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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98화 (598/1,000)

598화 상해(上海)의 왕 (6)

세쌍둥이 탑.

난파선들의 무덤 사이에 묘비처럼 우뚝 서 있던 세 개의 뾰족한 건축물.

그것이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융기하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직!

첨탑에 꿰여 있던 거대한 난파선들이 일제히 부서져 내린다.

곳곳에 뻘흙과 썩은 나무조각들의 비가 내려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아주 오래된 고대문명의 성, 그것을 상징하는 세 개의 마천루(摩天樓).

그것이 저 위 상공에서 나를 향해 뾰족한 그림자의 끝을 겨눈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뿔?”

그렇다.

내가 지금껏 탑이라고 생각했던 세 개의 거대한 존재는 사실 건축물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면을 향해 거대하고 뾰족하게 뻗은 세 개의 뿔이었다.

지독하게도 깊은 심해의 블루홀 속, 진청(眞靑)의 핵심!

그 시퍼런 비늘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세 뿔의 괴물.

<버뮤다>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바다와 호수를 지배하는 위대한 푸른 용.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버뮤다- <창해룡비어천가 (滄海龍飛御天歌) 2장>

상해(上海)의 왕.

진청(眞靑)의 핵심.

이 세상 모든 바다를 양분하여 지배하는 두 절대좌 중 하나.

‘창해룡(滄海龍) 버뮤다’

나는 드디어 놈과 마주한 것이다!

“……크기 한번 어마어마하네.”

심해 삼각지대를 온통 뒤덮고 있는 이 거대한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버뮤다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푸른 밤이 드리워졌다.

한편, 내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던 오즈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버뮤다라. 용족 중 나보다 덩치가 더 큰 두 놈 중 하나지.]

죽음룡 오즈는 모든 용들 중에 세 번째로 나이가 많고 세 번째로 덩치가 큰 존재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창해룡 버뮤다는 광활한 바다를 지배하는 존재답게 모든 용들 가운데 두 번째로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동영상 녹화는 잘 되고 있겠지?’

나는 시선을 힐끗 돌려 좌측 상단의 동영상 기능을 확인했다.

●REC

심해 스토커 씨아블로부터 시작해서 대심해 크라켄을 지나 현재 창해룡 버뮤다를 만나기까지, 모든 과정은 생생히 녹화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뿌!]

쥬딜로페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내 볼을 잡아당겼다.

요 꼬마 여왕의 촉은 꽤나 좋다. 들으면 해될 일은 절대 없지.

나는 위기를 직감하고 바로 뒤로 빠졌다.

아니나 다를까.

…쿠르르르르르륵!

버뮤다가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세 개의 뿔끝을 휘젓는 동시에, 놈의 세 뿔 사이로 기묘한 와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오즈가 다시 한번 외쳤다.

[말스트룀! 바다의 배꼽이다! 말려들면 죽음뿐이야.]

그것은 창해룡 버뮤다의 특성이자 사기 스킬.

세 개의 뿔 사이를 오가는 해류가 기묘하게 뒤섞여 꺾이며 발생하는 초거대 바다 회오리 현상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

괴물 같은 규모의 용오름이 온 바다를 집어삼킬 정도로 큰 깔때기를 만들며 휘몰아쳤다.

뿌직! 뿌지지직! 와기기긱!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난파선들이 죄다 부서져 간다.

전설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잠수함도, 신목(神木)으로 건조된 선박도 죄다 휴지조각처럼 찢겨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와류였다.

…우릉! …우르르릉!

지형이 뒤틀리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해저의 절벽이 무너져 내리며 자욱한 뻘흙구름이 피어오른다.

광물과 침전물들이 부딪치며 일어나는 불똥과 전류, 플라즈마가 해저의 먹구름 속에 연달아 천둥과 번개를 뿌리고 있었다.

“개판이구만 이거.”

나는 서둘러 이 진흙탕을 벗어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을 만하던 이 산호숲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오-오오오오오오!]

