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35화 (635/1,000)
  • 635화 하해(下海)의 왕 (3)

    Man is not made for defeat.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中-

    *       *       *

    <레비아탄>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213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질투와 밀고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깊은 물웅덩이를 솥처럼 끓게 하고 바닷물을 기름가마처럼 부글거리게 하는구나. 보아라! 바다의 그 누가 나와 겨루랴!”

    -레비아탄- <하해왕기(下海王記)

    41:6~19>

    창해룡 버뮤다와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바다를 둘로 나누어 지배하는 존재.

    육지와 바다가 분리된 적이 없던 먼 태고의 시절부터 뭇 악마들의 지존으로 군림해 왔으며 지금껏 수많은 초고위 악마들의 도전을 받아왔으면서도 단 한 번도 옥좌를 내주지 않았던 마계의 일곱 불가살(不可殺) 중 하나.

    하해대왕(下海大王) 레비아탄!

    쿠-구구구구……

    놈이 진흙 밑바닥에서 거대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장 깊은 심연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부상한 레비아탄은 거대한 몸뚱이 전체를 아득한 공허의 중심부로 띄워 올린다.

    산더미 같은 물거품이 융기하는 모습은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놈의 존재를 알 수 있게끔 했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레비아탄은 아직도 흰 용 카프카타렉트의 불길을 온 몸에 휘감고 있었다.

    놈의 피부에서 송글송글 배어나오는 기름은 묘한 향기와 함께 희게 타오른다.

    레비아탄의 머리와 목, 배와 등 지느러미에서 타오르는 백빛의 불꽃과 부글부글 끓는 바닷물, 아가미에서 떨쳐내는 물거품은 마치 놈의 몸을 휘감고 있는 갈기털처럼 보였다.

    …….

    아득한 공허 속에 흐르는 기름 끓는 소리, 그리고 묘한 향기.

    “…여전하네.”

    나는 레비아탄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위용에 이를 악물었다.

    머릿속에는 놈과 처음 만났던 만마전 땅굴에서의 기억부터 불사조가 소멸하던 그 순간까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너는 낚시로 레비아탄을 낚을 수 있느냐?

    그 혀를 끈으로 맬 수 있느냐?

    코에 줄을 꿰고 턱을 갈고리로 꿸 수 있느냐?

    어부들로 하여금 값을 매기게 하고 상인들이 골라 사게 할 수 있느냐?

    그 살가죽에 창을, 머리에 작살을 꽂을 수 있느냐?

    손바닥으로 만져만 보아라.

    다시는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리라.

    무시무시한 다리 이야기를 어찌 빼놓으랴!

    당당한 억센 체구를 어찌 말하지 않겠느냐?

    겹으로 입은 그 갑옷을 누가 젖힐 수 있느냐?

    누가 그 턱을 벌릴 수 있느냐?

    줄지어 선 저 무서운 이빨.

    방패 사이사이로 고랑진 등가죽에 단단한 돌인장으로 봉인한 것 같은 저 등.

    재채기 소리에 불이 번쩍하고, 아가리에서 내뿜는 횃불, 퉁겨 나오는 불꽃을 보아라.

    연기를 펑펑 쏟는 저 콧구멍은 차라리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로구나.

    목구멍에서 이글이글 타는 숯불, 입에서 내뿜는 저 불길을 보아라.

    목덜미엔 힘이 도사려 있어 그 앞에서 절망의 그림자가 흐느적일 뿐.

    뗄 수 없이 마구 얽혀 피둥피둥한 저 살덩어리를 보아라.

    바위같이 단단한 심장, 맷돌 아래짝처럼 튼튼한 염통.

    칼로 찔러 보아도 박히지 않고 창이나 표창, 화살 따위로도 어림없다.

    쇠를 지푸라기인 양 부러뜨리고 청동을 썩은 나무인 양 비벼 버린다.

    몸뚱이를 검불처럼 여기며 절렁절렁 소리 내며 날아드는 표창 따위에는 코웃음 친다.

    뱃가죽은 날카로운 질그릇 조각과 같아 타작기가 할퀸 땅바닥처럼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번쩍 길을 내며 지나가는 저 모습, 흰 머리를 휘날리며 물귀신같이 지나간다.

    깊은 물웅덩이를 솥처럼 끓게 하고 바닷물을 기름가마처럼 부글거리게 하는구나.

    지상의 그 누가 그와 겨루랴.

    생겨날 때부터 도무지 두려움을 모르는구나.

    모든 권력가가 그 앞에서 쩔쩔매니.

    …보아라!

    모든 거만한 것들의 왕이 여기에 있다!

    -『욥기』 41:6~19-

    “오이오이, 빚을 갚으러 왔다구. ‘하해의 왕’씨.”

    나는 양손에 두 자루의 깎단을 쥔 채 눈앞의 심해대괴수에게 맞설 준비를 마쳤다.

    오즈가 내 어깨에 앉아 음침하게 웃는다.

    [큭큭큭. 저 미끄덩거리는 장어 놈 따위, 나의 전성기 시절이었다면 감히 내 눈도 못 마주쳤을 것이거늘…….]

    [호에엥 뿌.]

    “‘어이 오씨. 아가리 여물고 산소 호스나 정리해’라는데?”

    쥬딜로페가 오즈의 머리를 딱콩 때린다.

    유다희가 그 옆에서 쥬딜로페의 말을 통역해 주고 있었다.

    한편.

