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2화 바다 밑의 시추꾼 (4)
하해(下海). 바다 아래의 바다.
에이햅은 충혈된 눈으로 깊은 시추 구멍을 내려다본다.
[해저의 바닥. 근원암(根源巖)을 뚫고도 그 밑으로 한참을 더 내려가다 보면 뭐가 나오는 줄 아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은 지구평면설을 기초로 한다.
커다란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대륙. 그리고 바다의 밑에는 단단한 지반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밑으로 더욱 파고든다면?
무저갱, 심해보다도 더 깊은 그곳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 것인가?
에이햅은 심해에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탁하고 불안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다 밑의 지반은 진흙과 모래로 덮여 있지. 마치 사막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것을 뚫고 내려가다 보면 아주 단단한 얼음층이 있어.]
그것은 실로 믿기 힘든 말이다.
활화산이 들끓고 있는 이 열해(熱海)의 사막 밑바닥에 얼음이 있다니?
하지만 뒤이어진 에이햅의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그 얼음층의 밑에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는 바다와는 다른 ‘또 다른 바다’가 존재한다.]
그러자 유다희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진짜지? 진짜 바다 밑에 또다시 바다가 있다는 거지?”
[당연하지. 바다의 바닥 아래 격리되어 있는 또 다른 바다, 그것은 지난 수 억 년간 고립되어 있던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야. 위의 바다(上海)와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기름의 근원도 거기에 있는 거고? 확실한 거야?”
유다희가 재차 묻자 에이햅은 씩 웃었다.
[시장. 나를 믿으라고. 나는 이미 한번 그곳 ‘하해(下海)’에 다녀온 적이 있으니까.]
에이햅은 슬며시 잠수복 아래 바지 밑단을 걷어 올렸다.
고래의 뼈로 만들어진 의족이 날카로운 끝을 빛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흐흐흐, 이건 ‘통행료’였다. 제법 값싸게 먹힌 셈이야. ‘그 놈’을 만난 것 치고는 말이지.]
에이햅의 두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그런 에이햅을 불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하해 근저리에서 ‘그놈’을 또 마주치긴 싫은데… 하지만 향기 나는 기름을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짐승에게 복수를 하겠다니…… 미친 짓이야. 하지만 에이햅 선장 또한 한 마리의 상처 입은 짐승이리니.]
그러자 대화를 가만히 듣던 유다희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나를 쳐다본다.
“……야, 변태. 나 왠지 조금 무서워졌는데. 이 밑에 뭔가가 있어?”
별로 비밀일 것도 없어서 나는 그냥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하해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지. 향기로운 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꼭 만나야 할걸?”
“……하해의 왕? 뭐야 그게? 크라켄 보다 쎈 몹이야?”
유다희는 자신감 반 불안함 반으로 묻는다.
뭐 가만있다 보면 알게 될 테니 굳이 대답을 할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한편, 나는 혼자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해의 왕이라.’
상해의 왕은 창해룡 버뮤다였다.
그러니 하해의 왕은 누구인지 안 봐도 뻔하다.
‘문제는 하해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먼지, 또 하해 안의 구조와 생태계는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인데…….’
그때.
고민하고 있던 내게 에이햅이 눈을 반짝 빛냈다.
[이봐. 그 귀걸이 멋지군.]
“……아, 이거?”
나는 귀를 만지작거렸다.
내 귀에는 크라켄의 알껍질로 만들어진 귀걸이가 빛나고 있다.
에이햅은 씩 웃었다.
[상해에 서식하는 큰 문어에 대한 전설은 나도 익히 들었지. 직접 본 적은 없지만서도.]
“그래? 하해의 왕과 비교하면 어떻지?”
[감히 비교할 수도 없지. 놈에 비하면 문어 따위는 그냥 먹잇감 나부랭이에 불과할걸?]
그 말은 어느정도 맞다.
하지만 에이햅은 크라켄이 크툴루 모드로 변한 것은 못 보았을 테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
크툴루 모드로 변한 크라켄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었다.
그 무시무시한 창해룡 버뮤다를 한순간이지만 꼼짝도 못하게 옭아매었을 정도였으니까.
