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85화 (585/1,000)
  • 585화 제일 화려한 시상식 (2)

    “오늘부터 우리는……!”

    이내, 윤솔이 자욱하게 치솟는 드라이아이스와 폭죽의 향연 너머로 크게 외쳤다.

    “걸그룹입니다!”

    ……?

    나는 이게 뭔 소린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이내 무대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윤솔, 아키사다 아야카, 탕쯔이, 올가, 핫세…

    어디서 많이 본 열두 명의 여자들이 갑자기 무대 위로 튀어나왔다.

    놀라운 점은 무대 위에 그녀들과는 또 다른 열두 명의 여자들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바로 그녀들의 게임 캐릭터들이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빅리그에 참가한 12개국의 여성 플레이어들.

    그녀들의 게임 속 모습이 무대 위 증강현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되어 각각 그녀들의 옆에 섰다.

    인간, 오크, 리자드맨. 딜러, 탱커, 서포터, 원딜. 전사, 마법사, 궁수, 암살자…….

    국적도 종족도, 실로 다양한 조합이다.

    “안녕하세요! 새롭게 데뷔하게 된 걸그룹 SDC(Str Dex Con:힘민체)입니다!”

    윤솔이 빅리그의 주인공이 된 분위기를 몰아 마이크를 잡았다.

    이윽고, EDM이 섞인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무대 위 12개국 플레이어들의 안무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들의 게임 캐릭터들 역시 안무에 맞게, 실제 사람들과 뒤섞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사라지는 경계, 너는 지금을 보고 있어? 이제는 벽을 부술 때! With the collapse of the Berlin wall, all that changed! Log In In In In In In! 내 손을 잡아!]

    크게 울려 퍼지는 노래.

    [현실로 끓어넘치는 Melting pot, 너는 지금을 기억해? With the collapse of the 38th parallel north line, all that changed! Log Out Out Out Out Out Out! 내 손을 잡아!]

    증강현실은 가상현실과 달리 게임 속 홀로그램 환상을 현실에 직접 구현해 낸다.

    [영원한 세계는 없다고? 지금 무엇을 남길 것인지 선택해! With the collapse of the The thin red line, all that changed! Log In In In In In In! 내 손을 잡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게임 캐릭터들이 현실의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심지어.

    “어엇!? 이거 봐! 내 캐릭터도 구현된다!”

    “대박! ID코드만 핸드폰에 다운받으면 돼!”

    “팔찌로도 가능한가 본데? 오오! 된다! 된다!”

    사람들은 광장 입장 전 미리 다운받은 코드를 스마트워치나 핸드폰에 입력해 둔 바 있었다.

    그리고 광장 전체를 돌고 있는 위성들의 파장에 의해 모든 사용자들의 게임 속 캐릭터들이 현실 속에서도 구현된다.

    별도의 렌즈 없이도 펼쳐지는 신세계!

    허공에 뜬 자신의 증강현실 아바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환희 그 자체다.

    이윽고, 현실과 게임의 벽이 무너지며 걸그룹도 팬들도 모두 자신의 게임 캐릭터와 함께 공연을 즐긴다.

    마치 게임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게임이 된 듯한 환상적인 광경.

    [잘 만큼 자지 않았어? 소중한 지금을 누워서 보낼 거야? 일어나 뛰자! With the collapse of the Interstellar, all that changed! Log Out Out Out Out Out Out! 내 손을 잡아!]

    뒤집어지는 무대, 무너지는 현실과 가상의 벽.

    환희와 열망, 소망과 기원. 모든 것은 하나로 뭉쳐 끓어 넘친다.

    김한선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게임 OST지만 상당히 잘 뽑혔습니다. 노래부터 안무까지 장인들만 모아서 제작했거든요. 각 나라의 대표팀 출신들만 모아서 만든 걸그룹이니만큼 아시아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확실할 겁니다. 아참, 한국이 우승국이 되었으니 윤솔 선수가 리더를 맡을 계획이고요.”

    그렇게 말하는 김한선 이사의 뒤에는 큰 체구의 리자드맨 유저가 긴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김한선 이사의 뎀 캐릭터이다.

    나는 김한선 이사의 손동작과 입술 모양이 변함에 따라 혀를 쉭쉭 내두르는 리자드맨 캐릭터를 보며 감탄했다.

    “이야~ 가상현실 기술뿐만 아니라 증강현실 기술도 많이 발전했군요. 그나저나 SDC? 저는 처음 듣는데.”

    “하하, 윤솔 씨가 놀라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긴 했었지요. …아, 또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뭔데요?”

    내가 묻자 김한선 이사는 내 귀에 아주 작은 소리로 귀뜸했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 어진 씨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듣고 있노라면 절로 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일 정도로 흥겨운 이 노래를 내 지인이 만들었다고?

    “어? 누구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만들 만한 사람이 없는데. 아, 설마 구라이 부랄 씨인가?”

    “…아뇨, 누구에요 그건. 힌트를 드리자면 ‘마교’ 회원들 중 한 분입니다.”

    “어라? 진짜 누군지 감이 안 잡히는데.”

    “후후후, 그분께서도 어진 씨를 놀래켜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분간은 비밀로 해 달라던걸요?”

    ……왜 이렇게 날 놀라게 못 해서 안달인 사람들이 많담.

    뭐, 어쨌든. 나는 김한선 이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안무가 꽤 격렬해 보이는데, 다들 연습은 언제 했대요?”

    “대부분 간단한 동작들이라서 관절 부분에 장착하는 보조 머신으로도 충분히 소화 가능합니다. 어려운 동작들은 증강현실 속 캐릭터들 몫이고요.”

