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50화 (650/1,000)

650화 클로즈 베타 테스터 (1)

-<카르마의 일기장> / 주문서 / S

한 사람의 ‘업보(業報)’가 기록된 주문서.

제일 먼저 소유한 이의 업보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어 더 이상 무언가를 적어 넣을 여백은 없을 것 같다.

※원 소유자: 조디악 번디베일

-특성 ‘싸움 나락’ 사용 가능

과거 벨페골의 악몽 속에서 만났던 ‘앙신 조디악’을 죽이고 얻은 아이템.

살인자들의 탑 정벌 이후 유다희가 마동왕에게 선물했던 주문서였다.

“어찌 되었든 간에 벨페골을 잡고 얻은 아이템인 셈이지.”

정확하게는 벨페골의 부관급 몬스터 중 하나인 카르마를 처치한 보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벨페골의 다른 부관 중 하나인 자각흉몽아귀와 연동이 되어 있었던 탓일까? 아이템에는 부가 설명으로 조디악이 언급되어 있었다.

윤솔이 의문을 표했다.

“어? 그런데 이 아이템을 떨구는 몬스터는 카르마 아니야? 악몽 특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는 카르마가 아니라 그 괴상하게 생긴 아귀인 것으로 아는데?”

그녀는 나에게 살인자들의 탑 레이드 내용을 상세히 들었기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몬스터들이 떨군 아이템과 설정들이 서로 뒤엉켜 있으니 말이다.

그것에 대한 의문은 아키사다 아야카가 대신 풀어 주었다.

“원래 살인자들의 탑은 플레이어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던전이니만큼 몬스터들이 떨구는 보상도 제멋대로 뒤죽박죽이기로 유명해요.”

“아, 그런 건가요?”

“네. 저는 분명 A몬스터를 잡고 B몬스터를 놓쳤는데 보상은 B몬스터를 잡은 것으로 처리되고 A몬스터는 놓친 것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겪어 봤어요. A와 B를 둘 다 잡았을 경우 그 보상이 바뀌기도 하나 봐요. 혼란스럽긴 하지만 한 방의 운을 기대할 수 있어서 많이들 찾아요.”

“아하, 저는 스토리 작가나 게임 개발자의 설정 오류인 줄 알았어요.”

이런 특이한 구조의 이벤트, 인스턴트 던전 스타일은 굳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더라도 메X플 스토리나 테X즈위버 등 여러 고전게임들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벨페골은 곧 자각흉몽아귀임과 동시에 카르마인 동시에 ‘살인자들의 탑 그 자체’이기도 하니 그 혼란스러운 인과관계를 완벽히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설정 상 극도의 공격을 추구하는 흰 용 카프카타렉트와 극도의 방어를 추구하는 나태의 악마성좌 벨페골은 라이벌 관계란 말이지.”

그것은 얼마 전, 동영상 제보에서 봤던 흰 용의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학(後學)을 기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 앞으로 있을 ‘벨페골’ 놈과의 영역싸움에 징집할 병사는 한 명이라도 많은 것이 좋으니까.’

그때 분명 카프카타렉트는 이렇게 말했었다.

오즈가 낄낄 웃으며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나를 들여다보는 법이지. 그 두 녀석은 서로 많이 닮았어. 영역을 ‘나락’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말이야. 영역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

흰 용과 나태의 악마성좌는 서로 닮은 동시에 이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 영역마저도.

그때 드레이크가 내게 물었다.

“…흐음, 흰 용은 영역을 만들지 않고 전 세계를 랜덤하게 떠돌아다닌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야.”

카프카타렉트는 본인이 직접 ‘영역싸움’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인즉슨, 놈에게도 분명히 영역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오즈가 그 말을 뒷받침했다.

[헹, 영역이 없는 용이 어디에 있겠어. 제아무리 별종인 놈이라도 본능이라는 것이 있지. 분명 어딘가에 작게나마 둥지를 틀어 놨을 것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검은 용 오즈는 삶을 관장하는 흰 용 카프카타렉트가 싫은 듯 묻지도 않은 정보들을 열심히 알려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빨리 흰 용을 잡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오즈가 조금 말이 많아진다 싶자 어김없이 담당일진 쥬딜로페가 나뭇가지를 들었다.

[…뿌!]

[아야! 왜 내가 말할 때마다 때리는 거야! 내가 말하는 게 싫어!?]

나는 툭탁거리는 쥬딜로페와 오즈를 꾹 눌러 망토 안으로 더욱 깊숙이 숨겼다.

아키사다 아야카의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이다.

“……?”

아키사다는 고개를 한번 갸웃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내 망토 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오추멜로프의 무한코스튬 반지가 제 기능을 잘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한 뒤 방금 오즈가 했던 말을 되새김질했다.

‘아마 그 흰 용의 영역이라는 것은 과거 벨페골이 지배하고 있었던 영역일 가능성이 크겠군.’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벨페골의 영역은 분명 악몽 너머의 아공간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 공간이 지금은 흰 용의 영역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겠네, 확실히.”

“맞아. 하지만 문제는 살인자들의 탑이 평범한 관광지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에 그 아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

나는 친구들의 의문에 아이템으로 답해 보였다.

