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84화 (584/1,000)
  • 584화 제일 화려한 시상식 (1)

    빅리그의 최종 우승국이 정해지고 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바로 시상식이 열렸다.

    물론 정식으로 열린 시상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우선 약식으로 축하하는 당일 가설 무대였다.

    정식 시상식의 규모는 며칠간 벌어지는 축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큰 대규모 무대가 될 테니까.

    그리고 이 간이 시상식 겸 자축의 무대 중앙, 모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주인공이 있었다.

    오늘 밤 대한민국 전체의 주인공. 바로 윤솔이다!

    [네! 지금껏 힘을 숨기고 있던 영웅의 등장입니다!]

    [아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윤솔 선수가 이번 빅리그의 최종병기, 끝판왕이었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진(眞)  보스, 진 주인공, 빅리그의 슈퍼스타입니다!]

    [아이고, 앞에서 그렇게 다 칭찬하시면 제가 칭찬할 말이 없잖아요! 아 몰라! 오늘 밤 주인공은 윤솔 선수에요 윤솔 선수! 오늘 윤솔 선수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요!]

    윤솔이 무대 위로 오르자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십만 인파가 그녀의 손짓 한 번, 미소 한 번에 미친 듯이 열광한다.

    정말로 톱스타급 연예인 부럽지 않은 어마어마한 인기였다.

    “언니이이이! 댓글로 꽃병풍이라 욕했던 거 죄송해요! 철판 불에 달궈서 그 위에서 무릎꿇고 석고대죄할게요!”

    “누나! 사랑해요! 저번에 무임승차 한다고 말한 내 혀를 뽑고 싶어요!”

    “윤솔 님 여기 한번 봐 주세요! 꺄아아아악!”

    곳곳에서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함성, 그녀의 팬들이 이번 빅리그로 인해 몇 배는 훌쩍 늘어난 느낌이다.

    한편, 이 모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윤솔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내가 이미 사전에 주의를 단단히 시켜 놨기 때문이다.

    ‘솔아, 아마 대회가 끝난 뒤에는 네가 우리 중 그 누구보다도 주목받을 거야.’

    ‘……에이, 내가 어떻게?’

    ‘나만 믿어. 내가 계획한 퍼포먼스와 연출이면 너는 그날 하루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저, 정말? 어… 약간 무섭다. 긴장해서 말실수 하면 어떻게 하지? 잘못해서 너한테 피해 가기라도 하면……’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만 잘 따라 해.’

    윤솔은 가벼운 심호흡 후 내가 알려 준 대로의 우승 소감을 읊었다.

    “오늘 저희 구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팀으로서 꽤나 보람 있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응원해 주시고 함께 좋아해 주시는 관중 여러분이 없었더라면 저희의 게임 플레이는 그냥 자기만족 행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이에 저희 ‘닳고닳은 뉴비’는 오늘 우승의 모든 공로를 팬 여러분들께 돌리겠습니다.”

    “오늘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의 우승 상금 42억 9천만 원은 구단 멤버들의 만장일치에 따라 전액 한국, 러시아, 대만,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12개국 모든 참가국들의 소아암, 백혈병 환자들에게 기부될 예정입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우승팀 대표자의 깔끔한 우승소감.

    그러자 윤솔을 향한 성원은 배가 된다.

    공이면 공, 사면 사. 뭐 어디 하나 깔 곳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윤솔은 추가 인터뷰에서 자신을 향해 악플을 달던 이들을 모두 용서한다는 뜻을 밝혀 그 숭고함을 더했다.

    (그동안 댓글로 윤솔을 욕해 왔던 이들은 참회를 넘어 아예 자학의 영역으로 가 버렸다)

    심지어 한국이 우승 상금을 전액 기부한다는 말에 탈락한 아시아의 다른 12개국 대중들의 여론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차라리 자기네 나라보다는 한국이 우승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

    전용진 캐스터를 비롯한 모든 해설자들이 입을 모아 오늘의 승리를 치하하고 있었다.

    [이야~ 결국 이렇게 ‘닳고닳은 뉴비’가 한국 게임사의 역사를 새로 쓰네요.]

    [역시 명장 엄재영 감독의 전략입니다! 대단해요!]

    [마동왕 선수, 아니 코치의 지도도 대단했어요! 사람이 선수로서도 완벽한데 지도자가 되면 이게 또 역량이 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마동왕 선수는 항상 혁명가이기 때문에 변하지를 않아요! 늘 혁명 중입니다!]

    [다른 선수들도 오늘 잘해 줬지만 뭐니뭐니 해도 윤솔 선수의 트리플 킬이 쐐기를 박았다고 봐야죠! 우리나라에 마동왕 말고도 인재가 많다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이윽고.

