칩…
“푸스스스- 참고로 감염되면 미션 실패로 간주되더군. 나는 언데드 특성이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조디악은 나쵸 봉지를 뜯어 안에 들어간 언데드의 피를 탈탈 털어낸 뒤 피가 묻지 않은 나쵸 칩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골라내며 말했다.
나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캔을 따 보았다.
푸슉-
바로 가스가 피어오른다.
나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소시지를 바닥에 쏟아 버리며 조디악에게 물었다.
“여기 있는 음식들은 다 네가 먹은 거냐?”
“그렇지. 계속 재도전을 하면서 말이야. 이 던전 공략을 시도한 지 꽤 오래됐거든.”
조디악은 검지를 뻗어 상태창 하나를 띄웠다.
※원 소유자 외 동반 1인만이 입장 가능합니다
※한번 입장 시 사망 전까지 나갈 수 없습니다
※사망하여 던전 밖으로 나가게 될 경우 96시간 뒤 다시 던전 안으로 강제 재소환되게 됩니다
‘…너도 당했냐.’
이 던전은 클리어하지 않으면 도망칠 수 없다.
4일마다 계속 강제로 끌려오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반 1인 입장권이란 것을 내가 써 버렸기에 매드독의 다른 멤버들은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조디악은 낄낄 웃었다.
“푸스스스- 대체 왜 이런 던전이 생겼는지는 의문이지만, 벨페골의 악몽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발현되는지 알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해야지.”
나는 내가 벨페골의 거울 속에서 보았던 것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조디악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 속을 걷고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벨페골은 분명 ‘직접 겪었던’ 기억을 토대로 던전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뭐야 이 던전은? 넌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거야?”
“……뭐, 보시는 대로.”
내 질문을 들은 조디악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을 뿐이다.
비틀린 미소를 양 입가에 건 채로.
놈이 쉽사리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질문을 바꿨다.
“…형이 있는 것 같던데.”
맨 처음 내가 리스폰된 진료실에서 봤던 사진을 말하는 것이다.
그제야 조디악은 입을 열었다.
“아, 있었지. 형.”
“……왜 과거형이지?”
“지금은 없으니까.”
조디악은 건조하게 웃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사실 나를 넘어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어. 어렸을 때는 그냥 막연히 해외로 출장 갔다고만 생각했지. 꽤 능력 있는 게임 개발자였으니까.”
“게임 개발자였다고?”
“응. 뎀 유니버스에서도 꽤나 잘 나갔었지. 윌슨의 심복 중 하나였고, ‘누미노제 팀’의 팀장이기도 했어. 지금은 ‘처리반’으로 명칭이 변경된 모양이지만.”
조디악의 말을 듣자 얼마 전 병원 복도에서 만났던 도깨비 가면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누미노제(Numinose)’ 추출은 순조로워. 이번 그룹이 반응이 좋네. 지금껏 만났던 그룹들 중에서 산출량이 제일 많아. 이번 달 할당량은 금방 채우겠는데?’
‘호호호, 뭐 아무튼. 오늘 치 누미노제는 다 추출했으니 이만할까?’
‘내일은 조금 더 많이 추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이번 달 할당량 맞추려면 빠듯해.’
현재 뎀 유니버스의 GM ‘처리반’들이 쓰고 다니는 도깨비 가면, 그것과 똑같은 가면을 쓰고 다니던 이들이 중얼거리던 대화이다.
‘…분명 그것들이 누미노제가 어쩌구 했었는데.’
추출이 어쩌구 산출량이 어쩌구 할당량이 어쩌구 하는 내용들을 분명히 들은 바 있었다.
더군다나.
“아까 맨 앞에 있었던 여자, 김정은이지?”
내가 묻자 조디악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실실 웃는다.
하지만 나는 도깨비 가면 너머 그녀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호호호’ 하며 재수 없게 웃는 그 목소리를 어찌 잊으랴?
다만 조디악을 따라다니는 매드독의 수장으로서의 김정은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즉 이 던전 속에서만 등장하는 가짜라는 것이다.
언젠가 프로리그에 출전했던 김정은의 질의응답 인터뷰에서 봤던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이름은 김정은.
나이는 스물아홉.
성별은 여자.
지금부터 질문 받는다.
Q: 북한과는 무슨 관계?
A: 뒤질래? 내가 이 질문 나올 줄 알았다.
Q: 클베 때부터 게임을 했다고 하는데, 일반인이 어떻게 클베에 참여했는지?
A: 그야 내가 일반인이 아니니 했겠지?
Q: 직업이 무엇인지?
A: 지금은 프로게이머. 예전에는 프로그래머.
Q: 프로글래… 아니 프로그래머라면 혹시 뎀 사의?
A: ㅇㅇ
Q: 지금도 일하고 있는지?
A: ㄴㄴ짤림ㅋ
Q: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A: 개발자나 GM보다는 플레이어 생활이 더 좋아서? 라고 해 둘게 ‘일단은’
.
.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뭐 아무튼!”
