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33화 (633/1,000)
  • 633화 하해(下海)의 왕 (1)

    <부글부글 미더덕> -등급: A+ / 특성: 하수인, 자폭

    -서식지: 하해(下海)

    -크기: 3m

    -구멍을 막고 있는 기분 나쁜 살덩어리.

    가끔씩 혼자서 움찔움찔거리는 꼴이 무언가 불길하다.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터트려 보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도토리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기묘한 몬스터는 자신의 몸에 충격이 가해지는 즉시 엄청난 수압으로 뜨거운 물을 분출시킨다.

    문제는 놈의 입수공과 출수공 역할을 하는 입과 항문이 자기가 만들어 내는 수압을 견디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놈이 내장을 쥐어짜 뱃속의 뜨거운 물을 토해내는 순간, 외피와 내장들이 죄다 터져나가며 큰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빠바방!

    뜨거운 수류가 터져나와 주변을 휩쓸어갔다.

    물론 나는 일찌감치 피해 있었기에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미더덕이란 어뢰와도 같은 존재지. 던전 속에서 보물상자인 척하는 미믹(Mimic)보다도 더 악질이야.”

    해물탕이 다 식은 줄 알고 먹다가 미더덕을 잘못 씹어 입 안에 화상을 입어본 사람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내 옆의 빙벽에 찰싹 붙어있던 유다희는 볼멘소리를 칭얼거린다.

    “쳇, 뭐야. 저 정도 폭발이라면 내 방어력으로도 가드할 수 있다고. 나 이래봬도 나름 탱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다.

    콰쾅! 우지지지직! 퍼퍼퍼펑! 우르릉! 뻥!

    하해의 입구에 도사리고 있던 미더덕들은 하나가 아니었을 뿐더러 다른 개체의 폭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우르르 무너지는 얼음굴을 본 유다희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탱이 뭐?”

    “……아니 그냥. 고맙다고.”

    유다희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인다.

    나는 폭발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뒤 얼음굴을 들여다보았다.

    뜨거운 수류가 휩쓸고 간 얼음구멍은 아까보다 훨씬 더 넓어져 있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바닷물을 아직도 부글부글 끓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넋이 나간 표정의 이스마엘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퀴, 퀴퀘그……퀴퀘그가.]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앞의 구덩이를 바라본다.

    암흑의 핵심처럼 검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구덩이 근처에는 퀴퀘그가 들고 있었던 전등이 나뒹굴고 있다.

    끊어진 산소 호스만이 물거품을 보글보글 뿜어내고 있을 뿐.

    “……이런.”

    나는 눈을 감았다.

    방금의 폭발은 사고였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던전을 탐험하던 도중 미믹류 몬스터에게 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까지 사선을 함께 넘던 동료가 사라진 것은 기분을 착잡하게 가라앉힌다.

    아무리 NPC라고 해도 말이다.

    이스마엘은 통곡했다.

    [내 잘못이야! 퀴퀘그는 나를 구하려고 나섰다가 그만……!]

    유다희 역시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가엾은 퀴퀘그. 열병에 걸려 고생하더니 결국 이런 뜨거운 곳에서.”

    그때.

    덜그럭-

    통곡하는 이스마엘의 앞으로 무언가가 나뒹굴었다.

    그것은 퀴퀘그가 항시 짊어지고 다니던 것,

    검은 나무로 만들어진 관짝이었다.

    …턱!

    관짝에 연결된 사슬을 잡아 들어올린 이는 바로 에이햅이다.

    그는 사슬 끝부분을 이스마엘에게 건네주고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갈 준비나 해.]

    [서, 선장님! 퀴퀘그가……!]

    이스마엘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에이햅을 돌아본다.

    하지만, 이내 이스마엘은 말을 멈추고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햅의 두 눈에서는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광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질질 짜놓은 눈물이 부활의 묘약이라도 된단 말이냐?]

    […….]

    [내려갈 준비나 해.]

    그는 다시 한 번 똑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       *       *

    우리는 폭발로 인해 확 넓어진 얼음굴 안으로 잠수해 내려갔다.

    두꺼운 얼음층 아래에는 광활한 암흑만이 펼쳐져 있다.

    끔찍할 정도로 높은 수압, 얼음보다도 더욱 차가운 물,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둠과 정적만이 넘실거리는 이 곳.

    -띠링!

    <‘하해(下海)’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우리는 드디어 ‘바다 아래의 바다’로 진입한 것이다.

    엄청난 부력 탓에 몸은 계속해서 위로 솟구쳐 오른다.

    나는 닻이 매달려 있는 커다란 사슬 중간중간에 돌덩이나 납 뭉치 등을 매달아 무게를 무겁게 해 잠수해야 했다.

    쩌적- 쩌저저적-

    잠수복 위로 서리가 얼어붙었다 부서져 나갔다를 반복한다.

    피쿼드 화산의 열기는 더 이상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 뜨겁고 매캐하던 공간은 잠깐 사이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다.

    에이햅 선장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 밑부터는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간 적이 없어.]

    “다른 동료들은?”

    유다희가 묻자 에이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야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겠지. 해골만 남아서.]

    “…….”

    [스타벅, 스텁, 패들러, 플라스크, 테슈테고, 다부… 모두 죽었어. 모두.]

    그러자 뒤에 따라오던 이스마엘이 한마디 했다.

