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43화 (643/1,000)

643화 하해(下海)의 왕 (11)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이 알림음을 들은 이후로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그 이후로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빌딩 최상층에 있는 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방송도 하지 않고 게임도 하지 않았다.

은행 이자, 펀드 투자성과 보고서, 종합소득세, 법인세 고지서, 세무사의 연락, 주식의 등락, 협회 관계자들의 연락, 기타 그 모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꺼 버렸다.

……아니.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이 하나 있기는 했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끝나고 몇 초 뒤, 문이 열렸다.

“얀마.”

엄재영 감독이 한숨을 쉬며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죽이 담긴 그릇과 쟁반이 들렸다.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매일 수발 들어야겠냐?”

“…….”

“뭐라도 좀 먹어 자식아. 이제 그만 방에서 나오고.”

엄재영 감독은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돌아온 대답은 한숨이었다.

엄재영 감독은 몇 장의 서류들을 집어 들었다.

“발 빠르게 대처해서 큰 피해는 막았어. 글이 업로드 되자마자 바로 삭제 처리 들어갔고 원래 운용할까 했던 댓글부대랑 한선이가 소개해준 법무법인 도움 받아서 최대한 2차 피해 막았다. 뎀 유니버스 측에서도 당연히 피해보상 해 준다고 했고, 형사 민사 다 100% 승소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아, 이건 심하게 날뛰던 악플러들이랑 신상유포자들 고소장.”

한 달 전, 나는 게임에서 로그아웃하자마자 바로 제정신을 차리고 움직였었다.

그리고 유다희가 입을 수 있는 모든 피해들을 계산해서 최대한 삭주굴근의 루트를 밟았다.

원본 글은 빠르게 삭제했지만 그것들을 일파만파 퍼다 나르며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꼭 있었고 그들은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서버가 해외에 있느니, 익명이니, 가계정이니 하는 핑계들은 통하지 않는다.

돈을 쏟아 부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펌들을 몇 개나 고용했으니까.

……하지만.

정작 유다희 본인에게서 아무런 입장 표명도 들을 수 없는 지금, 고소나 합의, 보상 진행 절차 등등은 전부 답보상태이다.

엄재영 감독은 한숨을 쉬었다.

“직접 연락해 보지 그래?”

“……벌써 몇 번이나 해 봤죠. 그런데 대답이 없어요.”

“그럼 간접적으로라도 해야지.”

“그것도 해 봤죠.”

유창과 유세희, 팬클럽 회원 등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도 연락을 하려 했지만 유다희는 그 누구의 연락도 받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원래 자취하던 오피스텔이 텅 비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생들 몰래 거주지도 옮긴 듯싶다.

엄재영 감독이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솔이랑 드레이크 왔다 갔다. 태강이는 어제.”

“…….”

“다들 걱정이 많아.”

내가 계속 대답이 없자 엄재영 감독은 헛기침을 했다.

그는 죽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협회랑 정부 사이에 세계리그 얘기가 나오고 있어.”

“……!”

나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엄재영 감독이 다시 말했다.

“한국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국이 되었으니 6대주 리그에 참가할 자격과 의무가 생겼다. 곧 준비 들어가야 해.”

“…….”

“이것이야말로 최후의 리그다.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말 그대로 정점이야.”

엄재영 감독은 언제나 최선(最善)의 결과만을 가리킨다.

사적인 감정을 배재한, 건조하면서도 확실한 루트를.

그러나 오늘의 엄재영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명장(名將)이 아니라 그냥 동네 형의 입장에서 내 어깨를 짚었다.

“네 심경, 공감하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는 있다.”

“…….”

“나도 살면서 어떤 한 사람에게 죽도록 미안해 본 경험이 있지. 왜 없겠냐. 사람인걸.”

내가 입을 다물고 대답이 없자 엄재영 감독은 다시 죽 그릇을 슬쩍 밀어 놓았다.

“사과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지. 무작정 찾아가서 문 두드리는 것은 그냥 나 속 편하자고 하는 짓일 뿐이야.”

“…….”

“너도, 그 사람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그 전까지는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만 줘.”

“……어떻게 알려 줘야 하는데요?”

그러자 엄재영 감독은 고개를 돌린다.

내가 시선을 옮기자 문 옆에 늘어진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입구 옆 벽에 붙어 숨어 있는 것이 다 티가 난다.

“크흠. 큼.”

유창이었다.

*       *       *

유창은 나와 일대 일로 마주앉았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음. 요 한달 간 형님에 대한 뉴스는 딱히 없네요. 고인물도 마동왕도 잠잠합니다. 왜 방송을 안 하시냐고 팬들이 아우성이기는 한데…….”

유창은 신문이나 잡지들을 가져와 펼치며 열심히 딴 소리를 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물었다.

“……다희, 좀 어때?”

그러자 유창은 말을 뚝 멈추더니 볼을 긁었다.

“……그, 저도 누나한테 뭐 들은 게 딱히 없습니다.”

나는 일전에 있었던 일을 모두 유창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가감 따위 전혀 없이 민낯 그대로의 사실을 말이다.

유창은 입을 열었다.

“우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형님이 자책감 느끼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딱히 잘못하신 것도 아니고, 파티장이었던 누나가 먼저 레비아탄의 디버프를 짊어졌으니.”

“……그래도.”

“제 생각엔 형님이 우리 누나에게 미안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워하는 거라면 또 몰라도.”

‘미안하다’와 ‘고맙다’는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다.

나는 유창을 똑바로 마주보기가 힘들어 시선을 내렸다.