한편 유다희는 바다 내에 크라켄보다 강한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예전에 크라켄을 상대로 악전고투를 벌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 아니. 그런 몬스터가 기름을 지키고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이 사기꾼 낙타야!”
[큭큭큭, 시장. 진정하라고. 그 모든 위험을 각오하고서라도 ‘향기로운 기름’은 꼭 손에 넣어야 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보물이니까.]
보물이라는 말에 유다희가 약간 진정하는 기색이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양 어깨 사이에 파묻고는 슬쩍 물었다.
“크흠. 크흠쓰. 그래, 이 기름이란 게 대체 뭐길래 그래?”
유다희는 방금 전 작은 구멍에서 얻었던 얼마 안 되는 자투리 기름을 들어 보인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 찰랑거리는 흰 기름.
-<하해(下海)의 기름> / 재료 / A+
이곳까지 기름을 캐러 내려오는 이들은 모두 깊은 후회를 품은 채 나락까지 내몰린 이들이다.
만약 삶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들은 과연 다시 기름을 캐러 이곳까지 내려올까?
-특성 ‘짧은 주마등(走馬燈)’ 사용 가능
이것은 대체 어떤 효능을 가지고 있기에 여기 있는 마도로스들이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하는 걸까?
에이햅이 이 기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단지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비싸기 때문만은 아닌 듯싶었다.
[흐흐흐흐, 이 신비로운 기름을 몸에 바르면 모든 주름들이 없어지지. 말 그대로 젊어지는 거야.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말야. 미용에도 그만이고 향수로도 좋고…… 아가씨들에게도 인기 만점일걸?]
에이햅의 말을 들은 유다희는 혹하는 기색이었다.
이내 그녀는 유리병을 열어 아주 약간의 기름을 얼굴에 발라보았다.
그러자.
스르륵……
유다희의 얼굴에 있던 미약한 주름살들이 완전히 사라진다.
“오? 진짜네?”
유다희는 반색했지만 이내 이 미용 효과가 게임 캐릭터에만 한정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은 풀이 죽었다.
“……에이, 그래도 뭐 향기는 좋으니까. 또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싸다고 하고. 후후후.”
그녀의 두 눈에서는 $표시가 반짝거린다.
한편, 나는 퀴퀘그의 옆에서 땅을 파내려가고 있었다.
과묵한 퀴퀘그는 그래도 묻는 말에는 잘 대답해 준다.
[……하해의 구조를 알고 싶다고?]
내 말을 들은 퀴퀘그는 검게 패인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는 조금 망설이던 끝에 입을 열었다.
[나도 직접 본 적은 없다. 다만 에이햅 선장에게 들은 게 있지.]
전투에 앞서 맵의 구조를 파악해 놓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나는 퀴퀘그가 전달해 주는 정보를 스킵하지 않고 잘 들었다.
[하해의 면적은 약 1만 4000㎢, 길이는 230㎞, 너비는 50㎞이다. 최고 깊이는 1,200m 정도로 추정된다. 아틀란둠의 왕성 시계탑을 기준, 동남쪽으로 1,260㎞ 지점에 있으며 4,000m 두께의 빙하 밑에 도사리고 있지. 하해의 물은 상해의 물보다 염도가 훨씬 높고 수온은 훨씬 낮다. 수십만 년 전 빙하의 하부가 지열에 의해 녹아내리면서 형성된 거대한 공동(空洞)으로 영하 60˚에 달하는 맹추위에도 얼지 않는 이유는 아마 기름의 근원(根源)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체불명의 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면적 정도 된다는 거네. 그리고 그 밑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는 에이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군.’
두터운 사막층과 얼음층에 갇혀 오랜 시간 동안 외부와 고립되어 있던 공간.
안에서 어떤 종류의 생명체가 어떤 진화체계를 이루며 살아왔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그곳에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을 한 존재.
레비아탄(Leviathan)!
나는 이 녀석을 잡으러 이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잠해 내려가는 것이다.
“좋았어! 나는 끝까지 간다 이거야!”
유다희는 향기로운 기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잔뜩 분발하며 곡괭이질을 한다.
나 역시 열심히 삽질을 했다.
