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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36화 (636/1,000)

636화 하해(下海)의 왕 (4)

[이년들이…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이냐? 눈을 들어 내가 누구인지 보아라!]

레비아탄은 기가 막히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이곳으로 내려오고 있는 네 자매들은 레비아탄을 앞에 두고도 막무가내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마치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처럼.

“…아하, 실명 상태에 빠졌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곰치류 몬스터는 가뜩이나 시력이 나쁜데 거기에 쌍검독집게 게의 독 때문에 더더욱 시야가 좁아진 모양.

그러니 눈에 뵈는 것 없이 레비아탄을 상대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겠지.

…콰직!

네 자매 중 맏이인 헬렌이 입을 쩍 벌려 레비아탄의 지느러미를 물어뜯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괴물 곰치는 S급 몬스터란 말이야. 암만 레비아탄이라 해도 쉽게 볼 수는 없을 거다.’

물론 레비아탄은 그런 괴물 곰치보다 최소한 10배 이상은 강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 있는 괴물 곰치들은 네 마리나 되니 어떻게든 비벼 볼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와직! 우지직! 뿌드득!

곰치 네 마리가 레비아탄의 아가미와 지느러미, 꼬리 끝을 물어뜯으며 격렬하게 뒤엉켰다.

한 마리 거대한 뱀의 몸을 휘감는 네 마리 작은 뱀을 보는 듯한 광경.

[…흥, 소용없는 일이지.]

작살을 든 에이햅은 코웃음쳤다.

그리고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

쩍- 우득! 뚜두둑!

레비아탄은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긴 칼의 날과도 같은 이빨들을 드러냈고 그대로 헬렌의 목을 물어 꺾어버렸다.

괴물 곰치의 굵은 목뼈가 부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퍼억!

레비아탄은 뾰족한 꼬리 끝을 작살처럼 휘둘러 곰치 린다의 턱을 꿰뚫었다.

두터운 아래턱을 관통하여 틀어박힌 작살은 곰치의 혀에 구멍을 내는 것도 모자라 위턱을 뚫고 뇌를 곤죽으로 만든 뒤 정수리로 삐죽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두 자매가 죽어나가자 제니와 바비도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도망치기에는 늦었다.

이곳 ‘하해의 저변’에는 나약한 존재를 받아 줄 어떤 구멍도 탈출구도 없으니까.

부글부글부글부글…

레비아탄은 불타는 몸을 움직여 도망치는 제니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긴 것이 긴 것을 휘감아간다.

조이는 힘도 힘이지만, 레비아탄의 전신에서 배어나오는 기름과 그것을 연료 삼아 불타오르는 흰 용의 불꽃은 제니에게 끔찍한 화상을 입혀 놓기 시작했다.

끓는 바닷물에 살점이 익고 비늘이 떨어지며 기름이 자글자글 배어나온다.

결국 제니는 산 채로 통구이가 되었고 더 나아가 잿가루로 변해 토막토막 부서져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막내인 바비뿐이다.

쿠르르륵!

바비는 겁에 질려 온 힘을 다해 내빼고 있었다.

천하의 S급 몬스터가 겁을 먹고 도망가는 추태를 보일 만큼 레비아탄이 뿜어내는 기세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쾅!

하지만 눈이 먼 바비는 절벽의 귀퉁이를 들이받고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우르릉!

절벽에 큰 구멍이 패였다.

붕괴하는 바위들을 콧김만으로 날려버리며, 레비아탄이 돛과 같은 지느러미를 쫙 펼친다.

퍼퍼펑!

레비아탄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부러진 뿔로 바비의 몸을 들이받았다.

살가죽이 찢어지고 내장들이 터져 나왔으며 척추 뼈는 부러지다 못해 뚝 끊겨 버렸다.

바비의 몸은 일격에 두 동강이 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널브러지고 말았다.

곰치 네 자매가 목숨을 잃는 데에는 불과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진짜 괴물 같은 놈일세.”

나는 S급 몬스터 4마리가 실시간으로 공중분해되는 것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예전에 크툴루 모드로 변한 크라켄이 창해룡 버뮤다를 상대로 선전하기는 했지만 결국 찢겨 죽었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고정 S+급 몬스터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비장의 무기가 있단 말이지.’

문제는 타이밍이다.

어느 타이밍에 맞추어 설계한 함정들을 가동시킬 것인가.