저 뒤, 해류가 가장 격렬하게 요동치는 곳에서 온 바다가 터져나갈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모든 게 찢어발겨지는 이곳에서 나는 겨우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창해룡 버뮤다가 마치 트리케라톱스 같은 자세로 엎드려 나를 향해 세 뿔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키이이이잉-

버뮤다의 세 뿔 끝에서 모여든 빛이 한 곳에서 커다란 구체를 만들어낸다.

‘…어디서 많이 보던 공격인데?’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고 따질 겨를이 없다.

나는 황급히 반사 데미지를 준비했다.

…번쩍!

이윽고, 버뮤다가 쏘아 낸 광선이 흙먼지를 꿰뚫고 나를 후려갈긴다.

‘컥!?’

앙버팀으로 버티고 대부분의 충격을 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엄청났다.

고정 S+급 몬스터의 공격인지라 몸에 가해지는 과부하 말고도 정신적인 동요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콰쾅! …쿠르릉!

더군다나 불안정한 해류 탓에 반사 데미지 에임도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반사한 데미지는 애꿎은 절벽만 때려 붕괴시켰고 창해룡 버뮤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젠장!”

허리춤의 포션을 마실 틈도 없었기에 여벌의 심장을 통해 체력을 벌충할 수밖에 없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뇌는 빠르게 회전한다.

‘……창해룡 버뮤다, 결국 만나게 됐구나!’

상해의 지배자, 바다 랭킹 공동 1위.

이 녀석은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도 목격되었다는 말이 거의 들려오지 않은 공전절후의 서브스트림이다.

모든 용들을 통틀어 두 번째로 거대한 고룡(古龍).

그 위압감은 능히 죽음룡 오즈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지직! …지지직!

창해룡 버뮤다의 앞에 서자 상태창이나 딜 미터기, 레이더, 미니맵 등 게임 전반에 제공되던 편의기능들이 모두 마비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게임 개발자가 버뮤다 삼각지대의 도시괴담에서 모티프를 얻은 듯싶다.

‘확실히, 각종 상태창 없이는 레이드 뛰기 힘들지.’

만나는 것도 극악이지만 공략해야 하는 환경조차 극악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해저 20만 리가 넘는 대심해가 아니던가!

“어우, 차라리 혼자 오길 잘했네. 여기서는 맨정신으로 레이드 못 뛰겠다, 진짜.”

나는 버뮤다가 쏘아 내는 빔과 물줄기를 피해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퍼퍼퍼펑!

또다시 거센 해류가 몰아닥친다.

버뮤다는 마치 몸 전체, 그 어디에서나 물을 뿜어낼 수 있는 듯 보였다.

놈이 한번 팔, 날개, 다리를 휘저을 때마다 주변 해류가 일그러지며 보이지 않는 강력한 압력이 밀려온다.

물속이라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만 이것은 분명 쓰나미였다.

‘……씨어데블의 필살기 급 공격을 평타로 쓰는군. 괴물은 괴물이네.’

버뮤다가 움직이며 쏘아 보내는 일반 공격 하나하나가 A+급 중에서도 개체값 최상위권에 속하는 바다 괴물들의 궁극기에 맞먹는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해저의 절벽을 타올랐다.

그런 내 뒤로 무시무시한 규모의 물무리가 융기해 오르고 있었다.

저기에 삼켜지면 아무리 앙버팀에 여벌의 심장 특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즉사하고 말 것이다.

“으아아아아! 대체 저 물이 어디서 펑펑 솟구치는 거냐고!?”

비명이 절로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버뮤다는 있는 물을 밀어내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새로운 물을 만들어 내 뿜어냄으로써 공격을 하고 있었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적으로 다르다.

있는 물을 밀어내는 것은 물이 사라지고 난 빈 자리에 새로운 물이 들어옴으로서 힘이 분산되지만 버뮤다의 경우에는 새로운 물을 만들어 원래 있던 공간의 물을 밀어 버림으로써 순수하면서도 마법적인 힘의 운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의외로, 내 질문에 답을 준 것은 오즈였다.

[흐음, 그러고 보니 버뮤다의 비늘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전설이 있지.]

“뭐? 무슨 전설?”

[하지만 나는 전설 따윈 믿지 않아.]

