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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29화 (629/1,000)
  • 629화 바다 밑의 시추꾼 (1)

    Call me Ishmael.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라.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백경』 中-

    *       *       *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나는 게임에 홀로 들어왔다.

    접속하자마자 눈앞에 보인 곳은 꽤나 낯익은 공간이다.

    심해의 외곽, 모래톱 아래 가라앉아 있는 난파선의 잔해와 텅 비어 있는 술 창고가 보인다.

    바로 ‘독주의 무덤’이었다.

    <독주(毒酒)의 무덤> -등급: S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제는 영원히 빈 곳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술도, 그것의 원래 주인도, 또 던전을 지키던 수문장도 모두 사라진 곳.

    다만 한때 이 던전을 지켰던 수문장이 얼마나 강했는지, 또 던전 안의 보물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S’급 표시만이 쓸쓸히 남아 있을 뿐이다.

    “…….”

    나는 이 외떨어진 무덤에 잠시 고개 숙여 묵념을 했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독주의 무덤을 스쳐 지났다.

    “어우, 잠수복이 좀 끼네.”

    나는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잠수복을 고쳐 입으며 중얼거렸다.

    레비아탄을 잡기 위해 심해로 간다고 하자 아르파공과 벨럿이 특별히 주문제작해 준 잠수복.

    마몬의 원수를 꼭 갚아달라는 히든 퀘스트까지 덤으로 받았기에 이번 여정은 더욱 더 각오가 필요하다.

    …꼬르르륵

    나는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발을 움직여 잠수했다.

    아르파공과 벨럿이 만들어 준 잠수복이 있었기에 더욱 더 깊은 곳으로도 무리 없이 잠수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잠시, 내가 입은 잠수복의 외형을 설명할 시간!

    일단 금붕어가 살 것 같은 동그란 어항을 뒤집어쓰고 그 밑에는 퉁퉁한 우주복 같은 것을 덧입은 클리셰적인 모양새다.

    압축 산소가 든 커다란 캔 통조림이 허리춤에 탄창처럼 주렁주렁 붙어 있었다.

    옆에는 오즈와 쥬딜로페가 머리를 내밀 수 있게끔 조그만 유리공 두 개가 솟아나 있다.

    [인간, 레비아탄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가는 건가?]

    [호에엥- 뿌!]

    오즈와 쥬딜로페가 나를 향해 묻는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정확히 알고 찾아가는 건 아니다만.”

    하지만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은 하고 있다.

    왜냐면 회귀하기 전, 이 드넓은 바다 맵 중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구역은 단 두 곳뿐이었으니까.

    “한 곳은 얼마 전 창해룡 버뮤다를 잡았던 ‘블루홀’이었고…… 다른 한 곳은…….”

    나는 고개를 내려 눈앞에 있는 거대한 협곡을 내려다보았다.

    -심해 화산지대-

    아틀란둠의 가장 외진 외성에서도 꽤나 멀리 떨어진 곳, 일반적인 유저들이 지나갈 수 있는 영역을 기준으로 약 2만 리는 더 떨어진 곳이다.

    회귀하기 전에도 이 공간의 생태계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바가 없었다.

    어지간한 극지대를 모두 정복한 고인물들도 이곳에의 진입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했다.

    이곳은 실로 어둡고 정적일 뿐만 아니라 수압으로 인한 지형 데미지도 장난이 아니라서 어지간한 잠수복으로는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띠링!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심해의 수압이 점점 심해집니다]

    “이러니 일반 유저들에게 발견이 안 되지.”

    천하의 명장 아르파공이 만든 잠수복도 지금 팔꿈치나 무릎 등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당.

    아마 아틀란둠에서 얻을 수 있는 공기 코팅 정도로는 택도 없을 것이다.

    <이어진>

    LV: 93

    호칭: 아틀란둠의 왕자(특전: 대심해)

    HP: 930/930

    그나마 이 호칭이 있기에 간신히 버티고 있달까?

    하지만.

    부글부글부글부글……

    내 머리를 덮고 있는 어항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련의 거품방울들만은 어찌할 수 없다.

    “어우, 뭐가 보여야 말이지.”

    더군다나.

    -띠링!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심해의 수온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단순히 물거품들이 눈을 가리는 게 문제가 아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물거품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바닷물의 온도가 점점 올라간다.

    처음에는 극도로 추웠던 것이 어느덧 미지근해지는가 싶더니 슬슬 더워지고 종국에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딸칵!

    나는 머리 위에 달린 등불을 켰다.

    작은 유리병 속에 담겨 있는 ‘드워프의 불’은 이 극한의 어둠 속에서도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이윽고, 나는 목적지에 당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심해의 열공(熱空).

    -띠링!

    <해저 화산 ‘피쿼드(Pequod)’를 발견하셨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광활한 해저 협곡지대.