“내 생각에는 이 주문서가 열쇠가 될 것 같아.”

‘카르마의 일기장’, 마침 딸려 있는 옵션도 ‘싸움 나락’이라는 정체불명의 옵션이다.

‘내게 다시 도전하고 싶다면 ‘싸움 나락’으로 찾아오거라.‘

결정적으로, 무투룡 카프카타렉트가 피반창에게 호의를 보이며 남겼던 대사 역시도 바로 이 ‘싸움 나락’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주문서를 찢는 것에 동의했다.

주문서의 주인이자 흰 용을 퇴치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내가 주문서를 찢는 것에 모두들 아무런 이견도 없다.

이윽고.

…찌이익!

나는 주문서의 효과를 발동시키기 위해 이 검은 양피지를 반으로 찢었다.

그러자.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무수한 숫자를 읊는 기분 나쁜 목소리, 그것은 분명 벨페골의 목소리였다!

드레이크가 재빨리 쇠뇌를 들었다.

“놈이 살아난 건가!?”

“…아냐. 아무래도 잔류사념 같군.”

나는 드레이크를 진정시킨 뒤 조용히 그 숫자들을 들었다.

이 불규칙한 수열은 분명 조디악이 찍어 내던 자살교본에 적혀 있었던 NPC 살해 코드다.

그리고 나는 이와 비슷한 코드가 적혀 있는 또 다른 아이템 하나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오무아무아’의 악몽 증명서> / 주문서 / S

57159610251136525112357159369871477485698566222250161127541262853101067961230195260819856209909126037211203……

-당신이 겪은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증명합니다.

혹은 당신이 겪은 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임을 증명합니다.

“어라? 이건 또 숫자 배열이 다르네?”

아무래도 서로 다른 아이템인 모양이다.

나는 이 주문서에는 일단 신경을 껐다.

이윽고, 카르마가 남긴 기록이 완전히 두 조각으로 찢어졌다.

그러자, 이내 시커먼 오오라가 넘실넘실 일어나 허공에 역오망성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모두가 입을 모아 외쳤다.

“…포탈!?”

그렇다. 그것은 인스턴트 던전의 입구를 여는 마법진이었던 것이다.

-띠링!

<히든 인스턴트 던전 ‘싸움 나락’을 발견하셨습니다!>

인스턴트 던전이란 일반적인 던전과 달리 한번 클리어 해서 보스를 잡으면 초기화되지 않고 사라지는 1회용 던전을 뜻한다.

<싸움 나락> -등급: ?

※원 소유자 외 동반 1인만이 입장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 인던에 출입 제한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템의 원 소유자는 아무래도 악몽 속의 조디악(지금은 죽고 없는) 한 명으로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이곳에 입장 가능한 사람은 놈을 제외한 오직 한 명 뿐!

즉 우리 중 한 명만이 이 던전에 출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누가 이 불길한 던전에 들어갈 것인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하겠지만

우리 파티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악마를 상대로는 내가 신성력이 제일 많으니 적합하지 않을까?”

“돌발변수에 대처하는 임기응변이라면 나도 자신 있는데.”

하지만 윤솔도 드레이크도 눈치만 볼 뿐 확답은 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가 위험을 부담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아무래도 실력 면에서는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모양이다.

결국 내가 앞으로 나서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대장, 괜찮겠어? 저번에도 혼자…….”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미안한 기색으로 내 뒤에 와 섰다.

아키사다 역시도 불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윤솔을 혼자 보내기에는 아직 숙련도가 부족하고 드레이크는 궁수에 원딜러이니만큼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결정력이 부족하다.

아키사다는 아직 신뢰감이 그리 두텁지 않으니 기각인 것이 당연한 일.

여러모로 상황도 내가 갈 수밖에 없는데다가…….

“안 그래도 내가 가고 싶던 참이었어.”

의지 또한 내가 제일 세니까 말이다.

-띠링!

나는 상태창을 열어 퀘스트 목록을 확인했다.

<히든 퀘스트 ‘미네르바의 올빼미)’>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불사조’의 유지를 잇는 자-‘불사조의 대리인 호칭 필요 (1/1)’>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처치 (1/1), 백색의 용군주,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처치 (0/1)>

<히든 퀘스트 완료 보상: ‘불사조’의 부활 쿨타임 대폭 축소>

<※파르테논의 최초 입장자만이 이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백색의 용군주,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만 처치하면 이 퀘스트도 클리어다.

그렇게 된다면 불사조의 부활을 앞당겨 내 숙원과도 같은 비밀을 풀 수 있으리라.

나는 상태창을 연이어 한 번 더 열어서 레비아탄을 잡고 얻은 성과들을 확인했다.

<이어진>

LV: 94

HP: 940/940

호칭: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의 위상(특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레벨 94의 위엄.

거기에 남들의 상태창이나 인벤토리를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 성과로 인해 나는 전보다 더더욱 강해졌다.

당연히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기에, 나는 일전에 하해(下海)로 출발했을 때처럼 홀로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검은 포탈.

전(前) 나태의 악마성좌 벨페골의 땅, 현(現) 흰 용 카프카타렉트의 영역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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