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화 바다 밑의 시추꾼 (2)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라.]
낙타 아저씨는 자기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소개했다.
NPC ‘시추꾼 이스마엘’
그는 어깨에 커다란 곡괭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입고 있는 잠수복 끝에는 긴 호스가 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저 멀리 있는 커다란 산소탱크와 연결되어 있다.
기름때 잔뜩 묻은 산소탱크는 작은 화산의 분화구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안에서 분출되는 여러 혼합 기체로부터 산소를 분리해 연명하고 있는 듯싶었다.
탱크의 군데군데 일그러진 부분을 새끼줄과 녹인 고무로 대충 때워 놓았지만 틈이 완전히 안 막혔는지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게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시추꾼이라.’
나는 이스마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시스템 글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가 알기로 시추꾼이라 하면 지하 자원을 캐기 위해, 혹은 지층의 구조나 상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땅속 깊이 구멍을 파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마엘은 덤덤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네 여행자여. 나는 시추꾼이지. 기름을 캐기 위해 이곳 사막에서 땅을 파고 있다네.]
기름? 사막 밑에서? 석유라도 캐겠다는 걸까?
뭐 이곳이 바다 밑이기는 해도 사막은 사막이니 일단 제일 먼저 석유가 연상되긴 한다.
원래 중동 하면 또 낙타 아니겠나.
이스마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캐려는 기름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훨씬 더 귀하고 값비싼 것이지.]
“……우리?”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이내 이스마엘의 뒤에서 한 사람의 낙타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헝클어진 갈기털, 여러 번 뒤집어 구운 고기처럼 검고 질긴 피부, 과묵하고 고집 세 보이는 입매.
그 역시 둥그런 어항이 달린 잠수복을 입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한 손에는 삽을, 다른 한 손에는 긴 쇠사슬을 쥐고 있었는데 그 쇠사슬 끝에 커다란 관이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NPC ‘시추꾼 퀴퀘그’
퀴퀘그라는 이름의 이 낙타 아저씨는 퀭한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기름을 캔다는 것은 힘들고도 위험한 일이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자신이 들어가 누울 관 하나쯤은 마련해 오는 것이 좋아. 그리고 언제나 짊어지고 다니는 거야. 죽음을.]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깊게 침잠하는 듯한 눈동자로 서로의 모습을 담는다.
이내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구덩이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힘없이. 그러나 대단히 종속적인, 어떠한 운명과도 같은 강렬한 힘에 이끌려가는 듯한 기색으로.
[기름, 향기 나는 기름. 기름을 찾자. 땅 밑에 있는, 바다 밑에 있는.]
[짐승에게 복수를 하겠다니…… 미친 짓이야. 하지만 ‘그’ 또한 한 마리의 상처 입은 짐승이리니.]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알 수 없는 대사를 중얼거리며 절벽을 타 내려간다.
그들이 파내려 가는 중임에 분명한 구덩이는 이미 깊은 지하를 향해 어두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대체 얼마부터 얼마까지 파내려간 것인지 보이지도 않은 깊은 구멍.
“……어?”
그때, 나는 구덩이 입구의 건너편으로부터 걸어오는 또 다른 낙타 인간을 보았다.
그는 이스마엘이나 퀴퀘그와는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이였다.
얼굴을 덮는 유리 뚜껑과 우주복을 연상케 하는 두터운 잠수복은 똑같았지만 그 안에 있는 얼굴은 세월의 풍파에 깊게 고랑 졌다.
주름과 분노, 고집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절반 이상을 굵고 긴 흉터가 지나간다.
도화선과도 같은 그 흉터는 목 아래까지 쭉 그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잠수복 안으로 타고 내려가 몸 전체를 종단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압권인 것은 그의 오른쪽 다리였다.
무릎 아래부터가 뚝 떨어져 나가고 없는 오른쪽 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고래의 이빨로 만들어진 의족이었다.
장검의 칼날처럼 길고 날카로우며 뾰족한 그 의족은 낙타 노인의 강퍅한 분위기를 잘 떠받치고 있었다.
NPC ‘시추꾼 에이햅’
그는 나를 보자마자 끓는 용암과도 같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저리 꺼져 뜨내기. 여기에 꿰여 뒈지고 싶지 않다면 말야.]
에이햅이 나를 향해 흔들어 보인 것은 고래잡이용 작살이었다.
피와 지방이 눅진하게 엉겨 붙어 있는.
그때.
[……?]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에이햅의 실눈이 별안간 크게 벌어진다.
[어, 어엇? 자네는?]
이윽고 에이햅의 표정에 드물게도 따스한 온기가 깃들었다.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그는 나를 향해 외쳤다.
[이럴 수가! 자네는 ‘고인물’!? 나의 은인이 아니던가!]
……오잉?
* * *
[들게.]
에이햅은 내게 코코넛 열매 몇 개를 던져 주었다.
코르크 마개가 박혀 있는 구멍 안에는 제법 독한 위스키가 들어있었다.
나는 코코넛 열매에 빨대를 꽂고는 그것을 잠수복의 뚜껑에 연결해 쪽쪽 빨아마셨다.
독하기는 하지만 예전에 마셨던 레흐락의 럼에 비하면 음료수나 다름없다.
쪼르륵- 쪽-
어느 정도 빨대를 빨자 심해의 수압에서 오는 지형 데미지가 약간은 감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고통을 잊는 데에는 술이 최고다.
[……나를 알아보겠나?]
에이햅은 흉터 난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당최 그를 어디서 봤었는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봄으로써 딱 하나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가 지금 웃고 있는 것이라는 것 정도?
‘검색해 봐야 하나?’
