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09화 (609/1,000)
  • 609화 도둑잡기 (3)

    야심한 밤.

    초보자 마을 유토러스에서 제일 가까운 필드 ‘숨죽이는 평원’.

    40인의 도둑들이 널찍한 한 공터에 모였다.

    “자, 친구들. 이번이 마지막이야.”

    검은 복면을 쓴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종족은 인간, 클래스는 도둑.

    한때 인천 대표팀 와이번즈 소속의 프로게이머였던 신창원이었다.

    그 외, 지금은 와해되고 없는 구 대형길드 인천연합 소속이었던 장태익, 전북 대표팀 천지패황의 프로게이머였던 최무홍 등이 복면을 쓰고 포진해 있었다.

    “이거 한 방만 크게 한탕 하고 손 떼자.”

    “맞아, 고인물 그 변태 자식은 너무 무서워.”

    “근데 이거 진짜 해야 돼? 벌써 창고를 두 개나 털었는데 쓰레기 아이템만 나왔잖아.”

    도둑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수근거린다.

    그러자 맨 앞에 있던 장태익이 앞으로 나섰다.

    “다들 들어봐.”

    그는 이목을 자기에게 집중시킨 뒤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에 창해역사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갔을 때, 진시황은 자기가 타고 있는 마차 외에 빈 마차를 두 개 더 세워 두었지. 결국 창해역사는 세 마차 중 하나를 정해 공격했지만 그 마차는 빈 마차였고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어. 이게 뭘 뜻하는 것 같아?”

    그러자 신창원이 눈을 빛냈다.

    “찍을 때는 잘 찍어라?”

    “……아니지. 중요한 걸 숨기고 싶으면 연막을 깔라는 거야.”

    장태익은 창고의 구조를 그려 보았다.

    ㄷ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1, 2, 3번 창고.

    “이 중에서 우리는 1번 창고와 3번 창고를 털었어.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지.”

    그러자 40인의 도둑 모두가 고개를 들어 공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잡다한 아이템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모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장태익은 눈을 빛냈다.

    “고인물, 그놈은 분명 창고 안에 희귀한 보물을 감추고 있어. 그것을 가리기 위해 이렇게 쓸데없는 아이템들로 창고를 꽉 채워 위장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도둑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맞아. 고인물 정도나 되는 고수가 이런 잡템들을 주워 모았다는 건 말이 안 돼.”

    “하긴, 그 거대한 창고가 꽉 찰 정도로 모을 필요가 없는 똥템들이지.”

    “확실히…… 다이아몬드가 쓰레기통에 들어 있다면 아무도 훔쳐 가지 못할 거야. 거기 있다고는 상상도 못할 테니까.”

    그 상황에서 장태익은 분위기를 확실하게 장악해 나갔다.

    “어차피 요즘 우리들 퀘스트 받기도 힘들잖아. 물건 유통도 힘들어졌고.”

    “……후, 맞아. 퀘스트 주던 NPC들이 죄다 사라지는 바람에.”

    “망할 놈의 NPC들이 다 어디로 간 거야? 도시가 텅텅 비었어 아주.”

    “그나마 유토러스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 지방으로 가면 NPC들이 사라지고 텅 비어 버린 중소 규모 마을들이 수두룩해.”

    요즘 부쩍 이런 현상이 잦아졌다.

    퀘스트를 줬던 NPC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통에 하던 퀘스트가 공중으로 증발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커다란 과업을 수행하던 이들에게는 타격이 몹시 큰일이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단순한 게임을 넘어 제 2의 인생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지금, 퀘스트를 줬던 NPC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거래처가 물건 대금을 떼먹고 도산, 야반도주 해 버린 것만큼이나 피해가 크다.

    고위 랭커일수록 퀘스트에 수반되는 시간이나 비용 투자가 크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들 중 퀘스트가 일방적으로 중단된 것에 큰 피해를 입고 손실된 대금을 메꿀 궁리를 하던 몇몇이 모여 이번 일을 작당하게 된 것이다.

    ‘고인물 창고 습격사건’, 바로 이 위험천만한 프로젝트를 말이다.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법이야.”

    장태익은 눈을 빛냈다.

    분명 고인물의 창고에는 무언가 아주 귀중한 것이 숨겨져 있다.

    그러니 그렇게 뻔질나게 창고를 드나들 테지.

