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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31화 (631/1,000)
  • 631화 바다 밑의 시추꾼 (3)

    ‘……옛날 생각나네.’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머릿속에는 과거 쪼렙 시절의 내가 열심히 배에 타 노를 젓고 있다.

    ‘노! 저어! 빨리!’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고 드레이크 역시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불타 가라앉은 섬.

    그리고 우리는 그 섬의 주인이었던 ‘여덟다리 대왕 큘레키움’이 떨군 아이템을 수거하려 하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기둥.

    분명 양손무기 특유의 붉은 빛이다.

    큘레키움은 고정 S+등급 몬스터가 아니었기에 떨구는 아이템의 등급은 A~S급 사이에서 랜덤으로 정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최초 클리어였기 때문에 무조건 큘레키움의 위험등급과 같은 등급의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건져! 무조건 건져야 해!’

    우리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아이템을 향해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하지만.

    꼬르륵-

    결국 S급 양손무기는 물 밑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큘레키움의 폭주를 피해 너무 멀리 도망간 것이 패인이었다.

    ‘……아아아아 세상에. S급 아이템을 이렇게 날려 버리다니.’

    드레이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절규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각- 까각- 끼기긱-

    다만 깎단을 들어 S급 아이템이 사라진 곳의 위치를 배 난간에 새겨놓았을 뿐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

    강을 건너던 도중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해 놓고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상황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내가 배에 새겨 놓았던 것은 이 아이템이 가라앉은 곳의 위도, 경도 좌표 값이었으니까.

    ‘(36.2,146)인가. 꽤나 깊겠군.’

    장소만 알면 반드시 건져올 수 있다.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

    ‘지금 가서 바로 건져올까?’

    ‘……아니, 우리 둘만으로는 가기 힘든 구역이야. 다음을 기약해도 충분해.’

    어떤 무기가 떨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작정 탐사할 수는 없었다.

    까딱하면 비효율적인 탐사과정 탓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위험이 있었으니까.

    ‘조만간 수거하러 올 거야.’

    나는 좌표값을 잘 기억해 둔 채로 노를 저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그런데 그 아이템을 여기서 보네.”

    나는 에이햅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떨어트린 아이템은 바다에 가라앉았고 해저를 누비며 시추를 하던 에이햅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나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언젠가 수거하러 갈 계획이었는데…… 소유권을 빼앗겨 버렸군.’

    하지만 뭐,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저들은 NPC이고 아이템이야 다시 넘겨받으면 그만이니까.

    애초에 에이햅은 기름을 찾는 데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한 존재에게 저 아이템을 넘겨주기로 했다.

    나를 제외한 저 두 명은 모두 NPC이니 이 경우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보상은 내게로 올 것이다.

    나는 원래 내 것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에이햅의 손에 걸려 있는 아이템에 주목했다.

    -<거미여왕의 부름호각> / 양손무기 / S

    이 세상 모든 거미들의 최종결정권자.

    그녀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거미는 없는 모양이다.

    -공격력 +500

    -특성 ‘군락’ 사용 가능

    -특성 ‘소집’ 사용 가능

    -특성 ‘소집해제’ 사용 가능

    그것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호루라기였다.

    말라죽은 거미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듯한 외형의 저 기묘한 호각은 분명 S급 아이템.

    하지만 ‘깎아내는 단말마’처럼 S급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은 형편없다.

    “……그러나 매우 유용해 보이는군.”

    나는 이 기묘한 호각이 가진 특수 옵션들에 주목했다.

    아이템 설명과 특수옵션의 상관관계를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저 호각은 근방의 거미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언뜻 듣기에 무슨 효과가 있나? 싶기도 하겠지만… 이 게임의 생태계에 있어서 거미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하면 의외로 굉장히 유용하지 싶다.

    ‘……특히나, 거미가 많이 사는 숲지대에서 사용하면 그 효과가 끝내주겠군.’

    벌써 저 아이템을 어떻게 활용할지 머릿속에 계획이 착착 서고 있었다.

    뒤에서 작업을 독려하는 에이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자네도 이 보상을 받고 싶지? 어서 서두르라고! 우리 다섯 명이서 땅을 판다면 금방 기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네이- 네이-”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곡괭이를 잡았다.

    어차피 이곳에 플레이어는 나뿐이니 저 아이템도 내 것이지 뭐.