상대는 고정 S+급 몬스터, 그 중에서도 하해대왕 레비아탄이다.

윌슨이 친히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했을 정도로 위험한 놈.

조금만 삐끗해도 레이드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불사조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라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했다.

바로 그때.

…콰쾅!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벌어졌다.

두 토막으로 찢겨진 바비의 몸뚱이 잔해 일부가 나를 향해 사납게 날아들었던 것이다.

“엇!?”

레비아탄에만 집중하느라 파편을 못 봤다.

집채만 한 살덩이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피하기가 애매한 타이밍.

바로 그때.

…텅!

내 산소 호스가 팽팽하게 당겨지는가 싶더니 누군가 나를 반대편 절벽으로 끌어당긴다.

“야! 변태!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유다희가 나를 잡아당기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도끼를 들어 바비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콰쾅!

유다희의 근력과 방어력은 상당한 수준이라 이 정도 재해쯤은 어렵지 않게 방어해 낼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들고 있던 도끼를 바라보았다.

-<실망한 사단장의 배틀액스> / 양손무기 / A(A+) / 강화: +9

나 사단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전원 연병장으로 집합!

-공격력 +3,000(+3900)

-최대 HP +30%(+39%)

-특성 ‘연대책임’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갹출’ 사용 가능 (특수)

자신을 제외한 파티원의 스탯을 올려 주는 동시에 자신이 사망 시 파티원에게 디버프를 거는 ‘연대책임’ 특성, 그리고 파티원의 데미지나 상태이상을 서로서로 뿜빠이(?)해 나눌 수 있는 ‘갹출’ 특성이 붙어 있다.

“그거 예전에 ‘악의 고성’ 레이드 때 쓰던 거랑 비슷한데? 그 왜 어둠 대왕 잡을 때 말야.”

그 당시 유다희는 조디악의 ‘갹출’ 특성에, 조디악은 유다희의 ‘연대책임’ 특성에 당해 서로가 서로에게 빅엿을 먹이지 않았던가.

한때 이걸로 조디악을 죽였던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다.

“…남이사.”

그때의 일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유다희는 그저 입을 삐죽일 뿐이다.

그때.

“우리가 남이가.”

나는 유다희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띠링!

<고인물 님이 파티 신청을 하셨습니다>

눈앞의 상태창을 본 유다희는 기가 막히다는 듯 한쪽 눈살을 찌푸린다.

“하아?”

“거 너무 벌레 보듯 보지 마시고. 어때?”

나는 유다희의 ‘연대책임’ 특성이 가져다주는 버프를 노리고 있다.

스탯이 10% 정도 추가되는 것이니 지금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할 것임에 분명했다.

“혹시나 데미지를 입으면 넌 나에게 몰빵 때려도 괜찮아. 나는 회복 수단이 있으니까. 그리고 너는 그냥 살아만 있으면 되지. 나는 그 대가로 버프를 얻고. 어때? 서로 윈윈 같은데.”

예전에 유다희가 내게 했던 제안과 똑같다.

그때는 내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아쉬워 요청하는 처지.

세상일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두 번 생각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좋은 제안인지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다희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슈욱!

이윽고 유다희가 파티 신청을 수락했고 파티 버프에 따라 나의 근력과 스피드가 큰 폭으로 올랐다.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 보자고.”

유다희는 도끼를 든 채 중얼거렸다.

그때.

[다음은 네놈들 차례다.]

심해에 울려 퍼지는 으스스한 목소리.

레비아탄이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죽음의 돌진을 시작했다.

바닷물이 사납게 찢어지며 그 여파가 몰아친다.

그리고 그 여파보다도 빠르게, 레비아탄은 나를 향해 뿔끝을 앞세우고 헤엄쳐 왔다.

유다희가 황급히 내 옷깃을 잡아당긴다.

“야 변태! 너 또 비장의 무기 숨겨 놨지!?”

“음, 어떻게 알았지?”

“당연히 있겠지, 넌 음흉하니까! 어차피 쓸 거면 빨리 좀 써! 무섭단 말야!”

그녀의 말이 맞다.

레비아탄의 버스트 다이브에 제대로 걸린다면 비장의 무기를 쓰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찢겨 죽을 테니까.

나는 여벌의 심장을 가동해 체력을 채우며 각을 재기 시작했다.

은밀히 준비한 비수를 찔러 넣을 틈을 찾기 위해.

하지만.

