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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45화 (645/1,000)
  • 645화 현상 수배자 (2)

    -----Original Message-----

    From: “피반창(皮反常)”

    [email protected]>

    To: <[email protected]>;

    Cc:

    Sent: 2024-XX-XX (월) 11:18:09

    Subject:

    안녕 드레이크 캣♥ 나 기억해?

    첨부파일.avi [1]

    나는 그 메일을 보자마자 바로 머릿속에 한 남자를 떠올렸다.

    피반창(皮反常).

    아시아권 제일의 변태 메타 플레이어.

    대만 근접딜러 랭킹 전(前) 2위. 공식 통합 랭킹 전(前) 6위.

    하지만 저번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겪으며 현재 대만 공식 랭킹 1위로 승격한 최상위권 랭커였다.

    회귀 전에는 그리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선수의 재발견이었기에 나 역시도 그를 비교적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미끈하게 잘생긴 얼굴, 어딘가 기묘할 정도로 번들거리는 미소.

    눈 밑에 찍힌 세 개의 눈물점.

    당시 그는 용암의 바다를 뛰어넘어 엄청난 거리를 도약한 뒤 드레이크를 창으로 찔러 치명상을 입혔었다.

    거기에 그는 마태강처럼 자신의 진(眞) 종족을 숨기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한국이 넘을 수 없는 벽이었지만…… 결국 나의 픽과 우리의 조합에 무너졌었지.

    참고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당시 피반창은 드레이크의 열혈 팬이었는데 이번에 제보한 것을 보니 그 팬심은 여전한 모양이다.

    (그것은 메일 주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흠, 이 사람은 흰 용과 만나서 살아남은 건가?”

    나는 조금 더 주의 깊게 영상을 시청했다.

    ●REC

    동영상의 첫 부분, 피반창은 어둠 대왕을 혼자서 잡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어둠 대왕, 왕 중의 왕. 너희 용자들아,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영상 속의 어둠 대왕은 A+랭크의 고위 몬스터답게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며 피반창을 압박한다.

    피반창 역시 특유의 날쌘 움직임과 강력한 딜로 어둠 대왕에게 맞선다.

    그 둘은 서로 팽팽하게 겨루고 있었다.

    무려 위험등급 A+의 보스 몬스터와 1:1로 맞붙는 위엄!

    이 영상이 촬영된 시점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가 열리기 한참 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실로 굉장한 일이었다.

    ‘……물론 나는 5년 전쯤에 졸업한 몬스터이지만.’

    나는 계속해서 영상을 시청했다.

    피반창은 창 한 자루를 귀신같이 다루며 어둠 대왕에게 맞서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조금씩 패색이 짙어진다.

    그것은 그가 아직 리자드맨으로 변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흐음, 인간의 몸으로는 승산이 없어 보이는군. 그러나 리자드맨으로 변신한다면 잡을 수도 있겠어.”

    드레이크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피반창은 인간 모드일 때 어둠대왕보다 반 수 처지니 리자드맨 모드라면 반 수 앞설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피반창 역시 그것을 알고 있을 테니 어둠 대왕의 AI 딥러닝이 자신의 인간 모드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심의 순간 리자드맨의 모습을 드러낼 계획이리라.

    ……하지만.

    [콰쾅!]

    느닷없이 제전의 천장을 부수고 나타난 존재에 의해 흐름이 깨졌다.

    [Warning!]

    [Warning!]

    [Warning!]

    [히든 보스 ‘???’가 전장에 난입해 들었습니다!]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흰 용의 시험’]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없음]

    [히든 퀘스트 수행 제한: 없음]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 처치]

    그것은 전신이 흰 불로 뒤덮여 이글거리고 있는 용이었다.

    <???>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4m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전장, 무투장, 삶을 지배하는 위대한 흰 용.

    “세계는 위협으로 가득하고 모든 삶은 곧 투쟁이다.”

