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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82화 (582/1,000)
  • 582화 아시아 정복 (7)

    한편 캐스터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세, 세상에! 방금 보셨습니까? 올가 알렉셰예브나 크로폿키나 선수가 리타이어 당했습니다!]

    [올가 선수라면 아시아 통합 랭킹 6위에 빛나는 초강자입니다! 그런 천상계 마법사의 얼음공격을 너무도 쉽게 잡아 찢어 버리는 저 힘! 저 말도 안 되는 힘이라니요!?]

    [제가 꿈을 꾸고 있나요!? 아니, 윤솔 선수는 원래 힐러 아니었습니까!?]

    [대체 뭘까요!? 윤솔 선수가 메타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전광판에 공개된 저 막대한 신성력 게이지는 그대로인데 어찌 저런 괴력이……!?]

    모든 관중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윤솔이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을 줄 아무도 몰랐다는 표정들.

    간혹 윤솔이 커다란 바위를 치우거나 하는 것을 목격한 적 있던 이들도 그것은 주문서나 물약에 의한 일시적 버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

    올가의 죽음을 코앞에서 목격한 트로츠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하의 트로츠키조차 올가의 얼음을 순수한 힘으로만 깨부술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그런데 눈앞의 저 힐러가 올가가 만들어 낸 빙하들을 마치 슬러쉬 부수듯 하고 있는 것은 대체 뭘까?

    ‘얼음 속성에 강한 타입인가? 그래,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지. 힐러가 저런 공격력을 가졌다는 것은 말이야.’

    트로츠키는 윤솔이 보이고 있는 신위가 특정 속성에만 강하기에 도출된 결과값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태그했군.’

    트로츠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힐러와 싸우기 싫어 교대한 것이 올가라는 카드를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찌 보면 상대방의 얄팍한 심리전에 말려든 결과이다.

    ‘하지만 그따위 얄팍한 전략으로는 나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트로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쿵!

    결국 트로츠키는 필드로 나가 윤솔의 앞을 막아섰다.

    “감춰 놓은 수가 있었군 그래. 올가만을 노리고 나온 저격수였나?”

    트로츠키는 윤솔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츠츠츠츠츠츠…

    이내 트로츠키의 메인 스킬이 발동되었다.

    ‘피 주머니’ 특성으로 인해 필드에서 죽은 아군의 체력이 트로츠키의 최대 체력에 더해진다.

    올가의 생명력을 흡수한 트로츠키의 HP게이지가 또 쭉 늘어났다.

    “힐러 유저와 힘 대결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기가 막히는군.”

    트로츠키는 말을 마친 뒤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윽고.

    …팟!

    윤솔이 커다란 손을 뻗어 왔다.

    트로츠키 역시 커다란 손을 뻗어 윤솔의 손을 맞잡았다.

    콰쾅!

    거구의 오크와 가녀린 체구의 인간 여자가 힘 대결을 하는 모습은 실로 기이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둘은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

    트로츠키는 자신의 힘을 완전히 버텨내는 윤솔의 신위에 경악했다.

    ‘무, 무슨 놈의 힘이!?’

    심지어 자기가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윤솔의 힘은 오로지 얼음타입에만 강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트로츠키와 힘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한편,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이는 마몬을 잡고 얻은 탐욕의 악마사냥꾼 호칭 덕분에 어둠 계열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두 배로 박지. 아마 식겁할 거다.’

    그렇다. 윤솔은 어둠 계열, 특히 악마의 직속 산하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들어가는 데미지가 두 배로 계산된다.

    현재 윤솔의 공격력은 무기 공격력 12에 투구 공격력 4,444, 양 손 건틀릿의 공격력이 각각 4,444/4,444로 총 13,344.

    거기에 탐욕의 악마사냥꾼 호칭으로 인해 그 공격력은 26,688까지 치솟는다.

    심지어 윤솔의 기본 속성인 ‘빛’ 이 오크인 트로츠키의 ‘어둠’ 속성의 상극으로 판정되면서 최후의 결정력은 총 53,376!

    현 시대의 랭커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치이다.

    …꾸국! …꾸구구국!

