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화 불사조 (3)
나는 불사조를 보고 조금 전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아, 나랑 대화할 때는 진짜 많이 말한 거구나.’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그것은 지금 막 불사조의 ‘진짜 성깔’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가라고.]
불사조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참 먼저.
나랑 대화할 때 어떻게 그렇게 많은 말을 했나 싶을 정도로 불사조는 과묵했다.
다만 압도적인 힘을 내세워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레비아탄을 밀어내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불사조가 양쪽 날개를 한 번씩 휘저을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화염구와 우박들이 날아 레비아탄의 전신을 두들긴다.
[크아아아악!?]
레비아탄의 몸은 거대했기에 더더욱 피격 판정이 관대하다.
놈은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차원 균열 밖으로 밀려나갔다.
한편, 나는 불사조가 레비아탄을 향해 초장부터 맹공을 퍼붓는 것을 보며 감격에 젖었다.
‘불사조의 광역 필살기 ‘멸망주의보’인가…… 내가 저것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모든 세계관을 통틀어 가장 데미지 범위가 넓다는 불사조의 기술로 예전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처음 가상현실 게임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선보여졌던 티져 영상에 등장했었던 스킬이다.
그 당시에 불사조의 외형은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빛무리로 표시되었기에 신비감이 더했다.
압도적인 화려함, 폭발력, 광대한 범위에 전율했던 게이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에 필적할 만한 범위를 가진 초광역기는 아마 슬라임 퀸의 ‘푸딩 범벅’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다.
콰콰콰쾅!
불사조가 만들어 내는 불과 얼음의 폭풍은 눈 깜짝할 사이에 레비아탄을 날려버렸다.
그 뒤로 수많은 불똥정령과 얼음똥정령들이 레비아탄을 향해 불과 얼음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이 건방진 올빼미 놈! 또 나를 방해하는 게냐!?]
레비아탄은 시뻘겋게 타오르는 외눈을 들어 불사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부글부글 끓는 기름가마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마몬과 벨제붑을 죽인 저 벌레 놈을 단죄해야 한다! 비키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악마들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으로 알아듣겠다.]
나는 레비아탄의 대사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알기로 마몬이 죽었을 때 레비아탄이 내 업적에 좋아요를 눌렀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애초에 악마들끼리는 유대감이라는 것이 없다.
실제로 마몬이 악마로서의 지위를 잃었을 때 직접 죽이러 온 존재가 레비아탄이 아니던가?
그런 마당에 지금 레비아탄이 나를 죽이겠다면서 복수심을 불태우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설정오류라고 해야 하나?
“뭔가 이상하긴 하군. 서브스트림 씩이나 되는 존재가 설정오류에 따라 행동할 리는 없고.”
설마 이게 아까 불사조가 말했던 ‘부정한 개입’이라는 것인가?
‘으으, 내가 엄청나게 애써 만든 서브스트림이었는데. 진짜 게임 좀 살살 해. 너 같은 플레이어는 처음이라고. 무슨 고정 S+등급 몬스터를 벌써 잡아.’
……물론 예전에 윌슨 총수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듣기는 했지.
그리고 남세나의 증언도 있었다.
뭐, 서브스트림이 없어져도 유저들은 여전히 즐겁겠지만…… 아마 총수인 ‘윌슨 링트’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예요. 그는 서브스트림들을 통해 사람들의 상상력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뎀 유니버스에는 아예 그쪽만을 전담 마크하는 대책팀이 신설되었다던데?
윌슨이 나를 견제하기 위해 레비아탄을 보낸 것일까?
물론 내가 세운 업적이 워낙에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몬스터의 행동을 조종해 나를 억제하려고 하는 것은 GM의 명백한 월권행위, 부정한 개입이다.
그것도 세계관의 일부를 담당하는 레비아탄 급 몬스터라면 더더욱 말이다.
‘뎀 유니버스 본사에서 한 사람을 대상으로 TF(Task Force)를 꾸린 예는 조디악이 처음이었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 다음이 나고.’