    “그놈은 이동경로를 추적할 수 없게끔 엄청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지만…… 유독 이 창고에는 자주 들리더군. 잡템을 수거해와 저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어마어마하게 귀한 아이템을 안에 숨겨 관리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흐음, 그런데 우리가 벌써 두 번이나 털었으니 창고를 옮기지 않을까?”

    “아니야. 교대로 감시해서 지켜보니 창고를 옮긴 낌새는 보이지 않았어.”

    “1번, 3번 창고가 꽝이었으니 분명 2번 창고에 보물이 있겠군.”

    거기에 장태익은 추가 정보를 제공했다.

    “심지어 얼마 전, 튼튼하고 무거운 금고들이 창고 안으로 대량 반입되었다는군.”

    “뭐? 금고를? 수상한데. 확실히 2번 창고 안에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필사적이겠지. 창고 밖으로 물건을 빼내기 전에 속전속결로 처리하자고.”

    바로 그때.

    정탐을 나갔던 정찰조가 공터로 복귀했다.

    “이봐! 고인물과 윤솔이 로그아웃을 한 게 확인됐어!”

    “드레이크의 최종 행적을 모르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반경 5킬로미터 안에는 없다.”

    “혼자 멀리 떨어진 평원으로 사냥을 나가는 것 같던데?”

    고인물과 윤솔을 미행하던 이들의 보고를 듣자마자 장태익은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면 지금 거점이 텅 비었다는 거네.”

    “얼마 전에 창고를 털려 놓고 거점을 비운다고?”

    “바보야. 똥템만 털려서 실질 피해를 전혀 안 입었잖아. 대형 금고도 그래서 사들이는 모양인데. 오늘 그런 것 다 소용 없다는 걸 알려 주자고.”

    40인의 도둑들은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소환사 최무홍이 자루에서 몬스터들을 꺼내 놓았다.

    …퍼펑!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 속에서 두 마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돈 없는 두더지> -등급: B / 특성: 바위, 땅, 야수, 착굴, 뺑소니, 절약

    -서식지: 전 대륙

    -크기: 1m

    -지금 여러분들 땅 파요. 나도 땅 파요. Yo Shit, 절대 포기하지 마요. 끝까지 파는 두더지가 다 이겨요. 여러분 모두 다 땅 Fuckin 파요. 땅은 넓고 땅굴은 길어. 나 당장 여기 땅 파고 내려가다가 토사에 파묻혀서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 땅굴을 즐길 거라고.

    <먹깨비 개구리> -등급: B+ / 특성: 야수, 풀, 독, 과식, 역류성 식도염

    -서식지: 고기 삶는 밀림, 육중한 밀림, 자살 숲, 그린헬 전 구역

    -크기: 5m

    -낮 말은 새가 듣고 밥 말은 라면 먹고 싶은 개구리.

    최무홍이 소환한 두 마리 소환수는 각기 맡은 바 역할이 분명하다.

    두더지는 열심히 땅을 파고 개구리는 창고 안에 있는 아이템을 뱃속에 보관한다.

    “자, 이번이 마지막이다. 중앙 창고만 깔끔하게 털자고. 고인물, 윤솔, 드레이크 모두 유토러스 안에서 확인 안 되지?”

    “어어, 빨리 시작하자고.”

    장태익과 신창원, 최무홍을 필두로 40인의 도둑들이 작업을 개시했다.

    …파파파파팍!

    두더지가 열심히 흙을 파내면 40인의 도둑들이 그 뒤를 따르며 흙들을 치운다.

    대장장이인 장태익이 흙을 다지며 기둥을 세우며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신창원이 굴 파기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

    그는 막혀 있는 앞쪽의 흙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시간을 잰다.

    “여기서 30분 있다가 출발한다.”

    맵이 원상복구 되는 시간을 땅굴의 구간별로 다르게 해 놔야 도망치기 편리하다.

    그들은 땅굴 하나에 연결된 여러 개의 출구를 만들어 둔 뒤에야 마지막으로 고인물의 창고로 향하는 길을 뚫었다.

    “3분 만에 밖으로 나가서 또다시 3분 안에 물건을 털어야 해. 그리고 다시 3분 안에 땅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상에 나가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최대 9분이야. 그게 지나면 땅굴 입구는 아카식 레코드 관리자에 의해 막혀 버리겠지.”