이윽고, 에이햅이 말한 대로 모래와 진흙층이 끝나자 무른 석회암 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마저 한참을 뚫고 내려가자 단단한 얼음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위의 열해에서는 화산들이 폭발하고 있는데 이 밑의 얼음들은 굳건하게 얼어붙은 채 미동도 없다.
세계관 설정상 지금껏 수십만 년 동안 한 번도 깨어난 적이 없던 극저온의 바다.
그때.
“……엇?”
나는 삽질을 멈췄다.
보글보글보글……
얼음 속, 지금껏 갇혀 있던 공간에 구멍이 나자 외부로 통하는 구멍을 따라 무언가가 솟구친다.
그것은 흰색의 기름. 향기로운 기름이었다.
“오옷! 기름! 한 방울도 놓칠 수 없지!”
유다희가 재빨리 자루로 기름을 가두었다.
그러는가 싶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그 자루를 내게 내민다.
“크흠! 야 이거.”
“……?”
“니가 발견했잖아.”
나는 기름 같은 거 필요 없는데.
내가 자루를 받아들자 유다희는 계속 헛기침을 해 대면서 생색을 낸다.
“내가 원래 어? 이렇게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이야. 분배에 있어서는 아주 칼이에요… 이것이 게이머의 미덕이자 파티 플레이의 본분……”
아쉽게도 그녀의 말에는 [SKIP] 버튼이 없다.
나는 자루에 담긴 기름을 대충 이스마엘에게 건네고는 방금 뚫은 구멍을 살폈다.
“……흐음. 이건.”
뭔가 감이 온다.
나는 삽으로 구멍을 넓혔다.
얼음이 퍽 소리를 내며 깨지자, 이내 그 안에 텅 빈 공간이 드러났다.
“헐!?”
유다희가 깜짝 놀라 하는 것이 보였다.
그 밑으로 드러난 얼음공동에 파묻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잠수복을 입은 한 구의 해골이었다.
뒤늦게 그것을 본 에이햅의 눈이 침중한 빛을 띤다.
[전(前)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해골이로군. 이것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맞게 찾아왔다는 뜻이다.]
보물을 찾아가는 길에서 시체는 곧 이정표이다.
지금은 표식으로만 남아버린 한때의 동료를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복잡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유다희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이게 뭐지?”
그녀가 본 것은 해골만 남은 스타벅의 손가락이었다.
스타벅의 검지는 아래쪽에 있는 얼음바닥에 무언가를 새겨 넣고 있었다.
아마도 죽기 전에 남긴 말인 듯싶다.
나는 물거품을 걷고 등불을 들어 올려 얼음굴 아래를 비추어 보았다.
그곳에는 조악하게 음각된 글귀 한 구절이 보였다.
finit hic regnum Dei
[……하느님의 영역은 여기까지.]
이스마엘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순간, 그의 눈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빛이 깃들었다.
열망, 후회, 탐욕, 그리고 공포.
옛 동료의 해골에서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나로서는 짐작할 길이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별로 좋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이스마엘은 곡괭이를 높게 들었다.
그리고 스타벅의 해골이 위치한 곳의 얼음을 힘차게 내리찍었다.
순간.
나는 곡괭이의 끝이 향하고 있는, 곧 박혀들 곳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목격했다.
‘……저건?’
그것은 분명히 내가 아는 것이었다.
작은 살점 덩어리처럼 생긴 동그란 구체.
분명 하나의 몬스터였다.
그것도 건드리면 안 되는, 아주 위험한 종류의.
“아, 안 돼! 그걸 건드리면!?”
내가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이스마엘의 곡괭이가 스타벅의 두개골을 뚫고 박히는 순간, 안쪽에 있던 몬스터에게도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재빨리 옆에 있던 유다희를 밀쳤다.
“으악! 뭔데!?”
유다희가 깜짝 놀라 외친다.
나는 급하게 말했다.
“해물탕 먹어 봤어?”
“……어? 당연하지.”
“그 안에 미더덕 들어 있는 거 씹어 본 적 있어?”
“……뭐?”
유다희가 뭔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콰쾅!
방금 전까지 이스마엘이 들어가 있던 구덩이에서 엄청난 기세의 폭발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