남세나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겼지만…… 막상 이 상황에 놓이게 되니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약 윌슨이 나를 조디악 급의 위험인물로 간주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고정 S+급 몬스터를 잡았다는 것 때문만은 아닐 것 같았다.
만약 그랬다면 창해룡 버뮤다를 잡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테니까.
‘게임을 망하게 하고자 하는 조디악이 불사조와 접촉하고자 했고 불사조는 윌슨의 의지에 반하는 유일한 서브스트림, 그리고 내가 불사조를 만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건 우연인가?’
아무래도 내가 불사조와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아니 불사조가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윌슨 총수임을 주장하는 조디악과 남세나, 불사조의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문득.
‘레비아탄을 조심해.’
머릿속에 윌슨의 경고가 스쳐 지나갔다.
“……흐음. 아무래도 이건 불사조의 말을 자세히 들어봐야겠는데?”
조디악과 남세나는 적대 관계지만 둘 다 믿을 수 없기로는 매한가지다.
그나마 불사조가 가장 신뢰가 되니 아까 이명 때문에 군데군데 듣지 못했던 그의 대사를 다시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곳을 습격해 온 이 레비아탄을 격퇴해야 한다.
나는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착용하고 마몬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나에게 힘을 실어 준다.
“꺼져라!”
내가 주먹을 들어 땅을 후려갈기자 그 충격으로 인해 융기해 오른 반대쪽 땅덩이가 높게 치솟아 레비아탄의 복부를 들이받는다.
콰콰콰쾅!
위로 솟구쳐 오른 땅봉우리는 레비아탄을 차원의 균열 너머로 넉백시켰다.
물론 그 순간에도 불사조의 불벼락과 우박세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 ……!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포격세례에 레비아탄이 괴로운 듯 몸을 꿈틀거린다.
이 거대한 심해괴물이 내지르는 포효는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날려버릴 정도로 컸다.
나는 놈의 비명소리를 듣고 쾌재를 불렀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호재가 되겠는데?”
나를 방해하려는 존재는 레비아탄을 보냄으로서 나와 불사조를 갈라 놓으려 한 것 같지만… 그것은 오히려 나와 불사조를 한 편으로 더욱 공고히 묶어 놓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불사조가 나의 레비아탄 사냥을 도와주는 꼴.
졸지에 강력한 원군이 생겼다.
쩌억- 퍼퍼퍼펑!
이윽고, 레비아탄이 내 쪽을 향해 바닷물을 역류시킨다.
강력한 물대포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쩌저저적! …빠지직!
수류는 땅에 닿기도 전에 얼어붙었다.
불사조가 얼음날개로 물길을 후려치자 레비아탄이 역류시킨 물줄기가 모조리 딱딱한 얼음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레비아탄의 몸 속 장기에도 치명상을 안긴다.
[컥!]
뾰족뾰족한 얼음가시들이 입안을 비집고 들어와 뱃속까지 헤집어놓자 레비아탄이 물을 내뿜던 것을 멈췄다.
[……끄르륵! 끄륵!]
뱃속까지 얼어붙은 물은 토해 내기도 쉽지 않았다.
억지로 토해 내려치면 내장 곳곳에 박힌 얼음가시들이 뚝뚝 부러지며 강렬한 통증을 남겼다.
[그아아아아악! 이 너절한 것들이……!]
레비아탄은 칼날 같은 이빨로 단단한 얼음들을 깨물어 부쉈다.
하지만 내가 뒤집어 놓은 땅 속에서 바위들이 툭툭 튀어 올라 연이어 복부를 가격하는 바람에 놈은 신경을 온전히 불사조에게만 집중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우우우우! 악마는 나가라!]
[여기서 꺼져 이 흑산도 갯지렁이 놈아!]
[죽어라 레비아탄!]
[레비아탄이라는 혐오 시설 입주를 반대한다!]
[Not in my backyard!]
[불사조 님을 괴롭히지 말란 말얏!]
[집값 떨어지기 전에 나가!]
불사조가 만들어 낸 신전 ‘파르테논’의 거주자가 된 모든 몬스터와 NPC들이 한데 모여 레비아탄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이 벌레같은 것들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레비아탄은 긴 몸을 베베 꼬며 저항했지만 불사조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합공에 버텨내는 것은 무리다.
