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화 하해(下海)의 왕 (10)
‘푸스스스. 고마워, 파트너.’
‘호호호! 고맙긴, 내 뒤통수를 아무나 치는 건 줄 알아?’
‘……빌어먹을.’
몇 년 전, 악의 고성을 처음 공략할 당시 유다희와 조디악이 벌였던 디버프 싸움이 떠오른다.
당시 조디악은 ‘갹출’ 특성으로 유다희에게 자신의 데미지와 패널티를 몰아 주었다.
그리고 지금, 유다희는 나를 향해 그때의 그 ‘갹출’ 특성을 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티장이 기여도와 보상, 패널티 분배를 진행합니다.
-특성 ‘갹출’이 발동합니다!
-파티장 ‘YOUdie’님께서 ‘레비아탄’의 패널티 분배 비율을 정했습니다.
-레비아탄의 패널티 분배 비율이 ‘9:1’로 책정되었습니다.
-파티장 ‘YOUdie’님에게 ‘레비아탄’의 패널티 90%가 부과됩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 패널티의 대부분이 시전자를 향하고 있다는 것.
이윽고, 레비아탄이 남긴 시커먼 저주파가 모조리 유다희를 향해 휩쓸려갔다.
내가 남겼던 글들은 허공에 부유하다가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고 나머지 별 의미 없는 뻘글들만이 약간 남아 인터넷에 업로드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90%에 해당하는 레비아탄의 저주가 유다희를 옥죈다.
“뭐, 뭐 하는 거야!?”
나는 기겁을 하며 일어났다.
황급히 파티를 탈퇴하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늦었다.
레이드 보상과 패널티가 집계되는 동안에는 파티를 해제할 수 없고 배분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파티장에게 위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유다희가 그동안 게임을 하며 작성한 모든 텍스트들이 홀로그램으로 변해 눈앞에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RE) 어머~ 욕이라뇨ㅎㅎㅎ저 그런 거 못 해용♥
RE) 아 씨 XX같은 것들이 진짜 XXX 트롤 진짜 리폿좀...XX
RE) 다희는 술 같은 거 잘 못 마셔요ㅠㅠㅠ기껏해야 샴페인 쪼끔?
RE) 으,,머리 뽀개지겠다,,,소주는 8병부터는 좀 아닌 듯,,,
RE) 마왕님 굿즈 특허권 등록 프로젝트 발촉했어요~ㅎㅎㅎ
RE) 요즘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나갔나? 몸 뽀사지겠네ㅜㅠㅠ...
RE) 가끔 동생들 미울 때 있지..걔네 뒷바라지하다가 10대 다 갔는데ㅋㅋ그래도 머 어쩌겠어~~~
RE) 아빠 없는게 죄냐? 언니도 아빠 없는데 씩씩하게 잘 산다. 힘내라~
RE) ㅋㅋㅋ미친뇬아~~ 남의 몸무게에 왤케들 관심 많어ㅋㅋㅋ XX키로지롱~
RE) 머..과거에 좀 드럽게 살았으니...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똑바루 살아야지ㅎㅎ...어쩌겠음...
RE) 아고인물진짜극혐;;;
RE) 마동왕 사랑해요!!!! 오늘도 힘내요!!!
RE) 우리 동생들 오늘도 사랑한다. 힘내자! 으쟛 >0< (작성 중 메모-발송취소)
RE) 오늘 살 것 메모-참기름, 쪽파, 쌈장, 앞다리살 한근, 쏘주...
RE) 야이 X XX 이제 사채질 안 한다고~ 흑역사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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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소, 개인정보, 병원기록, 쇼핑 구매내역, 개인적인 문자나 SNS메시지 등등.
모든 것이 공개된다.
개인방송이나 봉사활동 끝나고 투덜거리던 것,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서운했던 점, 신체의 비밀, 콤플렉스 등등도 싹 다 인터넷에 퍼졌다.
물론 그녀가 예전에 하던 사채업이나 호구 등처먹기 등의 과거 역시도 모두.
“…….”
유다희는 고개를 들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무작위로 업로드되는 자신에 관한 글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심해의 어둠과 글자들이 만들어 내는 환한 빛 때문에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다.
“그만! 중단해!”
내 외침이 닿고는 있는 걸까? 유다희는 반응이 없다.
나는 어떻게 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멍하니 섰다.