“뭐라는 거야! 빨리 말해!”

[크큭! 인간. 내가 너에게 그런 것을 알려 줄 것 같으냐?]

“……쥬딜로페야.”

내 부름을 들은 오즈의 담당일진 쥬딜로페가 내 반대쪽 어깨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민다.

[……흐, 흥!]

오즈는 안간힘으로 코웃음을 치더니 샐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버뮤다의 푸른 비늘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어서 한 장이라도 떼어내 땅에 꽂아 놓으면 그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생겨난다고 하는 전설을 나는 너에게 절대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오? 그럼 창해룡의 비늘에서 물이 계속 무한대로 만들어진다는 거네?”

[크큭! 그래서 버뮤다가 잠들어 있는 곳은 언젠가 샘이 되고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된다는 것 역시도 절대로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하핫! 어때. 궁금하지 인간!? 호기심에 괴로워해라!]

…딱콩!

[호에!]

[아으윽! 네년은 딱총새우라도 되는 거냐. 어떻게 물속에서 이런 딱밤을…….]

[뽀에에!]

[……미치겠군. 아무튼 하찮은 인간아, 나는 설명을 다 했다. 이제 아는 건 없으니 남은 건 네 몫이다.]

과연 오즈의 말대로였다. 창해룡 버뮤다는 움직이는 곳마다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놈은 푸른 비늘 밑에서 푸른 해양심층수를 펑펑 뿜어내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움직이는 속도 역시도 무척이나 빨랐다.

더군다나 더 엄청난 덩치에서 나오는 힘으로 해류를 잡아끌어 메치기라도 하면 이내 엄청난 규모의 쓰나미와 해진이 몰아닥치는 것이다!

콰콰콰콰쾅!

또다시 심해의 지형이 급격히 뒤바뀐다.

고오오오오…

버뮤다는 내가 생각보다 날쌔게 도망치자 아예 주변을 초토화시키려고 작정한 듯 보였다.

세 개의 뿔끝에서 또다시 초거대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말스트룀(maelström)’

버뮤다의 초광역기술이자 필살기가 나를 향해 또다시 날아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수야 있나.”

나는 이미 버뮤다에게 반격할 각을 재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쥬딜로페를 시켜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쥬딜로페, 그걸 다오!”

[뽀에에엥!]

쥬딜로페는 자신만만하게 나에게 아이템을 건넸다.

“좋아, 내 말을 이해했구나. 그래, 이게 바로 왼편나선형 조개껍데기…… 가 아니라! 쥬딜로페 이거 말고 그거 말야! 그거! 이럴 시간 없어!”

말스트룀이 다가온다.

나는 쥬딜로페에게 내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

“그거! 그거 뭐야…… 그거!”

하지만 쥬딜로페는 이번에도 영 형편없는 것을 꺼내왔다.

[뽀에엥!]

“나약한 갑각? 이건 벨제붑이랑 싸울 때 주웠던 거잖아! 이거 말고!”

[뿌에!]

“나의 오랜 친구 골리앗에게……? 이건 천공섬에서 얻었던 편지잖아! 젖기 전에 빨리 집어넣어!”

[뾰!]

“그거 말……생 슬라임즙 100% 워커는 오랜만이군. 하하, 이건 옛날 생각 나는걸? 아무튼 이거 말고!”

…딱!

결국 쥬딜로페에게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오즈는 검은 공기방울들을 뿜어내며 빵 터졌다.

“아, 이거 진짜 시간이 없겠는데!?”

나는 다가오는 말스트룀을 보고 다시 쥬딜로페에게 외쳤다.

“쥬딜로페! ‘아까’ 그거!”

[……호에!]

정확한 설명을 덧붙이자 이제야 쥬딜로페가 곧장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텁!

내 손안에 곧장 날아들어 온 것은 내가 찾던 바로 그 아이템!

산더미처럼 축적된 보물 틈에서 나온 작은 아이템 하나.

그것은 알약 같은 크기에 오렌지색 빛깔을 가진 아주 작은 원형 물체였다.

바로 크라켄의 금고에서 꺼내온,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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