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49화 (649/1,000)

649화 현상 수배자 (6)

…퍼펑! …퍼펑! …퍼펑!

계속해서 장풍 데미지가 들어간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가드데미지를 거의 입지 않는데다가 대공기 역시 블로킹으로 봉쇄해 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내가 쏘아 보내는 장풍 류의 중원거리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가드 상태에서의 스텝 및 전진’ 능력이 시스템 상 부족하게 설정되어 있고 ‘소폭 점프’한다는 개념도 없이 매번 높이 점프 및 활강, 긴 체공이라는 허점을 드러내기에 니가와 인성질을 하기에 딱이다.

게다가.

“저도 도울게요!”

뜻밖에도, 아키사다 아야카가 내게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과연 현 일본 랭킹 넘버원인 랭커답게, 그녀는 강력한 광역마법을 구사했는데 그중 내게 있어 가장 도움이 된 마법은 이것이었다.

<윈드 시어(Wind Shear)>: [6서클]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갑자기 바꿔 착륙하는 존재를 교란하는 마법.

카프카타렉트가 한번 높게 솟구쳤다가 활강을 할 때마다 이 바람마법이 놈의 돌진 및 착륙 궤도를 어그러트리고 있었기에 몇 번 장풍이 씹힌다고 해도 다시 거리를 벌려 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퍼펑!

■■■■■■■■■■■■■■■■■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내 인성질에 휘말린 카프카타렉트가 또다시 발광한다.

[그아악! 이 버러지 자식!]

카프카타렉트는 호밍기(상대방이 횡으로 이동하는 것을 잡는 기술)와 장거리 가불기를 사용해 나를 붙잡으려 했다.

흰 불꽃이 큰 대(大)자를 그리며 나를 향해 날아들어 온다.

“…오오, ‘불대문자’인가? 과거 유행했던 포X몬스터의 불 계열 기술이지.”

하지만 이 공격에도 허점은 있다.

나는 바닥을 한번 박차고 불길의 우측 상단을 향해 뛰었다.

그곳에는 이 기술의 유일한 개구멍이 존재한다.

내가 개구멍으로 빠져나오자 큰 대(大)는 개 견(犬)의 형상을 하게끔 되었다.

[…이, 이런 개 같은!]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흰 이빨을 드러내며 펄펄 뛰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에게 당해줄 마음은 전혀 없다.

상대방에게 호밍기나 장거리 가불기 기술이 있다고 해도 이 두 가지 기술의 영역 중간값에 해당하는 사각지대를 잘만 파고든다면야 니가와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카프카타렉트를 향해 바람을 때려 박았다.

그사이 아키사다는 내가 중간에 일러 준 대로 비주류 바람 마법 중 하나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바람전달 목소리>: [1서클] 주위 사람의 목소리를 크게 만들어 주는 마법.

사람의 목소리를 크게 해 주는 이른바 확성기 스킬이다.

평소라면 쓸 일이 없겠지만 지금은 아주 큰 쓸모가 있다.

나는 주먹과 함께 기합을 질렀다.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니가와!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원래 시끄러운 공격 대사는 니가와 스타일의 꽃인 법.

반복되는 나의 외침에 무투룡의 눈은 점점 이지를 상실해 간다.

[시끄럽다! 넌 그것밖에 못 쓰는 거냐!]

“응~ 맞아~”

[이 비겁한 놈!]

“응~ 나 키 아무거나 막 누르는 건데~ 너 싸움 되게 못한다~”

[끄으아아아아! 그만두지 못하겠냐!?]

“응~ 그만하라면 그만해야지~”

오락실 초딩의 3신기까지 모조리 뱉어낸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싸움을 이성으로만 배운 놈이군.’

젠틀한 인공지능은 역시 더러운 휴먼을 이길 수 없다.

펑펑- 바람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투룡의 체력 바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점점 깎여만 간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놀랍게도, 무투룡의 HP게이지는 이제 주황색을 넘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빨피! 무투룡의 체력이 바닥을 치기 직전인 것이다!

그때쯤 해서.

“대장! 우리도 왔어!”

“적은 어디냐!?”

윤솔과 드레이크가 드디어 나를 따라 합류했다!

윤솔의 디버프와 드레이크의 저격, 거기에 아키사다의 마법까지 가세하자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게임 줘까치 하네!]

카프카타렉트는 온 필드에 적용되어 있던 1:1 격투액션대전의 시스템을 풀어 버렸다.

-띠링!

<‘무투룡’이 유희에 싫증을 느낍니다>

<필드의 속성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카프카타렉트의 체력을 거의 다 빼 놓았다고 해서 놈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놈의 한 페이즈를 걷어낸 것에 불과할 뿐.

하지만 이것도 사실 놀라운 성과였다.

그 상대가 천하의 고정 S+급 몬스터이자 일곱 용군주 중 하나인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였으니까.

1페이즈가 끝남에 따라.

…쭈우욱!

■■■■■■■■■■■■■■■■■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카프카타렉트의 체력이 다시 차오른다.