유창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누나가 세희 하고는 연락하는 모양이니까.”

“……세희랑?”

듣던 중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유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지금 세희랑 만나서 얘기 중일 겁니다. 걔가 누나 이사 간 집 주소 알아요.”

“내가 만나는 것은 역시 힘들겠지?”

“그럴 것 같네요. 쇼크를 많이 받은 모양이라.”

유창을 통해 들은 유다희의 생활 일부는 역시나 처참했다.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방송마저 접었다.

열혈 활동을 하던 팬클럽 회장직도 사임했고 일체의 모든 SNS 기기들을 끊었다고 했다.

매일 악플과 욕, 음란성 메시지가 미친 듯이 와서 도무지 뭘 쓸 수가 없다나.

예전부터 꾸준히 하던 천사의 집 봉사활동만은 여전히 하는 모양이지만, 요즘은 거리만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통에 그것마저 어려움을 겪는 모양.

유창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말로는 강한 척해도, 몰래 개명이랑 성형 알아보던데. 참……. 그나마 최근에는 선하게 살아서 그런가 쉴드나 동정 여론도 많아졌어요. 자정작용을 하는 네티즌들도 생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받은 상처가 완벽히 치유되지는 않는다.

내가 아무리 떳떳하다고 해도, 남들이 마구 들여다보고 조롱하고 왜곡하고 곡해하는 것은 기분 나쁜 것을 넘어 무서운 것이니.

“…….”

내가 말이 없자 유창이 한 번 더 내 눈치를 본다.

“형님.”

“……응?”

“진짜 잘못된 건 레비아탄이라는 정신 나간 몬스터를 만들어 낸 ‘그놈’이에요. 형님은 게이머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겁니다. 플레이어가 몬스터를 잡는 게 뭐가 잘못입니까?”

유창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냉정히 말해, 그때의 선택은 누나가 한 겁니다. 형님 잘못이 아니에요.”

“…….”

“다만 그때 그런 선택을 했던 제 누나의 마음을 형님께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대신 죽어 준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한 사람이 아니던가.

“당연히 잊지 않아야지. 평생.”

“…….”

그러자 이번에는 유창이 말이 없다.

굳었던 표정이 약간은 미묘해진 상태로.

바로 그때.

끼긱……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세희야!”

유세희, 그녀는 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본다.

하지만 세희의 표정은 전에 없이 싸늘했다.

유세희는 눈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와 유창의 옆에 탁 걸터앉았다.

그러자 유창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야, 왜 괜히 엄한 사람 앞에서 분위기를 잡…….”

“어허! 작은 오빠는 조용히 해! 지금 누구 편이야!”

“아니, 니편내편이 어딨…….”

“스-읍!”

유세희가 인상을 쓰자 유창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시선을 피한다.

……방 분위기가 무덤처럼 변했다.

약간의 침묵 후, 유세희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사부.”

“……응.”

“우리 언니를 어떻게 책임지실 생각이시죠?”

유세희가 묻는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가 생각한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

“일단 법인 차원에서 법률 지원 서비스를 최대한 제공해서 뎀 유니버스 사측과 악플러들에게 응당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땡! 땡! 땡! 땡!”

유세희는 손으로 엑스 자를 그리며 빽 소리쳤다.

나는 한층 더 움츠러든 자세로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전에 마동왕의 정체에 관한 것을 사과해야지.”

“그게 끝?”

“이, 일단은.”

그러자 유세희는 숨을 훅 몰아쉬었다.

“후, 일단은 50점 드릴게요.”

“고, 고맙다.”

“10억 점 만점에요.”

“…….”

내가 고개를 숙이자 유세희는 답답하다는 듯 콧김을 내뿜었다.

“오늘 언니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

내가 고개를 들자 유세희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말을 이었다.

“언니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요. 진정되었다 싶으면 제가 만나게 해 드릴게요. 그 전까지는 혼자 있게 두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세희는 기다렸다는 듯 첨언했다.

“……참. 언니가 사부한테 그랬어요.”

“……?”

“혹시나 자기처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지 말라고. 더 할 일이 있지 않냐고.”

순간, 내 머릿속에 레비아탄과의 격전 당시 유다희가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머뭇거리지 마! 끝까지 가!’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나를 향해 외쳤었다.

‘전 세계 모든 게이머들이 꿈에 그리는 경지야! 나 같은 범재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해 왔던……! 오직 너만이 자격이 있는데 뭘 망설여!?’

내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유세희는 내 귀로 고개를 숙이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끝까지 가’라고 하던데요.”

바로 그 순간.

-띠링!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윤솔: 어진아 이 메시지를 언제 볼지는 모르겠지만…… 저번에 네가 시켰던 일에 진척이……>

<드레이크: 어진. 흰 용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바로 움직일 수 있으니 조속히 연락 바람……>

나는 유세희의 얼굴, 그리고 핸드폰에 온 두 친구의 메시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유다희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아직 누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 그리고 그녀에게 들었던 유일한 메시지는 ‘끝까지 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레비아탄을 쓰러트림으로서 불사조의 복수와 회귀의 비밀에 한 걸음 가깝게 다가섰다.

이제 다음 관문인 화이트 드래곤, ‘무투룡 카프카타렉트’만이 남아 있을 뿐.

…꾸욱!

나는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지금으로서는 어쩔 길이 없다.

유다희를 향한 복잡한 감정은 아직은 가슴 속에 묻어 두어야 할 때.

지금은 일단 기계적으로나마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순서였다.

그래, 유다희의 말마따나 ‘끝’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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