    “이 수많은 관중들의 캐릭터까지 전부 증강현실로 구현하기는 어렵지 않았나요?”

    “전부 다 위성들의 힘이죠. 해외 투자 없이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력만으로 가능했습니다. 요즘 국가에서 핵심 산업으로 부쩍 투자를 많이 하는 것 덕분이기도 하고요.”

    레드문의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투자해 만든 걸그룹 무대답게 모든 것은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김한선 이사는 꿈에 부풀어 외쳤다.

    “한국 워터멜론 차트와 미국 아이튠즈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확신합니다. 앞으로는 뎀 속 유명인이 이렇게 가수나 댄서, 배우로도 활약하게 되는 시대가 올 거예요.”

    그가 항상 주장하던 뎀과 현실의 접목이 이제 슬슬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사사건건 방해만 놓던 차규엽이 사라지니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모양.

    …하지만, 나는 이미 미래를 살다 온 몸 아닌가.

    김한선 이사의 계획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들이 연일 대박 행진을 만들어 내며 신화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뭐 생각보다는 조금 빠르지만 말이야.’

    오늘 김한선 이사의 시험적인 걸그룹 프로젝트는 대성황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게임 OST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체 음원 순위 1위를 기록하게 되며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될 예정.

    미국과 영국 아이튠즈, 중국의 QQ 등에서도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음은 물론이다.

    동시에 아예 ‘e스포츠 음악’이라는 음악 장르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게 된 계기로서 게임사에 길이 남게 된다.

    다만, 나는 아주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걸그룹에는 유다희가 속하게 될 예정이었는데 말이야.’

    그렇다.

    게임 방송 스트리머로 워낙에 잘 나가서일까?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는 윤솔이 아니라 유다희가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SDC에 속하게 되었었다.

    (물론 레드문의 차규엽이 실각하지 않아서였기도 하지만)

    ‘어쩐지 유다희의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는 않네.’

    뭐, 유다희가 아시아 12개국의 멤버들과 함께 지내며 범아시아적인 연예계 활동을 하는 동안 차규엽에게 혹사당하고 착취당하며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이 상황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귀 전, 유다희가 가지고 있었던 음악적 재능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나는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윤솔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문도 변했고 SDC도 변했으니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상당히 밝아졌을 것이다.

    이윽고, 노래가 끝난 뒤 솔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제게 주어진 이 영광을 언제나 묵묵히, 든든하게 저를 도와주었던 친구에게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물기 어린 시선이 수많은 인파들을 뚫고 나를 향한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박수를 보냈다.

    내 박수는 이내 수없이 많은 다른 박수들 틈에 섞여 사라진다.

    ‘뭐, 이쯤 되었으면 솔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

    이제 그녀의 위상은 더 이상 내게 챙김 받던 뉴비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1레벨 뉴비를 어엿한 고수로 성장시켜 놨으니 고인물로서 참 뿌듯하고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 노래 진짜 좋은데? 내 벨소리로 해 놔야겠다.’

    내 취향에 딱 맞는 노래였다. 가사도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맘에 든다.

    무엇보다도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도 겪어 본 적 없는 음악이라서 더더욱 신선했다.

    ‘누가 이 노래를 작곡했을까?’

    내가 한 가지 의문을 품은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

    문득 무대 반대편에 눈에 띄는 광경 하나가 보였다.

    경기장 곳곳의 빈 패트병과 다 쓴 형광봉, 기타 음식물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있는 여자.

    그녀는 바로 유다희였다.

    마교의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고 있는 팬클럽 회원들을 챙기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경기장의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는 그녀를 보니 참 미래가 바뀌긴 바뀌었구나 싶다.

    원래대로라면 저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을 그녀가 무대 뒤에서 공연의 뒤처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심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물론 공연을 하는 쪽이나 무대를 정리하는 쪽이나 둘 다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 법이니까.

    ‘나중에 밥이나 한 끼 거하게 사야겠다.’

    지금 다른 마교 회원들과 같이 봉사활동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말 걸기가 조금 어렵다. 나중에 따로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김한선 이사와의 대화를 마무리한 뒤 돌아섰다.

    엄재영 감독, 드레이크, 마태강, 유세희 등 동료들의 떠들썩한 대화들이 등 뒤로 아스라진다.

    이것으로 나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는 끝.

    이제는 더 넓은 세계가 있을 뿐이다.

    내 기억 속 최강자들이 날뛰는 전장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orld Ultimate Olympiad)’, 무려 여섯 대륙의 정점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

    ‘더 큰 변화를 준비해야지.’

    앞으로 치러낼 것들이 산더미다.

    각 대륙에서 우승한 우승팀들이 모두 모이는 세계대회나 이제 코앞까지 다가온 2차 대격변 등,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건 뭐다?

    ……바로 레이드!

    ‘아차, 좀 있으면 아틀란둠 레이드 돌 시간이네!’

    나는 호다닥 파티 자리를 떴다.

    다행이 이미 흥겨운 축제 분위기에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축제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뭐 자기들끼리 노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차에 타고 광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 조명 열에 땀을 흘리는 걸그룹, 하늘에서 쏟아지는 꽃가루, 거리마다 흘러넘치는 음식과 술, 아직 덜 식은 응원 열기, 그리고 묵묵히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

    어찌되었던 재미있고 떠들썩한 시상식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열기가 아직 미처 채 식기 전에.

    부르릉-

    나는 차를 몰아 다음 스테이지로 향한다.

    고정 S+급 몬스터.

    또 다른 거대한 축제를 불러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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