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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46화 (646/1,000)
  • 646화 현상 수배자 (3)

    …콰쾅!

    사막이 온통 뒤흔들린다.

    사방팔방으로 튀는 모래의 파도 사이로 8개의 마법진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불, 바람, 얼음, 풀, 암석, 전기, 어둠, 빛.

    현재 일본 통합 랭킹 1위이자 ‘옥타 캐스팅(Octa casting)’의 괴물 마법사 아키사다 아야카가 솔로 플레잉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상대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한 마리의 전갈이었다.

    <‘교활한’ 베놈피온> -등급: A / 특성: 벌레, 땅, 가뭄, 앙버팀, 착굴(鑿掘), 잠복, 맹독, 뺑소니

    -서식지: 가혹한 사막 전 구역, 어비스 터미널 ‘칠흑 승강장’

    -크기: 8m.

    -지독한 독과 두터운 중장갑으로 무장하고 있는 전갈.

    몸을 감싸고 있는 외골격은 강철보다도 단단하며 육중한 집게발을 휘둘러 적을 찝거나 때려죽인다.

    꼬리 끝에서 질질 흘러나오는 독액은 단 1밀리그램으로도 44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수면 위로 등 지느러미만 내놓고 다니는 상어처럼, 이 교활한 전갈은 모래 속에 숨어 독침이 달린 꼬리만 내민 채 빠르게 굴을 파고 다닌다.

    이 베놈피온이라는 놈은 원래 사혹한 사막에서 제일 공략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진 필드보스급 몬스터였는데 훗날 샌드웜이 발견된 이후부터는 서열이 한 단계 밀리게 되었다.

    그래도 1차 대격변의 피해가 가장 컸던 사막지대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답게 강력한 방어력과 체력, 독 속성 특수 공격력을 자랑하는 녀석이었다.

    콰콰콰쾅!

    아키사다 아야카는 워해머처럼 날아드는 집게발을 피해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따앙!

    그 틈을 타 정수리 쪽으로 독침 공격이 들어왔지만 강철 벽을 소환해 무리 없이 막아 내는 아키사다였다.

    “역시 ‘교활한’ 개체라서 그런가 공격 패턴이 다채롭네.”

    아키사다는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물러났다.

    그 앞으로는 베놈피온이 날카로운 가운뎃다리로 굴을 파고 있었다.

    본디 베놈피온이라는 것은 각 개체마다 성격이 서로 다른, 실로 특이한 몬스터였다.

    리젠된 베놈피온은 네임드 몬스터였고 이름 앞에 ‘교활한’, ‘엉뚱한’, ‘단순무식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이 수식어에 따라 개체의 공격 패턴이나 스탯 등이 꽤 크게 차이가 난다.

    ‘엉뚱한’은 특성이 다양하고 예측불허의 공격 패턴을, ‘단순무식한’은 스탯이 높으나 무조건 돌진 공격만을 보인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까다로운 성격은 ‘교활한’이었다.

    ‘교활한’ 베놈피온은 철저한 민첩, 회피형 몬스터로 모든 스탯이 플레이어를 기습하거나, 플레이어의 공격을 피하거나, 최후에는 플레이어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지형을 이용하는 것은 다반사요 때때로는 오브젝트를 전투에 동원하는 치밀함까지 보이기에 사냥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몬스터.

    “…하지만 그만큼 보상이 짭짤하죠.”

    ‘교활한’ 베놈피온은 한 등급 위 몬스터의 위험도에 필적할 만큼 강하지만 그만큼 주는 경험치량도 많고 레어 아이템 드랍율도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키사다 아야카는 혼자서도 큰 무리 없이 사냥 가능한 A등급 몬스터 중 이 베놈피온을 사냥감으로 고른 것이다.

    퍼퍼퍼펑!

    차가운 고드름들이 허공에 주렁주렁 열리더니 그대로 급강하한다.

    개당 수백 킬로그램이 넘어가는 고드름의 무게는 사막의 모래를 뚫고 그 밑에 숨어 굴을 파는 베놈피온의 등갑을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베놈피온은 전갈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집게발을 마구 휘둘렀지만 아키사다 아야카는 한번 잡은 승기를 결코 다시 내어주지 않았다.

    우직! 우지지직! 콰긱-

    이어서 얼음을 포함한 8개나 되는 원소마법들이 추가로 퍼부어진다.

    베놈피온은 두툼한 집게발로 몸을 가리고 방어태세에 들어갔으나 아키사다가 퍼붓는 포격의 화력을 모두 막아 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베놈피온의 등갑을 뚫어 버리는 존재가 있었다.

    콰쾅!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흰 불기둥 하나가 갑자기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베놈피온의 몸통을 날려버렸다.

    지글지글지글지글…

    충격파로 인해 푹 파인 모래 구덩이에서 녹은 모래가 유리로 변해 반짝이는 빛이 뿜어져 나온다.

    “…뭐지?”

    아키사다는 눈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방금 경험치가 아주 소폭 상승한 것으로 보아 분명 막타는 다른 놈이 먹은 것 같다.

    거의 다 잡아 놓았던 베놈피온을 스틸당한 것이다!

    “누구세요!? 누군데 이런 무례한 짓을…!?”

    아키사다는 화를 냈지만 안타깝게도 적은 그녀의 분노를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었다.

    턱-

    이윽고, 백색의 화염을 걷고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었다.

    흰 용 카프카타렉트!

    그가 오연한 자세로 서서 아키사다 아야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방금 뽑혀나온 베놈피온의 심장을 든 채로!

