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10화 (610/1,000)
  • 610화 도둑잡기 (4)

    “……감히 내 창고를 털어?”

    마동왕 특유의 기계 목소리가 불길 너머에서 으스스하게 들려온다.

    “자수해라. 광명 따위는 없다.”

    그 압도적인 포스에 노출된 40인의 도둑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마, 마동왕이 왜 여기서 나와?”

    “으헉!? 여기 고인물 창고 아니었어?”

    “큰일났다. 둘이 친한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창고도 같이 쓰는 사이일 줄이야!”

    “여고생들은 화장실도 둘이 같이 간다고 들었는데 그거랑 비슷한 개념인가 봐!”

    초자연재해에 가까운 광역기를 평타처럼 펑펑 난사하는 마동왕이 상대라면 승산이 조금도 없다.

    40명이 40개의 방향으로 다양하게 도망간다고 해도 지축이 뒤집히면 한꺼번에 몰살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40인의 도둑들이 그 자리에 황망하게 서 있을 때.

    …핏!

    저 멀리서 로그인을 알리는 환한 빛무리와 함께 새로운 인물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고인물.

    바로 나다.

    *       *       *

    ‘잘 하고 있었구만.’

    나는 고인물 모드로 게임에 접속했다.

    굳이 로그아웃을 했던 것은 오래 전부터 나를 미행하는 시선들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도둑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는 게임에서 나가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마동왕은 누구냐?

    ……바로 드레이크다.

    마동왕의 메타 특성상 가면과 건틀릿만 빌려 주면 언제든 대역을 시킬 수 있다.

    아이디야 가리면 되는 것이니까.

    더군다나 드레이크는 나와 키와 체형도 비슷하기 때문에 아이템으로 무장하면 거의 차이가 없게 된다.

    (드레이크는 예전에 현실 팬미팅에서도 한번 마동왕의 대역을 해 준 적 있기에 흉내 내는 것에도 익숙하다)

    “완전 개판이네 이거.”

    나는 활활 불타고 있는 창고를 바라보았다.

    안에 든 모든 민첩 템들은 이미 내 무한 인벤토리 안으로 치워 놓았다.

    대신 보물상자 안에 화약과 기름 먹인 짚을 잔뜩 저장해 두어 좀도둑들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드레이크가 5킬로미터 밖에서 쏘아 보낸 초장거리 불화살 저격이 이 모든 폭발의 신호탄이었다.

    나는 40인의 도둑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아는 얼굴들이 하나도 없네. 역시 원한에 의한 면식범이 저지른 사건은 아니었군.”

    그러자 내 말을 들은 도둑들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야! 나 너한테 PK당해 죽었었거든? 몇 번이나!”

    “미친놈아! 샌드웜 때 생각 안 나!?”

    “골렘 웨이브 일으켰을 때 내가 얼마나 큰 피해를 봤는데!”

    “이히히히 때 죽음의 얼음땡을 잊었냐!?”

    “마트료시카 때는 또 어떻고!”

    “네놈이 대격변을 멋대로 일으켜서 내가 강제로 오크가 됐잖아!”

    “내 마음도 훔쳐 갔어!”

    “리자드맨으로서 오즈 님을 죽인 죄는 도저히 용서 못 하겠다!”

    “아틀란둠 때도!”

    “커피 농장으로 제발 돌아와 줘! 너 때문에 영구 퀘스트 중이잖아!”

    “나쁜 놈! 우리 애는 어쩔 거야!”

    “그레이 시티를 다시 살인자들에게 돌려줘!”

    .

    .

    원한 그 자체. 40인이 각각 40개의 사연들을 쏟아내며 나를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원한을 풀어 주는 것은 참 쉽다.

    부웅-

    나는 그런 놈들에게 깎단을 거꾸로 쥐고 흔들어 보였다.

    “뭐.”

    “…….”

    다들 급격히 과묵해졌다. 역시 침묵은 금이라니깐.

    나는 시간이 지나 바닥의 땅굴이 메워진 것을 확인하고는 드레이크에게 말했다.

    “우리 마동왕 친구. 이제 불 꺼도 될 것 같다.”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드레이크가 두 팔을 쫙 벌리더니 창고 안에서 타오르는 홍염을 향해 손을 그러쥐었다.