    -???- <신약, 백내장기(白內障記), 『 어느 투쟁의 기록 』>

    아무래도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에게는 ‘???’라는 이름으로 보이는 모양.

    나는 놈의 모습을 보는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 정체는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다.

    [호호, 뭐야 이건 또? 웬 흰둥이가……]

    피반창은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

    아무래도 다른 용들에 비해 체구가 작다 보니 그렇게까지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 듯싶다.

    하지만, 무투룡 카프카타렉트가 눈앞에 있던 어둠 대왕을 일격에 쳐 죽였을 때에는 천하의 피반창도 웃지 못했다.

    […퍼억!]

    카프카타렉트는 불에 달궈져 뻘겋게 변한 손톱으로 어둠 대왕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끄집어냈다.

    어둠 대왕이 비록 동 등급 몬스터에 비해 방어력이 낮은데다가 피반창에 의해 체력이 빠져 있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신위였다.

    A+등급의 몬스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끔살하는 그 모습에 전율이 일 법도 하건만.

    [이 자식! 내가 거의 다 잡아 놓은 몹을!?]

    피반창은 겁도 없이 창 한 자루를 꼬나쥔 채 카프카타렉트에게 달려들었다.

    […콰쾅!]

    [퍼퍽-]

    [우지직!]

    피반창의 창이 카프카타렉트의 전신을 사납게 두들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놈은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백열(白熱)을 뿜어내고 있는 초고온의 비늘 앞에 그의 창은 불타기 딱 좋은 장작개비, 아니 이쑤시개나 다름없었다.

    [……크윽!?]

    피반창은 눈앞의 상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는 바로 본 모습을 끄집어냈다.

    그의 입가에서 여유가 사라지자 이내 흉폭한 도마뱀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순간.

    [……!]

    무투룡 카프카타렉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는 심장이 뽑힌 뒤에도 움직이는 어둠 대왕을 내팽개치고는 고개를 돌려 피반창을 마주했다.

    피반창은 카프카타렉트를 향해 손톱을 찔러 넣었다.

    [따앙!]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공격은 용비늘을 뚫을 수 없다.

    카프카타렉트가 하얀 불꽃이 넘실거리는 손톱을 휘두르자 피반창의 갑옷들이 죄 부서졌고 비늘들이 몽땅 터져나갔다.

    [끄아아악!]

    피반창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저 그 와중에도 미친 듯이 공격에 공격을 퍼부었을 뿐이다.

    마치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라는 듯.

    [……호오, 유사룡류(類似龍類) 하위종(下位種) 치고는 제법이구나. 싹수가 보인다.]

    그 모습을 본 카프카타렉트는 껄껄 웃으며 불과 손톱을 거뒀다.

    그리고는 계속 달라붙는 피반창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콰콰쾅! …우지지직!]

    돌기둥 윗부분과 샹들리에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난다.

    쩍 갈라진 돌바닥 위로 만신창이가 된 피반창이 데굴데굴 굴렀다.

    체력은 이미 빈사상태.

    하지만 놀랍게도 카프카타렉트는 피반창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땅그랑!]

    피반창에게 아이템 하나를 선물로 던져 주기까지 했다.

    그것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투박한 반지였는데 나는 그것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변태패티쉬 링! 저 아이템이 이렇게 드랍되는 거였구나!’

    붙어 있는 특수 옵션은 아마도 ‘SM 플레이어’ 특성…… 피반창의 핵심 특성이자 사기 스킬로 유명하다.

    나 역시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경로로 입수하는지는 몰랐던 아이템과 능력이다.

    카프카타렉트는 바닥을 기는 피반창을 내려다보며 즐겁다는 듯 중얼거렸다.

    [……후학(後學)을 기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 앞으로 있을 ‘벨페골’ 놈과의 영역싸움에 징집할 병사는 한 명이라도 많은 것이 좋으니까.]

