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93화 (593/1,000)

593화 상해(上海)의 왕 (1)

고대 로마에는 특이한 형벌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내부가 텅 빈 커다란 쇠공을 만든 뒤 그 안에 구제불능의 죄수를 투옥한다.

이후 깊은 바다로 쇠공을 싣고 가 그것을 물에 빠트리는 형벌이다.

쇠공 속의 죄수는 바다로 가라앉는다는 공포에 발버둥치지만 손톱이 다 닳고 빠질 때까지 긁어도 결코 단단히 용접된 쇠공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심해로 갈수록 수압은 강해지고 쇠공은 점점 일그러지며 좁아지게 되고 죄수는 그 쇳덩이들의 압력에 짓눌려 온몸이 으깨지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죄수들은 한 시간여의 심해로의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 버리거나 질식해 죽고 만다.

아무것도 없는 까마득한 심해의 어둠 속에서, 극도의 폐쇄감에 짓눌린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       *       *

…꾸르르륵!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는 지금 쇠공 안에 갇힌 채 더욱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띠링!

귓가에 알림음이 들려온다.

<히든 던전 ‘블루홀’에 입장 하셨습니다>

<현 위치: 블루홀 ‘입구’>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내가 아는 게임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플레이어도 진입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구역, 상해(上海) 최후의 미탐사지대로 나는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어디 보자, 이 던전은 분명 크라켄이 살고 있는 곳이었지?’

내가 알기로 이 깊은 던전은 총 9개의 지하 층으로 나뉘어 있다.

1. 입구

2. 얕은 구역 (1)

3. 얕은 구역 (2)

4. 중간지대 (1)

5. 중간지대 (2)

6. 깊은 구역 (1)

7. 깊은 구역 (2)

8. 최심층부

9. 밑바닥

물론 들어가 본 적 없기에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에 크라켄을 잡으러 갔을 때 블루홀 밖으로 들려온 알림음들을 통해 던전 내부의 구조를 대략적으로만 어림잡을 수 있을 뿐.

‘하긴, 그것도 대격변 전의 이야기지.’

하늘에서 떨어진 천공섬은 페름기의 운석 낙하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지상의 지형들이 모조리 바뀐 만큼 해저의 지형 역시 큰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현재 블루홀 내부의 생김새는 내가 크라켄 레이드를 뛸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었다.

‘대격변 이후 바다의 진짜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니 아마 크라켄은 중간 보스 정도로 전락했겠군.’

애초에 크라켄은 바다생물 랭킹 3위이다.

그 거대한 심해괴물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이 바다에 둘이나 더 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내가 노리고 있는 ‘상해의 왕’인 것이다.

…문제는.

<로그아웃 제한시간 ‘167시간 57분 16초’>

총 168시간, 무려 7일에 달하는 로그아웃 제한이다.

놀랍게도 이 쇠공이 심해의 바닥까지 가라앉는 일주일 동안 나는 단 1초도 로그아웃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진짜 너무하네.’

캡슐 속에 수액 링거와 영양 패치 시스템을 설치해 뒀으니 아마 몸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잠도 게임 안에서 자면 되니 생존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좁고 어두운 심해 속에서 깊은 곳을 향해 가라앉는 것을 일주일 간 반복하는 것은 아무리 고인물이라고 해도 정신적으로 데미지가 있다.

심지어 이 공간에서는 타인과의 대화, 다른 인터넷 서핑 등도 모조리 제한되기 때문에 정말로 어둠 그 자체 속에만 홀로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오즈와 쥬딜로페 등 펫과의 교감마저 완전 차단된다!)

‘…이러다 미쳐 버리겠는데?’

여러 대학 병원에서는 사람이 어둠 속에 홀로 고립될 수 있는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여러 실험 결과, 혼자서 좁은 방 안에 불도 켜지 않고 갇혀 있던 이들은 거액의 보상금에도 불구하고 죄다 실험을 중도 포기하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죄다 정신 이상적인 증세를 보이며 말이다.

지금 내 경우가 바로 그렇다.

제아무리 고정 S+급 몬스터가 걸려있는 미션이라지만 이 지독한 폐소감과 어둠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블루홀 던전은 이것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인가, 공략 시작부터가 엄청 빡세네.’