    ……그때.

    나는 문득 자리에 멈춰서야 했다.

    ‘잠깐, 다섯이라고?’

    이곳에 있는 NPC는 에이햅과 이스마엘, 퀴퀘그.

    그리고 플레이어는 나 하나뿐이다.

    하지만 방금 에이햅은 이곳에 있는 인원이 총 다섯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가 더 있다는 건데?

    순간 내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 하나가 든다.

    ‘……그러고 보니, 여기 들어올 때 최초 진입자 알림음이 떴던가?’

    너무 무심코 들어와서 생각이 안 난다.

    그냥 막연히 내가 최초 진입자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구덩이 속에서 곡괭이 하나가 홱 날아들었다.

    “야 이 낙타들아! 언제까지 노닥거릴 거야! 일 안 할래!? 확 장비 회수해 버린다!?”

    이스마엘과 퀴퀘그, 심지어 그 강퍅한 에이햅마저 움찔할 정도로 드센 기세.

    구덩이 저 지하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얼굴을 쑥 내민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손을 들어 이마를 덮고 있는 유리벽을 탁 쳤다.

    과거 아틀란둠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리고 그레이 시티의 도시 청소 퀘스트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에에엑!?”

    유다희.

    그녀가 어둠 밖으로 하이얀 얼굴을 드러낸 채 나를 보며 토끼눈을 뜨고 있었다.

    *       *       *

    “……너를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말은 유다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나보다도 먼저 이 거대 해저화산 피쿼드를 발견한 인물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그레이 시티의 새 시장으로 부임한 유다희는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는 그레이 시티를 일으켜 세울 궁리를 하다가 그레이 시티를 미처 탈출하지 못한 범죄자들에게 사법 거래를 제안했다.

    범죄자들이 알고 있는 눈먼 돈, 혹은 지하 자금줄을 제보한다면 죄를 면해 줄 뿐만 아니라 포상도 내려준다는 것이다.

    당시 해저를 탐사할 돈과 장비가 부족하던 에이햅은 유다희와 거래를 맺었고 그때부터 유다희는 그레이 시티의 시장 차원에서 에이햅의 기름 시추 작업에 투자를 한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에이햅이 했던 대사를 떠올렸다.

    ‘다행스럽게도 새로 부임한 그레이 시티의 시장이 나의 사업 계획서를 높이 평가했지. 시 차원에서 시추 장비들을 마련해 줄 테니 한번 본격적으로 해 보라더군.’

    거기에 유다희는 나름대로 해저도시 아틀란둠을 처음으로 발견한 탐험가이다.

    그 때문에 심해 특전도 보유하고 있었기에 에이햅을 따라 심해 탐사가 가능했던 듯싶다.

    유다희는 잠수복 안으로 손을 넣어 볼을 긁적였다.

    “……거 뭐냐. 저번에 아귀의 포커 카드로 대화했을 때, 너 심해로 간다고 그랬었잖아. 그래서 나도 심해에 뭐가 있나 좀 궁금해지더라고. 뒤쳐질 수 없잖냐.”

    “그래서 에이햅의 기름 시추 작업을 돕는 거냐?”

    “그렇지. 에이햅이 언제든 찾아오라며 지도를 줬었거든.”

    말을 마친 유다희는 두 눈을 빛냈다.

    “에이햅이 그랬어. 이 밑에는 어마어마한 기름이 매장되어 있다고. 캬! 석유재벌의 꿈! 싸나이라면 한 번쯤 꿈꿔 볼 만한 것 아냐!?”

    “넌 싸나이가 아니잖아. 여자잖아.”

    “여자도 어엿한 한 사람의 싸나이야!”

    아무래도 그녀는 사나이의 뜻이 뭔지 모르는 게 틀림없다.

    한편, 나는 그녀에게 신경을 끄고 바닥을 몇 번 즈려밟았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조개껍데기, 온통 모래와 뻘뿐인 바닥.

    “이 밑에 기름이 있다 이거지?”

    내가 묻자 옆에 있던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우리는 향기로운 기름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들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매우 조악하고 거친 그림으로 그려진 지층의 단면도였다.

    [이 밑에 단단하게 덮여 있는 진흙과 모래가 오목한 모양의 덮개암 층을 이루고 있지. 공극률과 투수율이 극도로 적은 단단한 지층이야. 우리는 이걸 뚫고 그 밑으로 내려가야 해.]

