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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28화 (628/1,000)
  • 628화 공개 선언 (2)

    내 말이 끝나고 난 뒤, 집무실 안에는 싸늘한 정적이 가라앉았다.

    엄재영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은 진중한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술을 먹곤 하지만, 정말로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오히려 술을 멀리하기 마련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엄재영 감독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어쩌면 고인물과 마동왕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밝혀야 할지도 몰라요.”

    …….

    집무실에는 또다시 침묵이 흐른다.

    엄재영 감독은 이제 놀란 표정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는 손바닥으로 굳어 버린 얼굴을 몇 번 문지른 뒤 더듬더듬 물었다.

    “너, 너 네가 지금 한 말의 파급력을 알고 하는 소리야?”

    마동왕은 마동왕. 고인물은 고인물.

    둘 다 한국 게임 역사상 유일무이, 공전절후한 존재.

    그 둘이 사실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 아니 아시아 전체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엄재영 감독은 황급히 되물었다.

    “왜? 아니, 언젠가는 밝혀야 할 문제이긴 하지. 하지만 그게 꼭 지금일 필요가 있나?”

    그의 말이 맞다.

    현 한국 리그는 마동왕과 고인물로 대표되는 프로리그, 아마추어 리그로 나뉜다.

    그 둘이 하나여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둘로 나뉘어 있기에 좋은 점도 분명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개인방송의 구독자 층을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동왕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시청자들과 고인물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시청자 층은 분명히 다르다.

    이 양쪽 성향의 시청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이는 곧 수익의 극대화로 이어진다.

    또 한국 프로리그 넘버원으로서의 체면과 품위를 지켜야 하기에 마동왕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고인물로서는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또한 이 두 가지 메타를 구분하여 유지한다는 것은 진짜 힘의 절반 정도는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에 나를 적대시하는 이들을 방심시킬 수 있기도 하다.

    애초에 마동왕도 고인물도 워낙에 입지전적인 캐릭터인데다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도 남다르다보니 이것들을 굳이 하나로 합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국가적인 차원에서든.

    “……어차피 마동왕도 고인물도 둘 다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데 굳이 이 시점에 하나로 합칠 이유가 뭐야? 아예 그냥 이대로 쭉 숨겨도 되지 않겠냐?”

    그러니 엄재영 감독의 이러한 의견은 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머릿속에 오래 전 윌슨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뭐 때문에 ‘고인물’이라는 캐릭터와 ‘마동왕’이라는 캐릭터를 별개로 구분하는 거야?’

    당시 뎀 유니버스 본사를 방문한 나에게 윌슨은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나는 그런 윌슨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책임감 문제부터 시작해 서로 다른 스타일을 통한 다양한 팬층 확보, 이미지 관리 등등 다양한 이점들…….

    그리고 내 대답을 들은 윌슨은 그저 이 말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레비아탄을 조심해.’

    그날의 충고를 상기한 나는 레비아탄의 살벌하던 모습을 다시끔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레비아탄>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213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질투와 밀고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깊은 물웅덩이를 솥처럼 끓게 하고 바닷물을 기름가마처럼 부글거리게 하는구나. 보아라! 바다의 그 누가 나와 겨루랴!”

    -레비아탄- <하해왕기(下海王記)

    41:6~19>

    윌슨은 왜 내게 그런 충고를 했을까?

    레비아탄이 관장하는 것이 ‘질투(嫉妬)’와 ‘밀고(密告)’인 것은 우연일까?

    ‘질투와 밀고는 불가분의 관계, 결국 악의를 가지고 남의 비밀을 폭로하게끔 하는 것.’

    나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남의 머릿속을 뒤져 트라우마를 찾아내 도지게 만드는 몬스터도 있는데 사람의 비밀을 엿보고 폭로하는 몬스터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레비아탄이 가지고 있는 ‘밀고’라는 특성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놈을 잡기 전에 비밀로 할 만한 것들은 최대한 없애고 갈까 생각 중이에요.”

    “……그러냐.”

    내가 생각한 것을 모두 들은 엄재영 감독은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또다시 감도는 침묵. 나도 엄재영 감독도 말이 없다.

    이윽고, 엄재영 감독의 두 눈이 빛났다.

    “알겠다.”

    “……네?”

    “알겠다고 인마.”

    엄재영 감독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한번 팡 쳤다.

    그는 술기운 하나 어리지 않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곧게 바라보았다.

    “사이드 킥으로서 이런 일 하나 보좌 못 하면 안 되지. 나한테 맡겨라.”

    “……뭘 맡겨요?”

