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화 도둑잡기 (2)
나는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 소리야 그게?”
창고가 털렸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그러나 내가 아는 드레이크는 오랜만에 만나서 헛소리나 할 법한 인물이 아니다.
저렇게 다급하게 외친다는 것은 분명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말마따나, 드레이크는 바로 창고를 벗어나 나를 옆 창고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빠, 빨리. 네가 직접 봐야 한다, 어진! 말하자면 너무 길고 충격적인 동시에 불가해하며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기에 일일이 내 입으로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정확한 정보 전달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그에 따라 너는 나를 따라와 옆 창고로 가 직접 네 두 눈으로 이 상황을 목도해야 한다!”
“……그 말할 시간이면 설명했겠다.”
맞은편에 있는 제 3번 창고.
활짝 열려 있는 창고 문을 지나 안을 들여다본 순간.
“……!?”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너무 놀라서 아까의 드레이크처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민첩 아이템들이 가득 쌓여 있어야 할 창고 안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창고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만이 뻥 뚫려 있을 뿐.
“……이것 봐라? 무슨 상황이지 이게?”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난 구멍을 보니 성인 남자 십 수 명쯤은 오가기에 충분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 구멍을 살피기 시작했다.
“밖에서 창고 안으로 굴을 파서 들어온 것 같군. 발자국들을 보니 꽤나 많은 인원이야.”
“세상에, 이렇게 단단한 암반지대를 파고 들어오다니. 어떤 도둑놈들이 이렇게 정성스러운 미친 짓을!”
한편, 창고지기인 떼껄룩 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야. 조금 더 면밀하게 감시했어야 하는데…….]
“맞아요. 내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당신 잘못이지만 너무 신경쓰지 마요. 땅 밑으로 오는 걸 어떻게 막습니까.”
나는 떼껄룩 씨를 위로하는 한편 땅에 난 구멍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요즘 좀도둑들이 기승을 부린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보네.’
내가 턱을 괴고 말이 없자 떼껄룩 씨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의심 가는 사람은 없나?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라거나…….]
“전혀 없습니다. 저는 착하게 살았거든요.”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말고. 살면서 누구나 원수 한 명쯤은……]
“아뇨. 저는 누구한테 원한을 살 만한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착하고 순수하며 섹시하게 살아왔으니까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딱히 용의자라고 할 만한 인물들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몇몇 유명한 도둑 NPC들이 있기는 있지만 내가 알기로 이렇게 땅굴을 파고 이동하는 존재는 없다.
즉, 이것은 100% 플레이어들의 짓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굴을 파고 들어와서 창고를 털어 갈 줄은 몰랐네. 이걸 기발하다 해야 하나?”
도시 안에서는 함부로 땅을 팔 수 없게 되어 있으니 아마 도시 바깥, 필드에서부터 땅을 파고 여기까지 들어왔을 것이다.
실로 가상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기껏해야 털어간 게 잡템이라니.”
민첩 옵션이 붙어 있는 잡 아이템들은 나에게나 중요하지 일반 유저들에게는 별로 쓸 데도 없다.
아마 무게를 달아서 팔면 돈이야 좀 되겠지만…… 그 돈 벌자고 이런 간 큰 행동을 했을 리가.
“이 두더쥐 같은 자식들. 잡히기만 해 봐라.”
“보아하니 뭐 값나가는 것 있을 줄 알고 왔다가 홧김에 몽땅 털어 간 모양이군, 정말 D급 아이템 하나 안 남기고 싹 털어간 것을 보면. 아참, 그리고 어진. 두더쥐가 아니라 두더지이다.”
“맞아맞아, 우리가 창고를 자주 왔다갔다하니까 뭔가 희귀한 아이템이라도 있을 줄 알았나 봐.”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도 나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하긴, 최근에 내가 SNS에 올린 슈퍼카를 보면 내 창고에 뭔가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향했다.
“……뭐, 남들에게는 쓰레기 똥템일지라도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지. 빨리 찾으러 가자고.”
“좋아. 도둑질 당하고는 못 참지.”
“나도!”
드레이크와 윤솔이 나를 따라붙는다.
[나도 가겠어! 창고지기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창과 방패를 든 떼껄룩 씨 역시도 나를 따라 땅굴 안으로 들어왔다.
얼른 손에 횃불 하나를 만들어 들고서.
* * *
땅굴 안은 보기보다 좁았지만 그래도 꽤 견고하고 튼튼했다.
중간중간마다 철제 기둥이 천장의 토사를 떠받치고 있어서 무너질 염려는 안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땅굴의 벽면을 잘 살폈다.
“흐음, 손톱으로 땅을 팠네. 더군다나 벽에 털 같은 것도 붙어있고. 아마 소환수를 이용해 땅굴을 만든 모양이야.”
“도둑놈들 중에 소환사가 있나 보군. 소환수는 뭘까?”
“털이 있는 걸로 봐서는 웜 계열은 아니고…… 두더지? 햄스터? 혹은 거미일 수도 있겠다.”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 나를 따라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모으고 있었다.
아무튼 이 땅굴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놈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아이템을 스틸한 것에 대한 대가를 확실하게 치르게 해 주리라.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도 단단히 각오한 표정으로 PVP를 준비하고 있다.
“분명 더러운 오크나 리자드맨 놈들일 거야.”
“드레이크 씨, 그런 종족 차별적인 언행은 좋지 않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종족 차별이랑 오크, 리자드맨이란 말이에요.”
오즈와 쥬딜로페 역시도 화가 많이 난 듯하다.
[내가 얼마나 죽을 둥 살 둥 아이템을 모았는데! 하찮은 것들이 감히 도둑질을 해!? 이럴 거면 그토록 주워 모은 의미가 없잖아! 갸아아아악!]
