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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47화 (647/1,000)
  • 647화 현상 수배자 (4)

    “…흐음. 늦지 않게 왔군.”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흰 용을 바라보았다.

    백금처럼 번들거리는 비늘, 칼보다도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 돛처럼 넓게 퍼진 날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신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백색의 화마(火魔)!

    눈이 멀어 버릴 듯한 빛무리 속, 무투룡 카프카타렉트가 흰 불로 전신을 감싼 채 떡 버티고 서 있다.

    ‘아키사다 아야카가 죽거나 로그아웃하기 전에 와서 다행이네.’

    나는 커튼을 잡듯 오른손을 뻗어 불길을 확 잡아 찢어 버렸다.

    마몬의 건틀릿은 불을 찢고 쇠를 두드리던 대장장이의 무구답게 불에 굉장히 강해서 흰 용의 불조차도 잡아 찢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그 대가로 건틀릿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뜨겁게 변한 것은 내 오른팔뿐만이 아니었다.

    아키사다는 빨갛게 변한 얼굴을 숙여 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또 빚을 졌네요.”

    하지만 감사 인사는 오히려 내가 해야 할 판이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흰 용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까.

    나는 짧게 말했다.

    “내가 올 때까지 죽지 않고 버텨 줘서 고마워. 걱정했어.”

    한데?

    내 말을 들은 아키사다는 왠지 감격한 표정이다.

    못 만날까 봐 걱정했던 흰 용을 만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한 것이었는데… 뭔가 오해를 한 걸까?

    하지만 그것을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상대는 무려 흰 용 카프카타렉트! 단 1초도 방심하면 안 된다.

    아키사다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조언했다.

    “저 흰 용… 교활한 베놈피온을 일격에 죽였어요.”

    베놈피온이라. 놈은 가혹한 사막에 사는 B+급, 아니 A급의 몬스터이다.

    1차 대격변에서 살아남아 위험등급이 한 단계 위로 조정된 모래마수, 질긴 목숨을 가지고 있어서 원 킬로 잡는 것은 꽤 힘들다.

    하지만.

    “…흰 용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위험등급은 S+, 그것도 아무 제한도 없이 고정 등급이다.

    베놈피온 따위를 죽이는 것은 놈에게 있어 너무도 쉬운 일이기에 그것으로 전투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는 없다.

    ‘…문제는 왜 야생 몬스터들을 죽이고 다니는지인데.’

    흰 용은 왜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것일까?

    그것도 꽤나 강하다고 입소문을 타고 있는 필드 보스, 던전 보스들을?

    단순히 자신의 강함을 시험하려고? 아니다. 시험도 급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고정 S+등급 몬스터에게 덤벼들거나 맞붙어 싸우려 드는 놈은 피반창이나 조디악 같은 사이코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먼 곳까지 날아와 어둠 대왕이나 베놈피온 따위의 몬스터를 죽이는 이유가 뭘까?

    문득, 회귀 전 어울렸던 고인물 형, 누나들의 충고가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 사실 어떤 존재가 제일 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할 것 같네. 하지만… 어떤 존재가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의견 통일이 명확하게 가능할 것이라고 봐.’

    ‘음, 하긴. 답이 정해져 있긴 하지.’

    ‘맞아. 사실 뭐니뭐니해도 제일 싸우기 싫은 건 ‘그 녀석’이잖아?’

    ‘다들 불가살(不可殺)이네 난공불락(難攻不落)이네 괴력난신(怪力亂神)이네 해도… 그것만 한 사기 몬스터가 또 없지.’

    그리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었다.

    ‘화이트 드래곤, 무투룡(武鬪龍) 카프카타렉트.’

    고인물 선배들은 그때 왜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그것은 혹시나 야생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이 흰 용의 습성과도 무언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에이, 모르겠고. 일단 맞짱부터 뜨자.’

    일단 눈앞에 흰 용이 뜬 이상 많은 생각을 할 여유는 없다.

    나는 바로 1:1, 일기토를 준비했다.

    아키사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마동왕 씨, 저 하얀 용… 엄청 강해 보이는데. 이길 수 있을까요?”

    “내 추측이 맞다면.”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의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불사조의 파르테논에서 봤던 대로다.

    놈의 머리 위에는 특이하게도 HP가 바(Bar) 형태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받은 사진, 영상 제보에서도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었다.

    수많은 고전 게임들을 섭렵하며 살아온 게임폐인답게, 나는 금방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오마쥬를 눈치 챌 수 있었다.

    “…고전 격투게임이네.”

    그렇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싸움에 미친 무투광이면서도 철저히 1:1을 즐기는 일기토광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놈과의 1:1 전투는 자동으로 ‘스트리트 파X터’, ‘철X’, ‘킹 오브 파X터’, ‘드X곤볼’ 류의 격겜과 비슷한 시스템 환경과 룰을 따르게 된다.

    츠츠츠츠…

    이윽고,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앞에 선 내 머리 위로 내 체력 바가 뜬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만 보이는 상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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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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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캐릭터의 일대일 격투대전!

    하지만 나와 놈과의 차이는 크다.

    비유하자면, 나는 격투게임에서 고를 수 있는 일반 캐릭터.

