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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12화 (612/1,000)
  • 612화 자X교 (1)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설원에 덮인 눈을 쓸어간다.

    “흐음, 여기도 사람이 전혀 안 보이네.”

    나는 북대륙의 버려진 마을 하나를 뒤지고 있었다.

    원래 북방의 NPC들은 기후가 너무 가혹해지면 종종 마을을 버리고 이주하기에 버려진 마을 자체는 흔하게 널려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마을은 NPC들이 이주하면서 버려진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오두막 서까래에 늘어져 있는 밧줄과 올가미를 보면 알 수 있다.

    찬바람에 헤져 끊어진 밧줄 밑에는 올가미에 걸린 해골 한 구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체구가 작고 두개골에 붙어 있는 모발 가닥이 얇은 것으로 보아 어린아이의 것이 분명했다.

    윤솔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어린 아이까지.”

    “정말 너무하는군.”

    드레이크도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야에 닿는 곳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밧줄들.

    그리고 그 밑에는 싸늘하게 얼어붙은 해골들이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나는 무감정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을 뿐이다.

    “저항의 흔적은 안 보이네. 전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우리는 며칠 전부터 북방에서 실종된 NPC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얼어붙은 손에 입김을 불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전부 다 북방이로군.”

    “그야 지형과 날씨 때문에 고립되어 있어서 소문이 제일 안 도니까요. 지역도 폐쇄적이고.”

    윤솔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우리가 조사한 대로, NPC 실종 및 자살은 아직 많이 관찰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시간차를 두고 일정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었다.

    ‘하긴, 그러니 뎀 유니버스에서도 조디악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동안 내리지 않던 비상령까지 내려가면서 말이야.’

    그동안 조디악이 일으킨 크고 작은 말썽들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던 뎀 유니버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윌슨은 분명 조디악이 불러일으킬 어떠한 일련의 결과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뭐, 걱정할 건 없지. 이번에도 내가 방해할 테니까.”

    나는 남세나가 건네줬던 서류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한편. 윤솔과 드레이크는 지금껏 모은 단서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변이 발생한 NPC들의 행동에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1. 빨간 책을 읽었다.

    2. 그 즉시 스스로를 자해했다.

    3. 주위에서 자해를 막으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4. 드물게, 주변 사람들에게 빨간 책을 읽게끔 강요했다.

    5. 빨간 책을 읽게 된 주변인은 1에서부터의 행동을 반복한다.

    “……흐음. 정말 이 책을 읽으면 죽게 되는 건가?”

    인벤토리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이 빨간 책의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딘가 기분이 나빠졌다.

    -<읽으면 자X하는 책> / ? / ?

    이 책을 본 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될 것이다.

    -어둠 속성 저항력 -100%

    읽으면 죽게 된다는 설정.

    단순한 도시괴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 심각하다.

    NPC가 사라진다는 것은 실로 큰 문제이다.

    지역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있어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크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히스토리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세계관에 구멍이 나 버린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수많은 개인들의 사정과 역사, 인생이 한데 모여 이루는 거대한 세계관, NPC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신화의 기초가 되는 잔뿌리들이 사라진다는 것과 같다.

    나는 턱을 한번 쓸었다.

    “오염된 피 사건보다도 더 심각하군.”

    원래 NPC들은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지만 만약 부당한 외부 개입에 의해 죽는다고 해도 그 자리를 대체할 다른 NPC가 생성되기에 게임 플레이 자체에 그리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몬스터의 경우에는 더미 파일의 크기가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죽는 즉시 데이터를 삭제하지만 NPC의 경우에는 그 데이터와 AI를 서버에 별도로 지정된 아공간으로 옮겨 놓고 추후 비슷한 AI를 생성하거나 다시 불러와 로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M.A와 S.A의 구분도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

    대다수의 가상현실 게임에는 중요한 NPC를 ‘에센셜 엔피씨’, 혹은 ‘M.A(Main actor)’라고 해서 죽지 않게끔 설정해 놓는 경우가 있다.

    S.A(Support actor)는 몬스터와 같이 고유의 생명력이 있어 소멸시키거나 대체할 수 있지만 세계관에 꽤나 깊숙하게 관여하는 M.A(Main actor)는 인공지능이 고유의 에센셜 코드를 부과하여 파괴불가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괴상한 현상은 NPC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NPC가 고유의 직무를 유기하고 근무지를 이탈하여 사라져 버리면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인물이 생성되지 않고 있는 것.

    그것이 M.A이든 S.A이든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 이 NPC들의 데이터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인데.”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한 해골.

    한때 NPC였던 존재의 죽음과 소멸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자기 스스로를 파괴했고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대신할 존재도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런 예외적인 현상을 대규모로 만들어 내는 것은 내가 알기로 단 하나뿐이다.

    ‘버그.’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이 현상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조디악의 일을 망쳐 놓는 것도 좋지만 이 상황 자체가 궁금하기도 하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히히히히……

    “아, 또 저 몬스터인가.”

    “필드보스치고는 되게 흔하게 나오네.”

    드레이크와 나의 표정이 동시에 구겨진다.

    이히히히를 겪어 보지 않은 윤솔만이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다.

    이윽고, 마을 입구 쪽에서 이히히히가 등장했다.

    <기어오는 술래 ‘이히히히’> -등급: A / 특성: 얼음, 어둠, 언데드, 술래

    -서식지: 가혹한 설산

    -크기: 2m

    -마을에서 마녀로 몰린 여자가 얼음 구덩이에 산 채로 던져졌다.