나는 슬쩍 인터넷 창을 켠 뒤 내 동영상 파일들 폴더를 열어 ‘에이햅’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이내 수많은 히스토리들 중 몇 개의 검색어가 뜬다.
……<3건의 검색 결과를 찾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그러자 이내 내가 과거에 찍었던 동영상들이 뜬다.
‘레이드 동영상들을 하나하나 다 모아 두길 잘했네.’
개인방송 채널이나 SNS에 공개하지 않더라도 녹화는 다 해 둬서 다행이다.
우선 첫 번째.
#1. ‘만마전 외성’
나는 마몬을 잡으러 가던 길에 악마들의 지하감옥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죄수들을 모조리 풀어줬던 적이 있었다.
악마 추격병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때 감옥 문을 나서던 죄수들 중 얼굴에 긴 흉터를 가진 낙타 사내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오오! 나 에이햅! 자네에게 빚을 졌네! 언제고 ‘하해(下海)’로 찾아오시게!’
그게 아마도 그와의 첫 만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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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레이 시티’
두 번째는 남부의 잿빛 도시 그레이 시티가 망할 때이다.
당시 살인자들의 소굴에 잠적하고 있던 에이햅은 그레이 시티가 망함에 따라 그곳에서 도망쳐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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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틀란둠’
세 번째는 그가 해저도시 아틀란둠의 지하감옥에 갇혀 있을 때이다.
당시 레흐락을 감옥에서 탈옥시키려던 나는 이번에도 역시, 해저인 병사들의 추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모든 죄수들을 죄다 풀어 주었고 거기에 또다시 에이햅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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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많이 만났었네.”
내 말을 들은 에이햅은 또다시 기괴한 모양으로 씩 웃었다.
[지하자원을 시추하려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탐욕의 악마, 지하광물의 지배자, 무저갱의 수전노와 적대 관계일 수밖에 없지.]
그래서 에이햅은 마몬이 축조해 놓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내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오즈가 그런 에이햅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큭큭큭. 맞아. 그 새끼는 땅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라면 시체 빼고는 다 자기 것인 줄 안다니까. 내가 불카노스 광산 빼앗을 때 얼마나 고생했다고~]
나는 손으로 오즈의 머리를 꾹 눌러 다시 망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에이햅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이후 전과자 출신의 에이햅은 악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모든 범죄자들이 모여드는 그레이 시티에 몸을 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운 시장의 부임으로 인해 그레이 시티가 정화되게 되자 에이햅은 본격적으로 시추 작업을 개시하기 위해 그곳을 뜬다.
[다행스럽게도 새로 부임한 그레이 시티의 시장이 나의 사업 계획서를 높이 평가했지. 시 차원에서 시추 장비들을 마련해 줄 테니 한번 본격적으로 해 보라더군.]
그리하여 내려온 곳이 바로 이곳 해저.
[그러나 불운하게도 해저인 병사들에게 잡혀 또다시 감옥에 수감되었어. ‘기름 밀매’ 및 ‘도유(盜油)’ 혐의로 말이야. 귀스타프, 그 빌어먹을 놈.]
에이햅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내 가슴을 한번 툭 쳤다.
[아무튼 자네에게는 번번이 빚을 졌군.]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에이햅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작살은 등에 걸치고 손에는 곡괭이를 든 채다.
[자, 여기까지 왔으니 자네도 기름을 캐세.]
“……기름?”
[그렇지. 기름. 보통 기름이 아니야. ‘향기 나는 기름’이지. 이 세상 그 어떤 보물과도 비할 수 없는.]
에이햅은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뒤 깊은 모래구덩이 아래를 향해 외쳤다.
[자! 조금 더 힘내라! 저류암(貯留巖)이 코앞이다!]
죽은 산호들과 쇄설암 등이 촘촘히 박혀 있는 지층의 단면.
그 아래에 붙어 저변을 파헤치고 있던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퀭한 눈을 들어 이쪽을 올려다본다.
별로 의욕이 없어 보이는 태도.
그러자 에이햅은 품을 뒤지더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금빛이 섞인 붉은빛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물건.
그것은 두 손으로 꽉 잡아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하고 큼지막한 아이템이었다.
[제일 먼저 기름을 발견하는 자에게 이것을 포상으로 주마! 나를 제외한 너희 넷 중에 하나가 이것의 주인이 될 것이리라!]
에이햅은 일꾼들이 탐낼 만한 보상을 내걸어 작업을 독려할 심산인 것 같았다.
이내 이스마엘과 퀴퀘그의 눈빛이 조금 더 열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다시끔 열심히 곡괭이와 삽을 놀려 심해의 저변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이 축복과도 같은 평온이 오래 지속되게 해주옵소서.’
‘뒤엉킨 삶의 날줄과 씨줄을 곱게 풀어 거두고.’
‘만약 폭풍이 치더라도 그 중심과 같은 안녕을 주소서.’
‘우리의 삶을 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과 같게 하옵시며.’
‘유년기의 무의식적인 도취, 소년 시절의 맹신, 청춘의 의심, 회의와 불신, 나아가 성년기의 평정에서 머물지 않게끔 하소서.’
느리고 음울한 곡조의 노동요를 읊조리면서.
순간.
“……어?”
이스마엘과 퀴퀘그를 따라 막 곡괭이를 들어 올리고 있던 나는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에이햅의 손에 들려있는 저 빛나는 물건.
제일 먼저 기름을 발견하는 이에게 주어질 포상!
그것은 내가 익히 아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게 왜 저기서 나와?”
아주 오래 전, 게임 초반.
부유섬에서 여덟 다리 대왕을 잡고 손에 넣었지만 그 즉시 바다에 빠트려 찾지 못했던 아이템.
그것을 지금 에이햅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