하지만 격투게임의 제한적 룰이 사라져 체력의 절대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 그동안 내가 야금야금 깎아낸 체력은 회복되지 않고 여전히 닳아 없어져 있는 그대로였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실로 더럽고 비열한 벌레로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경멸에 찬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는 그대로 두 손을 뻗었다.

콰콰콰콰콰콰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하얀 화마(火魔)가 우리를 덮쳐왔다.

레비아탄의 기름과 만나 공략 난이도를 몇 배로 더했던 주범 스킬이다.

“…으윽!?”

아키사다는 8개의 방어마법을 펼쳐 흰 용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그것은 아까 전에도 한번 실패했던 일인지라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파-앗!

놀랍게도, 아키사다의 방어벽은 하얀 불길을 막아 내는 것에 성공했다.

“……!?”

아키사다는 온몸에 차오르는 힘, 예전보다 더욱 더 활기차고 팔팔해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깜짝 놀라워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하프를 든 윤솔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제가 버프 캐릭터라서요.”

“아! 서포터!”

한 번도 든든한 서포터를 만나본 적이 없던 아키사다는 그제야 윤솔의 존재를 깨닫고 용기백배했다.

그때쯤 해서.

…쿠르륵!

나는 마몬의 오른팔로 불길을 찢고 나섰다.

비슷한 타이밍에 드레이크 역시 용비늘도 뚫을 수 있는 불카노스 화살촉을 앞세우고 방어벽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그대로 상공으로 높이 솟아올라 사라져버린 것이다.

“…튀었어?”

윤솔과 드레이크, 아키사다의 입에서 황당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뺑소니’ 특성이 발동한 모양이군. 체력이 일정량 이하로 떨어지면 도망가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모양이야.”

그러자 내 망토 속에 숨어 있던 오즈가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흥! 저 별종 자식, 용군주로서의 자존심도 없나? 도망을 가다니 말야.]

[뿌!]

[악! 머리 좀 그만 때려! 비늘 빠지면 책임질 테야?]

오즈와 쥬딜로페가 또 툭탁거린다.

나는 두 녀석이 들키는 일이 없게끔 망토를 꾹 누르고는 고개를 들어 무투룡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도망이 아니라 귀찮아서 피한 것에 불과할 거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니까.”

“어… 아니, 대장 바뀌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야.”

뭐 가끔 똥이 무서운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싸우던 도중 상대에게 거침없이 등을 보인다는 점에서 확실히 고정 S+급 몬스터답지 않은 행동 패턴이다.

하기야, 흰 용은 다른 용군주들과 달리 일정한 영역을 정해 놓고 살지 않는 몬스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흐음. 그럼 이제 놈을 다시 만나 2페이즈를 벌여야 하는데… 이제는 또 그놈을 어찌 찾나?”

나는 팔짱을 꼈다.

운 좋게 아키사다 아야카의 제보로 놈을 만나 1페이즈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또 놈을 언제 만날지 알 수 없다.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내 지인, 혹은 내게 제보를 해올 정도의 열혈 시청자인 다른 사람이 나를 흰 용에게로 안내해 주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물론 그 사람이 흰 용을 만나고도 어느 정도 시간을 살아남아 버틸 능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암담한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때.

“흐음.”

무투룡 카프카타렉트가 사라진 하늘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던 드레이크가 한마디 했다.

“이봐 대장. 저 풍경, 어디서 한번 본 것 같지 않나?”

드레이크가 손을 뻗어 가리킨 곳은 카프카타렉트가 날아간 하늘의 한 귀퉁이이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살폈다.

시커먼 밤하늘, 휘영청 뜬 초승달.

흰 용 카프카렉트가 늘 나타나던 순간의 풍경이다.

“저게 왜?”

“잘 생각해 봐라. 네가 예전에 얻었던 아이템 중 저런 풍경을 담은 아이템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드레이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나는 결국 인벤토리를 열어 그 안을 다시 세세하게 뒤져 보았다.

벨제붑의 ‘폭식 창자’ 특성에 의해 매우 매우 드넓어진 내 인벤토리 안에는 별의별 아이템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다.

언젠가 꼭 필요할 순간이 올 것이라 여겨 비축해 둔 히든 피스들이다.

(물론 그것들 중 99%에는 먼지만 쌓여 가고 있지만)

그때.

“어엇!? 저거, 저것이다! 내가 말한 것.”

드레이크가 내 인벤토리 한 구석을 가리키며 외쳤다.

“……?”

나는 뭔가 싶어 고개를 빼들었다.

그러자 이내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한 장의 시커먼 양피지였다.

검은 밤하늘처럼 시커먼 배경, 휘영청 뜬 초승달과 흰 용, 그리고 해골이 그려져 있는 불길한 종이.

-<카르마의 일기장> / 주문서 / S

한 사람의 ‘업보(業報)’가 기록된 주문서.

제일 먼저 소유한 이의 업보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어 더 이상 무언가를 적어 넣을 여백은 없을 것 같다.

※원 소유자: 조디악 번디베일

-특성 ‘싸움 나락’ 사용 가능

과거 벨페골의 악몽 속에서 만났던 ‘앙신 조디악’을 죽이고 얻은 아이템.

살인자들의 탑 정벌 이후 유다희가 마동왕에게 선물했던 주문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