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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52화 (652/1,000)
  • 652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3)

    <첫 번째 미션: 살아남은 자>

    지하 4층 영안실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어떤 층도 들리지 않고 곧장 이쪽으로 올라왔다.

    이윽고.

    띵!

    지상 4층에 도달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침 잘됐네. 나는 나가야겠어.]

    성질 급한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입구를 향해 다가간다.

    바로 그 순간.

    …턱!

    반쯤 열린 엘리베이터 속에서 창백한 손이 튀어나와 남자의 목을 잡더니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잡아끈다.

    [어어어엇!?]

    남자는 별다른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그리고.

    뿌직! 뿌지직! 뿌득!

    덜 열린 엘리베이터 문으로 빨려 들어간 남자의 팔다리가 부러졌고 이내 그 안쪽에서 기괴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뼈에서 살점들이 발려 나오는 소리 말이다.

    겁에 질려 물러서는 사람들 앞으로 나머지 엘리베이터들의 문이 열린다.

    으…어어어어…

    차가운 철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들은 기괴하게 흐느적거리는 시체들이었다.

    냉동되어 있어 단단한 몸, 관절이 아님에도 꺾여 움직이는 팔다리, 물러 터진 눈알과 텅 빈 동공.

    그것들은 이빨을 드러낸 채 사람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덜 죽은 자> -등급: D / 특성: 어둠, 언데드, 하수인

    -서식지: 전 대륙

    -크기: 1.7m.

    -인간과 시체 사이에 어중간하게 위치한 그 무언가.

    이 기괴하게 생긴 시체들은 외모도 크기도 제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는 똑같았다.

    살아 있는 인간을 향해 식욕에 가까운 적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 장난해? 어느 방송국 몰래카메라인지는 모르겠는데, 같잖은 방송 좀 촬영한다고 댁들한테 일반인들 통제할 권리가 있는 줄 알아? 고소할 거야! 너네 방송사 어디야!]

    삿대질을 하며 따지는 그녀, 하지만 고소는 요원한 일이었다.

    …아작!

    맨 앞에서 흐느적거리던 시체 하나가 그녀의 손가락을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꺄아아아악!?]

    여자의 비명이 시발점이었다.

    으…어어어…

    언데드 떼가 사람들을 덮쳤다.

    병원 복도는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 버렸다.

    그때.

    …퍼억!

    언데드 하나의 머리가 터졌다.

    간호사 하나가 소화기를 들어 언데드의 머리를 내리찍었기 때문이다.

    레벨이 낮은 언데드라 그런가 몇 명의 사람이 모여서 제압하면 아주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땅그랑!

    언데드가 죽자 바닥에 불그스름한 돌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우드득!

    아까 손가락을 물린 여자가 언데드에게 물어 뜯겨 숨을 거두는 순간.

    땅그랑!

    또다시 바닥에는 녹색 돌이 굴러 떨어진다.

    언데드도 인간도 죽으면 돌을 떨군다.

    도깨비 가면을 쓴 여자는 깔깔 웃으며 바닥의 붉은 돌과 녹색 돌을 집어 들었다.

    [이 돌은 ‘근력의 돌’과 ‘민첩의 돌’입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몸으로 자동 흡수되어 스탯을 영구히 1씩 올려 주죠. 생전 근력이 뛰어났던 이는 근력의 돌을 떨구고 생전 민첩이 뛰어났던 이는 민첩의 돌을 떨굽니다. 체력이 좋거나 지능이 좋거나 하면 다른 색의 돌을 떨구겠죠? 분발하시라고요~]

    그러자 사람들의 낯빛이 약간은 변했다.

    [돌! 내 돌 건들지 마!]

    [으아아아! 돌을 모아야 해!]

    [그, 그거 내 돌이야! 내놔!]

    아비규환이다.

    몇몇 사람이 좀비, 혹은 사람들이 죽으며 떨군 돌을 움켜쥐고 예상대로의 효과를 얻자 이내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는 ‘덜 죽은 자’보다 ‘살아 있는 자’가 더욱 더 위험한 요소였다.

    [하하! 붉은 돌을 열 개나 모았다! 힘이 두 배로 세진 기분…커헉!?]