    트로츠키와 윤솔은 서로 힘 대결을 펼친다.

    위치와 힘 배분, 아이템의 활용도에 따라 윤솔이 뒤로 몇 센티미터 밀릴 때도 있었고 트로츠키가 뒤로 몇 센티미터 밀릴 때도 있었다.

    당연히 캐스터들은 난리가 났다.

    [세상에! 윤솔 선수! ‘그’ 트로츠키 선수에게 버티고 있습니다! 버텨내고 있어요!]

    [아니, 저런 버틴다는 말보다는 호각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요!]

    [호각도 아닙니다! 밀어내요! 밀어내고 있어요!]

    [아아! 트로츠키! 마태강 선수와 유세희 선수를 노 데미지로 잡은 괴력의 소유자가 지금 한국의 힐러 윤솔 선수에게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그들의 중계대로, 지금 윤솔은 트로츠키와 거의 박빙의 힘싸움을 벌이고 있다.

    “…크으윽!?”

    트로츠키는 온 힘을 다해 윤솔을 찍어 눌렀다.

    동시에 약간씩 숨기고 있던 여벌의 근력 스탯까지 모두 총동원해 윤솔에게 맞섰다.

    그때쯤 해서, 윤솔은 숨기고 있던 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꿈틀!

    윤솔의 등 뒤에서 갈색 기운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한 곳으로 모여들어 천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저주받은 뿌리 목갑(木甲)> / 갑옷 / S

    네 개의 말라비틀어진 뿌리로 만들어진 갑옷.

    한때 고대신으로 숭배 받았던 존재가 남긴 것으로 지금은 모두가 꺼리는 저주받은 물건 취급이다.

    -방어력 15,000

    -특성 ‘만근추’ 사용 가능

    -특성 ‘앙버팀’ 사용 가능

    -특성 ‘압궤’ 사용 가능

    -특성 ‘팔씨름’ 사용 가능

    깡 방어력 만 오천!

    하지만 이 갑옷의 진가는 바로 네 개나 붙어 있는 특성치에 있다.

    숨을 참았을 시 자기의 몸무게를 근력 스탯에 비례하여 폭발적으로 늘려 주는 ‘만근추’ 특성.

    최대 체력을 넘어설 정도의 데미지를 받았을 때 무조건 HP가 1남은 상태로 한번은 버티게 해 주는 ‘앙버팀’ 특성.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데미지를 최대 두 배까지 늘려주는 ‘압궤’ 특성.

    비슷한 방어력이나 공격력 수치를 가진 적과 힘겨루기를 할 때 데미지를 최대 두 배까지 늘려주는 ‘팔씨름’ 특성.

    기생목(寄生木)에서 나온 아이템답게 본인 자체의 능력치는 구리지만 숙주의 힘이 원래 강력했다면 그 폭을 더욱 더 넓게 벌려주는 역할의 갑옷.

    그린헬의 메인 보스 쟈쿰을 잡고 얻은 초레어 히든 피스의 힘이 여기서 터져 나온다!

    …우지지지직!

    윤솔은 올가가 남겨놓은 울퉁불퉁한 얼음덩이 위로 올라가 그대로 트로츠키를 찍어 눌렀다.

    53,376의 깡 데미지는 ‘만근추’ 특성의 무게 증가에 의해 곧 힘으로 변해 50%가량 상승하여 80,064.

    ‘압궤’ 특성에 의해 또다시 두 배가 상승하여 160,128.

    ‘팔씨름’ 특성에 의해 또다시 두 배가 상승하여 320,256!

    총 13,344였던 깡 데미지는 최종적으로 24배가 상승하여 320,256이 되었다.

    “어억!?”

    트로츠키는 갑자기 강대해진 윤솔의 힘에 전율했다.

    마치 산을 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거대한 토사에 압도되는 공포가 트로츠키의 목을 옥죈다.

    …우지지직! …투둑! …뚜두둑! …뿌득! …빠직! …으지직!

    곳곳에서 뼈 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근섬유들이 끊겨 나가는 소리, 살가죽이 터져 나가는 감각이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지금 실시간으로 압사(壓死)당하고 있었다!