    뭔가 노골적으로 떡밥을 던지는 듯한 대사이다.

    이윽고, 카프카타렉트는 어둠 대왕의 심장을 쥔 채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랐고 짤막한 말을 남겼다.

    [내게 다시 도전하고 싶다면 ‘싸움 나락’으로 찾아오거라.]

    지금껏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를 만났던 모든 플레이어들이 공통적으로 들은 대사였다.

    이윽고, 흰 용은 밤하늘을 날아 사라져 버렸다.

    휘영청 뜬 초승달 너머로.

    한편.

    [……앙♥ 살아남았네?]

    피반창은 바닥을 기어 벽에 기댄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띠링!]

    [히든 퀘스트 ‘흰 용의 시험’에 실패하셨습니다]

    히든퀘의 실패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REC

    영상은 종료되었다.

    “……흐음.”

    나는 턱을 한번 쓸었다.

    피반창의 제보는 수많은 제보들 중에서도 상당히 희귀한 사례였다.

    흰 용을 직접 만나 덤비기까지 하고도 생존한 플레이어.

    심지어 나조차도 불사조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놈에게 죽었을 것이 분명하니 피반창의 경우는 흰 용을 만나고도 자력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케이스이다.

    “……이것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지.”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는 두 가지를 좋아한다.

    1. 리자드맨.

    2.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한 자.

    일단 종족이 리자드맨이고 싸우고자 하는 투지가 강렬한 존재일 경우 카프카타렉트는 어느 정도 자비를 베풀어 주는 듯하다.

    “잡은 물고기가 작으면 그냥 풀어 주는 낚시꾼 같은 건가.”

    더 커서 나를 즐겁게 해 보라는, 압도적인 강자로서의 여유가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벨페골이란 말이지.”

    흰 용의 대사 중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벨페골을 언급한 대사이다.

    <벨페골>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나태와 악몽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귀찮도다. 내가 살아있는 것도, 너를 살려두는 것도.”

    -벨페골- <수기기(壽器記) 제 25-2장>

    일전에 만났던 ‘악몽’ 그 자체였던 몬스터.

    놈은 분명 조디악에게 사냥당했다.

    그런데 흰 용 카프카타렉트가 벨페골과 영역 분쟁 중이었다고?

    “……벨페골의 영역이라면 분명 악몽 너머의 아공간일 텐데. 그렇다면 그 공간이 흰 용의 영역과 맞닿아 있었다는 건가.”

    저 영상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가 열리기도 전, 그러니까 꽤 오래 전의 영상이다.

    그때는 아마도 벨페골이 아직 살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벨페골이 조디악에게 사냥당하고 없는 지금, 벨페골의 영역은 흰 용이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윤솔도 드레이크도 모두 복잡한 표정이었다.

    “으음, 내가 벨페골 레이드에 참여했던 게 아니라 잘 모르겠네. 하지만 정황상 ‘흰 용 카프카타렉트’가 지금은 잡히고 없는 ‘나태의 악마성좌 벨페골’과 무언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여.”

    “어진, 지금 당장 ‘살인자들의 탑’으로 가 볼까?”

    그러나 살인자들의 탑은 내가 알기로 현재 선량한 유저들의 관광지가 되어 있을 뿐이다.

    벨페골이 사라지고 난 뒤 더 이상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기 때문이다.

    “흐음. 뭔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생각날랑 말랑……”

    내가 흰 용을 찾아낼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

    -띠링!

    게임 내부에 긴급 메시지가 떴다.

    <마동왕 씨!! 자리에 계신가요?? (づ'0')づ 급한 내용입니다!!>

    발신인은 아키사다 아야카였다.

    상당히 긴급해 보이는 메시지.

    “아니, 급한 와중에 이모티콘은 왜…….”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내용을 보자 군말이 쏙 들어간다.

    <흰 용 제보 받으시는 중이죠? 지금 떴어요! ٩( ᐛ )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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