    푸슉!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뭉게뭉게 치솟으며 닳고닳은 뉴비 구단의 모든 멤버와 스텝들이 무대로 올라 인사를 했다.

    마태강, 유세희, 드레이크, 윤솔. 그리고 나.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무대에 올라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들을 향해.

    *       *       *

    우승팀 소감이 끝난 뒤의 시상식은 더욱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으음……과한데.’

    나는 새삼 큰 감회를 느끼며 전광판을 주목하고 있었다.

    ‘POTG’

    토너먼트 형식인 아챔은 경기가 끝나면 공식 사이트를 통해 해당 경기의 주인공을 선발한다.

    이것이 현재 국민들에게 익숙한 ‘MOM(Man of the Match)’이다.

    하지만 결승전의 경우는 좀 다르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뻔한 MVP를 뽑는 것이 아니라 POTG를 뽑는다.

    POTG(Play of The Game).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빅리그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 최고의 순간을 선발하는 것이다.

    단순히 단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의 모든 전광판에서 해당 순간의 영상을 플레이해 주기 때문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실제로 POTG가 플레이 된 후 남는 하나의 후원사 로고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제일 광고료가 비싼 구간이기도 하다)

    [Powerful!]

    그리고 내 눈앞에는 3가지 종류의 POTG가 재생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Powerful.

    가장 강력하고 터프한 순간!

    예상대로 윤솔의 마지막 일격이 화면을 장식했다.

    쿠드득- 쿠드득-

    윤솔이 트로츠키를 향해 주먹을 날린 순간 초고속 카메라로 시점이 전환되고 주먹과 트로츠키의 사이를 확대한다.

    휘오오오오…

    동굴 속 거대한 괴수가 울부짖는 것 같은 굉음.

    그렇다. 이것은 길게 늘린 파공음. 윤솔의 주먹이 공기를 찢는 소리다.

    와아아아아아-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장면이지만 경기장 내의 관객들은 다시 목이 터져라 환호한다.

    이러한 멋들어진 편집이 실황 중계와는 다른 POTG만의 묘미다.

    곧 두 번째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Skillful!]

    첫 번째 Powerful이 관객들의 상이라면 두 번째 Skillful은 고인물들의 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챔의 모든 경기, 수 초 단위로 잘게 쪼갠 공격, 방어, 회피, 기동 등 모든 동작 중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훌륭한 장면을 뽑는다.

    영상 속에선 드레이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화살을 쏘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통! 통! 통! …푹!

    마지막 안혁수를 농락했던 수많은 변칙샷 중 하나인 물수제비샷이었다.

    ‘흐음…확실히…….’

    원리를 아는 나로서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이 시기의 고인물들에겐 불가해의 영역에 있는 기술이니 사람들이 열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간결한 3초짜리 영상이지만 영상을 본 스트리머 부스는 난리가 났다.

    황급히 축축해진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사람도 보인다.

    실제로 짬을 내어 확인했던 뎀 커뮤니티 안에서는 윤솔의 라스트 샷보다 드레이크의 변칙샷, 그중에서도 물수제비샷이 화제였다.

    [Beautiful!]

    드디어 POTG의 마지막.

    각 예술계의 거장들이 평가한 예술적인 장면.

    런던 게임아트센터에 1년간 메인 모니터로 상영될 장면이다!

    ‘……이건 진짜 예상 못했는데.’

    게임 고인물이라고 예술까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냥 멋들어진 장면 하나가 선정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장면이 선택되었다.

    [사부가 그랬어요!]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큰 대낫을 든 소녀가 카메라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는 온몸에 불을 붙인 채 탄환처럼 날아드는 적을 피해 버렸다.

    [카스테라를 먹을 때에는 밑바닥에 붙어 있는 종이를 조심하라고!]

    날카로운 불카노스 대낫의 끝은 상대의 전신을 간지럽히듯 더듬었다.

    그리고 이내.

    번쩍-

    붉은 초승달이 화면 정중앙에서 번뜩인다.

    [자칫하면 이상한 것까지 먹을 수 있으니 하단부를 꼭꼭 살피라고!]

    이를 꽉 문 소녀의 얼굴이 그제야 클로즈업이 된다.

    눈 먼 처형인. 유세희다.

    싹둑-

    대낫이 수직으로 떨어지고 리후이하오의 몸이 정확히 두 동강 났다.

    피 한 방울, 살점 한 조각 튀는 일 없이, 마치 원래부터 둘로 나뉘어 있던 것처럼 깔끔한 반갈이였다.

    와아아아-

    ‘일났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Powerful의 윤솔,

    Skillful의 드레이크,

    Beautiful의 유세희.

    한국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POTG마저 독식해 버렸다.

    이것은 회귀 전에도 없던 대기록이다.