    “쯧쯧쯧.”

    나는 그런 트로츠키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체력이 많으면 전반적인 내구 자체는 좋아지지만 일정 선을 넘어 버리면 방어력이나 특수 방어력 면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분명 생기지. 차라리 체력, 방어, 특방 셋에 골고루 분배를 했거나 방어나 특방 어느 한 쪽에 몰빵을 때려 버렸다면 상관없겠지만 어중간하게 공격력까지 잡으려고 하다 보니 망캐가 되어 버렸네.”

    예전에 고인물의 골목게이머에 나왔을 당시 나는 한 탱커 유저에게 비슷한 조언을 해 준 적이 있다.

    딜이면 딜, 탱이면 탱, 하나만 확실하게 하라고.

    모든 일을 혼자 잘할 수는 없다. (나 빼고)

    RPG는 기본적으로 롤플레잉 게임이니만큼 나는 한 분야의 장인이 되고 모자란 분야에서는 다른 장인의 힘을 빌려와야 한다. (나를 제외하고)

    세상살이 또한 그렇듯 말이다.

    엄재영 감독은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오크는 악마의 직속 하위종, 아주 메이저한 어둠 타입이니만큼 윤솔의 빛 속성에게 기본 상성적으로 약점을 찔리지. 트로츠키는 윤솔에 대해서만큼은 실질효율이 아주 엉망진창이란 말야.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군.”

    우리의 예상대로, 트로츠키는 윤솔과의 승부를 포기하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늘 침착하던 그의 표정은 경악과 충격으로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태, 태그!”

    HP가 엄청나게 증발한 것을 확인한 트로츠키는 재빨리 러시아 측의 힐러인 라스푸틴과 태그를 외쳤다.

    그러자.

    윤솔은 더 이상 상대방들의 전략을 여유롭게 좌시하지 않았다.

    이윽고, 트로츠키를 치료해 주기 위해 필드로 잠시 나온 라스푸틴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윤솔이 저 앞에 있는 라스푸틴을 향해 빙긋 웃었다.

    “아까 뭐랬나요? 집에 가서 남편 밥이나 해 주라고 하셨던가?”

    “으아아아아!?”

    라스푸틴은 재빨리 상공에 힐 마법을 뿌리고 다시 트로츠키와 태그하려 했다.

    하지만.

    …쾅!

    두 팔을 단단한 얼음바닥에 박아 넣는 윤솔에 의해 태그는 물거품이 되었다.

    우지지지지직! 퍼펑!

    윤솔이 마치 밥상을 뒤집어엎듯 두 팔을 허공으로 들었다.

    거대한 얼음 빙판이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그대로 부서져 허공으로 마구 치솟아 오른다.

    라스푸틴은 그 거대한 폭풍과 지진에 휘말려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갔다.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들 사이에 부딪치고 으깨져 피떡이 되어 버린 것은 물론이다.

    그는 허공에서 시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공중분해 되었다.

    실로 폭력적으로 맞이한 최후였다.

    순삭(瞬削).

    순식간에 엔트리에서 삭제되는 라스푸틴의 HP 게이지에 일동이 침묵한다.

    이윽고. 러시아 선수 네 명이 모두 리타이어 된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가 필드로 등장한다.

    HP가 경각에 이른 트로츠키가 헬쓱한 표정으로 필드에 강제 소환되었다.

    캐스터들은 그제야 얼떨떨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마이크를 잡는다.

    [세, 세상에. 지금 제가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으아아, 아무래도 오늘은 밤 샐 것 같네요. 이번 경기 리플레이 영상 돌려 보느라요!]

    [한국의 윤솔! 러시아의 올가와 라스푸틴을 상대로 더블킬! 거기에 아시아 최강의 선수인 트로츠키 선수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습니다!]

    [서, 설마 아니겠죠? 제가 상상하는 그 그림이 아니겠죠!?]

    아니긴 뭘 아니야.

    나는 필드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트리플 킬(Tripple kill)!

    빅리그에서 벌어진 사상초유의 대사건이 오늘 윤솔의 손에 의해 일어날 예정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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