진입부터가 이렇게 어려운 던전은 처음이다.

눈에 남은 시간이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진즉에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꼬르륵!

물 밖에서 한 떼의 물거품이 솟아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눈을 감은 것인지 뜬 것인지 알 수 없는 좁은 쇠공 안에 갇혀 내가 가라앉고 있는 나락의 깊이를 가늠해 보았다.

수심 4.4미터. 표준 다이빙 수영장의 깊이.

수심 10미터. 해저로 잠수한 다이버가 산소탱크 속 압축 질소에 취해 마티니 칵테일 1잔을 마신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는 깊이.

수심 20미터. 산호초 군락이 있으며 다이버가 마티니 2잔을 마신 것 같은 취기를 느끼는 깊이.

수심 30미터. 뜨거운 해류와 차가운 해류가 만나 형성한 거대한 해초숲이 존재하며 가장 많은 생물들이 사는 깊이. 다이버가 3번째 마티니를 마시는 구간.

수심 40미터. 나이아가라 폭포가 떨어져 박히는 물 속 깊이. 마티니 4잔을 마신 듯한 기분이 드는 깊이로 신체가 둔해지고 자신감이 고양되는 깊이. 레크리에이션 스쿠버 다이빙이 잠수할 수 있는 한계.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영장의 깊이.

수심 60미터. 인간이 환각을 보게 되는 깊이. 범고래들이 보통 서식하는 깊이이며 잠수함들이 다니는 깊이.

수심 70미터. 고래상어가 사는 깊이. 인간이 환각을 넘어 기절, 공포, 착란 등을 느끼는 깊이.

수심 90미터. 1915년 침몰한 루시타이나 호의 잔해가 가라앉은 깊이.

수심 100미터. 거대한 대왕 문어들이 서식하는 구간. 길이는 2미터에서 6미터까지 다양하며 8미터가 넘는 개체들도 흔하게 발견되는 깊이.

수심 200미터. 이제부터 빛이 거의 들지 않으며 몸길이 10미터 이상, 몸무게 200kg이상의 심해괴물 산갈치가 서식하는 구역.

수심 300미터.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거대한 갑각류들이 지배하는 구역. 몸무게 수십 킬로그램이 넘고 미터급 이상으로 성장하는 갑각류들이 우글거리는 깊이.

수심 332미터. 스쿠버 다이빙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깊이.

수심 406미터. 세계에서 가장 넓은 호수의 밑바닥.

수심 500미터. 10층 건물 크기의 흰긴수염고래가 잠수할 수 있는 최대 깊이. 수압이 북극곰이 동전 위에 올라가 있는 정도의 수준까지 상승하는 구간.

수심 600미터. 사람이 잠수할 수 있는 영역의 끝.

수심 700미터. 길이가 미터 급을 넘어가는 장어들의 서식지. 멸종위기종인 유럽 장어가 사는 깊이.

수심 900미터. 눈알의 지름만 30cm에 달하는 거대 오징어들이 지배하는 구간. 수십 미터 이상의 몸 크기를 가진 생물들도 흔하게 발견되는 깊이.

수심 1,000미터. 빛의 끝. 나락의 시작. 수압이 금성에 서 있을 때의 압력과 같아지는 구간.

수심 1,100미터. 인간이 발견한 가장 깊은 해저 화산 ‘웨스트 마타’가 존재하는 구역.

수심 1,300미터. 장수거북과 백상아리가 잠수할 수 있는 깊이.

수심 1,500미터. 포괄 어업을 하는 어부들의 그물이 가라앉는 깊이.

수심 1,800미터. 그랜드 캐넌의 깊이.

수심 2,300미터. 향유고래가 잠수할 수 있는 최대 깊이.

수심 3,000미터. 심해 산호초 군락지대. 해저 석유를 시추하는 깊이.

수심 3,800미터.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아 있는 구간.

수심 4,000미터. ‘심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하는 깊이. 6.45평방미터당 5톤이 넘는 압력이 가해지는 구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심해어들이 괴상망측한 외형으로 살아가는 곳.

수심 5,000미터. 해저 열수공이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구간.

