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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51화 (651/1,000)
  • 651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2)

    <싸움 나락> -등급: ?

    ※원 소유자 외 동반 1인만이 입장 가능합니다

    불길하게 일렁이는 검은 포탈.

    그것을 통과하자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려온다.

    -띠링!

    <힑뚩 인궳턴트 뎗걁 ‘싸■… □락’귉 입#* □셨습■■>

    아카식 레코드의 메시지가 깨지는 걸로 봐서는 불사조의 힘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공간인 듯싶다.

    ‘하긴, 여기서부터는 벨페골의 본진이니 당연한가?’

    이미 죽고 없는 벨페골이지만 놈이 남겨 놓은 사념은 여전히 강력하다.

    <벨페골>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나태와 악몽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귀찮도다.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너를 살려 두는 것도.”

    -벨페골- <수기기(壽器記) 제 25-2장>

    만약 벨페골이 살인자들의 탑을 통해 현세에 강림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조디악조차도 놈을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나는 깨져 버린 아카식 레코드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바로 특이점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불길함이 폭발하는 메시지.

    바로 ‘최초 입장객’ 타이틀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말인즉슨, 나보다 먼저 이곳에 들어와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지는 안 봐도 뻔한 것이고.’

    그때.

    츠츠츠츠…

    눈앞의 검은 기운들이 걷히며 던전 내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 구현된 것은 하얀 바닥과 벽, 천장이었다.

    ‘뭐지?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같은 건가?’

    하지만 그런 이세계물식 전개는 없었다.

    내가 떨어진 곳은 그냥 평범한 방이었다.

    흰 벽지와 바닥에 새 책상, 소파와 몇 개의 의자들, 그리고 벽의 선반과 캐비닛 속의 약품과 서류들.

    현대 배경의,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가 본 적 있을, 흔해빠진 병원 진료실이다.

    “뭐지 이 현실적인 배경은?”

    나는 던전 내부를 보고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벨페골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기억 속을 뒤져 최악의 경험을 인스턴트 던전으로 구현해 놓는 특성이 있다.

    일전에 한번 겪어 봤다시피, 놈의 하위종인 악몽아귀나 자각흉몽아귀의 뱃속에 갇히면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윤솔은 집에 화재가 났던 경험, 드레이크는 테러집단의 공습 경험, 나는 학창 시절의 경험, 유다희는 아빠가 사라지던 날의 경험 등등이 최악의 경험으로 선정되었고 그것이 던전화 되었었다.

    그러니 지금 이 현대 배경의 병원 진료실 역시도 누군가의 ‘최악의 기억’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던전일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조디악의 것일 가능성이 컸다.

    “어디 보자.”

    나는 조디악의 기억 속을 찬찬히 훑었다.

    혹시나 뭔가 도움이 되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때, 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진료실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명패였다.

    “의사라고? 얘가? 장의사가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조디악은 삶보다는 죽음과 더 연관이 깊다.

    하지만 명패 옆, 액자 속의 사진은 정말로 조디악이 의사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조디악은 아직 앳된 얼굴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수줍게 웃고 있는 청년, 그리고 그 옆에는 조디악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청년이 밝게 웃고 있었다.

    조디악과 그는 어깨동무를 한 채로 바짝 붙어 서 있었는데 조디악 옆 남자의 얼굴은 웃고 있는 입 위로 흐릿하게 번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디악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것으로 보아…….

    “형인가.”

    그리 어렵지 않은 추리였다.

    다만 기묘한 것은, 얼굴이 흐릿하게 번져 알아볼 수 없는 그 남자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다.

    뭐, 애초에 미국인인 이상 내가 아는 사람일 리 없지만.

    바로 그때.

    -띠링!

    또다시 내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떴다.

    <싸움 나락> -등급: ?

    ※원 소유자 외 동반 1인만이 입장 가능합니다

    이것은 입장 전에 봤던 던전 설명문이다.

    그래서 그냥 넘어갈까 했지만…….

    -띠링!

    이 상태창의 뒤를 잇는 또 다른 상태창이 있었다.

    그것은 이 던전의 룰을 추가 설명하는 페이지였다.

    ※원 소유자 외 동반 1인만이 입장 가능합니다

    ※한번 입장 시 사망 전까지 나갈 수 없습니다

    ※사망하여 던전 밖으로 나가게 될 경우 96시간 뒤 다시 던전 안으로 강제 재소환되게 됩니다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뭐야, 클리어하지 못하면 못 나간다는 거잖아? 이걸 왜 이제 알려 줘!? 들어오기 전에 알려 줘야지!”

    뭐 이런 깡패 같은 던전이 다 있나 싶다.

    보통 던전 레이드 도중 죽으면 신전에서 부활하게 되고 다시 도전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 던전은 아니다.

    만약 재도전을 선택하지 않아도 나흘 뒤면 무조건 이곳으로 끌려오게 되는 것이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 이건가.”

    실로 극악의 진입장벽, 아니 퇴출장벽이었다.

    “젠장. 똥 밟은 거 아냐 이거?”

    나는 투덜거리며 진료실의 문을 잡았다.

    그리고 밖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를 바짝 경계하며 문을 밀었다.

    삐걱…

    이윽고, 병원의 복도가 드러난다.

    아마도 불 꺼지고 음산한…

    “오잉?”

    하지만 진료실 밖, 병원 복도는 내가 상상한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밝게 켜진 조명,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환자들, 열정적인 간호사들, 바쁘게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환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의사들.

    밖으로 나가니 평범 그 자체인 풍경들이 보인다.

    “뭐야 이건?”