    신창원은 땅굴 내의 지도를 조직원들에게 상세히 인지시켰다.

    “아이템을 털어서 땅굴 안으로 들어오면 6분 안에 1번 통로를 지나가야 해. 그리고 10명씩 1조로 해서 각각 2-1, 3-1, 4-1, 5-1 출구로 향한다. 각각의 통로는 모두 3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고 3분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니 주의하라고.”

    이게 모두 다 추격을 막기 위해 설계해 놓은 다중 구조였다.

    땅굴을 파고 또 막힌 곳을 새로 뚫으면서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한 지 약 22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40인의 도둑들은 목적지를 코앞에 둘 수 있었다.

    “자, 이제부터는 정말 빠르게 움직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잡혀 죽거나 땅속에 파묻혀 죽게 될 테니까.”

    “9분 뒤에 1차 흙벽이 생겨난다. 그 안에 빨리 작업 마치자고.”

    “이번이 마지막이지? 분명 이 안에 초 럭키 레어 아이템이 있을 게 분명하다니까!”

    40인의 도둑들은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얇은 흙층을 뚫고 올라갔다.

    이윽고, 지상의 공기가 느껴진다.

    창고 안의 차가운 대기를 느끼는 순간 40인의 도둑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산개했다.

    순간.

    “……!?”

    40인의 도둑들은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환희에 잠겼다.

    창고 곳곳에는 화려해 보이는 상자와 금고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 갈 것처럼 포장까지 싹 끝내 놓은 모습.

    “유레카! 드디어 노다지를 찾았군!”

    40인의 도둑들은 속으로 환호하며 잽싸게 지상으로 튀어나왔다.

    “어이쿠, 상자 묵직한 거 봐라 이거.”

    “안에 뭐가 들었나?”

    “뭐가 들었든 상관없어! 빨리 개구리에게 먹여!”

    최무홍이 개구리 소환수를 불러내어 눈앞에 있는 금고와 보물상자들을 삼키게 했다.

    ……바로 그때.

    휘이이잉-

    어디서 바람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린다.

    금고와 보물상자를 나르던 몇몇 도둑들이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어?”

    창고의 작은 쪽창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 대의 작은 화살, 촉에 불이 붙어 있는 불화살이었다.

    …푝!

    작은 화살은 창문을 뚫고 날아오더니 수북하게 쌓인 보물상자 무더기에 꽂혔다.

    그러자.

    콰콰콰콰콰쾅!

    보물상자가 갑자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상자가 깨지며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바로 기름과 화약이었다!

    쿠르르르륵!

    불길이 무서운 기세로 번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금고와 보물상자들 역시 요란한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안에 기름과 화약이 가득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으아아악! 함정이다!”

    도둑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재빨리 땅굴 입구로 달려가려 했지만 바닥에 엎질러지고 튄 화약과 기름들에 불이 옮겨 붙어 당최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불길에 매연까지 피어나는 통에 눈물과 기침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아, 안 돼! 난 카르마 수치가 높아서 죽으면 가까운 신전에서 부활하자마자 바로 구속이라고!”

    “이번에는 죽으면 안 돼! 바로 캐삭이야!”

    “빠져나가야 해! 창고 정문으로 가자!”

    40인의 도둑들은 재빨리 돌아서 창고의 정문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눈물과 기침으로 인해 시야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상태.

    그때.

    쾅!

    창고의 문이 부서질 듯한 기세로 열렸다.

    “……!?”

    40인의 도둑들이 일제히 자리에 멈춰 섰다.

    자욱한 불길 너머로 일렁이는 그림자 하나.

    40인의 도둑들은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드레이크 자식이 로그아웃하는 걸 확인 못 한 게 패인이었다. 그럼 저건 고인물?”

    “어어? 고인물이 로그인 했다는 보고는 없었다고!?”

    “걱정 마! 그래도 고인물은 일대 일에서나 강한 놈이잖아. 내가 알기로는 놈에게 광역 기술은 없어.”

    “맞아. 우리가 한꺼번에 산개해서 도망친다면 어쩔 거야? 우리를 다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쿠르륵!

    눈앞의 불길을 확 잡아 찢으며 등장하는 이는 고인물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흰 가면에 커다란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는 남자.

    바로 마동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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