수심 6,000미터.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난파선 ‘SS 리오 그란데’가 가라앉아 있는 구간. 이 구간의 수압은 사람 위에 점보제트기 50대가 올라가 있는 수준.

수심 8,000미터. 살아 있는 물고기가 발견된 가장 깊은 구간.

수심 10,000미터. 잠수함을 타고 다녀와 본 조사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외롭고 척박한 공간’이라고 묘사한 깊이.

수심 10,091미터. 인간이 도달한 가장 깊은 곳. 그마저도 수압 때문에 잠수함이 파손되어 20분 정도밖에는 체류하지 못했던 구간.

수심 11,000미터. 인간이 현재 과학기술로 어림짐작할 수 있는 바다의 가장 깊은 곳. 하지만 그마저도 가장 깊은 곳이 아닐 확률이 훨씬 큰 구간.

.

.

“…그리고 나는 그 구간별로 모티프를 가져온 이 블루홀 속에서 혼자 심해 탐험을 해야 한다 이거지.”

혼자 있으니 혼잣말이 는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미리 북대륙의 버려진 마을들을 파밍해 ‘잠수병 치료제’ 등의 포션을 구해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멀미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퉁!

그때, 내가 타고 있는 쇠공이 무언가에 부딪쳤는지 한번 크게 울렸다.

맨 처음에는 바위에 부딪쳐 그것을 타고 내려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다.

밖에서 미약한 신음과 물길이 거칠게 바뀌는 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살아 있는, 거대한 무언가의 등에 부딪쳐 다시 아래로 침강하고 있는 모양이다.

“뭔진 몰라도 내가 아는 몬스터는 아니겠군.”

이 블루홀 속의 생태계는 세간에 완벽히 미공개된 것이기에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아마 내가 회귀하기 전 세상의 플레이어들조차도 모를 것이다.

그저 가끔씩 수면 위나 해안가로 떠밀려 오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시체나 고등급 아이템들을 보며 짐작만 할 뿐.

…퉁! …퉁! …꼬르르륵!

쇠공은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더 튕기더니 다시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압력 때문에 벽의 일부가 찌그러들긴 했지만 파괴불가 속성 덕분에 깨지는 일은 없었다.

“다른 인터넷 창을 못 켜니 영화도 못 보고, 만화도 못 보고, 웹소설도 못 보네. 친구들과 메시지나 통화를 주고받는 것도 안 되고. 이거 진짜 너무하는구만!”

정말 이 지옥 같은 어둠과 적막 속에 혼자 일주일을 내리 방치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고정 S+급 몬스터를 향해 가는 길이 험난하다지만… 이렇게 플레이어의 정신에 바로 데미지를 준다고?’

왜 지금껏 이곳에 진입한 플레이어가 없는지 알 것 같다.

애초에 상해의 왕이 존재하는 구역에 발을 디디는 것조차 이리 힘드니 원.

정말 극한의 정신력을 가진 게이머가 아니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괴랄한 중간보스보다도 더욱 더 힘든 난관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심지어 이 상황조차도 극한의 맥시멈이 아니었다는 게 금방 드러났다.

쇠공 안의 어둠과 적막 속에 몸을 파묻고 있는 내 귀에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BGM이었다!

특정 맵에 진입할 때 나오는 배경 음악.

이 블루홀의 아득한 심연 속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그러나 그 어떤 인간도 들을 수 없는 공허의 음악이 내 고막을 음산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Look to the sky, way up on high.

(저 높은 곳 하늘을 보아라)

There in the night stars are now right.

(밤하늘의 별이 제 자리를 찾았도다)

Eons have passed: now then at last.

(영겁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지금 이 순간)

Prison walls break, Old Ones awake!

(감옥이 무너지고 옛 것들이 깨어난다)

They will return. mankind will learn.

(그들은 돌아올 것이고 인류는 깨달으리라)

New kinds of fear when they are here.

(그것들이 야기할 새로운 공포를)

Stars brightly burning, boiling and churning.

(별들이 밝게 불타고 끓어오르고 뒤섞이며)

Bode a returning season of doom.

(멸망의 시기가 돌아올 징조이다)

Scary scary scary scary solstice.

(무섭고 무섭고 무섭고 무서운 날)

Very very very scary solstice.