    순간 나는 이곳에 게임이 아니라 진짜 현실인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이곳이 게임 속이며 지금 지나다니는 이들은 분명히 게임 속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레비아탄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특성을 쓰자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내면이 들여다보인다.

    Code: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Code: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아, NPC 맞네.’

    그들이 나를 바라보며 인사를 해 오자 상황은 더욱 확실해졌다.

    [굿 모닝 어진!]

    [이어진 환자님, 오늘 아침식사는 하셨나요?]

    [또, 또! 간호사 몰래 나오신 건 아니죠?]

    다들 나를 안다는 듯 친근하게 대한다.

    거기다가 의사들이 내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 이들이 NPC인 것은 더욱 더 확실했다.

    “…흐음.”

    나는 병원 복도에 잠시 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누군가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상 공간이긴 하지만 분명 밝고 따듯하다.

    누군가에게 있어 최악의 기억으로 통하기에는 너무 평범했다.

    “조디악은 왜 이 순간을 최악의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조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과거 조디악은 의사였던 모양이고 그가 일했던 것이 분명한 이 병원의 분위기는 참 좋아 보였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따사로운 햇볕이 비쳐들고 오고가는 사람들은 모두 활기차다.

    나는 혹시 조디악이 직장에서 왕따를 당해 어딘가 숨어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복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딱히 특이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조디악은 어디에 있는 거야?”

    병원 밖으로 나가 보려 했지만.

    …퉁!

    투명한 벽이 이 층 전체를 막고 있어서 나갈 수는 없었다.

    즉 이 던전의 끝은 병원의 한 층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디악도 어딘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인데…

    ‘설마 벌써 죽어서 던전 밖에서 대기 중인가?’

    하지만 왠지 그놈이 죽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것도 자기 기억 속에서 말이야.

    “아니, 그보다 이런 평화로운 순간을 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설마 사이코라서 남들이 평화로운 게 싫다 이건가?”

    나는 도무지 조디악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병원 곳곳을 아무리 뒤져 봐도 특이한 점이 없다.

    모두들 친절하고 유쾌했으며 따듯한 공간.

    심지어 지나가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게 조디악에 대해 물으면 그들은 흔쾌히 대답해 준다.

    [아, 닥터 조디악이요? 유쾌한 친구지요. 똑똑하고 재미있는 동료입니다. 술도 잘 먹고, 농담도 잘 따먹고.]

    [조디악 선생님은 왜요? 그분은 정말 좋으신 분이죠. 어린아이들하고 잘 놀아 주시거든요.]

    [오! 조디악 씨에 대해서 궁금하신가요? 일단 잘생겼어요! 이 병원에는 그분의 팬이 많답니다. 거기에 밝은 성격 뒷면에 어딘가 아픈 과거와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그 우수에 젖은 눈동자라니, 꺄악!]

    [조디악 선생의 가족? 글쎄 그것에 대해서는 잘 들어본 적이 없군. 게임 회사에 다닌다는 형이 하나 있었다던가?]

    [요즘 다크서클이 부쩍 짙어지셨던데… 지병 때문에 고생하시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레쉬 나이한 증후군이라고……]

    보아하니 조디악은 잘생긴 외모와 유쾌한 입담으로 인기가 많은 듯하다.

    동료들 사이에서의 신망도 두터웠고 이성 문제도 전혀 없었다. 환자들도 모두 그를 좋아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인싸가 왜 연쇄살인마가 된 거야?’

    나는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든 걸 다 가진 놈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내가 만약 이런 삶을 살았다면 정말 삶의 매 초 매 순간마다 감사하면서 인생을 즐겁고 충만하게 살아갈 텐데.

    “…하여튼 사이코들의 속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조디악에 대해 더 알아보기를 포기하는 순간.

    …쩍!

    ‘이변’이 일어났다.

    허공에 갑자기 균열 하나가 생겼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다 놀라 뒤로 물러났고 허공에 난 균열은 점점 커져 하나의 구멍이 되었다.

    포탈. 그렇다. 그것은 현실에 나타난 포탈이며 동시에 무언가를 불러내는 게이트(Gate)였다.

    [호호호- 안녕하세요 여러분? 평화로운 일상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아-]

    게이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는 한 떼의 사람들이었다.

    맨 앞에 있던 검은 타이즈의 여자는 도깨비 가면을 고쳐 쓰며 명랑하게 웃었다.

    동시에, 복도 안의 사람들은 그제서야 복도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벽의 존재를 느낀 듯싶었다.

    [뭐, 뭐야 이건?]

    [이 벽은 대체?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내보내 줘! 난 중요한 미팅에 가야 한다고!]

    사람들은 도깨비 가면을 쓴 자들을 향해 거센 항의를 했다.

    하지만.

    [호호호. 내보내 드릴게요. 당연히 내보내 드려야죠.]

    도깨비 가면의 눈구멍 속에서 불길한 빛이 번쩍인다.

    [물론, ‘미션’을 클리어 한다면요.]

    동시에, 도깨비 가면의 여자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덜컹! …우르릉

    벽 한쪽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병원 벽에 있는 세 개의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작동하는 소리였다.

    Basement 4.

    지하 4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들이 일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

    .

    깜빡이는 불빛과 함께 엘리베이터들이 천천히 상승한다.

    지하 4층에서 현 위치인 지상 4층을 향해.

    “…….”

    나는 뭔가 불길함을 느끼고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슬슬 물러났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내 앞에 있던 의사 하나가 내 불안감에 확신을 더해 주는 발언을 했다.

    [어? 왜 엘리베이터가 지하 4층에서 올라오지?]

    나는 그에게 슬쩍 물었다.

    “지하 4층에 뭐가 있나요?”

    의사는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 층은 영안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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