내 예상보다도 그 ‘틈’이라는 것은 훨씬 빨리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틈을 나보다도 훨씬 빨리 찾아낸 이가 있었다.

[이것이 내가 토해 내는 마지막 숨결이다! 이 괴물 고래야!]

에이햅 선장.

그는 광기 어린 두 눈을 들어 허공으로 뛰어들었고 높이 쳐든 작살을 그대로 레비아탄의 하나 남은 눈에 꽂아 넣었던 것이다.

[오-오오오오오!]

레비아탄이 내지르는 포효 소리가 온 바다를 쩌렁쩌렁 뒤집어 놓는다.

동시에, 레비아탄은 골치아픈 벌레를 털어내듯 거대한 지느러미를 움직여 눈알에 박힌 에이햅을 털어냈다.

…뿌지직!

작살이 크게 흔들린다.

하지만 에이햅은 작살을 쥔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뿌욱!

뾰족한 의족까지 움직여 레비아탄의 눈알에 박아 넣을 뿐이다.

[그-아아아악!]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은 눈이 멀어 버렸다.

‘질투에 눈멀다’라는 표현이 약간은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레비아탄은 무시무시한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홱 틀었다.

그 순간, 사고가 벌어졌다.

…태앵!

에이햅의 작살에 연결되어 있던 돛조르기 밧줄이 해류에 휘날려 사납게 요동쳤다.

그것은 에이햅의 몸을 세차게 강타함과 동시에 올가미 모양으로 휘어져 그의 목에 몇 바퀴나 감겨들었다.

물론 그 밧줄의 끝은 레비아탄의 하나 남은 눈알 정중앙에 박혀있었다.

[오-오오오오!]

레비아탄은 눈에 작살을 박은 채 몸부림쳤다.

그리고는 아까 전, 곰치들이 죽어 널브러진 절벽을 향해 머리를 들이받고 말았다.

콰쾅!

무너지는 절벽, 자욱하게 솟구쳐 오르는 버섯구름.

광폭하게 날뛰는 레비아탄이 만들어내는 혼돈 속, 에이햅은 목에 밧줄 올가미가 걸린 채 그곳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간다.

유언을 남길 기회는커녕 단말마를 뱉을 시간조차 없었다.

아득한 해저의 진흙구름 속, 교수형(絞首刑).

…그것이 내가 본 에이햅 선장의 마지막이었다.

[서, 선장…….]

망연자실한 표정의 이스마엘만이 입을 반쯤 벌리고 있을 뿐이다.

등에 퀴퀘그의 관짝을 짊어진 채로.

이윽고.

…콰쾅!

레비아탄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오오오오!

하나 남은 외눈에서 시뻘건 피를 뿜어내고 있는 괴물 고래!

놈은 멀어 버린 눈에 절규하며 이쪽을 향해 돌격해 온다.

그것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나도 빠른 속도였다.

나는 깎단을 꽉 말아 쥐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다.’

그동안 죽음룡 오즈와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 창해룡 버뮤다를 쓰러트리며 쌓아 온 감이 외치고 있다.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레비아탄을 쓰러트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조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인물 메타로는 부족하다.

불사조의 원수를 갚고 내 회귀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그 절실함이 나로 하여금 오른팔에 힘을 주게 만들었다.

-<악마성좌 마몬의 대지진 건틀릿> / 한손무기 / S+

마몬이 쓰던 거대한 망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산을 두들겨 평지로 만들고, 평지를 두들겨 무저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의 일부가 담겨 있다.

-물리 공격력 +20,000

-특성 ‘대지진’ 사용 가능 (특수)

‘불완전변태’ 특성으로 인해 내 전신이 시뻘겋게 물든다.

열 배나 강력해진 오른팔의 근력이 주변의 바닷물을 부글부글 끓이며 수증기와 물거품을 뿜어냈다.

지금껏 유다희의 시선을 생각해서 마동왕 메타를 쓰지 않았지만… 레비아탄은 그렇게 힘을 아껴 가면서 띄엄띄엄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속도의 버스트 다이브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 방 데미지’가 필요할 때.

부디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오추멜로프의 무한코스튬 반지’가 제 기능을 잘 발휘하기를 바라며, 나는 절벽을 박찼다.

“야! 변태! 어디 가는……!?”

유다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쾅!

나는 레비아탄의 정면을 향해 뛰어들었다.

마지막 승부수를 띄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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