레비아탄을 잡은 이는 모두 이렇게 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까?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 설정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들지만…… 뎀 유니버스의 총수 윌리엄 링트 윌슨의 악취미적인 상상력을 어느 정도 아는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네티즌들의 반응이 온다.
-머임?-뭔 관종이 자꾸 자기 대화내역을 이렇게 올리냐?ㅋㅋㅋ-여자인 것 같은데?-어? 유다희?? 얘 유명한 겜방 스트리머 아니냐?-대박 뭐 채팅내역같은거 유출됐나본데??-꾸준히 봉사활동하시던 분이네-오, 이 스트리머 예쁘고 입담 유쾌해서 좋아했는데...함 봐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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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들이 유다희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들여다본다.
타인의 치부, 감추고 싶은 은밀한 내면, 그것들에 대한 또 다른 타인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유다희는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다가 스트리머로서도 유명하니 더더욱 화젯거리였다.
……물론, 나쁜 쪽으로.
-와 미친ㅋㅋㅋㅋㅋ알고보니 개더러운X이었네-유다희 ㄹㅇXX이네 사채업ㅋㅋㅋ-지금껏 이미지 포장한거임? 개역겹ㅋㅋㅋ-방송 하차합니다 실망이네요-봉사다니는것도 다 이미지세탁인가보네ㅋㅋㅋ-더러운 년-애비애미없었나보네ㅋㅋㅋ딱티나죠?-응 동생 사연 감성팔이 안통해~~-알고보니 인성 개 빻으셨었네용ㅎㅎ-와;; 유다희 속옷 주문한 내력 보니 사이즈ㅎㄷㄷ하네-다희 무슨 병있나 한번 진료내역 볼까나~~^^-쓰레기 같은 X이 지금껏 방송나와서 가식떤거임?-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죽어주세..-XX는 빨아도 XX다-사람 고쳐쓰는거 아니지ㅎㅎ-아 진짜 이런 X이 팬클럽 회장한다고 XXX고 다녔던거임?ㅡㅡ-유다희 한순간에 훅 가네ㅋㅋㅋㅋ-그래도 나름대로 개과천선했나보네~ 근데 어쩌나? 과거랑 신상 다 털렸는데?ㅋㅋ-응 믿거~-믿고거르는유다희ㅋㅋㅋ-도대체 먼 실수를 했기에 지 대화내역을 다 올리냐?ㅋㅋㅋ그것도 몇 년간 기록을~-XXXX해서 XX같은 Xㅋㅋㅋ~XX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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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처럼 밀려오는 욕설들. 이빨보다 날카로운 악플들. 보는 이의 낯을 뜨겁게 만드는 희롱들.
어마어마한 양의 조소, 비웃음, 성적이고 원색적인 악의들이 유다희 한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나는 요 몇 년간의 기록들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유다희가 나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나를 만나서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 나는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봤었다.
그래서일까. 하얗게 물든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유다희는 나보다도 훨씬 더 덤덤하고 초연했다.
그녀는 뒤돌아섰고 이내 게임 밖으로 메일을 보냈다.
…타닥! …타닥! …타닥!
유다희가 보내는 메일들은 실시간으로 홀로그램화되어 외부로 업데이트되고 있었고 나 역시도 그것을 볼 수 있었다.
RE) TO 방송국: PD님 죄송해요. 이번에 고정 게스트로 출현하기로 한 예능 하차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기회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위약금은 전부 물어드릴……
RE) TO 마교: 부회장님. 저 다희에요. 이번에 마교 회장 자리를 내려놓으려고 해요. 부디 팬클럽을 잘 부탁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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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메시지.
이윽고, 유다희의 모든 텍스트 기록 업로드가 100% 완료되었다.
동시에.
…퍼펑!
레비아탄의 거대한 몸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하얀 지방으로 분해되어 함박눈처럼 펑펑 쏟아지는 레비아탄의 육체.
놈이 만들어 내는 마린 스노우는 향후 5년이 넘도록 이곳 하해에 눈처럼 내려 쌓이겠지.
그 양은 수백 마리의 말향경이 만들어내는 것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띠링!
<보상이 지급됩니다!>
레비아탄을 잡은 대가로 보상도 떨어졌다.
-<‘하해대왕 레비아탄’의 용연향(龍涎香)> / 재료 / S+
한 마도로스의 평생 어치 집념이 담긴 기름.
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선택을 번복할까?