    그 중앙부에는 거대한 화산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작은 화산들이 마치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근방의 해수를 뜨겁게 끓이고 있는 주범들이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밑에서 올라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거품들이 나를 위로 밀어낸다.

    부력이 너무나도 거세서 허리춤에 늘어트린 닻줄과 그 끝의 닻 무게를 조금 더 무겁게 조정해야 했다.

    “……이 정도면 되려나.”

    닻줄과 닻에 무거운 화강암 바위를 몇 개 매달자 비로소 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나는 절벽에 튀어나온 바위들을 붙잡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간다기보다는 가라앉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지만.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엉덩이에 닿아 등을 쓸어 올리며 올라가는 물거품들은 부드러웠지만 맵고 또 뜨겁다.

    화산이 내뿜는 유황가스를 머금고 있기에 그렇다.

    [창해룡, 그 늙은이가 뒈져서 그런가 바다 밑이 아주 발칵 뒤집어졌군.]

    오즈가 옆에서 시니컬한 목소리로 이죽였다.

    그 말대로, 화산지대의 격변은 심각한 상태였다.

    심해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화산 피쿼드,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돋아나 있는 작은 활화산들은 연신 마그마와 쇄설류를 토해 내고 있다.

    해저의 바닥에 나 있는 수많은 실금들이 붉게 빛나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유황가스와 재가 풀썩이며 만들어내는 진흙구름, 물거품들 역시 미친 듯이 위로 솟구쳐 오른다.

    “……살벌하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살풍경한 광경에 입을 반쯤 벌렸다.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굴러다니는 조개껍데기는 전부 바짝 말라 바스라져 있었고 불타다 만 산호 파편들만이 유황 섞인 물거품들에 떠밀려 이리저리 나부낀다.

    텅 빈 소라고둥들과 뼛조각들만이 쓰레기처럼 둥글어 다니는 바닥.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화산재와 모래뿐!

    그렇다. 그것은 말 그대로 광활한 사막이었다.

    …쾅! 꾸르르륵! 부글부글부글…

    바닥에 갈라져 있는 틈으로는 재와 유황, 불길이 물거품과 함께 치솟는 모래밭.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사막지대가 해저의 바닥에 있다.

    나는 시야를 가리는 물거품들을 헤치고 사막에 한 발을 내딛었다.

    …풀썩!

    재와 모래가 날린다.

    작렬하는 태양만 없을 뿐. 발바닥에 와 닿는 뜨거운 기운은 정말로 이곳이 사막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바다 밑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엄청나네.”

    나는 사막 위를 걸으며 군데군데 솟구치는 마그마를 피해 발을 디뎠다.

    그때.

    풀썩!

    저 옆쪽의 작은 화산 하나가 폭발하면서 재와 모래들이 이쪽으로 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균형을 잡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

    …툭!

    내 발 끝에 와 부딪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꽤나 큼직하고 단단한 흰 물체였다.

    “……낙타?”

    나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굴러다니던 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낙타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뼈만 남은 낙타의 두개골 부분이었다.

    “왜 낙타가 이런 곳에 있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두개골을 살폈다.

    그때.

    나는 낙타의 두개골이 굴러온 곳에서 몇 개의 뼛조각과 찢어진 잠수복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아, 낙타가 아니라 낙타 계열 수인이었나.”

    수인(獸人)이란 동물과 인간이 반쯤 섞인 모양새를 하고 있는 종족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세계관에서는 꽤나 흔한 편이다.

    게임 내에서는 주로 NPC로 만나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유토러스에 있는 내 창고를 지켜주는 떼껄룩 씨를 들 수 있겠다.

    그나저나, 이 두개골은 뭘까? 왜 낙타 계열 수인이 이런 바다 밑에서 뼈만 남긴 채 죽어 있는 것일까?

    내가 두개골에 난 눈구멍으로 건너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

    저 앞 진흙구름 너머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개골을 버리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모래와 진흙들이 걷히자 이내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우주복을 입은 낙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살아 움직이고 있는 낙타 계열 수인이었다.

    (등에 불룩한 산소탱크가 두 개 튀어나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쌍봉낙타 계열 같았다)

    희고 두터운 잠수복에 나와 같은 유리 어항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는 열심히 땅에 대고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잠수복 안, 어깨에 걸친 수건은 땀에 젖어 있었고 입에는 담배마저 한 개비 물고 있는 모양새.

    어찌 되었건 이곳이 사막임을 감안한다면 낙타가 있기에는 퍽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이내, 땅을 파고 있던 그와 구덩이 밖에 멍하니 서 있는 나의 시선이 마주한다.

    낙타 아저씨는 나를 향해 담배연기를 훅 내뿜었다.

    (그래 봤자 자기 머리를 덮고 있는 유리덮개만 뿌옇게 변할 뿐이었지만)

    그리고 나를 향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라(Call me Ishmael).]

    동시에.

    -띠링!

    그의 머리 위에 NPC 표시가 떠올랐다.

    NPC

    ‘시추꾼 이스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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