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06화 (606/1,000)
  • 606화 휴식 (2)

    [잘 만큼 자지 않았어? 소중한 지금을 누워서 보낼 거야? 일어나 뛰자! With the collapse of the Interstellar, all that changed! Log Out Out Out Out Out Out! 내 손을 잡아!]

    카페 룸의 문을 닫자 로비에서 들려오던 노래 소리가 작아진다.

    방 안에 쌉쌀한 박하향이 가득 퍼졌다.

    “일찍 왔네요.”

    상하의 검은 작업복, 깊게 눌러쓴 검은 모자 챙 아래로 보이는 차가운 눈매.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탁!

    나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하는 순간, 남세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버뮤다 잡은 거. 그쪽이죠?”

    거 참. 뭔 사람 말을 못 하게 하네.

    그보다 어떻게 알았을까?

    ‘아, 나를 본 사람들이 있지. 참.’

    아키사다 아야카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내가 심해에 있는 것을 봤었다.

    더군다나 창해룡 버뮤다가 아틀란둠을 초토화시키는 것도 말이다.

    아직 일반 대중들에게까지는 소문이 나지는 않은 걸 보니 뎀 유니버스 측에서 그들의 입을 단속시키고 있는 모양.

    “…….”

    내가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동안, 남세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관심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본사 스토리 팀에서 난리 났던데요.”

    “…….”

    “하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스토리 팀에서 관할할 영역을 한참 벗어났지. 거긴 기껏해야 한국인 맞춤 퀘스트 스토리나 제작하는 곳이니까. 뎀 유니버스에는 아예 그쪽만을 전담 마크하는 대책팀이 신설되었다던데?”

    그 말은 조금 의외였다.

    유저들의 개인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유명한 뎀 사에서 나를 일대 일 마크하겠다고?

    “그러게 적당히 해먹었어야죠.”

    “…….”

    나는 남세나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남세나의 표정은 진지했다.

    “농담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서브스트림을 자꾸 사냥하다 보면 진짜 큰일 날 수 있어요.”

    “……?”

    이게 뭔 소리람? 몬스터는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남세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게이머들이란. 그냥 클리어만 하면 되는 줄 알지.”

    “…….”

    “개발자 생각은 안 합니까? 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도 의문을 가져 본 적 없어요?”

    그러고 보니 없다.

    뎀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 나타났고 바로 갓겜으로 등극했다.

    내가 회귀 전후로 살아온 모든 시간축에서 뎀은 단 한 번도 왕좌를 다른 게임에 빼앗긴 적이 없었으니까.

    남세나는 눈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안의 박하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열일곱 서브스트림은 유저들의 상상력을 부풀리고 또 그것을 수집하는 역할을 해요.”

    “……?”

    “그것들은 그 세계의 신, 수많은 인과율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죠. 유저들은 눈앞의 자잘자잘한 잔뿌리들을 겪어 가며 거대한 근원을 따라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것이 곧 퀘스트고 메인 스토리죠.”

    아, 이제야 뭔 말인지 알 것 같다.

    내가 세계관의 근원이 되는 17개의 서브스트림들을 잡아버리면 그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퀘스트들이나 스토리들이 사라지게 되고 이는 곧 유저들의 상상력과 즐거움을 빼앗게 된다는 것일까?

    ‘……그건 이 세계를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건데.’

    나는 오히려 생각이 반대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이 게임을 해 와서 안다.

    이 게임은 단순히 신 몇몇에 의해 굴러가는 게임이 아니다.

    비록 게임의 이름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장치에 의한 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 속 현실은 다르다.

    게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신에 의해 흘러가고 결정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신이 없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모든 것은 유저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고정 S+급 몬스터가 죽어서 바다에 풍랑이 사라지고, 무저갱에 볕이 들고, 던전이 사라지고, 별이 지고 또 뜨고, 생태계가 바뀐다고 해도 그 또한 유저들이 적응해 가고 응용해 가며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흘러갈 문제에 불과하다.

    이 세상은 고작 몇몇 존재의 부재로 사람들에게 외면 받을 만큼 만만하고 안일한 세계관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남세나의 말은 또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뭐, 서브스트림이 없어져도 유저들은 즐겁겠지만… 아마 총수인 ‘윌슨 링트’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예요. 그는 서브스트림들을 통해 사람들의 상상력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사람들의 상상력을 수집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뎀 유니버스 본사에 갔을 때 윌슨이 비슷한 말을 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이 게임은 내가 상상하는 것을 그쪽 세계에 진짜로 구현해 내지. 인간의 머릿속은 우주와도 같이 넓고 광활한데 나는 내 머릿속의 그것들을 이쪽 세계로 조금씩 옮겨오고 있어.’

    ‘와아, 신기하다. 한 사람의 상상력으로 그 큰 세계를 만드는 게 가능한가요?’

    ‘아하하하. 혼자서 될 리가 없잖아. 나의 상상이 큰 틀을 만들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설정에 살을 붙이고… 구멍을 메우고… 버그를 잡고… 그렇게 다 같이 함께 만들어 가는 거지. 너희들이 잘 아는 크툴루 신화나 SCP재단처럼 말이야. 그래서 이 게임은 모두의 것이라는 거고.’

    한 마디로 TRPG와 같은, 집단지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게임 마스터 혼자서 게임을 진행할 수도 없고 플레이어들이 모인다고 해서 게임을 만들 수도 없다.

    모두를 위한 하나(One For All), 하나를 위한 모두(All For One).

