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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94화 (594/1,000)
  • 594화 상해(上海)의 왕 (1)

    […야! 들리냐? 들리면 대답 좀!]

    지금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분명 유다희의 목소리였다.

    “…어. 어?”

    나는 일순간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내 손가락은 ‘로그아웃’ 버튼에 올라가 닿아 있었다.

    이 손가락을 떼는 즉시 나는 게임에서 튕길 것이다.

    “…헉!?”

    나는 손가락을 꾹 누른 채 옆으로 드래그한 뒤 다른 버튼들도 한꺼번에 눌러 댔다.

    그 덕에 시스템 오류가 일어나 겨우겨우 로그아웃을 취소할 수 있었다.

    “뭐야?”

    나는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야! 들리냐? 들리면 대답 좀!]

    귓가에 들려온 음성은 눈앞에 자국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마치 자막처럼 말이다.

    ‘뭐지? 다른 사람과의 통화나 문자 메시지는 모두 차단될 텐데.’

    이 쇠공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일절 허가되지 않는다.

    기타 다른 인터넷 창을 띄우는 것조차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유다희의 음성과 메시지는 계속해서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고 있었다.

    [아이 씨, 뭐야? 이거 되긴 되는 거야? 사기 아냐? 이렇게 하면 된다고 써 있는데 설명에……]

    유다희는 내가 자신의 말을 보고 듣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중얼거리고 있다.

    나는 그제야 유다희가 지금 내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눈치 챘다.

    -<타짜의 포커 카드> / 양손무기 / A+

    전설의 도박마 ‘아귀’가 애용했다고 하던 카드.

    대체로 사용자의 말로는 좋지 않은 편이다.

    -특성 ‘너랑나랑은’ 사용 가능 (특수)

    예전에 ‘살인자들의 탑’을 공략할 당시 탑 4층 카지노의 보스 ‘핫세 다닐로바’를 리타이어 시키고 얻은 아이템.

    (참고로 핫세 다닐로바는 우즈베키스탄의 국가대표로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에 출전했다가 러시아의 국가대표인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에게 패한 바 있다)

    ‘이게 여기서 쓰이네.’

    나는 의외의 상황에 조금 웃어버리고 말았다.

    유다희가 몇 마디를 한 것뿐이지만 쇠공 속의 암흑이 조금이나마 옅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한편.

    [등급 높기에 진짜 되는 줄 알았네. 에이, 완전 낚였잖아.]

    유다희는 계속해서 혼자서 투덜거리고 있다.

    […하, 됐다. 내가 얘랑 연락해서 뭐 한다고. 아~ 하나도 안 아쉽다~ 아~~]

    이대로 가다간 유다희가 통신을 끊어 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서둘러 한 마디 했다.

    “들려.”

    그러자 눈앞에 있는 자막이 한번 크게 요동쳤다.

    유다희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텍스트 너머로도 느껴진다.

    […뭐, 뭐야? 방금 누가 말한 거야?]

    “그야 나지. 들린다고. 네 말.”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텍스트 너머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이윽고, 눈앞에 다시 음성과 자막 텍스트가 떴다.

    […어디서부터 들었냐?]

    “‘야 들리냐?’ 부터.”

    [미친! 처음부터 다 들었고만! 왜 변태같이 안 들리는 척 하면서 듣고만 있었냐!?]

    “변태 맞는데?”

    [……너 또 벗고 있냐?]

    “…그렇게 물어보니까 너도 변태 같다.”

    [뭐, 뭣!? 미쳤냐! 그런 뜻으로 물어본 게 아니잖아! 네가 평소에 항상 벗고 다니니…!?]

    쇠공 속에 갇혀 할 게 아무것도 없다 보니 유다희를 놀려먹는 일도 꽤나 재미있다.

    나는 유다희가 보내는 메시지 밑에 있는 작은 깜빡이 버튼을 바라보았다.

    <수신 ON/OFF>

    보아하니 유다희와의 메시지 수신 상태를 열고 닫을 수 있는 모양이다.

    ‘평소에는 꼭 닫아 놔야겠네.’

    하지만 지금은 유다희와의 대화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이 칠흑 같은 심해의 어둠은 사람의 정신을 미치게 만들 정도로 괴로운 것이었으니까.

    “왜 말 걸었냐?”

    […뭐, 그냥. 이 카드에 등록된 친구가 너밖에 없어서. 아이템 성능이나 시험해 볼까 하고 말 걸어 봤지. 아니, 근데 이 아이템 대박인데? 너가 말하는 거 다 들려! 자막으로도 뜨고!]

    “사기 도박용 아이템이니까.”

    [맞아. 그때 그 우즈베키스탄 계집애, 치사하게 이걸로 내 돈을 다 따 갔었지! 용서가 안 되네.]

    유다희가 화를 낼 때면 그녀의 텍스트가 부들부들 떨린다.