-특성 ‘긴 주마등(走馬燈)’ 사용 가능
에이햅 선장의 짙은 후회가 담겨 있는 작은 유리병, 그 안에는 신비로운 빛깔을 가진 흰 기름이 담겨있다.
성능을 알 수 없는 그것은 자동으로 유다희의 인벤토리를 향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
나는 유다희의 뒷모습을 향해 다가갔다.
자신을 향해 함박눈처럼 펑펑 쏟아지는 레비아탄의 몸과 악플들을 보며 멍하니 서 있는 유다희.
이윽고, 유다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미처 글로는 형용키 어려운 것이었다.
“예전에 나랑 술 마셨던 거 기억해요?”
유다희는 내게 입을 열었다. 존댓말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알기로 유다희와 술을 마신 적은 몇 번 없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건물을 처음 샀을 때, 16층 회의실에 있는 홈 바에서 그녀가 내게 칵테일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려나?
유다희는 깊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보드카 40ml, 피치 리큐어 10ml, 스위트&사워믹스 20ml, 토닉 워터 10ml, 시나몬 파우더 0.5온스, 꿀 한 방울, 잘게 간 얼음을 부채꼴 모양으로 띄우고 말린 뷰글라스(bugloss) 꽃잎 한 장을 올리면 완성.”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그녀가 만들어 주었던 칵테일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은한 무드등 조명이 와 닿아 부서지는 붉은 잔, 가넷의 각진 면마다 어린 영롱한 광택.
끈적하면서도 달콤한, 그리고 독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칵테일.
‘Please tell the truth’, ‘진실을 말해 주세요’라는 이름이었지 아마.
유다희는 다시 한번 내게 말했다.
“‘눈의 기러기의 눈’을 거꾸로 하면 ‘눈의 기러기의 눈’.”
내가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유다희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아이템의 이름은 ‘눈의 기러기의 눈’이 아니라 ‘눈 기러기의 눈’이였어요.”
……그랬나.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저 농담을 고인물일 때 했었던가 마동왕일 때 했었던가?
내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자, 유다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저 슬프게 일그러진 표정.
그마저도 하해의 심연 탓에 그녀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저번에 상하이… 호텔… 업어 줘서 고마웠어. 아니, 고마웠어요.”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입을 열어 뭐라도 소리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당분간… 당분간 얼굴 보기 힘들겠네요. 아니, 힘들겠네. 아니, 겠네요. 아니, 아니……”
유다희는 말끝을 어떻게 닫을지 몰라 여러 번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핏!
환한 빛무리와 함께, 그대로 로그아웃 해 버렸다.
“…….”
나는 뻐끔거리는 자세 그대로 유다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유다희는 그대로 서 있지만 이미 그녀는 로그아웃했다.
그마저도 얼마 뒤, 그녀의 육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 지독하게도 깊고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 비로소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인간.]
[……뿌.]
오즈와 쥬딜로페가 위로하듯 내 어깨를 짚는다.
“…….”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손을 뻗어 상태창을 점검했을 뿐.
<이어진>
LV: 94
HP: 940/940
호칭: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툴루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조의 대리인(특전: 선택) /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특전: 혈족전생) / 시작의 마을 유토러스의 명예 백작(특전: 귀족) /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의 위상(특전: 수전노) / 발록의 뿔을 꺾은 자(특전: 야수) /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특전: 싸움광) / 살인자들의 탑 5층의 주인(특전: 맵 디자인) / / 벨제붑의 아들을 죽인 자(특전: 맹독) /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의 후예(특전: 백전노장) / 저주받은 고목 쟈쿰 벌목자(특전: 고대 신앙) / 심해 스토커(특전: 마찰계수) / 푸른 용군주 버뮤다의 위상(특전: 잠수) / 레흐락과 게슈탈트의 친구(기다림) / 아틀란둠의 왕자(특전: 대심해) /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의 위상(특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레벨이 1 상승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특성이 생겼다.
레비아탄이 쓰던 것에 비해 약발이 조금 떨어져, 타인의 상태창이나 인벤토리, HP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의 능력.
아이템 보상은 따로 없었다.
…털썩
나는 진흙 위에 주저앉았다.
무거운 몸은 부드러운 진흙을 뭉개고 깊이 빠져든다.
심해에 펑펑 내리는 함박눈.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관뚜껑을 열고 나온 이스마엘의 건조한 목소리만이 망망대해에 아득히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