    아까부터 바닥을 기며 돌을 모으던 남자의 머리에 소방도끼가 찍혔다.

    그를 공격한 이는 옆에 환자복을 입고 서 있던 다른 여자였다.

    …땡그랑!

    남자가 죽으며 떨군 붉은 돌 열 개를 여자는 탐욕스럽게 주워 모았다.

    장내의 사람들이 줄어 가면 줄어 갈수록 언데드의 수 역시도 줄어든다.

    그리고 그럴수록 남은 사람들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근력이 10이라면 붉은 돌은 근력 1을 올려주니 붉은 돌 10개만 더 모아도 평범한 성인 남성 정도의 힘을 더할 수 있다.

    돌을 수십 개씩 모은 사람들은 이제 언데드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서너 배는 강해진 여자, 노인들이 덜 죽은 자들을 때려잡아 완전히 죽은 자로 만들어 버린다.

    […살 수 있어!]

    병원 복도에는 다시금 희망이 차오르고 있었다.

    …띵!

    그사이 지하로 내려갔다가 또다시 올라온 엘리베이터들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두 번째 웨이브에용 여러분♥]

    도깨비 가면의 여자가 발랄하게 외친다.

    이번에 엘리베이터 문을 비집고 나온 것들은 좀 전의 ‘덜 죽은 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고 흉폭한 것들이었다.

    썩어 문드러진 잇몸을 날카로운 이빨이 뚫고 나왔고 푹 뭉개진 안와 속에서는 무언가의 알과 유충들이 디글디글 끓고 있었다.

    <구울> -등급: C / 특성: 어둠, 언데드, 하수인, 독

    -서식지: 전 대륙

    -크기: 1.4m.

    -묘지를 파먹고 사는 산송장.

    이 새로운 언데드 종의 등장에 사람들은 기겁했다.

    조금 전의 덜 죽은 자들은 그래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놈들은 아니다.

    그야말로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나온 듯한 끔찍한 모습으로 소리 지르는 언데드들!

    또다시 사람들이 우르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호호호호- 저것 봐. 가엾기도 하지.]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낄낄 웃으며 구울과 사람들이 뒤엉키는 광경을 바라본다.

    개중 맨 앞에서 웃던 여자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화면에 그래프가 떠 있는 기계장치였는데 그 안에 기록된 수치들은 실시간으로 쭉쭉 증폭되고 있었다.

    [‘누미노제(Numinose)’ 추출은 순조로워. 이번 그룹이 반응이 좋네. 지금껏 만났던 그룹들 중에서 산출량이 제일 많아. 이번 달 할당량은 금방 채우겠는데?]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절규하고 슬퍼하고 분노할수록 그래프 속 수치들은 쭉쭉 상승세를 기록한다.

    ……한편.

    “음. 지루한데?”

    나는 도깨비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벽 뒤에 숨어 있었다.

    …콕! …콕! …콕!

    내 앞으로 달려드는 구울들을 손가락으로 튕겨 죽이면서 말이다.

    내 레벨은 94.

    심지어 죽음룡 오즈를 잡고 얻은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과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의 자연재해급 언데드를 잡고 얻은 ‘대망자 묘지기’라는 호칭도 가지고 있다.

    사실 구울이야 뭐 내 어깨 위에 올라가서 무료한 듯 하품을 하고 있는 오즈 선에서도 정리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구울이나 사람들이 죽으며 떨구는 붉고 푸른 돌들에게는 나도 제법 관심이 있었다.

    ‘저건 스탯의 정수잖아?’

    근력의 돌, 체력의 돌, 민첩의 돌, 지능의 돌 등등… 기본 스탯을 영구히 1씩 올려 주는 돌들.

    이것은 그 귀하다는 초특급 레어 아이템으로 밖의 세계에서는 정말로 구하기 힘든 것들이다.

    특수한 맵이라 그런가 떨어지는 아이템도 뭔가 다르다.

    구울이나 사람들이 죽으면서 떨어트리는 스탯의 돌들이 병원 복도 바닥에 마구 굴러다니고 있었다.