    머리 위로 연신 끼얹어지는 차가운 물을 맞으며, 그녀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저 끔찍한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

    무서운 것에 약한 윤솔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가드를 올렸고 드레이크 역시 쇠뇌를 들어 경계 자세를 취했다.

    그때 문득, 나는 인벤토리에 있던 ‘빨간 책’을 떠올렸다.

    ‘……이게 몬스터한테도 통하려나?’

    그것은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나는 이 괴상한 아이템을 손에 들고 쫙 펼쳤다.

    빨간 책의 표지가 넘어가며 안의 페이지들이 정면에 있는 이히히히를 향해 팔락팔락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꺄아아아아악!?]

    책의 페이지를 본 이히히히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미소조차 입에서 거둔 채 두 눈과 입을 찢어질 듯 벌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더니 기어오던 자세 그대로 방향을 돌려 네 발로 마구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가파른 크레바스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펄쩍!

    이히히히는 달려가는 자세 그대로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제아무리 필드보스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엄청난 높이인지라 이히히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뻔하다.

    죽음. 너무나 명확한 결과였다.

    “……!?”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나는 책을 펼쳐 거꾸로 든 상태로 굳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몬스터한테도 통한다고?”

    ‘읽으면 죽는 책’의 힘은 내가 생각한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보고 있노라면 절로 불길함이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버그 아이템이 분명하다.

    ‘조디악이 만들어 낸 건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안에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그러지?”

    “불안하니 일단은 닫아 두는 편이 낫겠어.”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내 손 안의 빨간 책을 꺼림직해 하는 눈치다.

    나는 남세나가 알려 주었던 정보들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했다.

    ‘조디악은 아무래도 게임 자체를 망치려는 것 같아요.’

    맞는 말이다.

    랭커들을 사냥하고 다닌다거나 무법지대를 만들어 살인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도 모자라 핵쟁이, 돈복사 버그 등의 대사건을 일으킬 김정은과 손까지 잡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혹은 뎀 유니버스 자체에 원한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기행들을 연달아 벌이기는 힘들 것이다.

    순수한 악의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집념이 짙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만났을 때 이상한 소리를 하긴 했었지.’

    나는 꽤 오래 전, 고르딕사 레이드에서 조디악을 만났을 때 놈이 했던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너지? 대격변 일으킨 놈이. 진짜 깜짝 놀랐어. 대격변이 ‘벌써’ 일어날 줄이야.‘

    ‘……대격변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거지 벌써가 어딨어. 네가 무슨 게임 관계자라도 되냐? 아니면 회귀라도 했거나.’

    ‘푸스스스스! 게임 관계자라?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나는 클로즈 베타 테스터였으니까.’

    ‘…….’

    ‘흐음…… 클로즈 베타라는 단어를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네? 너 대체 뭐냐? 클로즈 베타 테스터도 아닌 놈이 어떻게 대격변을 일으켰고 여기 고르딕사까지 잡으러 온 거야?’

    ‘……그 클로즈 베타 테스트라는 게 뭔데?’

    ‘진짜 몰라서 묻는 건지, 알면서 놀리는 건지.’

    ‘…….’

    ‘친구.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봐. 얼마나 광활하고 정밀한 세계관이야?’

    ‘…….’

    ‘이런 게임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져 출연한다는 것이 이해가 돼?’

    이런 대화가 오간 이후, 조디악과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당시 한일전을 앞두고 한 번 더 마주했었다.

    당시 조디악은 내가 클로즈 베타 테스터임을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고 나와 동맹을 맺고 싶어 했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무적이지. 그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게 될 거야.’

    그때의 조디악은 고정 S+등급 몬스터 레이드, 혹은 GM과의 분쟁을 준비하고 있는 눈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고정 S+등급 몬스터란 아마도 나태의 악마성좌 벨페골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가 그런 조디악을 사냥개처럼 쫓고 있었다.

    ‘……조디악. 우리도 그를 주의 깊게 보고 있거든요. 적의 적은 친구라잖아요?’

    그녀는 닳고닳은 뉴비 팀이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정해진 것을 기념하는 파티에 참석해 굳이 나에게 얼굴도장을 찍어 놨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남세나는 그 당시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디악 번디베일을 특히 주목하고 있었다.

    조디악이 살인자들의 탑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도 그녀의 제보 덕분에 알게 되었을 정도니까.

    ‘확실히 조디악이 빌런이기는 하지만…… 남세나는 분명 필요 이상으로 놈에게 집착하고 있다.’

    그것은 확실히 일반적인 카르마 유저를 경계하는 것을 넘어선 수준의 적개심이었다.

    GM과 대체 얼마나 척을 졌으면 뎀 유니버스 측에서 처리반에게 밀착 감시를 명령할 정도란 말인가.

    아마도 조디악은 또다시 음흉하고도 불길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미래를 살아온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는.

    그때.

    …부시럭!

    나는 저 멀리, 마을의 출구 쪽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눈 좋은 드레이크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두터운 털옷을 걸친 행상인 하나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마을 출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 위에 NPC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았다.

    평소였다면 그냥 관심을 껐겠지만…… 그 행상인에게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빨간 책!

    방금 놈이 나왔던 폐가에서 집어 온 것으로 보이는!

    행상인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빨간 책을 자기 인벤토리 안에 넣고는 울타리를 넘어간다.

    더군다나 놈의 얼굴은 나와 윤솔, 드레이크에게도 구면이었다.

    잭 메리듀.

    과거 파리 대왕 벨제붑의 제물로 전락했었던 살인자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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