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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95화 (595/1,000)

595화 상해(上海)의 왕 (3)

[죽어죽어죽어죽어꺼낼거야꺼낼거야꺼낼거야나와나와나와죽어죽어죽어죽어……]

근 일주일 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목소리.

“어디 얼굴 좀 보자.”

나는 이 지독한 심해 스토커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쇠공을 부수고 뛰쳐나갔다.

…콰쾅!

마몬의 건틀릿이 두꺼운 쇠벽을 에이포 용지처럼 찢어발긴다.

이내, 심해의 스토커가 내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너였냐?”

나는 그 익숙한 모습에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왜 목소리가 낯익은지 이제야 알겠다.

그간 따개비로 범벅된 쇠공 밖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것.

그것은 퉁퉁 불은 익사체가 머리에 투구게를 뒤집어쓴 외형.

눈꺼풀이 없어 탁하게 부풀어 오른 안구가 심해의 어둠 속에서 으스스하게 빛을 내뿜는다.

등에 돋아난 촉수들은 하나하나가 의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기괴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얼굴은 내가 익히 아는 이의 것이다.

‘…플라튠!’

아틀란둠의 전(前) 국왕이 여기서 이런 끔찍한 몰골로 등장한 것이다!

<심해 스토커 ‘씨아블로’> -등급: S / 특성: 어둠, 물, 심해, 맹독, 마찰계수, 뺑소니, 속 깊은 원한, 1:1, 도장 깨기, 만근추, 풍랑(風浪)

-서식지: 블루홀 ‘밑바닥’

-크기: 6m

-원념을 가진 익사체가 심해의 저주를 받아 세 번째 목숨을 얻었다.

심해에 서식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찾아가 싸우며 더욱 강한 육체로 진화해 왔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몬스터 설명을 보니 왜 놈이 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지 얼추 알 것 같다.

아마 자기가 이런 꼴이 된 이유를 나에게서 찾고 있는 모양.

“…씨어데블의 상위종인가. 귀찮게 됐네.”

나는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심해 스토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죽어죽어죽어죽어…]

씨아블로는 엄청난 고스핏의 몬스터, 특히나 심해에서의 스피드는 모든 바다를 통틀어 정점급이다.

아마 이 녀석보다 속도가 빠른 존재는 고정 S+급 몬스터인 ‘레비아탄’ 정도나 있겠지.

퍼퍼퍼펑!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에 십 수 방의 펀치가 내리꽂혔다.

씨아블로는 촉수 끝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따개비들의 뾰족한 갑각을 창, 또는 철퇴처럼 다루며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네가 여기 중간 보스냐?”

나는 여벌의 심장으로 HP를 채우며 씩 웃었다.

…핑!

날카로운 조개껍데기 끝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츠츠츠츠…

뺨의 상처는 아주 잠시 검게 변색되는가 싶더니 이내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나름 청자고둥이나 복어의 맹독이 깃들어 있는 모양이지만 벨제붑을 겪어 본 내게 독이란 애초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씨어데블의 상위종은 처음 보는데, 너도 ‘봉지내구’려나?”

봉지내구란 내구력이 비닐봉지처럼 약해빠진 것을 의미한다.

으레 고스핏의 몬스터는 이동, 공격속도가 빠른 대신 그만큼 방어력이나 체력이 약한 법이다.

(내가 그렇듯)

“엇-차.”

나 역시 씨어데블을 잡고 얻은 신발이 있기에 심해에서의 스피드는 뒤지지 않는다.

거기에 무거운 아이템들을 하나도 장비하고 있지 않기에 몸도 자유롭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너나죽어너나죽어너나죽어너나죽어…”

나와 씨아블로는 심해에서의 고인물 속도대전을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8자를 그리며 꿀벌처럼 맹렬하게 회전하며 맞붙는다.

…파캉!

나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내밀며 달려드는 씨아블로, 나는 놈의 썩어 문드러진 하반신에 깎단을 찌르기 위해 역으로 쇄도한다.

퍼퍽!

나와 씨아블로는 각각 6과 9모양으로 맞물리며 한 자리에서 사납게 맞붙었다.

놈은 내 발가락 끝을 이빨로 깨물려 했고 나는 절묘하게 그것을 피하는 동시에 놈의 허벅다리를 깎단으로 훑어 버렸다.

…콰쾅! 우지지지직!

씨아블로는 돌진하던 자세 그대로 균형을 잃었고 이내 따개비와 산호 투성이인 울퉁불퉁한 암초에 처박혔다.

반대편으로 돌진하던 나 역시 반대쪽에 처박혔지만 그쪽은 커다랗고 푹신한 다시마 잎사귀가 있는 곳이어서 나는 지형 데미지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지형 오브젝트도 봐 가면서 싸워야지.”