    아무래도 발화자의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모양.

    나는 유다희가 대화를 끊을까 봐 약간 초조해졌다.

    그녀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지금 철저한 을(乙)의 상황이니까.

    유다희가 대화를 종료하면 나는 또다시 이 망망대해의 밑바닥에 홀로 남겨지게 되겠지.

    이 무시무시한 BGM, 그리고 밖에서 들리는 저주 소리를 들으며.

    ‘안 돼. 그러면 또 언제 로그아웃을 할지 몰라.’

    나는 유다희에게 계속 대화를 유도했다.

    …한데?

    다행스럽고 또 의외이게도, 유다희는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나와의 대화를 잘 따라왔다.

    늘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여자가 웬일일까?

    유다희는 뚱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살가운 태도로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지금 어디냐?]

    “왜.”

    [아니, 어디서 뭐 하나 해서. 사냥 중?]

    “알면 스틸하려고?”

    [하, 자식. 말하는 싸가지 진짜! 비록 내가 어? 네가 잡으려는 몹 스틸하려고 한 적이 과거에 몇 번 있긴 하지만 어? …눈치 빠르네 너.]

    “후후후, 다 티 난다.”

    [아 뭐래. 진짜로 관심 없고. 그냥 혹시 사냥 중이면 통화? 메시지? 암튼 이거 못 주고 받을 거 아냐. 바쁜가 해서 물어본 거야.]

    “안 바빠. 너는?”

    […음. 나는 바쁜데, 잠깐 짬 내는 거야.]

    나와 유다희는 그렇게 한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다.

    바쁘다던 유다희는 말과는 달리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내 대화를 받아 주었다.

    [아, 그리고. 사실 말할 게 있어서 대화 걸었어.]

    “뭔데?”

    내가 묻자, 유다희는 접속이 끊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뜸들이고 망설였다.

    이내 그녀의 메시지가 텍스트로 떴다.

    [……저번에 세희 찾을 때, 현상금 걸어 준 거 고마워.]

    예전에 유세희가 차규엽에게 유괴당했을 때 내가 개인방송으로 현상금을 걸었던 것을 말하나 보다.

    유세희는 나에게도 좋은 인연이었기에 당연한 일이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유다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살인자들의 탑 레이드도… 꽤 재밌었어.]

    이것은 상당히 의외의 발언이었다.

    내가 눈을 끔뻑이자 유다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해서 다음에 또 뭐 같이 레이드 뛰자거나 그런 건 딱히 아니고! 그냥 그 날 하룻밤 좋았다고! 딱 그날만!]

    “…하룻밤?”

    [어, 뭐!? 내가 언제 그랬어!? ……변태 아냐 이거 진짜!]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변태 포인트를 찾은 걸까.

    *       *       *

    유다희와의 대화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길어졌다.

    무려 일주일 간, 그녀는 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 동안 내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암튼 그래서… 마동왕 님 주먹에 다시 걸리면 너는 기냥 콱…!]

    주로 대부분이 마동왕에 대한 예찬이었지만 말이다.

    “흐아암~”

    나는 잠에서 깬 뒤 하품을 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BGM과 살벌한 저주 염불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이제는 생각보다 별로 무섭지 않았다.

    눈앞에 반짝반짝 빛나는 새 메시지가 있었으니까.

    [어? 야, 이제 일어났냐. 하품 소리 다 들린다~]

    “칼답이네.”

    [ㅋㅋㅋ마침 할 일 없던 참…아니, 바쁜데 잠깐 여유 있던 참이다.]

    평소대로였으면 그냥 무시했을 말이었지만 깊은 심해로 내려가는 동안 그녀와의 대화는 내게 빛이요 소금과도 같았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생각했다.

    ‘…근데 얘가 왜 이렇게 대화를 잘 받아 주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긴 하지만, 뭐. 이 상황에서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

    유다희와 나는 그 이후로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녀의 가정사, 성격, 취미, 평소 일과 등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회귀 전 그녀를 덕질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보들이었다.

    [야, 너 지금 바쁘냐?]

    “아니. 딱히.”

    [어, 음. 그러면 언제 시간 될 때 ……나랑 같이 한 끼……]

    바로 그때.

    -띠링!

    유다희의 말을 끊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든 던전 ‘블루홀 밑바닥’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잊고 있었던 타이머를 보니 어느새 잔여 시간들이 모두 사라져 있는 것이 보인다.

    길고 길었던 심해로의 여정이 끝났다.

    드디어 나는 바닥에 도착한 것이다!

    “오케이!”

    나는 쇠공의 파괴불가 상태가 해제된 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그때.

    [뭐야, 야. 안 바쁘다며~ 대답좀~]

    유다희가 재차 묻는다.

    나는 방금 알림음 때문에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기에 한번 되물었다.