결국.
…퍼펑!
레비아탄은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차원문 너머의 심해 말이다.
츠츠츠츠츠……
레비아탄이 그 거대한 대가리를 도로 차원문 안으로 집어넣는 동시에 불사조는 하늘에 났던 균열을 메꿔 버렸다.
이곳은 다시 고요함만이 남게 되었다.
[청소! 청소! 청소!]
[바닷물 싫어! 바닷물 싫어! 바닷물 싫어!]
불똥정령과 얼음똥정령들이 열심히 빗자루질을 하며 쑥밭이 된 대지를 청소하고 있었다.
몬스터고 NPC고 가릴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재정비를 돕는다.
한편.
윤솔과 드레이크는 식은땀을 닦으며 한 숨 돌리고 있었다.
“레비아탄은 어떻게 그 강력한 소용돌이를 뚫고 여기까지 온 걸까? 역시 심해의 대악마인가.”
“여기로 다시 들어오지는 않겠지? 힘으로 쫓아냈으니 말이야.”
내 친구들의 걱정을 들은 불사조는 짧게 한 마디를 했을 뿐이다.
[결계를 더 강하게 해 둬야겠군.]
불사조는 오른쪽 날개를 뻗었다.
이글이글 불타는 날개가 허공에 곡선을 그리자 몇 겹의 엄중한 방화벽이 생겨나 하늘을 뒤덮어간다.
나는 아쉬움 반 안도감 반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레비아탄은 이제 이곳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불사조가 온 힘을 다해 친 불의 결계는 상극인 물 속성의 레비아탄으로서는 뚫을 수가 없을 테니.
‘불사조와 함께라면 레비아탄을 역으로 털어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고정 S+급 몬스터에게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우선은 목숨을 건진 것에 안도해야 하는 것이 먼저.
……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었다.
쩍-
말끔하게 아물었던 하늘에 갑자기 다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콰지지지지직!
또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하늘이 박살난 자동차 유리처럼 균열투성이가 되더니 아까보다도 더 심하게 찢어지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바닷물이 밀려들어온다.
이 세상을 통째로 수몰시킬 듯 쏟아지는 차고 짠 폭포수.
“……레비아탄이 불사조의 방화벽을 깼다고?”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에 난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것은 뜻밖보다도 더욱 더 뜻밖의 상황이었다.
음산한 하울링과 함께 이쪽으로 머리를 내민 것은 분명 레비아탄이 맞다.
하지만 놈은 혼자가 아니었다.
뚝 부러진 레비아탄의 커다란 뿔 옆에 뭔가가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무식한 놈. 혼자서 그렇게 빨리 가 버리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레비아탄을 힐난하는 존재.
나는 놈의 정체를 알아채는 순간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카프카타렉트>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4m.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전장, 무투장, 삶을 지배하는 위대한 흰 용.
“세계는 위협으로 가득하고 모든 삶은 곧 투쟁이다.”
-카프키타렉트- <신약, 백내장기(白內障記), 『 어느 투쟁의 기록 』>
질투의 악마성좌 레비아탄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은 바로 화이트 드래곤 카프카타렉트였다.
용마동맹(龍魔同盟).
용과 악마의 연합전선.
게임이 출시된 이래 15년이 지난 시점에서나 벌어져야 할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순간.
‘껄껄껄, 뭐? 뭐를 만난다고?’
‘흰 용 카프카타렉트를 만나면 어떻게 하냐고?’
‘아이고 우리 귀여운 어진이, 뉴비가 궁금한 것도 많네~’
‘고작 7만 시간 한 정도로는 택도 없어 인마! 평생 만날 일 없을 거야~’
‘하지만 뭐… 만약 카프카타렉트를 만난다면……’
회귀 전, 고인물을 아득히 넘어서 썩은물, 망령, 적폐, 석유, 화석, 아스팔트, 암흑물질, 엑토플라즘 등으로 불렸던 게임폐인 선배들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 당시 게임 플레이 타임 7만 시간을 넘었던 나를 어린아이처럼 귀여워해 주던 선배님들.
그분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