나는 다시마 잎사귀로 몸을 감싼 채 빙긋 웃었다.

아, 지금 찍고 있는 이 동영상을 유뷰튜에 올리면 분명 이너웨어 CF 하나쯤은 들어올 텐데.

“촉촉함이 달라요.”

나는 미래의 광고주들을 의식하며 지금 찍고 있는 동영상 캠 스크린에 대고 한마디 해 주었다.

그때.

[…끄륵! 게에에엑-]

방금 암초와의 충돌로 인해 HP가 상당히 깎인 씨아블로의 행동에 뭔가 특이점이 발생했다.

놈은 돌진하던 것을 멈추고는 갑자기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댔다.

‘뭐지? 헛구역질?’

나는 다시마 잎사귀 사이로 다시 깊게 파고든 뒤 놈의 공격패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씨아블로는 지금 촉수를 길게 뻗어 자신의 입 안으로 꾸역꾸역 쑤셔 박고 있었다.

구역질도 그 때문에 하는 것이다.

…뿌득! 뿌드드득!

심해 스토커의 입속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놈의 공격 패턴을 추리했다.

‘…토사물 분출이려나.’

토사물이라면 공격 패턴은 뻔하다.

맹독형 공격. 물속이니까 범위형 중독 공격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어지간한 독에는 면역되어 있는 상태.

“나에겐 소용없는 일이지. 오히려 멈춰 있느라 스피드만 떨어졌구나.”

나는 이 순간을 노려 스피드로 승부를 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놈은 과연 S급 몬스터답게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반응을 보였다.

[우웨에에에엑-!]

씨아블로의 입에서 엄청난 토사물이 쏟아졌다.

그것은 분명 독성을 띄고 있는 것이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위액이나 독액과는 성질이 조금 달랐다.

‘…내장?’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아떨어진다.

…후욱!

뱃속에 든 내장을 모두 게워낸 씨아블로의 스피드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나는 눈앞으로 둥둥 떠밀려 오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씨아블로가 뱉어 낸 토사물, 그것은 붉게 움찔거리는 덩어리들이다.

진한 혈향이 묻어나는 창자와 각종 내장들이 해류에 탁하게 부유한다.

“이런 패턴이 있는 줄은 몰랐네.”

몸의 내장을 모조리 뱉어 내는 패턴이라니!

나름대로 신박한 변형 기출문제다.

[죽어죽어죽어죽어!]

내 앞으로 씨아블로가 전속력으로 돌진해 온다.

안 그래도 고스핏형 몬스터인데 몸무게에서 내장 무게가 빠지자 그 속도가 배가 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내가 노린 것!

놈의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허용 변수 내다.

나는 다시마 잎사귀 속으로 몸을 더 깊게 파묻었다.

일부러 다시마 잎사귀 속에 파묻혔으니 씨아블로가 공격해 오는 궤도는 딱 정면, 전처럼 변화무쌍한 공격궤도를 보일 수가 없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공격은 무조건 정면에서 들어올 것이다.

“멀리서 점액탄이나 수류를 일으키는 공격 패턴이 나오기 전에 끝내야지.”

나는 바로 마몬의 건틀릿을 착용했다.

씨어데블의 상위종인 씨아블로는 아마 HP가 떨어지면 물러나서 풍랑을 일으키는 등의 공격 패턴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 전에 딱 한 방으로 게임을 끝낼 계획이었다.

어차피 녀석은 씨어데블처럼 물리방어력이 약할 테니까.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씨아블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물갈퀴를 젓는다.

그리고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편히 잠들어라.”

나는 그런 씨아블로의 돌진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한 뒤 놈이 나에게 닿기 직전 두 주먹을 뻗었다.

정면(正面).

피카레스크 마스크에 덧붙여진 마몬과 데스웜의 힘이 지진과 와류를 일으키며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그것을 정면으로 받은 씨아블로의 몸은 마치 망치에 두들겨 맞은 순두부처럼 변했다.

콰쾅!

몸을 뒤덮고 있는 미끈미끈한 점액도, 내장을 모조리 끄집어냄으로써 한계까지 올라간 스피드도 수류의 폭격으로부터 놈을 지켜주지 못했다.

…뿌직! 뿌지지지직!

예상한 대로, 씨아블로는 눈앞에서 형체도 남기지 않고 찢어발겨졌다.

-띠링!

