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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27화 (627/1,000)
  • 627화 공개 선언 (1)

    텔레포트를 알리는 환한 빛무리와 함께, 나는 땅을 밟았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가 옮겨진 장소는 바로 초보자 마을 유토러스였다.

    온통 무너지고 뒤흔들리던 세상, 혼돈의 도가니 중심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안정적이고 익숙한 곳으로 오게 되자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정도다.

    나는 신전의 기둥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마 되지 않은 체력은 꽉 차 있었지만 머릿속은 그렇지 않다.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뉴비 몇몇이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며 지나갔다.

    “……공간이동인가.”

    내 뒤를 이어 워프한 드레이크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고정 S+급 몬스터끼리는 서로 충돌한다고 해도 소멸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들었는데…… 불사조가 죽었다는 사실은 충격이로군. 그것도 용과 악마의 협력에 의해.”

    “뎀 유니버스의 총수가 게임에 부정 개입했다는 건 뭐야? 예전에 조디악이랑 김정은이 그런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었나?”

    뒤이어 워프해 온 윤솔 역시 의아한 기색으로 나를 돌아본다.

    두 친구 모두 불사조의 말을 직접 듣지 못했기에 드문드문 들은 사실들을 내게 재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뚜렷하게 알게 된 사실은 없었다.

    다만 지끈거리는 머리로나마 당장의 현실을 파악할 뿐.

    “……불사조는 죽었지만 아카식 레코드는 계속 제 기능을 하는 것 같네.”

    불사조가 구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불똥정령들과 얼음똥정령들 역시도 목숨을 구했다.

    그 덕에 알림음이나 맵 복구 등의 기능은 제 역할을 하는 듯싶었다.

    불사조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세계의 질서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띠링!

    나는 상태창을 켜 보았다.

    <이어진>

    LV: 93

    호칭: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툴루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조의 대리인(특전: 선택) /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특전: 혈족전생) / 시작의 마을 유토러스의 명예 백작(특전: 귀족) /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의 위상(특전: 수전노) / 발록의 뿔을 꺾은 자(특전: 야수) /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특전: 싸움광) / 살인자들의 탑 5층의 주인(특전: 맵 디자인) /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의 후예(특전: 백전노장) / 저주받은 고목 쟈쿰 벌목자(특전: 고대 신앙) / 심해 스토커(특전: 마찰계수) / 푸른 용군주 버뮤다의 위상(특전: 잠수) / 레흐락과 게슈탈트의 친구(기다림) / 아틀란둠의 왕자(특전: 대심해)

    HP: 930/930

    경험치는 오르지 않았으나 ‘불사조의 대리인’이라는 호칭이 새로 생겨났다.

    이에 따른 특전은 ‘선택’으로 예전에 데스나이트를 잡았을 때보다 조금 더 상위 호환의 것이다.

    그때.

    “엇? 어진아, 내 인벤토리에 이상한 아이템이 들어왔어!”

    “으음? 어진, 나 역시 그렇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각각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하나씩 꺼낸다.

    그것은 빨갛게 빛나는 조약돌과 파랗게 빛나는 조약돌이었다.

    “…….”

    나는 불똥정령과 얼음똥정령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작은 돌맹이들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의 돌> / 재료 / S

    시간을 다루는 불사조의 권능이 조금이나마 깃들어 있는 돌.

    -시간 컨트롤러 (특수)

    -1회용

    -<공간의 돌> / 재료 / S

    공간을 다루는 불사조의 권능이 조금이나마 깃들어 있는 돌.

    -공간 컨트롤러 (특수)

    -1회용

    “습득 시간을 보니까 불사조를 만나던 순간에 내 인벤토리로 바로 들어온 것 같아.”

    “불사조는 만나자마자 이것들을 우리에게 넘겨 준 모양이군. 말도 없이 줘서 몰랐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습득한 돌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들을 받아드는 동시에 내 인벤토리를 살폈다.

    역시나, 나에게도 못 보던 아이템 하나가 생겨나 있는 것이 보인다.

    -<시간여행자의 예언서> / 재료 / ?

    부정한 가치들이 범람함에,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고,

    용과 악마가 몸을 섞을 것이며,

    재앙의 별이 하늘에 긴 궤적을 그릴 때,

    태양이 떨어지고 마침내 긴 황혼이 저물어 오리라.

    -(아이템이 현재 봉인되어 있습니다)

    “……뭐지 이건?”

    회귀자인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아이템.

    하지만 불사조의 죽음과 부활에 연관이 있어 보이는 아이템이니만큼 보관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내 말을 들은 윤솔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진아. 불사조는 죽은 것 아니야? 다시 부활해?”

    “으음. 아마도. 불사조라는 것은 본디 죽었다가 살아나는 능력으로 유명하잖아.”

    내 말을 들은 윤솔은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보다 훨씬 더 절실한 마음으로 불사조의 부활을 빌고 있었다.