조디악은 박수를 치며 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핏물이 말라붙어 굳어 있는 벤치에 앉아 자기 머리카락을 베베 꼰다.
“형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어. 그리고 나는 내 몸을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의사가 되었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 몸은 꽤나 잔고장이 잦거든.”
조디악이 의사 출신인 것은 조금 놀랍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리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나는 짧게 말했다.
“네 신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고, 나는 흰 용의 영역으로 가는 중이야. 가는 법이나 말해.”
“푸스스스- 흰 용?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말하는 건가?”
조디악은 지하실 저편, 지상으로 향하는 주차장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투룡의 영역은 벨페골의 영역이 끝나는 곳에 존재하지. 내가 길을 알아.”
“…….”
“왜 말이 없어?”
“…너를 협조적으로 만들 방법에 대해서 고민 중이야. 약 108가지 방법이 떠오르는군.”
물론 그 108가지 중에 107가지는 모두 피를 보는 방법이다.
내가 막 깎단을 집어 들려는 순간, 조디악이 별안간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오우, 걱정 말라고. 나도 너와 싸울 생각은 없어. 가뜩이나 이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기 버겁던 차인데 잘 됐지 뭐. 같이 가자고 친구.”
“누가 네 친구야.”
나는 깎단을 슬쩍 거뒀다.
유일하게 피를 보지 않는 미래를 선택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디악은 못 믿을 놈이니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나는 여차하면 살수를 쓸 각오를 한 뒤 조디악과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누미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던전에 관해서도 설명해. 물론 흰 용의 영역으로 가는 길도 안내하고.”
“푸스스스, 친구. 좀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무 바라는 것만 많잖아, 일방적으로다가.”
조디악이 투덜거린다.
물론 나는 놈의 귀여운 불평에 대해서 보답해 줄 게 하나밖에 없다.
스윽-
“아, 알겠다고. 그러니 그 재수 없는 송곳 좀 치워.”
회귀하기 전 원래 시간축에서 자신의 성명병기였던 깎단을 보며 질색팔색하는 조디악을 보자 기분이 묘해진다.
이내, 조디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 설명충은 극혐인데.”
“빨리 말해. 뒤로 콕 찔러 버리기 전에.”
“알았다고, 친구.”
조디악은 헛기침을 한번 한 뒤 입을 열었다.
“먼저, 누미노제(Numinose)라는 것은 가상현실을 경험한 인간만이 뇌에서 분비해 내는 호르몬 물질이야. 한마디로 ‘플레이어’가 느끼는 행복, 슬픔, 분노, 공포 등등의 감정값의 결과치지. 이는 곧 ‘창의력 물질’, 혹은 ‘상상력 물질’이라고도 불려.”
“…창의력 물질?”
“그래. 오로지 가상현실을 통해서만 분비되는 화학물질이지. 특히나 공포나 분노,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폭발적으로 분비된다나? 특히나 감정의 기복, 동요가 심할수록 더더욱. 그러니까 아주 행복한 상태인 녀석이 최악의 기분이 되었을 때 가장 분비가 왕성하다고 봐야겠지. 사람은 대체로 나쁜 상태에 놓였을 때 상상력이 극대화되기 마련이니까.”
조디악의 눈이 갑자기 탁하게 가라앉는다.
목소리 역시도 말라붙은 우물 속에서 나는 쇳소리처럼 건조하고 날카롭게 변했다.
“아까의 그 ‘도깨비’들은 특정 기준에 따라 선발한 사람들로부터 이 물질을 강제 추출하는 뎀 사의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부…….”
바로 그때.
나와 조디악의 대화를 가로막는 소리가 있었다.
꼬르륵…
바로 내 뱃속에서 난 소리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디악의 뱃속에서도 같은 소리가 났다.
“…이런.”
조디악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말을 중단하고는 손가락을 들어 시야 상단에 떠 있는 상태창을 가리켰다.
<세 번째 미션: 굶어 죽은 자>
굶주림을 버티고 살아남는 미션.
하지만 말이 굶주림을 버티는 것이지 사실 남을 해치고 식량을 빼앗아 살아남으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단순히 남의 식량을 빼앗으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식량으로 만들라는, 즉 인간끼리 서로 잡아먹으라는 메시지까지 던지고 있다.
꼬르륵…
이 와중에 내 배는 눈치 없이 계속해서 배꼽시계를 울리고 있었다.
“푸스스스.”
나를 바라보며 웃던 조디악이 문득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기 뒤쪽을 향해 턱짓했다.
“이렇게 된 거 설명보다는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일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편의점이나 자판기 등은 죄다 털려 먹을 것이 없다.
멀쩡한 식료품들은 이미 생존자들에게 털렸거나 부패하고 오염된 상태.
하지만 조디악은 어찌된 영문인지 꽤나 여유만만이다.
“따라와, 먹을 것을 주지.”
나는 조디악의 말에 두 가지 의문점을 느꼈다.
첫째. 조디악, 저 놈이 남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준다고?
둘째. 먹을 것을 준다면서 왜 지하 영안실 쪽으로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