    스탯 1의 증가가 별 거 아니고 미미할지라도 나중 가면 아이템으로 메꿀 수 없는 기본 피지컬의 차이가 나온다.

    또 가끔 있는 노템존(No Item Zone) 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무지막지한 도움이 될 것이다.

    [호엥!]

    쥬딜로페가 손에 알록달록한 돌들을 모아와 내게 내밀며 칭찬을 바라듯 눈을 반짝거린다.

    “좋아, 잘했어.”

    나는 어깨 위에 앉아 무료한 표정을 짓는 오즈의 엉덩이를 뻥 차 돌을 주워오게끔 했다.

    오즈는 씨부렁씨부렁 투덜거리면서도 바닥을 기어 돌을 주워 모은다.

    도깨비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나는 그동안 도깨비 가면을 쓴 사람들과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엘리베이터가 계속 지하 4층과 지상 4층을 오가며 언데드 몬스터들을 실어 나른다.

    엘리베이터가 한번 왔다 갈 때마다 더욱 더 고등급의 언데드들이 튀어나왔고 생존자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도깨비 가면들은 킬킬거리며 저희들끼리 그래프를 비교한다.

    ‘누미노제’라는 정체불명의 물질이 얼마나 추출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모였는지를 떠들어대며 말이다.

    “…흐음. 아무래도 나 역시 이 미션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는데?”

    조디악이 왜 이날의 기억을 최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린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기억일 터, 조디악은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그것은 이 기묘한 던전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나가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도깨비 가면의 여자가 검지를 폈다.

    [여러분~ 지금까지 잘 버텨 주셨어요. 이제 언데드 타임은 잠시 그만!]

    그러자 지하 4층으로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멎었다.

    …띵!

    살아남은 이들은 시체밭이 된 복도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채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도깨비 가면은 새로운 미션을 던졌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라고만 배웠죠? 그게 인간의 도리라는 거짓말에 속아 가면서. 여러분~ 그런 것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더 성공하고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 아실 나이잖아요 다들. 그렇죠?]

    상태창이 떴다.

    <두 번째 미션: 가장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친 자>

    도깨비 가면은 깔깔대며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의 세상은 바뀌었어요. 다시는 전에 살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 새롭게 바뀐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전의 세상에서 배웠던 법과 규범, 윤리들을 다 버려야 해요. 그게 상식이죠?]

    이윽고,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얼마나 ‘상식’적인 사람인지 보겠어요. 시작!]

    동시에, 상태창 옆에 추가적으로 작은 상태창이 붙는다.

    <두 번째 미션: 가장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친 자>

    ※보상: 스탯의 정수 100개(랜덤).

    스탯의 돌 100개를 얻을 수 있는 기회.

    힘이 되었든 민첩이 되었든 체력이 되었든 간에, 그것은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10배에 해당하는 신체능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

    생존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 언데드 웨이브를 겪었기에 힘에 대한 중요성은 모두가 안다.

    또한 절실하다.

    생존욕구, 그것은 곧 강함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 상황에 의외로 금방 적응했다.

    [죽엇!]

    잔뜩 흥분해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지팡이를 들어 옆에 있던 젊은 남자를 후려갈겼다.

    …퍼억!

    남자의 두개골이 깨지며 안에 든 것들이 몽땅 복도 바닥에 쏟아진다.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체력의 돌 스무 개가 굴러 떨어졌다.

    할머니는 그것을 탐욕스럽게 주워 모았다.

    오…오오오오!

    병원은 또다시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원래 삶과 죽음이 공존하던 곳이라 그런가 바뀐 세상에서도 그다지 달라진 점은 없다.

    그저 누구나 살기 위해 치열할 뿐.

    [죽어! 죽어! 다 죽어!]

    [으아아아! 다 어디 갔어! 이리 와!]

    [저 미친놈 막아!]

    사람들은 최대한 많은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발악한다.

    그러나.

    “맘껏 싸워라~”

    나는 서로 뒤엉켜 싸우는 인간 군상을 등진 채 병원 복도의 한 구석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이 비록 허상에 불과하다고 해도 일반인의 외형을 하고 있는 한 상처 입히기는 싫었다.

    대신 내가 택한 대상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복도 구석에 존재하는 정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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