    [퀴퀘그.]

    […….]

    [퀴퀘그!]

    […….]

    에이햅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퀴퀘그의 관을 짊어지고 있는 이스마엘은 말수가 확 줄어서 내려오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에이햅을 따라 넋 나간 표정으로 잠수할 뿐이다.

    가끔씩 ‘퀴퀘그’, ‘관짝’ 혹은 ‘그 놈’ 따위의 단어를 중얼거리면서.

    유다희는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짐짓 힘차게 외쳤다.

    “으쌰! 이제 진짜 다 왔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자고!”

    하지만 에이햅이나 이스마엘은 정해진 대사를 읊조리는 NPC이고 플레이어라고는 나 혼자뿐이다.

    […….]

    […….]

    “…….”

    그리고 에이햅과 이스마엘은 하해로 내려와서부터는 프로그래밍 된 대사가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나야 뭐 원래 레이드를 할 때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그 사실을 깨달은 유다희는 한 번 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꼬르륵!

    우리는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하해의 바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아간다기보다는 가라앉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수류가 전혀 없어 오싹할 정도로 정적인 바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헤엄친다는 느낌도 딱히 들지 않는다.

    그냥 차가운 얼음 속에 얼어붙어 있는 듯한 감각.

    마치 관짝에 넣어진 채 망망대해 한복판으로 내던져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 버뮤다 레이드 때 생각나네.’

    쇠공 안에 갇힌 채 심해로 가라앉는 그 기분 나쁜 감각은 아마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참 유다희 덕을 많이 봤었는데.’

    새삼 고마운 마음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리다가 내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유다희와 눈이 마주쳤다.

    유다희는 가시복어마냥 톡 쏘아붙인다.

    “왜 뭐.”

    “……아냐.”

    그래도 이렇게 대화를 할 상대가 하나라도 있으니 심해로 가라앉는 과정이 마냥 무섭고 답답하지만은 않다.

    바로 그때.

    “……어?”

    유다희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빛을 뿜어내는 큼지막한 발광체였다.

    심해의 공허 속을 유령처럼 부유하는 이 기묘한 덩어리는 반투명한 보랏빛을 내뿜고 있었다.

    가냘픈, 어둠 속인지라 더욱 빛나는, 보고 있노라면 홀려 버릴 것 같은 그런 빛.

    하지만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가까이 다가간다고 해서 딱히 따듯하다거나 그런 것은 일절 없다.

    “와, 그래도 예쁘긴 예쁘네.”

    유다희는 해파리를 향해 조금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자 에이햅이 작살을 들어 그런 유다희를 가로막았다.

    [저 해파리에 접근하지 마시게.]

    “……엥? 왜?”

    유다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굳이 에이햅의 대답 없이도 그녀의 의문은 곧 풀렸다.

    …꾸르륵! 퍽!

    위에서 가라앉은 돌덩이 하나가 해파리의 갓 위로 떨어졌다.

    아마도 미더덕 폭발의 잔해물인 것 같았다.

    그러자.

    파지직! 파직!

    돌에 맞은 해파리는 몸에서 전기를 내뿜더니 그대로 찢어져 버렸다.

    네 조각으로 찢어진 해파리의 갓에서는 또다시 새로운 촉수들이 돋아난다.

    그 뒤 작지만 완전한 해파리의 모습을 갖춘 채 또다시 하늘하늘 공허를 부유하기 시작했다.

    [저 해파리들은 공격당하면 분열하지. 전류를 뿜어내는데다가 독까지 품고 있어서 수가 불어나면 상대하기 귀찮다고.]

    에이햅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해파리들을 피해 멀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쿠르르륵……

    갑자기 묵직한 해류가 뒤에서 몸을 떠밀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바다가 이렇게 꿈틀거린다는 것은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저 어둠 너머에서 말이다.

    [……쉿!]

    에이햅이 작살을 들어 나와 유다희의 앞을 막았다.

    이윽고.

    …퍽!

    전구가 터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가장 먼 곳에 있던 해파리의 빛이 꺼졌다.

    …퍽!

    그 다음으로는 두 번째로 먼 곳에 있던 해파리.

    …퍽!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세 번째로 먼 곳에 있던 해파리였다.

    뭔가가 이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해파리가 내뿜는 빛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해파리가 내뿜는 빛 때문에 그림자의 주인이 가진 거대한 몸의 실루엣이 언뜻언뜻 엿보인다.

    그것은 구불구불 굽이지는, 굵고 길쭉한 몸을 늘어트리고 있는 거대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그놈’이다!]

    이스마엘이 겁에 질린 채 외쳤다.

    하지만 에이햅은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어둠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흉조(凶兆)를 들여다본다.

    그는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크기가 훨씬 작아. 저건 다른 놈이야.]

    동시에.

    …퍽!

    마지막 해파리의 빛도 꺼졌다.

    …….

    모든 빛이 사라진 지금, 바다는 완전한 어둠과 정적에 삼켜졌다.

    이윽고, 저 앞쪽으로 무언가가 지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인간 따위는 한순간에 벌레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것이다.

    에이햅이 씹어 내뱉듯 입을 열었다.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군. ‘네 자매’들의 영역에.]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와 유다희의 귓가에 으스스한 알림음이 메아리친다.

    -띠링!

    <히든 던전 ‘네 자매 사육장’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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