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48화 (648/1,000)

648화 현상 수배자 (5)

한편, 아키사다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묻는다.

“…니가와? 일본어인가요?”

땡, 틀렸다.

‘니가와’란 말 그대로 ‘니가 오라는’ 뜻이다.

표준어로 말하자면 ‘네가 와라’라고 할 수 있겠지.

니가와 스타일은 1:1 대전격투액션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상대의 공격이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블로킹, 가드, 점프, 회피, 원거리 공격만 하면서 버티고 또 버티다가 상대방이 접근해오거나 점프, 가드 등 조작선택권을 잃는 상황에 놓일 때 ‘짤짤이’라 불리는 소규모 데미지를 넣어서 이기는 방식이다.

뒤로 무한정 물러서면서 자잘자잘하게 중, 원거리 공격을 해 상대방을 짜증 상태로 몰아넣고 결국에는 패배시키는 것으로 현실의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침대 축구’나 ‘카테나치오(catenaccio: 수비를 중시하고 지능적인 반칙으로 상대 공격을 막는 축구 전술)’를 예로 들 수 있겠다.

…퍼펑!

■■■■■■■■■■■■■■■■■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나는 또다시 장풍을 날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밀어냄과 동시에 미약한 데미지로 놈의 체력 바를 갉아먹었다.

‘…이것 때문에 한때 오락실에서 동네 형들이 나를 많이 쥐어박았었지. 얍쌉이 쓰지 말라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상대방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의자로 맞은 적도 있었어.’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게임을 못하는 사람의 논리에 불과하다.

이런 ‘니가와 스타일’은 분명 일반적인 게이머들의 정서상 비겁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지만 분명히 하나의 공략이고 스타일, 마치 살아 있는 복싱 레전드 메이웨더처럼 말이다.

이런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밸런스 상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그것은 게임의 허술한 시스템을 탓해야 하는 것이지 ‘승리’라는 게임의 기본 목적을 추구하는 플레이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꼭 이기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은 맞지. 그러니 그걸 안 하는 것을 매너라고 우길 일도 아니야.”

게다가 이런 니가와 스타일이 무조건 먹혀드는 것도 아니다.

상당히 제한된 환경에서 세밀하고 주도면밀한 컨트롤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바로 니가와 플레이.

“…첫째! 내 대공기의 성능이 강할 것.”

나는 크게 심호흡한 뒤 아키사다가 만들어 내는 바람을 손으로 때려 밀어냈다.

묵직한 한 방 공격력이 열풍을 빚어내 흰 용을 뒤로 넉백시킨다.

“…둘째! 상대방 러쉬의 위력이 약할 것.”

흰 용은 나를 향해 날아오려 했지만 불사조와 싸웠던 영향인지 놈의 비행속도는 예전만 못하다.

…퍼펑!

나는 흰 화염폭풍을 만들어 내려던 무투룡을 향해 또다시 장풍을 날려버렸다.

“…셋째, 필살기의 경직시간이 길 것.”

화염폭풍이 중간에 캔슬되자 무투룡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스턴 상태에 빠졌다.

나는 그 틈을 타서 거리를 벌려 놓음과 동시에 또다시 장풍을 날려 보냈다.

[크아아아악!]

무투룡은 두 팔을 X자로 교체시켜 막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깡 공격력은 놈의 가드를 뚫고 미약한 데미지나마 확실하게 입혀 놓는다.

“…넷째, 가드 데미지가 클 것.”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옇던 눈에 붉은 핏줄이 선 무투룡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나를 향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 높이 올라가 봐야 거리가 멀어지니 나만 좋을 뿐이다.

“…다섯째, 점프의 체공시간이 길 것.”

무투룡은 점프를 한번 하면 기본적으로 상공 높이 치솟는다.

놈이 돌진해 오는 동안 나는 장풍을 최소 세 번은 더 날릴 수 있으니 나에겐 오히려 좋은 일이다.

“…여섯째 액션의 템포가 느릴 것.”

나는 흰 용에게 연거푸 장풍을 날려 보내며 눈을 빛냈다.

퍼펑! 퍼펑! 퍼펑!

장풍에 피격당한 무투룡은 매우 짜증난다는 듯 가드 너머로 나를 노려본다.

■■■■■■■■■■■■■■■■■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벌써 놈의 HP는 상당히 깎여나가 있었다.

그것을 본 아키사다가 나를 선망의 눈으로 쳐다본다.

“와! 니가와 스타일 정말 대단해요! 나도 가능할까요?”

“…아서, 이것도 최소한의 공격력이 뒷받침되니까 할 수 있는 거야.”