    불사조와 다시 한번 대화를 해야 내가 두 번째로 얻게 된 삶에 대해서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런 내 판단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미네르바의 올빼미)’>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불사조’의 유지를 잇는 자-‘불사조의 대리인 호칭 필요 (1/1)’>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 처치 (0/1), 백색의 용군주, 무투룡 카프카타렉트 처치 (0/1)>

    <히든 퀘스트 완료 보상: ‘불사조’의 부활 쿨타임 대폭 축소>

    <※파르테논의 최초 입장자만이 이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히든 퀘스트라…… 이걸 클리어해야 불사조가 부활하는 것이군.”

    역시나 불사조에게는 부활 능력이 있다.

    서브스트림끼리의 극단적인 소멸빵 배틀은 세계관의 룰 차원에서 지양되니 이쯤은 예상했던 사실.

    다만 이 퀘스트를 완료해야 불사조의 부활을 앞당길 수 있는 모양이다.

    “……어차피 수행해야 할 퀘스트였어.”

    해저의 괴물 레비아탄, 화이트 드래곤 카프카타렉트.

    굳이 위의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놈들은 다시 한번 찾아갈 의사가 있었다.

    아니, 있다 못해 넘친다.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니까.

    *       *       *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나는 캡슐 덮개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걸려 오는 것은 윤솔과 드레이크의 영상통화였다.

    [어진아 로그아웃 잘 했어? 피곤해 보이는데…… 좀 쉬어야 하는 것 아냐?]

    [으음, 어진. 다음 레이드 계획은 어떻게 되나? 휴식 기간을 좀 넉넉하게 잡은 뒤여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두 친구들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

    “아니, 쉬지 않고 곧바로 갈 거야. 그리고 이번 레이드는 혼자서 해 보고 싶어.”

    [응? 왜?]

    “그냥, 느낌이 좀 꺼림직해서.”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윌슨의 경고가 떠오른다.

    ‘레비아탄을 조심해’

    레비아탄을 조심하라던 그의 말은 단순한 엄포 같지만은 않았다.

    때문에 친구들까지 끌어들이기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

    “대신 너희들은 그동안 흰 용에 대한 정보를 좀 모아 주겠어?”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할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불사조는 그리 오래 보지 않았는데도 참 정이 가는 존재였었는데…… 천공섬의 네티와 베티 자매만큼이나.]

    [나 역시 그렇다. 게임 내 존재의 죽음에 이렇게까지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또 오랜만이로군. 잭 오 랜턴의 이후로 처음이야!]

    나 역시 고개를 끄덕여 친구들의 말에 동의했다.

    아직도 머릿속엔 불사조의 눈동자가 보여 주던 신비로운 빛이 선하다.

    표류한 다이버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구해 주는 혹등고래의 것과 같던 그 눈빛.

    우리가 불사조에게 느끼는 이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감은 고스란히 레비아탄과 카프카타렉트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어졌다.

    [그럼 어진아, 네가 레비아탄을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흰 용에 대한 정보를 모아 볼게.]

    [레비아탄은 소재지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흰 용은 그게 아니니…… 확실히 탐문이 필요하겠군. 내게 맡겨라 어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화를 마쳤다.

    “…….”

    내가 그 다음으로 한 일은 바로 뎀 유니버스 본사에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예전 성지순례 때 받았던 윌슨 총수의 직통 번호다.

    ……. ……. …….

    하지만 연락은 되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번이나 계속.

    “……별 수 없는 일이지.”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뒤 잠시 고민했다.

    ‘레비아탄을 조심해’

    또다시 머릿속에 윌슨의 경고가 울려 퍼진다.

    이윽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내가 곧장 향한 곳은 건물 내 감독실, 엄재영 감독이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삐걱!

    나는 나무로 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거, 자동문으로 좀 바꾸시라니까.”

    “난 올드패션이 좋암마~”

    책상에 걸터앉아 서류를 넘기던 엄재영 감독이 얼음이 든 위스키 잔을 달그락 달그락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토요일 저녁이라서 그런가 벌써 가볍게 한 잔 한 모양.

    나는 눈썹 옆 부근을 긁으며 엄재영 감독에게 물었다.

    “술 마셨어요?”

    “으응. 왜? 잔소리하게?”

    “아뇨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비싼 술이에요?”

    “어어, 선물로 들어온 게 있어서. 너도 한 잔 할래? 이거 엄청 비싼 위스키야.”

    “아뇨.”

    나는 소파에 앉아 엄재영 감독을 쳐다보고 말했다.

    “죄송하게 됐네요 형님.”

    “어? 뭐가?”

    “기껏 비싼 술 드셨는데 소용없게 만들어 버려서.”

    “……?”

    엄재영 감독은 살짝 취기가 오른 얼굴로 고개를 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하지만.

    이어진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은 술이 싹 깬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2차 대격변을 조금 빨리 일으켜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 나는 마몬 레이드 전, 엄재영 감독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함께 준비합시다. ‘2차 대격변’을.”

    그리고 이제는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났다.

    본격적으로 일으키는 일만 남은 것이다.

    1차 대격변이 일어난 이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뀌고 얼마나 엄청난 파급 효과가 몰아닥쳤는지를 새삼 떠올린 엄재영 감독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대중들에게 공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엄재영 감독의 얼굴에 서려있는 일말의 술기운마저 모조리 싹 날려버렸다.

    “고인물과 마동왕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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