    지식, 실력, 운, 노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기.

    이 모든 것이 이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냈다.

    우승국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분산하기 위한 장치가 오히려 우승팀을 더욱 빛내고 있는 것이다!

    *       *       *

    나는 인사가 끝나고 무대 아래의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의 인사가 끝난 뒤에도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 리플레이나 레드문의 신모델 캡슐 시연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빅리그 우승의 여파는 아직 식지 않고 있다.

    나 역시도 칵테일 한 잔을 들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연호와 임요셉 등 전 국K-1 동료들과 포옹도 하고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는 등 일정이 꽤나 바쁘다.

    ‘근데 남은 관중들이 묘하게 많네.’

    아무리 그래도 빅리그 경기가 모두 끝나고 난 뒤인데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게다가 심지어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표정들인데?’

    경기도 다 끝났는데 다들 집에 안 가고 남아서 뭘 기다리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를 준비하느라 그 외의 자잘한 행사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관심을 끄고 있었다.

    아마 이 뒤에 뭐 다른 기대할 만한 행사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때.

    …툭!

    내 등을 살짝 치는 손길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엄재영 감독의 옆으로 익숙한 얼굴의 중년인이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레드문의 김한선 이사였다.

    차규엽과 그 잔당들을 완전히 축출한 뒤 명실공이 레드문의 중추가 된 그는 빠르게 회사 내 정치판을 장악해 나가 지금은 공백들을 거의 다 메꾼 상태라고 들었다.

    엄재영 감독과 김한선 이사는 호형호제 하는 아주 끈끈한 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친해 보이기도 한다.

    “이야, 한선이가 너를 꼭 만나서 축하인사를 해 주고 싶대서 데려왔지.”

    “허허, 우리 모자란 형님을 늘 버스 태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야! 이거 왜 이래! 내 전략도 꽤 있었어!”

    “에이~ 선수들이 잘해 줘서 그런 거잖아요.”

    엄재영 감독과 김한선 이사가 툭닥거리는 것을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고맙습니다. 시상식에 조디악이 없으니 이제는 좀 허전하네요.”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과 김한선 이사는 모두 빵 터졌다.

    나와 김한선 이사는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저번에 빅리그로 가신다고 하셔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화려하게 우승하셨네요. 과연 그때 말씀하신 대로 큰물에서 제대로 노셨습니다.”

    예전에 나는 김한선 이사에게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라고 말했던 바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검지를 저었다.

    “사실 뭐, 이 정도로 큰물이라고 할 수 있나요.”

    “…예?”

    내 말을 들은 김한선 이사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거의 올림픽 규모에 버금가는 이 성대한 대회가 큰물이 아니면 대체 뭐가 큰물이라는 것일까?

    나는 그런 김한선 이사의 의문에 답을 제시해 주었다.

    “세계리그 쯤은 우승해 봐야죠.”

    그러자, 내 말을 들은 김한선 이사와 엄재영 감독의 입이 딱 벌어진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이 거대한 리그는 사실 6개의 리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유럽 챔피언스 리그.

    북미 챔피언스 리그.

    남미 챔피언스 리그.

    오세아니아 챔피언스 리그.

    아프리카 챔피언스 리그.

    그리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더해 모두 6개의 챔피언스 리그.

    이 모든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국 6개국이 한 데 모여 최후의 정점을 가리는 ‘월드 얼티메이트 올림피아드(World Ultimate Olympiad)’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이 리그에서의 우승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역시. 저 같은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못할 영역에 계십니다. 저도 더욱 분발해야겠군요!”

    “이야, 이 자식 이거 사람 매료시키는 힘이 있네 진짜.”

    김한선 이사와 엄재영 감독은 연신 감탄사를 뱉으며 내 손을 잡고 흔든다.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때.

    …푸슉!

    저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또다시 드라이아이스가 터져 나온다.

    내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김한선 이사가 싱긋 웃었다.

    “아, 드디어 마지막 행사네요. 기대감이 크시겠습니다.”

    “네? 뭐가요?”

    내가 의아한 어조로 묻자 김한선 이사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예? 아, 혹시 모르셨습니까? 마지막 행사 무대 일정…….”

    “네. 저는 딱 경기 계획만 짜고 와서 다른 자잘한 행사 일정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자 김한선 이사는 내 등을 툭 치며 씩 웃었다.

    “그렇다면 아마 재미있으실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팬 여러분! 드디어 쇼타임입니다!”

    무대에서 들려오는 발랄한 멘트가 있었다.

    윤솔이 평소답지 않게 다소 들뜬 기색으로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내, 그녀는 자욱하게 치솟는 드라이아이스와 폭죽의 향연 너머로 입을 열었다.

    회귀자인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실로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