    [그리고 그 밑으로 내려가면 석회질로 이루어진 저류암 층이 나오지. 덮개암 층과는 달리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아주 물러. 그리고 그 사이에 기름이 고여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석유 생성 과정과 비슷하다.

    밑의 ‘근원(根源)’에서 생성된 석유는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위로 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저류암 층을 통과하며 불순물이 걸러져 나간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덮개암 층을 빠져나가지 못한 석유는 오목한 곳의 천장 부근 공동(空洞)에 몽글몽글 고여 들게 되는 것이다.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구덩이 바닥에 긴 관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이곳은 수많은 유기물을 함유한 넓은 퇴적분지 지형이지. 온도와 압력도 무척이나 높아. 또한 석유층이 생성되고 보존될 수 있게끔 침투성이 좋은 석회질 층과 투수율이 나쁜 이암 층이 공존하고 있……]

    [그뿐만이 아니지. 활발한 지각변동으로 인해 습곡 작용을 받아 지층들이 물결 모양의 배사 구조를 이루고 있기에 기름을 캐기에 딱 좋은 환경……]

    가만히 놔두면 끝도 없이 설명을 늘어놓을 기세였기에 나는 조용히 [SKIP] 버튼을 눌러 버렸다.

    바로 그때.

    …펑!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뚫어놓은 구멍에서 요란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이내.

    몽글몽글몽글……

    구멍에서 신비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흰 점액질의 끈적한 액체가 구멍에서 솟아올라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석유와는 달리 검지 않고 흰 백색을 띤다.

    그리고 굉장히 특이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자, 잡아!]

    이스마엘이 외쳤다.

    이 신비로운 흰 기름은 물보다 한참 가벼운 모양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위로 방울방울 떠오른다.

    맡는 이로 하여금 일순간 가만히 멈춰 서게 만드는 기묘한 향기를 자아내면서.

    …콱!

    퀴퀘그가 일단 급한 대로 자루 하나를 뒤집어 위로 올라가는 기름방울들을 붙잡았다.

    이윽고, 이스마엘이 호스를 가져와서 흰 기름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호오. 이게 그 ‘향기로운 기름’인가?”

    유다희는 구멍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름을 약간 떠서 유리병에 담았다.

    -<하해(下海)의 기름> / 재료 / A+

    이곳까지 기름을 캐러 내려오는 이들은 모두 깊은 후회를 품은 채 나락까지 내몰린 이들이다.

    만약 삶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들은 과연 다시 기름을 캐러 이곳까지 내려올까?

    -특성 ‘짧은 주마등(走馬燈)’ 사용 가능

    “……흐음? 말기름 비슷한 건가?”

    유다희는 유리병 안에 담은 기름을 한번 기울여 보았다.

    극도로 가벼운 이 기름은 심지어 공기보다도 가벼운 것 같았다.

    병의 주둥이 안으로 들어가 뚜껑에 바짝 붙은 채 위로 고이는 모양새가 실로 신비롭다.

    거기에 A+이라는 등급 또한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구멍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던 기름은 이내 끊긴다.

    기묘한 향기도 이내 곧 사라졌다.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기껏해야 작은 자루 하나를 반쯤 채울 정도의 양밖에는 얻지 못했다.

    [뭐, 하지만 이게 어디야.]

    [맞아. 이 기름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훨씬 귀하니까.]

    이 두 낙타 사내들은 소기의 성과에 어느정도 만족하는 기색.

    ……하지만 저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에이햅은 아니었다.

    [머저리들아, 그깟 잔챙이 기름 따위에 좋아하지 마라. 기름의 핵심(核心)에 비하면 그딴 건 쓰레기나 다름없다구.]

    그는 방금 전의 성과를 성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보는 이의 머리털을 쭈뼛 서게 만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구멍 아래의 좁은 어둠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

    [‘진짜’ 유맥(油脈)은 이 밑에 있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기름이. 바다 아래의 바다에.]

    그 광기 어린 눈동자가 아래로 한번 헤까닥 돌더니 이내 희번뜩거리는 흰자위에 묻혀버렸다.

    [……그래. ‘하해(下海)’에 말이야.]

    에이햅의 방백을 들은 이스마엘과 퀴퀘그, 심지어 유다희까지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킨다.

    아무래도 진짜배기 탐사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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