(너무 너무 너무나도 무서운 날)

Madness will reign, terror and pain.

(광기가 지배하는 공포와 고통)

Woes without end where they extend.

(끝없는 비통이 그들이 닿는 곳마다 함께할지니)

Prison walls break, Old Ones awake!

(감옥이 무너지고 옛 것들이 깨어난다!)

Fear.

(두려워하라)

.

.

오싹하고 기분 나쁜 노래.

인간은 보통 한 감각이 차단되면 다른 한 감각이 예민해진다.

어둠으로 인해 차단된 내 시각 대신 신경은 온통 내 청각으로 몰려 있었고 심해의 적막 탓에 그것은 한층 더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온몸의 신경다발이 죄다 돌돌 말려드는 듯한 쭈뼛함.

극도로 예민해진 청각에 이런 오싹하고 음산한 노래는 극독 이상의 극독이었다.

이 사람 신경 긁어 놓는 노래가 어둠 속에서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일순간이나마 저 심해의 끝에 있는 존재에게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냥 로그아웃할까?’

하지만 이 기회는 다시없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라도 그렇다.

나는 회귀자.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15년간의 지식과 의지를 품고 있는.

그런 내가 여기서 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딱딱딱딱

이가 부딪치고 다리가 달달 떨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로그아웃을 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내 용기가 대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가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했던가?

나는 이 전무후무한 기회 앞에서 포기를 선언할 용기조차도 없이, 그저 끝없이 끝없이 가라앉고만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 의지를 더욱 더 약화시키는 요인이 추가되었다.

…쾅!

쇠공이 한번 크게 출렁이는가 싶더니 무언가 거대하고 물렁물렁한 것이 주위를 감싸는 것이 느껴진다.

…다가각! …그극! …까기긱!

밖.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부드럽고 육중한 몸으로 내가 들어있는 쇠공을 감싼 채, 뾰족하고 단단한 무언가로 표면을 긁어대고 있었다.

우드득! 우득!

근육과 촉수, 빨판으로 추정되는 것을 가진 무언가가 지금 나를 만나기 위해 미친 듯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뭐지? 뭐가 달라붙은 거지?’

바깥 생태계는 나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것들이다.

당연히 지금 나를 노리고 있는 몬스터의 종류도, 크기도, 이름도 나는 모른다.

놀랍게도, 바깥에 있는 그것은 쇠공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이기까지 했다.

[죽어죽어죽어죽어꺼낼거야꺼낼거야꺼낼거야나와나와나와죽어죽어죽어죽어……]

물속에서 부글거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저주를 되뇌이는 음성.

그것은 왠지 낯익게 들리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일주일이나 되는 아득한 심연 속 유배, 거기에 무시무시한 음악과 나를 저주하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의 등장.

나는 이 상황 속에서 오롯이 홀로 이 모든 시련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차라리 피할 수 없는 탄막 슈팅이나 괴랄하게 빠르고 질긴 괴물과의 사투는 자신 있었지만 이런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의 종류는 내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나는 극도의 공포와 폐소감에 짓눌려 참고 있는, 아니 거의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1시간? 10시간? 하루?

1초와 1초의 사이마다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르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중도 포기를 결심했다.

언제든 손만 뻗으면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다.

딱 한번 손가락을 까닥여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면 된다.

-띠링!

<세이브가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로그인 했을 때는 아틀란둠, 혹은 독주의 무덤에서 눈을 뜨겠지.

온몸의 신체 능력이 저하되는 ‘겁쟁이’라는 멸칭과 함께 말이야.

하지만 별 수 없다.

솔직히 내가 지금 제정신인지도 알 수 없는 마당에 고정 S+급 몬스터를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나는 두 눈을 딱 감고 손을 뻗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잡을 수 없게 될 고정 S+몬스터에게 안녕을 고하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띠링!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분명 이 맵에서는 다른 이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을 때.

…팟!

온통 어둠만이 존재하던 내 시야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동시에, 저주와도 같은 주변 소리를 뚫고 한 가닥 청량한 목소리가 내게 와 닿았다.

[…야!]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일순간 환청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야! 들리냐? 들리면 대답 좀!]

어떻게 들려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유다희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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