    드레이크의 양손에 마몬과 데스웜의 힘이 깃든다.

    그것은 허공에 지진 에너지를 일으켜 공기를 요동치게 만들고 이내 거대한 와류의 흐름을 빚어냈다.

    거기에.

    …번쩍!

    드레이크의 양 건틀릿 뒤, 손목 부근에서 시퍼런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툴루 크라켄의 촉수> / 완갑 / S

    대풍랑을 부르는 해신(海神)의 위엄. 그 자체.

    -방어력 +1,700

    -민첩 +2,000

    -특성 ‘풍랑(風浪)’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완충(緩衝)’ 사용 가능 (특수)

    풍랑 특성. 내가 예전에 씨어데블을 잡으면서 내심 얻고 싶어 했었지만 결국 얻지 못했던 스킬이다.

    이윽고, 불타고 있는 창고 위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뭐, 뭐야. 비야? 난 비 맞기 싫은데.”

    “멍청아! 떠들지 마, 그러다가 비가 아니라 주먹에 쳐맞는다고!”

    “늬들 둘이나 조용히 해라!”

    꽤 강렬한 소리.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다.

    휘이이이이잉!

    거기에 태풍마저 몰아치기 시작했다.

    불에 타서 군데군데 구멍이 난 천장 위로 비바람을 수반하는 거센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그것은 마몬과 데스웜의 힘과 맞물려 어마어마한 폭우와 강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미쳤나 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만 쫄아, 그래 봐야 플레이어일 뿐인데 진짜 폭풍우를 부를 수 있을 거 같아? 이건 환각이다!”

    “당연하지. 한낱 유저가 세면 얼마나 세다고 날씨까지 컨트롤해?”

    …쿠르르르륵!

    쏟아져 내리는 폭우와 태풍에 엄청나게 드세던 불길이 순식간에 잡혀 가기 시작했다.

    “환각 아닌데?”

    “그, 그러게?”

    “아냐, 저 부근만 진짜고 지금 이 지대에 내리는 나머지 비는 스킬 이펙트 같은 거야! 분명 환가…….”

    콰콰콰쾅!

    “……가가가가갂!”

    어마어마하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40인의 도둑들이 자리에서 붕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나 역시도 날아가지 않기 위해 바닥을 꽉 붙잡고 버텨야 했다.

    ‘우와, 이거 능력이 상상 이상이네.’

    씨어데블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과연 크툴루 크라켄의 힘이다.

    드레이크의 미숙한 숙련도로도 이 정도 힘을 낸다면 이미 능숙한 내가 썼을 때는 그 파워가 어떨지 짐작이 간다.

    지진과 와류에 이어 풍랑까지 지배할 수 있는 자연재해 3신기가 모두 내 손에 들어왔다.

    ‘세계대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군.’

    이제 남은 것은 모든 이가 보는 무대에서 이 압도적인 풍경을 시현하는 것뿐이다.

    *       *       *

    나는 반쯤 불찬 창고를 뒤로하고 텅 빈 공터 앞에 40개의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항아리 속에는 40인의 도둑들이 목만 내민 채 갇혀있다.

    나는 40개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도둑들을 윽박질렀다.

    “내 잡템들 어디다 놨어?”

    다짜고짜 잡템들의 안부부터 묻는 나를 보며 도둑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진짜 지독하다.”

    “그 똥템들마저 손해 안 보려고.”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이래.”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이 아직 자기 처지를 잘 모르나 본데.”

    동시에, 나는 40인의 도둑과 40개의 항아리 앞에 세워 둔 솥을 돌아보았다.

    커다란 솥 안에는 기름이 펄펄 끓고 있었다.

    …파직! …파직 …치지지지직! 지글지글지글지글지글…

    나는 그 솥 안에 새우튀김과 고로케를 튀기며 40인의 도둑을 향해 말했다.

    “알리바바의 여종인 카흐라마나가 40인의 도둑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알아?”

    그러자 40인의 도둑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

    알면 무서워서 대답 못 할 거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무서워서 대답 못 할 것이다.

    내가 친히 녀석들의 몸에 오일과 빵가루를 발라 주자 분위기는 더욱 더 살벌해져 간다.