“오오! 그럼 그 정도 공격력만 맞춰 놓으면 저도 가능한 건가요?”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아니, 니가와 플레이를 계속 하게 되면 텐션 게이지가 0%가 되는 동시에 텐션 게이지가 잘 차지 않게 되어서 백전노장이나 싸움광 등 실질 전투시간에 비례하여 스탯이 상승하는 버프들이 전부 무효화 돼. 거기에 무투룡이 만들어 낸 대전액션게임 필드에서는 네거티브 패널티라는 게 있어서 이렇게 계속 소극적으로 방어만 하게 되면 패널티가 발생하여 상대방의 공격에 1.15배의 추가 데미지를 입게 되지. 그뿐만 아니라 모든 공격이 단조롭거나 단발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아주 뛰어난 숙련도나 피지컬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대부분 역풍을 맞기 십상…….”

내 조언을 들은 아키사다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는 건 처음 보네요.”

아차, 또 설명충 버릇이 도져 버렸군.

나는 아키사다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카프카타렉트는 극도의 분노로 거의 눈이 홰까닥 돌아가 있었다.

백내장이라도 걸린 것처럼 희고 탁한 시선이 나를 향한다.

놈의 흰자위 주변에 빼곡하게 돋아나 있는 시뻘건 핏발이 나를 목 졸라 죽일 기세로 번져오고 있었다.

‘역시나, 제대로 빡쳤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카프카타렉트의 성격은 과연 불같았다.

하기야, 사실 이런 식으로 제대로 된 싸움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농락만 당하면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 분명하다.

특히나 격투대전액션게임의 승패 전적, 더군다나 거리 유지와 짤짤이 판정승보다는 러쉬와 콤보로 인한 승리를 중요시하는 이 바닥에서는 나의 플레이를 비겁하고 치졸한 것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렸을 적 얍쌉이 쓰지 말라며 주먹을 휘둘렀던 오락실 형들처럼 말이지.’

지금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폭력적인 기세가 더욱 더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원래 이 니가와 스타일이란 것이 심리전적인 측면도 있기에 성질 더럽고 급한 상대방에게 써먹기 딱 좋은 것이다.

이 경우에는 게임이 사람을 폭력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얄미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옛날,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11년 2월 13일에 MB* 뉴스데*크의 유*환 기자가 피시방에 가서 전원을 차단해 게임을 끄니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변했다며 노답 생중계를 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경우라는 말씀!

나는 가면 아래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흰 용을 조롱했다.

“내 장풍은 간단해 보이지만 자그마치 두 랭커의 기술이 합쳐진 콤비네이션! 믓시엘!”

나와 아키사다 아야카가 만들어내는 열풍이 또다시 카프카타렉트를 뒤로 밀어낸다.

[…크윽!? 대체 내가 왜 이것에 당하고 있는 것이지?]

카프카타렉트는 도저히 자기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당연하다, 놈은 스타일의 파훼법을 모르니까.

파훼법을 모른다면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다가 끝나는 것이 격투대전액션게임이다.

타 게임 장르에서의 니가와 스타일은 상식적인 수준의 가드나 회피, 카운터로 대처할 수 있게끔 밸런스가 설정되어 있지만… 무투룡이 특별히 만들어 낸 필드와 시스템, 즉 격투대전액션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또 다르다.

상식적으로 그 존재를 예상하기 힘든 완전무적판정 대공기가 분명히 실재하기 때문에 그 파훼법이 훨씬 더 난해하고 복잡한 것이다.

‘고정 S+급 몬스터의 딥러닝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10만 시간을 플레이해 온 겜창들의 집단지성을 당해 내는 것은 무리지.’

결국 기계를 이기는 것은 인간이란 말이다!

[크-워어어억!]

결국 흰 용이 제대로 돌아 버렸다.

나에게 계속 줄기차게 얻어맞던 카프카타렉트의 몸집이 갑자기 확 불어나기 시작했다.

약 1.5배 정도 커진 카프카타렉트는 더욱 더 비대해진 불길을 이끌고 나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이것은 HP가 일정량 이하로 떨어지면 공격력과 공격속도 등 각종 스탯이 대폭 증가하는 ‘SM플레이어’ 특성!

나는 그것을 보면서 감탄했다.

“…오오, 과연 ‘퀸 X브 하트’가 생각나네.”

과거 ‘퀸 X브 하트’라는 격투게임에서는 IPX 넷플레이 시 게임의 프레임 속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있었기에 니가와 스타일이 범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내 회선 속도의 발달로 인해 넷플레이 시에도 풀 프레임이 나오자 인간의 인지속도로 반응하기가 어려워졌고 니가와 스타일은 점차 사장되어 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되는 사람이 있었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고인물, 썩은물, 석유, 적폐, 엑토플라즘 같은 겜창들은 늘 언제나 답을 찾아냈고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적이 ‘이거 버그 아니야!’, ‘너 핵 썼지?’, ‘완전 사기잖아, 이런 게 어떻게 돼!?’ 하고 소리치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곤 하던.

‘그냥 하면 되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