    “…보스 몬스터?”

    아키사다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흰 용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어마무시한 포스를 풍기는 몬스터가 왜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하지만 흰 용은 아키사다의 의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만.

    “세계는 위협으로 가득하고.”

    뜨거운 백열이 불타고 있는 주먹을 들어 올려 아키사다를 향해 뻗었을 뿐이다.

    “모든 삶은 곧 투쟁이다.”

    동시에, 흰 용의 손아귀 안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염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주변 사막의 모래를 죄다 녹여 유리알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화마(火魔)가 아키사다를 덮친다.

    “으윽!?”

    아키사다는 황급히 불과 얼음의 방어벽을 펼쳐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6서클의 경지에 오른 아키사다 아야카가 흰 용의 체온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그녀는 각각의 속성 마법 레벨이 높은 것이 아니라 여러 마법을 동시 캐스팅하는 것이 주 무기인 메타니까.

    ‘어쩔 수 없나.’

    아키사다는 맞서는 것을 포기했다.

    지금이라도 길드원들을 불러 볼까 생각했지만 그들이 여기에 와도 사정은 매한가지일 것 같았다.

    ‘열 명이 오면 열 명이 죽을 것이고, 백 명이 오면 백 명이 죽을 것이며, 천 명이 오면 천 명이 죽을 것이다.’

    흰 용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을 불러 봤자 말려들게 할 뿐이야.’

    아키사다는 입술을 깨물었다.

    최소한 이 하얀 괴물이 다른 맵으로 가지 않게 여기서 자폭이라도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설사 자폭한다고 해도 얼마나 데미지를 입힐지 미지수였다.

    일본 통합 랭킹 1위인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눈앞의 흰 용이 뿜어내는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그때.

    아키사다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마동왕 씨가 흰 용에 대해 제보를 받는다고 했었지?’

    아키사다는 황급히 스크린 창을 열어 마동왕의 핸드폰 번호로 메일을 보냈다.

    <흰 용 제보 받으시는 중이죠? 지금 떴어요!!>

    막 ‘전송’ 버튼을 누르려던 아키사다.

    하지만, 그녀는 막 움직이려던 손가락을 도중에 멈춰 세웠다.

    ‘…도와달라고 구걸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을까?’

    사지(死地)에 있는 입장이다 보니 자신의 제보가 언뜻 무리하게 구해달라는 요청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또 그것과는 별개로, 아키사다는 마동왕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존경(?)하는 상대에 대한 어떠한 미묘한 마음이었다.

    …쿠르르륵!

    흰 용의 화염은 이 순간에도 아키사다의 얼음벽과 암석 벽, 불의 벽을 뚫고 데미지를 전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아키사다는 스크린 창을 열어 메일을 약간 수정했다.

    <흰 용 제보 받으시는 중이죠? 지금 떴어요! ٩( ᐛ )و >

    너무 급박해 보이지 않게 느낌표를 하나 지우고 허전한 것 같아 이모티콘을 넣었다.

    최후의 자존심인 셈이다.

    하지만.

    …콰창! 우지지직!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8겹의 방어벽은 정말로 십 수어 초 버티는 것이 고작, 아키사다는 여파에 휘말려 저 뒤로 나가 떨어져야 했다.

    “…꺄악!”

    평소에는 거의 비명을 지르지 않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모래 언덕이 무너져 내리며 그녀의 몸을 뒤덮는다.

    그러나 여파에 날아간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날아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액화 유리와 화염에 먹혀버렸을 테니까.

    “…으윽!”

    아키사다는 모든 마나를 쥐어짜 최후의 방어막을 쳤다.

    그리고 황급히 로그아웃을 시도했다.

    콰콰콰콰쾅!

    흰 용의 불길이 또다시 아키사다의 방어벽을 두드렸다.

    아키사다는 바짝바짝 타는 입안으로 까끌해진 혀를 굴려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10초. 10초만 버티면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아키사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 S+급 몬스터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진짜 힘을 모르는 그녀의 만용에 불과했다.

    [벌레 년. 싸워볼 생각도 못하고 도망칠 궁리나 하는 게냐?]

    카프카타렉트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방어막에 실리는 화염 데미지의 양이 몇 배로 폭증했다.

    모든 마나를 쥐어짠 아키사다의 8겹 방어벽은 용광로 속에 던져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어찌 이런 데미지가!?’

    아키사다는 죽음을 직감했다.

    무슨 수를 써도 이 무시무시한 화마에서는 도망칠 수 없다.

    압도적인 자연재해는 인간으로 하여금 공포를 넘어 체념의 감정을 들게끔 한다.

    지금 아키사다가 바로 그랬다.

    아키사다는 마나통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곧 그녀의 사망을 의미한다.

    죽으면 얻게 될 수많은 패널티들을 생각하며 아키사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탑 티어, 국가대표급 프로게이머들의 사망은 실로 어마무시한 손해를 야기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많은 것들을 손해 보게 될 것이다.

    경험치도, 아이템도, 그리고 랭킹도.

    ‘…아아,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아키사다는 두 눈을 감고 곧 몰려올 폭풍에 대비해 이를 꼭 앙다물었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키사다가 생각하던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

    아키사다는 슬며시 실눈을 떴다.

    그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

    눈앞에 떡 버티고 있는 넓은 가슴팍.

    그 무시무시하던 흰 용의 불꽃을 확 잡아 찢어 버리며 등장한 남자.

    “이봐, 흰용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마동왕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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