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화 자X교 (3)
헬쓱한 표정의 조디악이 새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또 너냐아아아아-!”
그렇다. 이번에도 나다.
“고인물쨩 등★쨩.”
나는 멋지게 휘장을 열어젖히며 등장했다.
내 뒤에서는 드레이크가 쇠뇌를 들고 연달아 속사 샷을 갈기고 있었다.
마치 람보의 삶 그 자체를 보는 듯한 광경.
“부정한 성교행위를 중단해라!”
“……선교행위겠지. 한국말 어디서 배웠어?”
뭐, 아무튼.
조디악과 김정은, 방철우, 방철해는 쏟아지는 데미지 세례를 피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 저 자식이 여긴 또 어떻게 알고!?”
그런 조디악의 의문에 답해 준 이는 반대편 휘장을 찢어발기며 등장한 윤솔이었다.
한 손으로는 천막의 벽을 부수고 다른 한 손에는 그동안 길잡이 역할을 했던 잭 메리듀의 멱살을 꽉 잡고 있다.
“죄, 죄송합니다 앙신 님! 잡혀 버렸습니다. 이 여자의 힘이 너무 괴물 같아서…….”
잭 메리듀는 조디악을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다.
그러나 조디악은 전혀 아쉬운 기색이 아니었다.
“쯧쯧쯧, 하도 애걸복걸하길래 부하로 받아줬더니만. 역시 쓸 만한 부하라고는 너희들뿐이구나. 인정하는 각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정은이 황당한 표정으로 톡 쏘아붙인다.
“웃기셔. 누가 니 부하야?”
“……응? 너네 내 부하 아니었냐?”
“아니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쌍무적 계약관계라는 걸 잊지 말라고!”
김정은의 대답에 조디악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퍼억!
마도서를 뻗어 시커먼 화염 작살 한 정을 소환해 그대로 잭 메리듀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푸스스스. 멍청한 놈. 잡혔으면 곱게 뒈질 것이지. 어딜 패밀리의 위치를 미주알 고주알……. 젠장! 설마 책까지 빼앗긴 건 아니겠지?”
조디악은 너무도 손쉽게 잭 메리듀를 내쳐 버린다.
부하를 마치 벌레 죽이듯 하는 그의 태도에 나도 드레이크도 윤솔도 표정이 굳는다.
“저 살인자가 누구 똘마니인가 했더니…… 네 추종자였구나.”
나는 두 자루의 쌍수깎단을 든 채 앞으로 내달렸다.
깎단 끝에 실려 있는 벨제붑의 역한 아우라가 눈앞의 고깃덩이를 향해 폭식 욕구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조디악은 그런 내 힘을 보고도 태연했다.
“푸스스스스…… 폭식의 악마성좌를 잡았군. 그 무서운 파리 대왕을 무슨 수로 꺾은 것이지?”
역시나 놈은 벨제붑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클로즈 베타 테스터인가 뭔가 하는 것과 관련이 있겠지.’
나는 조디악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깎단을 휘둘렀다.
날카롭고 독한 송곳 끝이 조디악의 흉부를 사납게 때린다.
…땅!
하지만 조디악은 내 깎단을 튕겨냈다.
검은 망토 아래에는 단단한 흉갑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찢어진 망토의 자락 사이로 본 갑옷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너?”
내가 놀랄 만도 하다.
조디악이 지금 입고 있는 갑옷은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적인 아이템이 아니었으니까.
-<악마성좌 벨페골의 악몽귀갑> / 갑옷 / S+
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방어력 +0
-특성 ‘내일모레’ 사용 가능 (특수)
조디악의 몸 전체를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는 기체.
저 형체 없는 것은 분명 벨페골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아우라였다.
벨페골의 ‘내일모레’ 특성은 입은 데미지를 할부로 차차 나눠 받는 능력, 어찌 보면 도트 데미지에 가장 잘 저항할 수 있는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로 자비롭게도, 나약한 사람들은 가벼운 고통을 평생에 걸쳐 조금씩 받아 가지. 하지만 어떤 위대한 사람들은 그것을 이따금, 한순간에, 단 한 번의 고통으로 응축시킨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그 깊은 고통을 그대로 축적시켜 평생을 고뇌로 가득 채우는 것이야! 허먼 멜빌의 말이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야!”
조디악은 취한 사람처럼 낄낄 웃는다.
물론 나는 그의 개똥철학에 눈꼽만큼도 관심 없었기에 그저 씹어 내뱉듯 말할 뿐이다.
“……빌어먹을 놈. 최악의 특성을 손에 넣었구나. 대체 벨페골을 뭔 수로 잡았지?”
“푸스스스스! 아까 내가 물어봤던 거랑 똑같잖아 프렌드! 너는 벨제붑 어떻게 잡았냐고!”
대화에 진척이 없었기에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혼자서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 살인자들의 탑에서 조디악은 벨페골을 잡으려다가 실패하고 도망쳤었다.
나와 유다희가 방해하기도 했고 지옥불 코어와 슬라임 젤리의 수량도 모자랐으며 화석 해골병들의 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살인자들의 탑이 무너지고 봉인에서 풀려난 벨페골이 직접 추격하기까지 했는데…… 조디악은 대체 어떻게 벨페골을 잡았던 것일까?
“다시 묻지. 벨페골을 어떻게 잡았냐?”
“너야말로 벨제붑을 어떻게 잡은 건지 말하라니까?”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어서는 영양가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나는 분위기를 한번 고압적으로 슬쩍 바꿔 보았다.
“어떻게 벨페골을 잡았는지 말해 준다면 특별히 목숨만은 살려 주지.”
“먼저 말한다면 나도 책임지고 말해 주겠다, 변태 친구.”