    이쪽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는 레비아탄을 드디어 목격한 유다희와 이스마엘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란다.

    [세, 세상에! 저것이 바로 선장이 말했던 ‘기름의 근원’인가!?]

    “꺄아아아악! 저게 뭐야! 저런 걸 어떻게 잡아!”

    아니, 잡을 수 있다. 잡으려고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니까.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드디어 만났군. ‘향기로운 기름’!]

    에이햅은 시뻘겋게 변한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손에 단단히 쥐여있는 고래잡이 작살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유다희 역시 재빨리 제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도끼와 방패를 들고 눈앞의 레비아탄을 노려본다.

    “그, 그래. 끝까지 가 보는 거야.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그리고 그와 동시에, 레비아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

    무시무시한 해류가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친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멀어지는 레비아탄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지난번 불사조의 영역에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이동속도다.

    그때도 빨랐지만 지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오로지 미친 듯이 요동치는 해류만이 놈의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디서 오는 거지?’

    나는 약간 당황했다.

    적이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있을 때는 최대한 벽 쪽으로 붙어야 한다.

    습격당하는 방위를 하나라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햅은 벽으로 붙지 않았다.

    다만 양손의 작살을 힘차게 아래로 내뻗었을 뿐이다.

    […거기냐!]

    동시에.

    뿌욱-

    수류가 몰아치는 소리에 살가죽 터져나가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아아아악!]

    레비아탄이 내지르는 소리가 공허 속을 쩌렁쩌렁 채운다.

    에이햅은 날카로운 작살을 레비아탄의 아가미 아랫부분에 찔러 넣고 있었다.

    쿠르르르륵!

    하얀 불꽃이 작살을 휘감아 온다.

    [향기로운 기름!]

    에이햅은 레비아탄의 몸에서 송글송글 배어나오는 흰 기름을 보며 전율했다.

    그는 작살을 쥔 반대편 손으로 갈퀴를 들어 레비아탄의 피부를 덮고 있는 기름을 긁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에이햅의 허리춤을 낚아채 뒤로 물러나는 이는 이스마엘이었다.

    [선장, 기름에 불이 붙어 있습니다! 이대로는 물속에서 타 죽어요!]

    [놔라! 저건 내 기름이야! 불 따위에 타게 둘 수 없어!]

    에이햅은 광기에 물든 얼굴로 계속해서 작살을 휘저었다.

    …푹!

    작살 하나가 레비아탄의 몸에 틀어박혔다.

    에이햅은 그것을 미처 수거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섰고 이내 등에서 새로운 작살 하나를 바로 뽑아들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레비아탄의 몸에 원래 박혀 있었던 작살 19개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벌레 같은 것들.]

    레비아탄은 에이햅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내 쪽을 돌아본다.

    쩍- 벌어지는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극저온의 수류가 응집해 든다.

    창해룡 버뮤다의 힘에 뒤지지 않는 소용돌이, 말스트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저거 맞으면 아픈데.’

    사실 아픈 정도가 아니다. 몸이 원자 단위로 바스라질뿐만 아니라 이 주변의 지형이 크게 변하겠지.

    나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아무리 심해 특성이 있다고 해도 바닷속 최고의 공격속도를 자랑하는 레비아탄의 광역딜을 피하기 위해서는 죽어라고 노력해야 한다.

    쩌저저저저저적!

    레비아탄이 뿜어내는 냉기 브레스에 거대한 브리니클이 형성된다.

    이 죽음의 고드름은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뿐만 아니라 막강한 파괴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수류와 고드름에 피격당한 절벽이 움푹 꺼졌고 버섯 모양의 진흙구름이 거대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허공에 흩날리는 암초 파편들을 박차고 위로 헤엄쳤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를 상대로 바다에서?]

    레비아탄은 위로 용솟음쳐 나를 추격해 온다.

    이대로 가다간 잡힐 위기!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위쪽으로 피하려 했다.

    바로 그때.

    …팽!

    내 허리에 감겨져 있던 산소줄이 바짝 당겨졌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절벽에 붙어 있던 유다희가 강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덕분에 나는 근소한 차이로 레비아탄의 이빨을 피해 절벽으로 붙을 수 있었다.

    원래 피하려던 방향과는 달랐지만… 이쪽도 뭐 나쁘지는 않지.

    “땡큐. 빚졌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유다희가 빽 소리친다.

    “야 변태, 저런 걸 어떻게 잡아! 저거야말로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니잖아!”

    “어허. 잡을 수 있다니까. 그러니까 여기까지 내려왔지.”

    나는 한 번 더 아까의 대사를 읊었다.

    …한데?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녀석은 에이햅 말고도 또 있는 모양이다.

    [음?]

    [어엇?]

    에이햅과 이스마엘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무언가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머리 위로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것은 딱딱한 부스러기.

    바로 게딱지의 파편이었다.

    눈처럼 펑펑 쏟아지는 게의 시체들, 그것은 분명 쌍검독집게 게였다.

    수많은 게 껍데기들이 눈처럼 쏟아지는 너머로 커다란 격자무늬가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내가 늘 쓰는 방식이지. 이독제독이랄까.”

    나는 씩 웃으며 반가운 손님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아아아아아악!]

    [그르르르르…]

    [오-오오…]

    [캬아악!]

    네 자매.

    위험등급 S급의 괴물 곰치 네 마리가 사육장을 탈출해 이곳 하해의 밑바닥까지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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