<세계 최초로 ‘심해 스토커 씨아블로’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 물>

<‘심해 스토커’가 죽었습니다. 심해 모든 영역의 수압이 10% 감소합니다>

<‘심해 스토커’가 죽었습니다. 심해 모든 영역의 시야가 10% 밝아집니다>

<‘심해 스토커’가 죽었습니다. 얕은 곳으로 서식지를 옮겼던 몬스터들이 심해로 돌아옵니다>

<상해(上海)와 하해(下海)의 왕이 ‘고인 물’ 님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

.

무수한 알림음들이 씨아블로의 사망을 공표한다.

나는 부드러운 다시마 잎사귀를 통해 반동 데미지를 모두 흘려버린 뒤 포션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이어진>

LV: 92

호칭: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不死)의 우군단장(특전: 선택) /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특전: 혈족전생) / 시작의 마을 유토러스의 명예 백작(특전: 귀족) /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의 위상(특전: 수전노) / 발록의 뿔을 꺾은 자(특전: 야수) /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특전: 싸움광) / 살인자들의 탑 5층의 주인(특전: 맵 디자인) /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의 후예(특전: 백전노장) / 저주받은 고목 쟈쿰 벌목자(특전: 고대 신앙) / 심해 스토커(특전: 마찰계수)

HP: 920/920

상태창을 열자 씨어데블을 잡고 얻은 ‘씨어데블 격침자’ 특성이 ‘심해 스토커’로 바뀐 것이 보인다.

이에 따라 심해 특전이 사라지고 마찰계수 특전이 패시브로 붙어 버렸다.

‘…뭐 상관없지.’

인벤토리에 심해의 정수 아이템을 따로 가지고 있는 한 심해 특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차라리 호칭으로 마찰계수 특전을 가지고 있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레벨은 참 더럽게 안 오르는구나 이제.”

한계까지 찰랑거리는 경험치 바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의 90 구간에 진입한 이후 레벨 1 올리는 게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졌다.

나는 레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씨아블로가 드랍한 보상 아이템을 뒤졌다.

“오, 찾았다.”

내가 찾은 것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한 열쇠였다.

-<알 수 없는 열쇠> / 재료 / S

아주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열쇠.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등급이 S!

한 눈에 봐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아이템이었다.

*       *       *

나는 씨아블로가 된 플라튠을 격퇴한 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내려왔다.

조개 부스러기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뿜고 있던 석회질, 규토질의 모래톱들이 사라지고 짙은 회빛의 개흙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교적 얕은 곳에는 녹색 물풀들이, 깊은 곳에는 검거나 붉은색 물풀들이 자욱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블루홀 아주 깊은 곳, 하지만 말이 블루홀이지 거의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경사는 급감해서 거의 주변 전체가 절벽이었다.

그 무엇도 내 손을 잡아 주지 않는 해저 속 아득한 공간.

이윽고 나는 뇌산호와 부채산호, 버섯산호, 관산호, 육방산호, 석죽류가 빽빽하게 깔린 바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선인장처럼 뾰족한 가시가 달린 식물(혹은 동물일지도?)들이 도처에 가득했지만 정체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돌아다니는 몬스터들 역시 전혀 새로운 종들뿐이다.

<함무라비 소라게> -등급: A / 특성: 얼음, 땅, 물, 뺑소니, 나약한 갑각, 지진, 고생물, 백전노장

-서식지: 가혹한 설산 ‘금지된 구역’, 상해(上海) 블루홀, 하해(下海) ‘네 자매 사육장’

-크기: 8m

-언뜻 보기에는 가재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게의 한 종류이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소라는 상당히 약해서 강한 충격을 받으면 금세 깨져 버린다.

상당히 집요한 성격이어서 자기를 공격한 적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똑같이 되갚아 주는 듯.

깊은 심해에 주로 서식하는 종이지만 어째서인지 눈이 잔뜩 내리는 고산지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가끔 아는 몬스터도 보였지만 거의 99%는 모르는 몬스터들이었다.

평균 위험등급은 A급 이상으로 보인다.

‘바다 지형에 사는 몬스터들은 아종, 변종까지 다 합치면 2만 종이 넘는다지?’

그 많은 몬스터들이 다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이런 곳에 살고 있었군 그래.

이윽고, 나는 이곳 블루홀의 가장 밑바닥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달했다.

심연 중심부, 최심층에 고여 있는 진득한 어둠.

그리고 나는 그 어둠 한가운데에서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거대한 구체 하나를 목도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난파선들의 무덤 가운데 혼자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거대한 머리통.

그리고 그 밑에서 불기둥 같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눈알 한 개!

크라켄(Kraken)!

나는 마침내 대격변 이후 리젠된 이 거대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한데?

크라켄의 몸 전신을 슬쩍 살펴보니 이상한 점 하나가 바로 보인다.

나는 떨떠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 원래 이렇게 컸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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