[……뿌우우! 호뿌앵!]
그때.
“……쉿.”
나는 모두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땅굴 중간 부분에 멈춰선 채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이것 봐. 저 바닥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내 말을 들은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일 눈썰미 좋은 드레이크가 의견을 제시했다.
“아마 도둑놈 파티에 대장장이가 끼어 있는 모양이군.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꽤 훌륭한 솜씨로 세워져 있어. 제법 숙련공이 시공한 것 같은데?”
“맞는 말이야. 하지만……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조금 다른 부분이지.”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손짓하는 동시에 바닥과 벽, 천장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잘 봐, 친구들. 횃불을 가져다 대면 뭔가 이상한 점을 알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떼껄룩 씨가 손에 든 횃불을 바닥에 가까이 댔다.
윤솔이 금세 차이점을 눈치챘다.
“아! 어느 지점을 시작으로 흙의 색깔이 달라졌어!”
빙고. 정답이다.
우리가 걸어온 지점의 흙은 붉으죽죽하면서도 꽤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앞부터는 퍼석퍼석하고 메마른 흙이다.
색도 훨씬 더 옅었다.
드레이크는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같은 흙인데 왜 이러지? 분명 동일한 토질 같은데.”
“같은 토질이 맞아. 다만 땅굴을 판 시간이 다를 뿐이야.”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그제야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운다.
나는 이를 뿌득 갈았다.
“……도둑놈 자식들. 머리 좀 썼네.”
도둑들은 내 창고를 털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것 같았다.
놈들은 먼저 절반의 땅굴을 파 놓고 그것을 완성시키지 않은 채 일정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도주 타이밍을 계산해 딜레이를 남겨둔 채 땅굴을 마저 팠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랄라랄라랄라랄라 즐거운 유지 보수! 불똥이는 뚠뚠 오늘도 뚠뚠~]
저 앞에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 불똥정령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백팔번뇌 불똥정령> -등급: A+ / 특성: ?
-서식지: ?
-크기: ?
-꽤나 큼지막한 불덩어리. 모습과 크기는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항상 격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24시간 마다 맵을 수복하기 위해 나타나는 이 녀석.
파괴된 맵을 원래 상태로 고치는 것이 임무인 만큼, 녀석은 도둑놈들이 판 땅굴을 천천히 다시 메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딱 내가 있는 곳 바로 앞까지를 말이다.
[어라라? 이 앞부터는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네? 이따가 다시 와야겠다~]
불똥정령은 내가 있던 곳 바로 앞까지를 흙으로 꽉 채워 버리고는 사라져 버렸다.
정확히 흙의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한 바로 그 지점을 기준으로.
“도둑놈들. 일부러 도주경로를 예측 못하게 하려고 땅굴을 구간구간별로 시간대를 다르게 해서 파 놨어. 나름대로 머리를 쓸 줄 아는데?”
내가 이를 갈고 있는 순간.
…쿵!
흙으로 꽉 막힌 저 너머의 공간에서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드드득- 드드득- 드드드득-
그것은 분명 땅을 파며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였다.
“……설마!?”
나는 아주 오랜만에 식은땀을 흘렸다.
구멍을 파는 소리는 지상, 제 2번 창고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망할! 이 자식들! 다른 창고까지 노리고 있잖아!”
나는 바로 뒤돌아 달렸다.
드레이크와 윤솔, 떼껄룩 씨, 그리고 오즈의 등에 탄 쥬딜로페 역시 황급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 * *
…콰쾅!
나는 땅굴에서 튀어나오는 즉시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야밤에 엄마가 갑자기 방문을 열어젖힌 것 마냥 깜짝 놀라 당황해 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놀라운 것은 그 많던 민첩 아이템들이 이미 싹 다 털려 있었다는 것이다.
“히익!? 고, 고인물!?”
“튀, 튀자!”
“빨리 땅굴부터 막아!”
그 많던 도둑놈들은 내 얼굴을 알아봤는지 냅다 땅굴로 줄행랑을 놓는다.
“……한 놈, 두식이, 석 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이 자식들 봐라?”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도둑놈들의 수를 세어 보니 얼추 마흔 명에 육박하는 상당한 머릿수이다.
‘이건 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도 아니고.’
나는 땅을 무너트려 도둑놈들을 모조리 땅 밑에 매장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아이템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시간 설계를 어찌나 잘 했는지 내가 땅굴로 들어가려고 하는 즉시 눈앞에 불똥정령이 나타났다.
[자자, 24시간이 되었으니 땅을 메꿀게~]
하지만 놈들의 발자국 소리는 이미 지하를 울리며 멀어지고 있다.
아마 땅굴을 일자가 아니라 몇 갈래로 파둔 모양이다.
결국 나는 놈들을 눈앞에서 놓쳐 버리고 말았다.
실로 어이없게 한 방 먹은 셈이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허탈한 표정으로 텅 빈 창고를 돌아본다.
“요 몇 년간 모은 게 다 털려 버렸네.”
“큰일이다. 2차 대격변을 위해서 준비했던 건데…… 어진, 이젠 어쩌지?”
아무리 똥템, 잡템들을 털린 것이라도 최근 몇 년간의 성과가 물거품이 된 것이니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창고지기인 떼껄룩 씨는 이제 아예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었다.
도둑놈들은 무가치한 쓰레기 템들을 털어서 허탈하고, 우리는 공든 탑이 무너져 허탈한 상황.
그리고 이에 대한 내 소감은 뿌득- 하고 이 가는 소리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잡아야지. 잡아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나는 게임에서 당한 것은 반드시 꼭 갚아 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