    “……아, 알아!”

    이게 퀴즈쇼라고 생각했던 건지 한 녀석이 번쩍……

    “핵핵! 알아! 알아! 해액!”

    혓바닥을 든다. 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꼴이 한심해서 물끄러미 보았더니 녀석은 내가 자신을 간택한 줄 안 듯 보였다.

    “흐흐, 흥흥……흐흐, 흑흑…… 낑낑!”

    녀석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건지 슬픔과 기쁨을 오가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정답! 끓는 기름을 부어서!”

    “잘 아는구만. 장하네.”

    내가 가볍게 칭찬한 것이 도둑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와전되었나 보다.

    여기저기서 혀들이 솟아오른다.

    “엥! 엡! 앱앱! 나도 알아!”

    “아르르르르르! 여기요!”

    “낼름낼름! 전 그것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베에! 뎌 아까부터 손 드고 이떠떠요! 혀가 딻아서 못 보thᅟᅵᆫ 거예요!”

    “핥핥! 뎌더 아라오! 아오! 혀빠닥에 뒤나써!”

    항아리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내가 알몸이라서 그런가?

    40명이나 되는,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남자들이 나를 향해 혓바닥을 뻗으며 낼름낼름 핥짝핥짝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몸에 소름이 끼친다.

    나는 다시 깎단을 들었다.

    “다 혀 안 집어넣어? 이걸 확 입에 쑤셔 넣어 줄까 보다.”

    “……히익!? 그, 그런 건 안 들어갑니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볼까?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

    내가 음산하게 웃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처럼 모두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저벅- 저벅-

    나는 정답을 맞춘 도둑 앞으로 걸어갔다.

    녀석은 충견 같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 나는 보내 줘야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정의로운 유저로서 다른 유저의 운신을 제약하면 안 되지.

    나는 녀석의 머리를 잡고 항아리째 들어 올렸다.

    “도둑아, 집에 가고 싶어?”

    “끄윽! 응! 아뇨, 예! 가고 싶어요!”

    “그럼…….”

    내 안광이 번뜩였다.

    “템 내놔 X끼야.”

    “예?”

    당장이라도 목을 칠 것 같은 기세에 녀석은 눈알을 요리조리 굴린다.

    그러나 마땅한 대답은 없다.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이, 이 자식이라면 어떻게든 훔친 템들을 찾아낼 것이다.’

    녀석은 한참 고민하는 듯하더니 목에 힘을 풀고는 축 늘어졌다.

    “후……씨…….”

    후두둑- 후두둑-

    눈물 젖은 빵가루가 떨어진다.

    “씨이…….”

    도둑놈은 본체를 잡힌 달팽이처럼 몸을 대롱대롱 움직이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눈치였다.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없어.”

    “……?”

    내 대답을 들은 40인의 도둑들이 움찔한다.

    나는 원래 내 템 받고 거기에 더한 요구를 얹었다.

    “벗어.”

    ……?

    내 말을 들은 도둑들은 일제히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들의 멍한 표정이 서서히 두려움으로 변해 갈 때쯤.

    나는 내 요구를 명확히 했다.

    “늬들 템도 싹 벗으라고.”

    “……!”

    도둑들은 사색이 되어 떨었다.

    부스스스-

    빵가루들이 가라앉으며 자욱한 빵먼지를 일으킨다.

    그것을 본 나는 다시 한번 정의의 깎단을 들어 올렸다.

    “멈춰라 얍.”

    그러자 시간이라도 정지한 듯 모두의 떨림이 멈췄다.

    나는 깎단으로 제일 앞에 있는 털복숭이 덩치를 지목했다.

    “야, 니가 나와서 먼저 벗어.”

    그러자 녀석은 울상이 되어 소리쳤다.

    “잠깐만요!”

    “잠깐만은 저승에나 있는 거란다. 저승으로 가고 싶니?”

    “…….”

    “그렇게 저승에 가고 싶어? 으응?”

    내 질문을 들은 도둑은 결국 굵은 눈물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벗으라면 벗겠어요.’

    “흑흑, 인성 개터진 새끼”

    녀석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찌나 절망했는지 대사랑 생각이 뒤바뀐 것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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