    “고인물과 마동왕이 사실 동일인물이라는 것. 내가 멋드러진 연출로 세상에 공개해 보이마.”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까느냐에 따라서 선물도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연출과 타이밍, 퍼포먼스에 달린 일.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엄재영 감독은 믿음직스러운 기세로 입을 열었다.

    “가서 레비아탄인지 뭔지 확실하게 조져 놓고 와. 그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다 커버할 테니.”

    그 말을 듣자 어딘가 마음이 놓인다.

    “조심해야 해요. 벨페골의 경우도 있었듯, 레비아탄이 어떤 식으로 비밀을 밀고할지 모르니까. 물론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걱정 마라. 차규엽이 예전에 했던 여론전 데이터 내가 모조리 흡수했으니까. 기자들도 꽉 잡아두고 있으니 염려 말라고. 고인물도 마동왕도 애초에 모두 실력 하나로 가치를 증명한 캐릭터들이고 그동안 호감 이미지를 많이 쌓아 뒀으니 딱히 반발할 사람들도 없을 거야.”

    “아예 없진 않을걸요?”

    “……있다면 네가 뭘 해도 어차피 싫어할 악플러들이겠지. 질투에 눈이 먼.”

    엄재영 감독은 나를 향해 엄지, 검지, 중지, 이렇게 세 손가락을 펴 보였다.

    “세상에는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지. 네가 뭘 해도 너를 믿어 주고 박수쳐 줄 거야.”

    말을 마친 엄재영 감독은 엄지손가락을 접었다.

    그러자 이제 손가락은 두 개가 남았다.

    “세상에는 너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어. 네가 누군지도 모르고 뭘 하든 관심도 없지.”

    엄재영 감독은 검지손가락을 접는다.

    이제 손가락은 중지 하나만 뻗어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남은 것들은 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네가 어떤 좋은 행동을 해도 무조건 싫어할 거다.”

    엄재영 감독은 다른 손을 뻗어 자기의 중지손가락을 확 잡아챘다.

    “엄지랑 검지만 안고 가자고. 앞으로 무슨 상상 못할 일이 벌어지든 간에 중지 놈들은 무시해. 그게 오래 살아남는 길이니까.”

    엄재영 감독은 지금은 빵 들어가고 없는 차규엽이 남긴 악플부대 운용 관련 서류들을 탁탁 두드리며 씩 웃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차규엽이 도움이 될 때도 있네요.”

    “그럼, 그놈이 만들어 낸 시스템 체계 자체는 참 효율적이거든. 적일 때는 무섭지만 같은 편이 되면 든든하지.”

    엄재영 감독과 나는 서로 마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레비아탄 레이드에 대한 것들은 얼추 끝났다.

    내가 고른 다음 화제는 바로 ‘2차 대격변’에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의 스위치를 내렸다.

    엄재영 감독이 투덜거린다.

    “저 자식 저거 저거 또 불 끄네. 야! 그냥 말해 좀! 후까시 잡지 말고!”

    “전기세 아끼려고요.”

    나는 한번 능글능글 웃어준 뒤 소파로 되돌아와 걸터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또다시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거예요. 1차 대격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친…… 1차 대격변 때도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었는데, 아니 2차 대격변이란 건 대체 뭐냐!? 뭐, 종족이 확 늘어나기라도 해!? 또 막 말 안 통하고!?”

    “일단 1차 대격변 때와 달리 구단의 선수 엔트리나 조합, 육성법 등은 그대로일 겁니다. 종족이 추가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뭐야? 그럼 바뀌는 게 없잖아?”

    그렇다. 종족이 추가되거나 의사소통이 불편해지는 일이 없다면야 프로팀 감독의 입장에서는 크게 불편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것들 빼고 싹 다 바뀝니다.”

    요는 이것이다.

    1차 대격변 때는 ‘앞으로 너는 바뀔 거야. 바뀌어야만 할 거야.’ 였다면 2차 대격변 때는 ‘너는 바뀌는 게 없어. 하지만 너 빼고 온 세상이 다 바뀌어.’랄까?

    “……?”

    엄재영 감독의 두 눈은 불안과 의아함으로 파르르 떨린다.

    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탁 쳤다.

    “플레이어들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리부트 되다시피 할 겁니다. 주식시장도 요동칠 테니 미리 대비해 두세요.”

    “어우…… 야. 겁난다. 플레이어 빼고 온 세상이 다 바뀐다니. 대체 2차 대격변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엄재영 감독은 앞으로 벌어질 미지의 대사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일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내가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대비해 왔던 일.

    아포칼립스. 멸망. 세기말. 대혼란.

    프로젝트 ‘바벨(Babel)’

    그 종말론적인 이야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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