    “어, 미안. 갑자기 바빠졌다. 아까 뭐라고 함?”

    [……어? 아, 아니. 그냥 나중에 시간 되면… 레이드나 같이 한번 돌자고! 레이드!]

    심해로 내려가는 동안 로그아웃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인데 그쯤이야.

    “오케이. 조만간 한번 좋은 던전 데려가 줄게.”

    [……눈물 나게 고맙네.]

    한데 어째 유다희의 반응이 별로 좋지가 않다.

    나는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쩌적! …쩌저저적!

    파괴불가 상태였던 쇠공이 깨지고 있었다.

    동시에.

    [죽어죽어죽어죽어꺼낼거야꺼낼거야꺼낼거야나와나와나와죽어죽어죽어죽어……]

    근 일주일 간 나에게 달라붙어 저주를 읊조리던 괴물이 쇠공을 찢고 안에 있는 나를 끄집어내려 들고 있었다.

    “어, 야. 미안하다.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다음에 또 얘기하자.”

    나는 유다희와의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왜냐면 지금 이 순간 쇠공을 찢고 들어오는 이빨과 촉수다발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콱!

    나는 손에 깎단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쇠공 밖에 있는 정체불명의 몬스터를 향해 이를 갈았다.

    “…그래, 일주일 내내 나랑 놀아 줘서 고마웠다. 나도 네가 무척 보고 싶었어.”

    그간 나를 노이로제로 몰아넣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것이다.

    *       *       *

    한편.

    “흐아암~”

    유다희는 졸린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 너 지금 바쁘냐?”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유다희.

    그런 유창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 뭐야 누나. 뭐해?”

    게임을 캡슐이 아니라 PC로 켜두고 채팅 시스템만 이용하고 있는 것은 또 처음이다.

    유다희는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아, 음성 채팅만 하려고.”

    “게임은 안 하고?”

    “어.”

    “게임 안 하는데 누구랑 채팅을 해?”

    “신경 꺼라.”

    그때.

    모니터에서 불빛이 깜빡였다.

    유다희가 졸린 눈을 부릅뜨더니 바로 마우스를 잡는다.

    [아니. 딱히.]

    상대방의 말을 들은 유다희는 언제 졸렸냐는 듯 활짝 미소 지었다.

    “…좋아 안 바쁘다 이거지?”

    혼자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유다희는 이내 마이크에 대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크흠. 큼.”

    그리고 이내 최대한 머뭇거리지 않으려 애쓰는 어조로 물었다.

    “어. 음. 그러면 언제 시간 될 때 밥이나 같이 한 끼 먹을래? 내가 살게.”

    유다희의 말을 들은 유창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 짠순이가 밥을 산다고?’

    …하지만 상대방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다희는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안절부절 못해 하며 침대에 누웠다 의자에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부글부글 끓던 그녀가 이내 마이크를 다시 잡는다.

    “뭐야, 야. 안 바쁘다며~ 대답좀~”

    그러자 비로소 다시 대답이 들려온다.

    [어, 미안. 갑자기 바빠졌다. 아까 뭐라고 함?]

    뿌득-

    유다희는 두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유창이 침대에 누워 배를 잡고 바둥거리는 것이 보였다.

    “푸하하하! 씹혔네! 씹혔어! 천하의 유다희도 다 됐네!”

    그러자 유다희는 바로 동생을 응징한다.

    유창의 복부에 주먹을 몇 대 꽂아 넣은 그녀는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어? 아, 아니. 그냥 나중에 시간 되면… 레이드나 같이 한번 돌자고! 레이드! 거, 뭐. 우리가 같이 할 게 PVP랑 레이드 말고 더 있나!”

    그러자 다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케이. 조만간 한번 좋은 던전 데려가 줄게.]

    쓸데없이 해맑은 어조의 대답이 돌아왔다.

    “……눈물 나게 고맙네.”

    유다희는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 야. 미안하다.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다음에 또 얘기하자.]

    그리고는 답이 없다.

    유다희는 허탈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지난 며칠 간 밤낮으로 대화를 하며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회심의 타이밍을 노려 던진 멘트가 이리 허무하게 미스가 뜰 줄이야.

    유다희는 괜히 뒤에서 끅끅대며 웃는 유창에게 화풀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 어이없네! 내가 왜 얘랑 밥을 먹어!? 어!? 내가 순간 미쳤었나 보다! 으아~!”

    “…먹을 수도 있지 누나. 저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말야.”

    “닥쳐라 진짜! 더 쪼개면 진짜 뚝배기 쪼개 버릴 줄 알아!”

    유다희와 유창은 서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불현듯 마이크에서 들려온 끊어질락 말락 한 중얼거림 하나가 그런 유다희의 온몸을 뻣뻣하게 굳게 만들었다.

    […그래, 일주일 내내 나랑 놀아줘서 고마웠다. 나도 네가 무척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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