아무래도 악몽귀갑을 얻은 조디악은 이제 나와 비벼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한번 분위기를 바꿔 보았다.
이번엔 평화로운 태도.
“……디악아, 벨페골 어떻게 잡았어? 진짜 궁금해서 그래. 한 번만 알려 주라!”
“푸스스, 시러시러~”
“아이, 알려 줘~”
“푸스스스스, 꺼져~”
아무리 분위기를 바꾸어 가며 얼러도 조디악은 입을 열지 않는다.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근데 진짜 어떻게 잡았지? 혹시 내가 모르는 비장의 수가 더 있었던 건가?’
조디악은 음흉한 놈이니 이중 삼중으로 안배를 깔아 뒀을 가능성이 있다.
“……가령 탑 밖에 지원군을 대기시켜 놓았다던가.”
내 중얼거림을 들은 조디악이 순간 몸을 움찔한다.
이런 쪽으로는 은근히 알기 쉬운 놈이다.
“그렇다면 그 지원군이라는 게 뭔지 알아내야겠는데?”
“귀신같은 놈. 너 GM쪽이냐? 뭐 이리 냄새를 잘 맡아?”
조디악과 나는 날카롭게 대치한다.
내 뒤로 드레이크와 윤솔, 그리고 오즈와 쥬딜로페가 포진하고 섰다.
조디악의 뒤로는 화살세례 때문에 화가 잔뜩 난 김정은과 방철우, 방철해 형제가 포진했다.
김정은과 윤솔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이네. 요즘 좋아 보이더라? 걸그룹으로 데뷔도 하고.”
김정은은 천막 뒤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빨간 책’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녀가 지금껏 공들여 제작해 낸 버그 아이템.
빨리 틈을 타서 저 책들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윤솔은 김정은에게 전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안부 나눌 사이던가요?”
“어머 무서워라. 알몸 변태랑 같이 다니더니 성격도 요상해졌네. 아, 원래 그랬던가? 하긴, 그러니까 예전에 칼침의 탑에서도…….”
김정은은 시간을 벌기는커녕 말을 끝맺지 조차 못했다.
윤솔이 바로 신성모독자 특성을 발동해 버렸기 때문이다.
…콰콰콰콰!
시뻘건 아우라가 윤솔의 전신을 감쌌다.
거대한 악귀의 손바닥이 김정은을 향해 뻗어 간다.
러시아 국가대표들을 상대로 트리플 킬이라는 위업을 거뒀던, 그리고 살인자 잭 메리듀를 일격에 짓눌러 제압했던 바로 그 공격이다.
“꺄아아아악! 나는 서포터란 말이야! 근접 딜링은 싫어!”
김정은은 기겁을 하며 뒤로 빠진다.
그런 그녀를 지키는 오크 전사 방철우, 방철해가 거구의 몸을 움직여 윤솔의 손을 막아 냈다.
콰쾅! 꾸드드드득-
막강한 방어력의 두 탱커가 작정하고 들러붙으니 천하의 윤솔이라고 해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때.
“더러운 오크 놈들. 물러나라.”
드레이크가 그런 방씨 형제를 향해 커다란 장전 하나를 들어 겨눈다.
퍼퍼퍼퍼펑!
강력한 원딜이 조디악의 탱커 라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방철우, 방철해 형제는 방패와 갑옷을 사정없이 두들겨 부수는 불카노스 화살촉의 힘에 경악해야 했다.
“푸스스스스! 드레이크라, 저게 참 은근히 성가신 놈이란 말이지.”
조디악이 화염의 벽을 펼쳐 드레이크의 저격을 막았다.
불은 물리력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스나이퍼의 시야를 가리기에는 충분하다.
뜨거운 열풍이 몰아쳐 주변의 얼음을 녹이고 있었다.
“흐음.”
드레이크는 불과 열풍 때문에 시야와 화살의 궤도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고 뒤로 잠시 물러났다.
그때. 내가 조디악의 앞으로 뛰어들어 깎단을 들이밀었다.
“그럼 나는 누가 막을 거지?”
김정은을 잡는 건 윤솔, 윤솔을 막는 건 방씨 형제, 방씨 형제를 잡는 건 드레이크, 드레이크를 막는 건 조디악, 조디악을 잡는 건 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맛있으면, 아니, 그렇다면 나는 뭘로 막을 것이냐 이거야!
하지만.
나를 보는 조디악의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가 남아 있다.
“푸스스스스, 너를 뭘로 막을 거냐고?”
조디악은 화염벽을 더욱 더 높고 두껍게 세웠다.
쿠르르륵…
불길이 더욱 더 사나워졌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조디악이 방어 태세를 더욱 굳건하게 하는 줄로만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런! 우리도 뒤로 빠지자!”
나는 조디악의 의도가 방어보다는 공격에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 챘다.
부글부글부글…
불에 닿은 얼음이 녹으며 물이 바로 끓기 시작했다.
천막이 모두 불타고 그 아래 단단한 빙판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얼음바닥 중앙이 둥그렇게 녹아내려 웅덩이처럼 변하는 것을 보며, 조디악이 씩 웃었다.
“친구, 내가 벨페골을 뭘로 잡았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불안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나는 조디악이 벨페골을 잡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최후의 수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풍덩! 퍼퍼펑!
얼어붙은 바닥이 녹으며 생겨난 웅덩이의 수면을 박살내고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얼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것, 그것은 이내 탁한 백색으로 허옇게 번들거리는 눈을 들어 나를 내려다본다.
삭아 버린 잇몸과 날카로운 이빨, 전신을 휘감고 있는 검은 근섬유.
무너져 가는 육체들을 뒤로 줄줄이 거느리고 있는 존재.
그것은 칼침의 탑에서 놓쳤던 위험등급 S급의 몬스터.
바로 ‘인간 지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