    그것이 바로 ‘뎀’의 제 1차 행동 강령이다.

    남세나는 팔짱을 꼈다.

    “윌슨 총수와 게임 개발자들, 이전부터 있어왔던 각종 고전 작품들의 상상력을 덧대는 것도 한계가 있죠. 뎀 유니버스는 수많은 유저들의 플레이와 선택지 트리, 각종 의견들을 수렴해서 실시간으로 새롭게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요. 상상력을 수집하는 셈이죠. 뭐, 인공지능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지만.”

    “…….”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역시 갓겜은 달라!

    하지만 뒤이어진 남세나의 말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가끔 섬뜩할 때도 있지만요.”

    뭐가 섬뜩하다는 걸까?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남세나는 머뭇거리던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 내 머릿속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예측하는 것 같아서 재수 없어요.”

    직원이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내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남세나는 아차 싶었는지 다시 모자를 푹 눌러썼다.

    “크흠! 뭐 아무튼. 뎀 유니버스 본사에서 그쪽 대책팀을 만든다는 것은 비밀이에요. 윌슨 총수가 직접 관심을 보이고 있다던가 뭐 그런 것들도.”

    “그 말을 하려고 오늘 보자고 한 겁니까?”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남세나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내 앞으로 서류 한 장을 내려 놓는다.

    그 서류에 붙어 있는 증명사진에는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보였다.

    조디악 번디베일!

    실로 간만에 보는 얼굴이다.

    남세나는 모자 챙 밑으로 나직하게 말했다.

    “뎀 유니버스에서 일대 일 대책팀을 꾸린 역사는 딱 한 번뿐이예요. 바로 조디악, 이 남자를 잡는 일 때문이죠.”

    “…….”

    “그리고 당신이 두 번째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남세나는 모자 챙 아래로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협박에 쫄 리 없다.

    자고로 구린 구석이 없는 사람은 당당한 법이다.

    …틱!

    나는 손가락을 튕겨 조디악에 관련된 서류를 남세나에게 되돌려 보냈다.

    잠시 훑어봤지만 내가 다 아는 내용들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버그를 악용하거나 핵을 쓴 적도 없고 늘 정정당당하게 창발적 플레이와 반복숙달로 게임을 합니다. 하다못해 세금도 꼬박꼬박 깡으로 다 내죠. 의심 가는 것 있으면 민사소송 걸라고 해요. 로그 기록이랑 레이드 동영상 다 까 보일 테니.”

    “…….”

    “내 유튜뷰 동영상 덕에 홍보가 됐으면 됐지 뎀 사에서 뭐 피해본 것 있나? 지금 이게 뭐 하자는 배은망덕한 플레이지?”

    내가 목소리를 깔자 남세나가 움찔했다.

    이내 그녀는 약간 기죽은 태도로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왜 나한테 그래요. 본사에서 하는 일인데…….”

    좀 예상외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머쓱해졌다.

    ‘하긴. 아직 20대 초중반 여자애지.’

    무슨 연유로 이런 곳에서 반장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세나는 아직 젊다.

    아니, 젊다기보다는 어리다. 정신연령만 따지면 거의 마흔 내외인 나에 비해서.

    남세나는 입을 삐죽이며 다시 찻잔을 잡았다.

    “나는 본사에서 당신을 주목하든 스토리 팀에서 콘텐츠 고갈됐다고 찡찡대든 신경 안 써요.”

    “…….”

    “내가 신경 쓰는 건 단 하나뿐입니다.”

    말을 마친 남세나는 다시 내 앞으로 조디악의 정보와 프로필이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뎀 유니버스 본사가 이번에 조디악 건으로 시끌시끌해요. 우리 처리반의 한국 지부에까지 수배령이 내려졌을 정도니. 아 참, 물론 대외비에요.”

    “이번에? 이놈이 또 뭔……”

    나는 질문을 하려다가 말았다.

    ‘이놈이 또 뭔 사고를 쳤나요?’라는 질문 따위는 애초에 무의미하다.

    조디악은 존재 자체로 불안, 살려두는 것이 곧 재앙의 씨앗 같은 놈이니까.

    남세나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당신에게 정보를 주는 이유는 당신과 내 목적이 어느 정도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대외비인 사내 기밀을 빼돌리면서까지 나에게 주는 이유라.

    그것도 처리반의 반장씩이나 되는 이가.

    “왜 그렇게 조디악에게 집착합니까?”

    나는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단순히 처리반의 반장 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기엔 뭔가 집념이 느껴진다.

    그것은 예전에 국내 프로리그 습격사건 때부터 그랬다.

    “……제 선임자 때문이죠.”

    남세나는 짧게 대답했다.

    ‘선임자?’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남세나는 처리 2반의 반장.

    하지만 뎀 코리아의 처리반은 애초에 2반이 전부다. 그것은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그랬다.

    ‘……하지만 2반이 있다는 것은 1반도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분명 처리 1반의 반장도 존재할 것이다.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찻잔을 다 비운 남세나가 의자에서 일어나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튼 제 용건은 이게 끝이네요. 또 뭐 정보 나눌 것 있으면 나누죠.”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차피 조디악은 남세나가 아니더라도 밟아 줘야 할 놈이다.

    ‘잘됐네. 마침 얼굴 한번 보고 싶던 참이었는데.’

    뭘 꾸미고 있는지는 몰라도 또 망쳐 줘야지.

    “……후후후.”

    나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나직하게 웃었다.

    룸을 나가려던 남세나가 그런 나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악당 같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보이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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