    하지만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히든 캐릭터이자 OP(Over powered)캐릭터이다.

    격투게임 내 밸런스를 해칠 정도로 강력해서 고르는 것이 금지되는 캐릭터, 예를 들자면 ‘드X곤볼의 X로리’나 ‘스X리트파이터의 고X키’가 대표적이다.

    대전액션격투게임에서는 캐릭터 선택 창이 떴을 때 특정 커맨드를 입력해서 선택하거나 기판 가동시간을 재서 타임릴리즈로 숨겨진 캐릭터를 픽 하는 경우가 많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는 흰 용 자체가 그냥 사기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다!

    “…어차피 불공평한 게임이라면, 나도 성실하게 플레이 할 마음 없다 이거야.”

    나는 카프카타렉트를 노려보았다.

    불사조의 원수이자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빚을 오늘 갚아 주리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 힘만으로는 조금 힘들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내 이동속도를 따라잡아 오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지금은 우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

    “이봐, 아키사다.”

    내 목소리를 들은 아키사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그녀에게 오더를 내렸다.

    “지금 바로 바람계열 마법을 써 줘.”

    아키사다의 두 눈에 순간 의문의 빛이 어렸다.

    바람계열 마법은 불과 야수 속성이 강한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상대로는 상성이 나쁘다.

    으레 야수는 바람과 함께 거칠게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기본적으로 바람 저항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불 역시도 바람을 받으면 더욱 더 기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내 말에 따라 바람마법을 캐스팅했다.

    휘오오오오오!

    그것도 자그마치 8개를 한번에!

    <토네이도>: [6서클] 강력한 회오리를 만들어내는 마법.

    <윈드 시어>: [6서클]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갑자기 바꿔 착륙하는 존재를 교란하는 마법.

    <윈드 스핀>: [5서클] 자신의 주위만을 빙글빙글 도는 거대한 바람을 만들어 주변을 휩쓰는 마법.

    <윈드 커터>: [4서클] 바위도 깎아낼 정도로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소환하는 마법.

    <윈드 실드>: [3서클] 바람을 이용해 둥근 돔 모양의 벽을 만드는 마법.

    <윈드 피스트>: [2서클] 바람을 주먹처럼 뭉쳐 적을 공격하는 마법.

    <읜드 러너>: [2서클] 몸에 바람을 감아 이동속도를 빠르게 하는 마법.

    <윈드 밀>: [1서클] 바람을 원형으로 불게 하는 마법.

    크고 작은 강력한 바람마법들이 필드를 뒤덮는다.

    나와 카프카타렉트 역시 아키사다가 만들어 내는 바람의 사정권 안에 들게 되었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건조한 비웃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잘 것 없는 벌레야. 네 날갯짓 따위로 감히 나를 해할 수 있을쏘냐?]

    그러나, 뒤이어진 내 동작은 놈의 입을 닥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오른손 주먹을 꽉 말아 준 뒤 정면으로 힘차게 내뻗었다.

    카프카타렉트는 먼 곳에 떨어져 있었지만 상관없다.

    내가 노리고 있는 것은 놈이 아니라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이니까!

    …퍼펑!

    이내, 내가 때린 바람이 강력한 힘에 의해 밀려난다.

    더군다나 흰 용의 불길을 잡아 찢느라 시뻘겋게 달궈져 있던 건틀릿인지라 바람은 순식간에 뜨거운 열풍으로 바뀌었다.

    퍼퍼퍼펑!

    내 주먹에 맞은 대기는 마치 장풍(掌風)처럼 날아가 카프카타렉트의 전신을 때렸다.

    [……!]

    내 뜨거운 장풍에 맞은 카프카타렉트의 몸이 뒤로 밀리며 HP가 약간 깎인다.

    암 그렇지, 무려 마몬의 힘이 실린 장풍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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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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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칸의 녹색 바가 미약하게, 그러나 분명히 깎여나갔다.

    당연하게도 흰 용은 격분한다.

    [이 피라미가 감히!]

    놈은 엄청난 속도로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주특기인 불타는 손톱 공격으로 나를 찢어죽일 생각인 듯싶었다.

    하지만.

    …퍼펑!

    나는 또다시 장풍을 만들어 내 카프카타렉트를 향해 날려 보냈다.

    내 장풍에 맞은 카프카타렉트는 또다시 돌진을 멈춰야만 했고 뒤로 약간이나마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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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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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잔존 체력을 나타내는 녹색 바가 미약하게나마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동안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다.

    […이놈이!?]

    카프카타렉트는 이번에도 온 몸에 불길을 휘감고 다이브해 온다.

    하지만.

    …퍼펑!

    나는 역시나 장풍을 써 카프카타렉트의 돌진을 막고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카프카타렉트가 접근해 온 거리만큼 뒤로 물러나 거리를 멀찍이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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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왕]

    VS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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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어들지 않는 놈과 나의 거리.

    카프카타렉트는 짜증스러움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동시에, 나는 뜨겁게 불타고 있는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향해 차갑게 조소했다.

    “…‘니가와’ 전법이라고 들어는 봤나?”

    내가 왕년에 오락실에서 좀 놀았단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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